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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176화 (176/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76화

간신히 벽을 짚은 내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뇌가 살살 녹는 기분이다.

나는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상태창.’

[성해온]

체력 B

정신력 S+

비주얼 A

노래 A

춤 B-

특성

▶[교주의 아우라(S)]

▶[K팝 망령의 눈(A)]

▶[불면은 나의 힘(A)]

진행 중인 미션

▶망돌의 그림자를 없애라!

보유 골드 500G

구매해 뒀던 넥타르 포션들은 사용한 지 오래다.

[구매가 완료되었습니다!]

나는 가진 골드를 전부 털어 넥타르 포션을 구매했다.

통증에 숨을 제대로 쉴 수조차 없었다.

[넥타르 포션(1%)]이 활성화됩니다!

뭔가, 이상하다.

“……허윽.”

통증이 줄어들긴커녕, 바짝 조여오는 것 같은 기도에 나는 목을 부여잡았다.

왜?

지금까지 충돌이 왔을 때도, 이걸 사용하면 잠시나마 괜찮았는데?

[넥타르 포션(1%)]

신약(神藥) 넥타르가 1% 함유되어 있는 신비로운 포션!

▲ 일회성 아이템

▲ 넥타르 함유량에 따라 지속 기간/효과 차등

▲ 포션의 효능을 상회하는 질병/부상/통증은 완벽하게 치유 불가

말 그대로, 신약(神藥)인데 아무런 차도가 없다고?

[ERROR ERROR ERROR ERROR!]

[시스템이 본체와 빙의체 사이의 오류를 파악합니다!]

[Loading…….]

[ERROR ERROR ERROR ERROR!]

한 가지는 알겠다.

지금 이 몸과 내 영혼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걸.

콰득!

바로 피가 터져 나올 정도로 입안 살을 깨문 나는 고개를 털어냈다.

미쳤군.

그대로 기절할 뻔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 제정신을 붙잡고 있기 힘들 정도로 정신이 흐려진다.

덮쳐오는 통증에 욕실 선반을 부여잡은 나는 숨을 골랐다.

콰당탕!

선반 위에 있던 샴푸, 바디워시 따위가 바닥으로 나뒹굴며 소음이 퍼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나는 작게 욕을 짓씹으며 문 쪽을 바라봤다.

들렸나?

“……! 형, 형! 괘, 괜찮아요? 뭐가 무너지는 소리가…….”

역시나.

짤막한 대답을 쥐어짜 낸 나는 숨을 참았다.

진짜 뒈질 것 같다.

정신력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기절했을 거다.

와중에도 살겠다고 포인트를 교환해 볼까 생각이 들었지만, 대체 뭘로?

넥타르 포션도 효과가 없다면, 뭐가 효과가 있는데?

내가 뒈지는 꼴 보기 싫으면 시스템이 알아서 해결하겠지.

살핀 결과론 이건 충돌이 아니라, 무언가 시스템적인 오류 같으니까.

“흐, 읍…….”

뭐가 됐든, 빨리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진짜 정신을 놔버릴 것 같다.

삐이이이이-

귀에서 시작돼 대가리 전체를 울리는 이명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제 제대로 사고를 하기조차 벅찰 지경이다.

나는 뭉개지는 시야로 허공을 응시했다.

속으로 시스템에게 온갖 욕을 퍼붓자,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ERROR ERROR ERROR ERROR!]

[시스템이 알 수 없는 오류를 파악 중입니다!]

X발.

해결된 게 없다는 것 아닌가.

이제 한계다.

나는 마지막 기력을 쥐어짜 내 허공을 응시했다.

미친놈들아.

양심 있으면…….

“……옷 좀.”

입혀줘, 라는 말을 끝마치지 못한 채 시야가 암전됐다.

* * *

“……!”

주변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고통을 포함한 아무런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는…….

무의식의 공간?

속으로 상태창을 읊었으나,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건 뭐지.

나는 정면에 떠오른 무언가를 응시했다.

[기■의 ■편을 ■아■이시겠■니까?]

읽어낼 수도 없을 만큼 노이즈가 잔뜩 껴있고, 뭉개져 있다.

해석을 할 수도 없을 만큼 말이다.

심지어 물음조로 끝난 것치고, 선택지조차 없다.

내가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무렵, 메시지가 잔뜩 지직거리더니 흐려졌다 되돌아왔다를 반복했다.

그러던 이내.

[자동 선택됩■다!]

[기■의 ■편의 일부가 ■■됩니다!]

“……!”

대체 누구 멋대로 선택을!

당황할 새도 없이 메시지가 수차례 갱신되며 다시 떠올랐다.

[기■의 ■편을 ■■하시■습■까?]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기■의 ■편의 ■■이 ■류됩니다!]

이 메시지와 동시에 눈을 껌뻑인 순간이었다.

낯선 공간에서, 익숙한 욕실 천장으로 시야가 바뀜과 동시에.

촤아악!

허공에서 물이 쏟아졌다.

“…….”

샤워기?

그럴 리가 없다.

정말 욕실 천장에서 수맥이라도 터진 것처럼 내 면상을 후려갈기고 있다.

[시말서를 작성한 시스템이 당신에게 사과를 건넵니다!]

[시스템이 정신을 잃으면 안된다고 찡찡댑니다!]

촤아악!

“…….”

그러니까, 기절한 날 깨우려고 내 낯짝에 물을 들이붓고 있-

촤악!

“브븝.”

미친놈들아 눈 떴잖아.

그만 부어.

입으로 들어간 물을 흘려뱉은 내가 욕을 지껄이자, 물세례가 멈췄다.

나는 조용히 천장을 응시했다.

휘몰아쳤던 통증이 잠잠해졌다.

……그 의문의 메시지를 받은 탓에?

게다가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온몸의 근육이 다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격한 통증에 근육이 잠시 마비된 거라고 추측 중이지만, 뇌리에 강렬한 직감이 스쳤다.

“음.”

이를테면, X됐다는 느낌 말이다.

* * *

“유하 형.”

성해온과 신유하의 방문을 열고 들어온 한수현이 주변을 살폈다.

“해온 형은 샤워 중이신가요? 왜 이렇게 안절부절…….”

“…….”

“형, 무슨 일이에요?”

“어떡해……! 쓰러진, 것 같아……!”

“……네?”

당황한 한수현이 방 안으로 들어와, 내부에 위치한 욕실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철커덕, 철커덕.

“형, 해온 형.”

잠긴 문은 당연히 열리지 않았고, 한수현이 문을 두드리며 작게 외치자 거실에 있던 멤버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수현아, 잠깐만.”

최승하가 문 앞에 서자, 한수현이 만류했다.

“안에서 해온 형이 괜찮다고, 문 열면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하고 계신데요.”

“형, 그럼 딱 10초만 기다릴게요. 문 열어주세요.”

“10분.”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최승하가 생긋 웃었다.

“10초 지났어요.”

* * *

신이시여, X발.

맨정신으로 문이 휘청이는 걸 목격한다면 어떻게 될까?

혀라도 깨물고 뒈지고 싶어진다.

그냥 아까 기절한 상태로 깨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콰앙!

문고리와 잠금장치가 떨어져 나가며, 자연스럽게 문이 열렸다.

설마 문까지 부숴먹을까 걱정한 것에 비해 양호하군.

……인생이, 정말 재밌다.

“혀, 형……!”

“혀어어엉니이이임! 세상에! 세, 세상에!”

“해온아, 일어날 수 있겠어?”

저마다 놀란 얼굴을 한 멤버들이 욕실로 발을 내디뎠다.

바로 그 순간, 심각한 얼굴의 한수현이 소리쳤다.

“……잠깐만요. 형들, 동작을 멈추세요. 뇌진탕이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구급차를 불러 들것으로 옮기는 게 좋겠어요.”

돌았냐?

나는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갑자기 현기증이 나서 잠깐 누워 있는 거니까 신경 꺼.”

“형님! 대체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세상 그 어느 누가 현기증이 난다고 타일 바닥에 드러눕는답니까!”

“맞아요. 윤재 형이라면 속이실 수 있으셨겠지만, 제 눈은 속일 수 없습니다.”

“나도 안 속아……!”

차윤재의 강력한 항변을 한 귀로 흘린 게 분명해 보이는 한수현이 몸을 숙였다.

“해온 형,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여기…….”

스윽…….

뒤늦게 내 인권을 챙겨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 모양인지, 한수현이 내 몸 위에 커다란 수건을 얹었다.

“…….”

그래, 딱 죽고 싶다.

안광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괜찮아.”

“괜찮다고 하시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도 못하시는걸요.”

“어지러워서 그래. 금방 괜찮아져.”

“방금 하신 말과 같은 맥락이군요. 하지만 저는 그보다 큰 문제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게다가 넘어지셨을 때 충격이 있었을 테니, MRI는 꼭 찍어야 합니다. 후유증이 있을지도 모르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당장-”

터업-

나는 힘겹게 한수현의 주둥아리를 틀어막았다.

다리까진 아직 힘이 돌아오지 않았지만, 상체 정도는 어느 정도 움직이는 게 가능했다.

“……!”

“일어난 거 봤잖아. 내 몸 상태는 내가 잘 알아. 멀쩡한 거 봤으면 다들 나가도-”

안타깝게도, 내 말은 끝을 내지 못했다.

질질질-

내 팔 안쪽에 자신의 팔을 끼워 넣은 차윤재가 나를 짐짝처럼 옮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턱에 커다란 호두를 매단 채로 말이다.

“……형님 때문에, 끄흡, 제명에 못 살겠습니다! 형님은 앞으로 문 잠그지 말고 씻으십시오! 앞으로 잘 때 숨 쉬나 확인해야 할 판입니다!”

이봐, 내 인권은 어딨지?

순식간에 방까지 옮겨진 몸뚱어리 위에 이불이 덮였다.

“……형, 잠깐.”

잠옷을 꺼내온 신유하가 어버버거리며 내 팔에 옷을 끼우기 시작했고, 나는 신유하 손에 들린 잠옷을 낚아챘다.

“내가 입을 테니까 두고 다들 나가.”

그 순간이었다.

띠링!

[죄송합니다!]

파악되지 않는 오류로 불편함을 드렸습니다!

시스템이 사과의 의미로, 멤버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미리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들은 당신의 건강 상태를 오해하며, 활동 중단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미리 언질을 드렸으니 설득은 당신의 몫입니다! 파이팅하십시오!

“……허.”

굉장히 어이없는 내용에, 헛웃음이 터졌다.

그러니까 이 말대로라면, 지금 활동 중단이니 뭐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건가?

나야 큰일이 났었다지만, 이 녀석들이 본 건 겨우 욕실에서 넘어진 거 하나뿐인데?

[시스템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지금 분위기는 생각보다 심각하진 않다.

내가 나름대로 멀쩡해 보이니, 이 녀석들도 긴가민가한 거겠지.

나는 멤버들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었다가, 멈칫했다.

……우선, 목소리부터 친절하게.

흠흠.

목을 가다듬은 나는 평소보다 몇 배는 상냥한 대외용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 괜찮아.”

사아아-

뭐지, 이 정적은?

물음에 대한 답은 금세 도출됐다.

“흐어어어엉!”

안 그래도 훌쩍거리고 있던 차윤재의 눈에서 눈물이 퐁퐁 솟아났기 때문이다.

“참, 참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못 참겠, 흡, 니다! 형님! 죽을병에 걸리신 겁니까? 그렇게 곧 떠날 사람처럼 친절하게 말하지 말란, 흐윽, 말 흐엉!”

“확실히 방금은 무슨 플래그 같았어, 해온아…….”

싱긋…….

“그래! 차라리 이 무서운 미소가 낫단 말입니다!”

입술을 질끈 깨문 차윤재가 말을 이었다.

“형님이 그렇게 있, 흡, 셔서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그런 것치곤 아까 나를 잘 끌고 가던데.”

“그건!”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꾹 참은 차윤재가 고개를 홱 돌렸다.

“……말장난을 치시는 걸 보니 안 아프신가 봅니다!”

“정확하다. 아프면 내가 이렇게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을 리 없지.”

사실 아직 두통은 남아 있다만, 이 녀석들 앞에서 최대한 멀쩡한 척해야 한다.

나는 눈을 데굴 굴렸다.

솔직히 불자면 최승하가 미친놈처럼 문고리를 부술 때부터, 가장 지랄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생각보다 얌전하군.

……저게 더 호러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있어야지.

“자, 여기서 내가 지금 곧 뒈질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

척! 척! 척! 척! 척!

순식간에 손을 든 다섯 놈에, 내 낯짝이 조금 더 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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