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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175화 (175/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75화

- 엥? 왜 아무도 없어?

- ???????

- 불도 꺼져 있네 잘못 켠 거 아니야?

갑작스러운 라이브 알림에 달려온 스위치들이 어리둥절해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연습실 문이 느릿하게 열리더니, 촛불 꽂은 케이크를 든 성해온을 필두로 멤버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1위 축하합니다~ 1위 고맙습니다아~ 사랑하는 스위치~ 랕온이 사랑합니다아아아~”

- 생일 축하 노래 개사해서 부르는 거냐고ㅠㅠㅠㅠ 귀여워 죽겠다

- Eng plz T.T

- 1위 축하해 얘들아!! (폭죽 이모티콘)

“하나, 둘, 셋, 하면 초 불까?”

내 제안에, 최승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근데 그 전에 다들 소원 하나씩 빌고!”

“……헙! 소원 빌겠습니다!”

눈을 질끈 감았던 차윤재가 실눈을 떴다.

“근데 소, 소원이 이미 이루어진 것 같은데…… 더 바라기엔 욕심이 지나칩니다!”

- 미친 진짜 이렇게 사랑스러워도 되는 거임? 아기고양이도?

- 스위치 : ㅇㅇ 죽어줄게

“그럼 윤재 빼고 소원 빌까?”

내 말에 차윤재가 눈을 부릅떴다.

“……! 그건!”

“우리끼리 빌기 전에 얼른 눈 감아.”

“으하핫, 빼고 불까요?”

- 성떤남자 멤버들 놀리는 거 은근히 즐기는 듯…

- 애들 분위기 너무 예쁘다 촛불 일렁이는 것도 ㅠㅠㅠ

“후.”

동시에 초를 분 우리는 연습실에 둘러앉았다.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 올려 빠른 속도로 올라오는 댓글을 살폈다.

- 해온아 아까 왜 다 안 안았어 해명해!! 해명해!!

- 공약 어쩌다가 나온 건지 말해주세요!

“…….”

나는 애써 이 댓글들을 무시하고 있었는데, 류인이 나와 댓글창을 연달아서 힐끔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어, 힘들긴 했는데. 음, 해온이가 힘이 세거든요. 절대 약하지 않아요. 그쵸?”

심지어 다른 놈들까지 합세해서 나를 띄워주기 시작했다.

“예! 맞습니다! 저를 종잇장처럼 안아 드셨습니다! 아마 류인 형님도 어렵지 않으실 겁니다!”

“하핫, 맞아요. 솔직히 조금 놀랐어요.”

“저도……! 정말 대단해요……!”

정신나간놈들아.

좋은 말 할때 그 입들 다물도록 해라.

나는 그만두라는 뜻을 담아 강력한 눈빛을 보냈고, 차윤재와 정확하게 시선이 얽혀들었다.

타앗!

……끄덕!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차윤재에 나는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제야 마무리가 되겠군.

하지만 차윤재가 입을 여는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 녀석의 눈치를 간과해 버린 것이다.

“해온 형님이 류인 형님을 들지 못한 것에 대해서 굉장히 아쉬워하셨습니다!”

“……?”

- [긴급속보] 현재 유라이브 해온이가 류인이 안을 듯

- 오늘 유라이브 개꿀잼 돌았음 안 보고 있으면 얼른 들어와라

- 당장 접속 당장 접속

팬들이 SNS에 실시간으로 내용을 공유하며, 라이브 시청자 수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주르륵…….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댓글 분위기가 차마 뺄 수 없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애초에 도배 수준으로 올라와 못 본 척을 할 수도 없었다.

“형님! 팬분들게 보여주십시오!”

클라이맥스로, 뿌듯한 얼굴의 차윤재가 불난 집에 기름통까지 던졌다.

이 녀석은 정말 내가 류인을 들지 못해 아쉬워하고 있던 걸로 생각한 게 틀림없다.

이건 대참사였다.

- 내가 보고 싶었던 게 이거거든

- 힘숨찐 성해온 가보자고

- 두근두근두근두근

- 류인이 얼굴 수줍어진 것 좀 봐 벌써 안길 준비 완료야

“……해온아, 지금 안길까?”

어느새 내 등 뒤로 온 류인이 당장에라도 뛰어들 기세로 주춤거렸다.

물론 놀리긴 했다만, 팬들도 내가 다른 멤버들을 번쩍 안아 올린 걸 봤기에 대수롭지 않게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침을 느릿하게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템도 없는 지금 이 몸뚱아리로 저 녀석을 들 수 있나?

답은 ‘아니’다.

가능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빠르게 대가리를 굴렸다.

어차피 하찮은 이미지가 더해진 거, 몇 번 시도하는 척 하다가…….

-류인이가 슬림해 보여도 뼈대가 크고 근육도 단단해서 무겁거든요. 좀 힘드네요.

이런 식으로 둘러댄다.

나는 맑은 미소를 지으며 류인에게 다가갔다.

녀석의 허리와 무릎 안쪽에 손을 넣은 나는, 팔에 작게 힘을 줬다.

들어 올릴 생각은 애초에 없다.

태도 논란이 나오지 않게, 열심히 시도하는 척하다가 포기할 생각이니까.

- 공주님 안기한다 ㄷㅂㄷㅂㄷㅂ

- 어떡해 너무 흥미진진함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해온아. 하나, 둘-”

어쩐지 수줍은 얼굴을 한 류인이 카운트를 시작한 것이다.

이봐, 멈춰.

웬 카운트냐.

류인의 입술이 ‘셋’을 외치려는 듯 서서히 벌어졌고, 내 얼굴엔 경악이 물들었다.

“……셋.”

바닥에서 발을 뗀 류인이 순식간에 내게 안겨들었다.

과연, 성해온의 몸뚱아리가 류인을 1초라도 감당할 수 있을까?

가당치도 않은 질문이다.

될 리가 없지.

우당탕탕탕!

“…….”

말로 설명하기 힘들 만큼 조용한 정적이 연습실을 휘감았다.

류인이 내게 체중을 싣자마자, 나는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고 류인 역시 내 위에 엎어졌다.

- 얘들아 죽은 거 아니지

- 라이트온 나 모르는 사이에 개그 그룹으로 전향함?

- 류인 왜 순정만화 여주 얼굴 하냐고 아 tlqkf 저따구로 넘어지는 거 순정만화 클리셰라고

- 오늘 라이브 진짜 레전드넼ㅋㅋㅋㅋㅋㅋㅋㅋ

확실히 순발력이 좋은 건지, 넘어질 때 류인이 팔로 제때 바닥을 짚어서 크게 아프진 않다.

물론 등짝이 화하긴 하지만, 난리 피울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미치도록 수치스럽다.

이럴 계획은 없었단 말이다.

바닥에 엎어진 내가 얼굴을 가리자, 멤버들이 다가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형님! 살아 계신 겁니까!”

“당장, 병원을……!”

“……해온이 괜찮대.”

“류인 형님은 괜찮으신가요?”

“난 괜찮은데…….”

“해온 형님은 괜찮으신 게 맞습니까?”

“……윤재야. 해온이 잠깐 혼자 두자.”

- 성해온 안 쪽팔린 척한다!!! 안 쪽팔린 척한다!!!

- 귀 빨개진 거 실화야?

- 오늘 성해온 이불킥 예약

나는 카메라에 얼굴이 보이지 않게끔 등을 돌린 상태로 상체를 일으켰다.

“……저는 괜찮습니다. 하나도 안 아파요. 방금은 실수로 발이 꼬였던 것 같습니다.”

- 괜찮다고 하는 애들 특 : 안 괜찮음

- 그렇다기엔 너무 추풍낙엽처럼 넘어졌는데

- 성해온 랩하냐?

- 해온이 지금 수치스러워서 죽기 일보직전인 거 맞지

- 최승하 웃겨 죽을려고 하는 것봨ㅋㅋㅋㅋ

“흐, 흑, 흐흡…….”

바닥을 팡팡치며 괴로워하던 최승하가 카메라에 얼굴을 불쑥 들이밀더니, 은밀하게 속삭였다.

“다들 이거 소문 내지 마세요…… 아시겠죠. 크흡…….”

- 이미 소문 다 났어 승하야

- 소문 내라고 등떠미는 거 아님 지금? 개웃겨 ㅋㅋㅋㅋ

사태를 수습하려는 성해온의 짤막한 멘트와 감사 인사를 마지막으로 라이브는 종료됐고, 팬들은 성해온을 200%로 놀려먹기 시작했다.

- 성해온 놀려먹을 수 있는 기회? 흔치 않다 얘들아 지금 마음껏 놀리자

- 라이트온 이 웃수저 그룹 진심 어캄?

- 개그는 재능이라더니 진짜 질투난다

- 아무리 생각해도 순정만화처럼 넘어지는 거 개처웃기네 아 ㅠㅠㅋㅋㅋㅋㅋㅋㅋ

* * *

“건들지 마라…….”

연습실에서 숙소로 돌아온 나는 험악한 낯짝으로 경고한 뒤, 숙소 방문을 잠궜다.

라이브가 끝나자마자 연습실에서부터 미친 듯이 놀림당한 참이다.

눈을 질끈 감은 나는 침대에 털썩 누워 이불을 끌어당겼다.

“형, 형…… 맛있는, 거라도, 시킬까요…….”

내 머리맡에 앉은 신유하가 손가락으로 등을 작게 두드리며 물었다.

“……됐다.”

쾅쾅쾅쾅!

“형님! 아깐 정말 오해였습니다! 저는 형님이 오해를 풀기 위해 류인 형님을 안아 올리고 싶어 하는 줄 알았습니다!”

거의 눈물이라도 흘릴 기세로 문을 쾅쾅 두드린 차윤재가 소릴 질렀다.

“사과드립니다아!”

“…….”

솔직히 화가 나는 건 아니다.

잘못한 사람이 없지 않은가.

굳이 찾자면 이 빌어먹을 몸뚱아리지.

“……형, 윤재 열어, 줄까요?”

신유하의 물음에 나는 1초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

“아니.”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아무래도 뒤끝이 긴 것 같다며 속닥거립니다!]

[성좌, ‘황금의 신’이 동의합니다! 우리 아해가 눈치를 보고 있다며 눈을 부라립니다!]

나는 흐릿한 얼굴로 열받는 메시지를 무시하며, 자기합리화를 시작했다.

……화제성을 챙겼으니, 된 거 아닐까?

실제로 지금 그 클립은 온갖 곳을 떠돌며 화제가 되고 있다.

다른 팬덤의 타임라인과 커뮤니티 등지를 침투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순정만화 남돌]

단순한 조합의 여섯 글자가 퍼지는 속도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순정만화 찢고 나온 K-아이돌 보고 가라]

[레전드 웃수저 아이돌]

[대환장 라이트온 U앱(feat. 눈물바람, 갑분순정만화)]

이런 제목을 가진 글들이 쏟아져나왔고, 댓글 반응은 대부분 호의적이었다.

아이돌의 예능적인 면모는 대중들의 입덕 장벽을 낮춰주는데다가, 이미지도 자연스레 호감형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 샤랄라 필터랑 꽃 여기저기 붙여서 짤 만든 사람 진짜 잔인하다

- 라이트온 재밌넼ㅋㅋㅋㅋㅋ 진짜 예능의 신이 접신한 거 아님? 저렇게 넘어지기도 힘들다 진짜

- 순정만화남돌 왜 이렇게 웃기지 미칠 것 같음

……반응이 좋으니, 이거면 됐다.

눈을 감은 나는 최선을 다해 생각의 주제를 바꿨다.

생각보다, 일이 척척 진행되고 있다.

1위 말이다.

정말 시기를 잘 탄 게, 이제 곧 굵직한 그룹들이 대거 컴백한다.

우리의 컴백이 조금만 늦었어도, 1위는 꿈도 못 꿨을 거란 소리다.

“흠.”

이렇게 일이 쉽게 풀리면, 뭔가 다른 일이 터지는 법인데.

……이미 터진 건가?

이 라이브로 이미 터진 걸지도 모르겠다.

그럴듯한 가정에, 칙칙한 낯짝으로 고개를 끄덕인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씻어야지.”

그리고 나는 인간의 감은 생각보다 정확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숙소에 들어올 때부터 묘한 두통이 있었으나, 충돌 이후로 이 정도 통증이야 항상 기저에 깔려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는 관자놀이를 직통으로 때리는 두통에, 미간을 찌푸리며 머리칼에 올려진 거품을 헹궈냈다.

……평소보다 좀, 아픈가?

그렇다고 죽을 것 같다, 라는 감상이 들 정도는 아니라서 나는 헹굼을 이어갔다.

물줄기를 맞으며 머리칼을 쓸어넘긴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빨리 나가야겠는데.”

슬슬 몸의 이상이 크게 다가오고 있었다.

설마 충돌이 다시 시작되는 건가 싶었지만, 그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서둘러 샤워기를 끈 내가 발걸음을 옮기려던 순간이었다.

찌릿!

뇌에 스파크가 튀는 것만 같은 강렬한 격통에,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나는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숨을 간신히 토해냈다.

……충돌인가?

아니.

직감적으로 느껴진다.

이건 충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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