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79화
“누군데? 누군데?”
“이야~ 고발 흥미진진하다~”
패널들의 웅성거림 속, 눈을 질끈 감은 신유하가 외쳤다.
“……해온이!”
“뭐? 해온이가 유하 지목한 거 아니야?”
끄덕!
나는 자연스러운 낯짝을 걸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유하가 선도부장이랑 붙기 무서운가 봐.”
“푸하하, 이 형님 정말 양심이 없, 흐억.”
“뭐야? 방금 엄청나게 빠르게 뭐가 지나갔는데?”
“아무것도 아냐. 윤재가 등이 뻐근하대서 주물러 줬어.”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뒷목을 부여잡습니다!]
“나 궁금해 죽겠어! 그래서 여기 전학생들 중에 메인보컬이 누구야?”
부반장의 멘트와 동시에 세트장이 암전됐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어둠에, 나를 비롯한 멤버들이 몸을 흠칫 떨며 눈만 데굴 굴리고 있던 순간이었다.
탁!
언제 챙겼는지 모를 손전등을 얼굴에 비춘 미화부장이 스산한 목소리를 냈다.
“메인보컬이 사라졌어……?”
……책상 밑으로 계속 제작진과 사인을 주고받는 듯하더니, 이 개그를 위해서였나.
호러틱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센터로 나온 미화부장이 낮게 읊조리며 손전등 불빛을 우리에게 비췄다.
“이 중에, 메인보컬이 있어. 촉이, 와…… 그것도 아주 강렬한 촉이…….”
괴상한 소리를 낸 미화부장이 한수현을 가리켰다.
“너지!”
“촉에 문제가 있네.”
한수현이 웃으며 나를 가리켰다.
“내가 아니고 해온이야.”
“그래, 사실 나야.”
내 말에 미화부장과 선도부장이 동시에 눈을 부릅떴다.
“감히 우리를 속이다니!”
“안 속였어. 유하도 보컬 맞거든.”
“뻔뻔해!”
“뻔뻔하다!”
참고로 지금 날 매도한 건 멤버 녀석들이다.
싱긋…….
상체를 돌려 카메라를 등진 내가 눈을 곱게 접어 웃자, 방금 입을 열었던 최승하와 차윤재가 순식간에 말을 바꿨다.
“멋있다!”
“기대된다!”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신유하와 함께 선도부장의 앞에 섰다.
선도부장이 우리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피식 웃었다.
“너네, 그렇게 자신 있어?”
……이거, 생각보다.
예능인 걸 알고 있음에도 승부욕이 생긴다.
왜 이 프로그램에 나온 보컬 멤버들이 바들바들 떨었는지 이해되는군.
신유하의 등 뒤에 선 나는, 마치 조종하듯 녀석의 한쪽 팔을 들어 올려 선도부장을 가리켰다.
처억!
“유하가 널 이겨주겠대!”
“나, 나 그런 말 한 적 없어 ……!”
“생선 뼈처럼 발라주겠대!”
이어지는 내 멘트에, 안색이 파리해진 신유하가 고개를 빠르게 휘저었다.
“나 아니야! 나, 그, 그런 말 안 해!”
“도륙 내주마!”
“그렇게 안 봤는데, 유하 너 이거 좀 턴다?”
휘파람을 분 미화부장이 입 쪽에 손을 올린 채 팔락거리자, 신유하가 펄쩍 뛰었다.
“나 지, 진짜 아니야……! 해온 형, 아니! 해온이가 장난치는 거야!”
나는 신유하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 턱을 까딱였다.
“자신 있는 사람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법이지. 시작하자.”
동시에 노래방 기계가 세팅되기 시작했다.
어차피 마이크는 따로 있고, 음원도 오디오에서 나오지만 보여주기식 연출이었다.
삑! 삑! 삑! 삑! 삑!
선도부장이 노래방 기계의 버튼을 누르자, 노래방 기계에 곡명이 드러났다.
“와! 이거 쎈데?”
“선도부장 오늘 아주 제대로 마음먹었네.”
패널들의 수군거림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곡은 정신 나간 고음으로 유명한 곡이다.
클라이맥스 가사는 아래와 같다.
- 언제나 떠올리곤 해
너와의 추억을, Last day
최고음은 3옥타브 솔로, ‘Last day’ 부분에서 고음을 한참 내지른다.
얼마나 한참이냐면, 다음 가사, 그리고 그다음 가사를 넘어 다른 가사가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선도부장이 입꼬리 한쪽을 들어 올리며 웃었다.
“이거라면 승부가 되겠지?”
나는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근데 한 가지 제안이 있어.”
“뭔데?”
“우린 전학생이니까 마지막에 할게!”
내 말에 미화부장이 감탄했다.
“해온이 아까부터 은근히 뻔뻔하다?”
“예! 무척 뻔뻔합니다!”
뭔데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거냐.
내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차윤재를 응시하고 있을 무렵, 선도부장이 노래를 시작했고 쭉 뻗는 고음에 여기저기서 박수 세례가 나왔다.
이윽고 다음 타자인 신유하가 노래를 시작하자, 패널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유하 너 목소리 지이인짜 좋다!”
“난 유하한테 한 표 줄래~ 선도부장 얄미워.”
“솔직히 유하가 더 좋지 않았어?”
“아니지! 공평하게 타이머로 재야지! 몇 초 나왔어!”
신유하는 잘해냈지만, 타이머로 잰 결과 선도부장의 고음보다 3초 정도 빨리 끊겼다.
아쉬움 속에 마이크는 자연스럽게 내게 돌아왔고, 나는 신유하의 어깨를 두드렸다.
“수고했어.”
“응……!”
이길 자신? 글쎄다.
저 사람은 가수로 수십 년을 해먹은 짬바가 있는데, 자신감이 넘치는 게 이상한 거다.
진다고 해도 그다지 명예가 실추되지도 않을 테고 말이다.
그냥 최선만 다해볼 생각이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작가가 스케치북을 들어 올린 것이다.
[라이트온이 이길 시, 추가 무대 홍보 기회]
“……!”
난데없이 걸린 콩고물에, 대가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미 오프닝 때 무대로 우리를 홍보했는데, 그 기회를 한 번 더 주겠다는 거다.
게다가 오늘 의상은 교복, 이건 를 하기에 안성맞춤이 아닌가.
심지어 이 프로그램의 인기는 말해 뭐 해 수준, 무대를 한 번 더 할 수 있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오! 제작진이 지금 뭐 걸었어!”
“라이트온이 이기면 무대 한 번 더?!”
“이야. 너네 이겨야겠다!”
패널들의 난리 법석이 이어졌고, 내 대가리 속에서 튕겨지고 있는 주판알을 알 리 없는 멤버들은 그저 해맑았다.
……져도 괜찮다고?
절대 안된다.
이런 콩고물이 걸린 이상, 무조건 이겨야 한다.
“아니 잠깐만, 해온이 뭐야? 갑자기 얼굴이 진지해졌는데?”
“어? 내가?”
“엉! 완전 눈빛이 무서워졌어, 지금!”
예능에서 수십년 굴러먹은 사람 아니랄까 봐 눈치 하난 빠르군.
나는 서둘러 얼굴에 웃음기를 걸쳤다.
“긴장했나 보다. 음악 틀어줘.”
익숙한 전주가 흘러나왔고, 나는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와! 벌써부터 높게 잡았는데? 자신감 넘치나 봐!”
그럴 리가 있나.
빌어먹을, 실수했다.
미화부장의 감탄사와 함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착각이 일었다.
시작하는 음정 자체를 너무 높게 잡은 것이다.
- 언제나 떠올리곤 해
너와의 추억을
“나온다! 나온다!”
“해온이 파이팅! 선도부장 이기자!”
“넌 대체 누구 편이야? 라이트온 멤버도 아니면서.”
“그냥 얼굴이 잘생겨서 그런가 응원하고 싶네.”
“해온아, 파이팅!”
“힘내십시오!”
“우리 형 할 수 있다아~”
패널들과 멤버들의 응원 소리가 뒤섞여 들려왔고, 나는 고음을 쥐어짜 내기 직전 숨을 모았다.
- Last day
길게 터지는 고음과 함께 세트장에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내가 마이크를 내림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오오오오오오!”
멤버들도 놀란 얼굴이었지만, 더 난리가 난 건 패널들이었다. 평소에 선도부장에게 쌓인 게 많은 모양이었다.
“이겼지? 해온이가 선도부장 이긴 것 같은데? 이긴 것 같은데? 고음 더 쩔었어!”
“와씨, 타이머로도 이겼대. 전학생 너 대박이다.”
“명예의 전당 올려야 돼!”
“선도부장 재수 없었는데 고마워 전학생!”
“미화부장, 벌점 1점.”
“진짜 이런다니까? 내가 만만한가 봐! 이러다가 퇴학당하겠어 나!”
“못난 얼굴로 내 심기를 상하게 한 죄. 미화부장? 벌점 1점 추가.”
“진짜 미친 거 아니야? 라이트온 얘 좀 말려봐! 졌다고 나한테 성질부리잖아!”
“선도부장, 우리 얼굴은 어때?”
교탁에 꽃받침을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뜬 최승하에, 선도부장이 혀를 끌끌 찼다.
“날 질투 나게 한 죄. 라이트온 전원 벌점 1점.”
난장판 속에, 대결이 마무리됐고 본격적인 토크가 시작됐다.
원래 이 프로그램은 가끔 게스트에게 얄궂은 질문을 던져 곤란해하는 모습을 끄집어낸다.
“라이트온은 데뷔곡이 아주 특이하던데?”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이 정신 나간 놈들아.
나는 방송국 놈들의 악랄함에 속으로 경악을 삼키며 방긋 웃었다.
이건 곤란함의 정도를 넘어섰지 않은가.
이 파트가 나간다면, 100%의 확률로 자료 영상이 추가될 것이다.
수많은 활동으로 간신히 의 흔적을 지워놨더니, 여기서 상기시키겠다고?
빠르게 낯짝을 정돈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우리 데뷔곡? 그렇지. 조금 특이하지.”
“ vs !”
부반장의 질문과 동시에, 교탁에 선 우리의 낯짝이 단체로 흐려졌다.
이건 질문의 가치도 없다.
당연히 후자지. 장난하나.
뭘 들이대도, 우리가 정신이 나가지 않은 이상 전자를 고를 리가 없지 않은가.
“이걸 어떻게 골라?”
하지만 속마음과 달리 고민되어 미치겠다는 낯짝을 걸친 내가 말을 이었다.
“……둘 다 소중해서 못 고르겠는데.”
“정말? 다른 애들도?”
“애들도 그럴걸? 어때?”
나는 멘트를 이으며 멤버들에게 시선을 보냈다.
해석하자면, 말 잘못 꺼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뜻이다.
내 눈빛을 캐치한 멤버들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입을 열어젖히기 시작했다.
“저, 저는! 아니, 나는 그걸 고를 바엔 죽겠어!”
“윤재, 아니, 전학생 과격한데?”
“으하핫, 나도 절대 못 골라!”
“나도.”
“이건, 너무 어려운 질문…….”
막타로 한수현이 나에 못지않은 가식적인 낯짝을 걸쳤다.
“해온이 말대로, 우리 활동은 전부 소중해서 정말 고르기 힘들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허공을 바라보며 근묵자흑을 중얼거립니다!]
* * *
촬영이 끝나자마자, 멤버들을 두고 복도로 나온 나는 허공으로 시선을 던졌다.
“……거래합시다.”
[성좌, ‘황금의 신’이 코웃음 칩니다!]
저번 숙소 이사 때 추측한 바로, 이 성좌의 권능 중 하나는 꿈에 개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 이러고 있는 이유도 단순하다.
이 인기 프로그램에서 정신 나간 가 자료 영상으로 추가되는 걸 막기 위해서.
……만약 막지 못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대형 소속사의 경우, 소속사 파워로 이런 장면을 빼달라 요청할 수도 있겠지만 우린 어림도 없다.
스윽…….
나는 허공을 향해 두 손을 슬그머니 들어 보였다. 여덟 손가락이 펴져 있었다.
“신유하 사진 8장, 당연히 미공개 컷.”
[성좌, ‘황금의 신’이 귀를 팔랑입니다!]
[성좌, ‘황금의 신’이 애써 시선을 돌립니다!]
“신유하 잠꼬대 영상 하나 얹어서.”
[성좌, ‘황금의 신’이 손톱을 물어뜯습니다!]
나는 비열하게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영상 하나 더 추가.”
[성좌, ‘황금의 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본신만 믿으라고 전합니다!]
아마 프로그램 편집을 담당하는 PD는 악몽 좀 꿀 거다.
내용은 모르겠다만, 그 장면을 들어내지 않고는 못 배길 만한 꿈을 꾸겠지.
히죽…….
나는 올라간 입매를 손으로 가린 채,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