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183화 (183/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83화

“아이스 아메리카노, 샷 두 번 추가해서 부탁드립니다.”

“한 잔 맞으신가요?”

“예.”

마스크와 모자를 눌러쓴…… 수상하고 퀭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를 힐끔 바라본 직원은 곧장 결제를 마쳤다.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던, 허우대 좋은 남자는 커피를 손에 들고 카페를 나섰다.

이른 시간부터 카페에서 과제를 하던 두 대학생의 시선이 카페 통창에 보이는 인영에게로 꽂혔다.

“야, 야. 방금 봤어?”

친구의 노트북을 노크하듯 두드린 대학생이 속닥였다.

“잘생겼을 것 같지 않냐?”

“확실히 전체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풍기더라. 근데 가려서 잘생긴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마스크 벗기 전엔 믿으면 안 돼.”

“근데 촉이 왔다니까? 분명 잘생겼을 듯. 눈 잠깐 마주쳤는데, 다크서클이 그렇게 내려왔는데도 잘생겼어. 연습생이나 연예인인 거 아니야? 여기 주변에 그 엔터도 있잖아. 뭐라더라. 엠, 엠…….”

* * *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의 얼굴을 지적합니다!]

아침부터 열받게 하는군.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한 성좌의 얼굴보단 나으니 기죽지 말라며 당신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냅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본신을 말한 거냐며 분개합니다!]

둘 다 나가…….

카페에서 조금 멀어진, 인적이 드문 골목에 진입한 나는 마스크를 내렸다.

침침한 낯짝으로 커피를 빨아들인 나는 긴 한숨을 뱉어냈다.

카페인을 수혈한다고 해서 이 정신 나간 몸뚱아리의 피로감이 가시진 않겠지만, 느낌이 뭔가 그런 게 있다.

‘조금 피로가 덜어지는 느낌.’

아무튼 간에 정말…….

“뒈질 것 같군.”

그나저나, 11월인데도 제법 쌀쌀하다.

잘게 몸을 떤 순간,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울렸다.

- 보내주신 연말 무대 기획안 확인했습니다! 기획 3팀 전원 찬성으로 약간의 보완은 있겠지만 토대는 수정하지 않은 채 진행될 듯합니다.

내가 대답하려던 찰나, 정재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이제 적응될 때도 됐는데, 이렇게 매번 놀라서 어떡할까요? 조금은 부끄럽기도 합니다. 정말 해온 씨는 어쩜 이렇게 훌륭한 아이디어를.

“…….”

빠르게 스마트폰을 귀에서 떨어뜨린 나는 흐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멀어진 수화기 너머에서도 정재진의 찬양 섞인 주절거림이 쉼 없이 들려왔다.

- ……다!

대충 주접이 끝난 것 같은 마무리에, 나는 스마트폰을 귀에 붙였다.

“지금 바로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가서 이야기를 더 나누는 편이 좋겠어요.”

* * *

“바빠 보이시네요.”

“바쁘지만 행복합니다!”

퍼석한 얼굴의 정재진이 하하, 웃으며 나를 기획 3팀이 사용하는 회의실로 이끌다가 멈칫했다.

“아!”

“……?”

“저번에 해온 씨가 기획팀에 새로운 직원 들어왔는지 물어보셨잖아요.”

“예. 그랬죠.”

“여태껏 타이밍이 안 맞아서 소개를 못 드렸는데, 오늘은 얼굴을 볼 수 있겠습니다!”

MH의 기획 1, 2팀은 배우들을 담당하고, 3팀은 가수…… 그러니까 라이트온을 담당한다.

사실상 기획 3팀은 인원을 차출해 내 급하게 만들어진 팀이다 보니, 소수 정예다.

‘관리하는 아티스트가 우리 하난데, 많은 것도 웃기긴 하지.’

여튼, 그렇다 보니 기획에 자주 참여하는 나는 기획 3팀의 직원들과는 안면을 텄다.

그 새로 들어왔다는 직원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아,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잘됐네요.”

매번 팬들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한 의상 등을 기획한 걸로 유추했을 때, 최소한 어디서 덕질 꽤나 해본 고인물임이 틀림없었다.

“잠시만 회의실 들어가 계시겠어요? 제가 해성 씨 모셔 올게요.”

“……해성?”

내가 작게 중얼거리자, 정재진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혹시 아는 사이……?”

“아니요. 아는 사람과 이름이 같아서요.”

“해온 씨, 안색이 조금-”

“괜찮습니다.”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은 나는 정재진의 말을 끊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의자에 착석했다.

정신력 덕에 평정은 유지하고 있지만, 불길한 예감이 물밑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해온 씨를 보신다면, 분명 놀라실 거예요.”

회의실 밖, 복도에서 익숙한 정재진의 주접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것보다 훨씬 익숙하고도…… 낯선 목소리.

“대리님 사실 스위치 가입하신 거 아니에요?”

“……티 나나요?”

“……진짜였어요? 사실 해온 씨 추종자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요. 기획팀 직원들은 성해온 씨 무서워하던데, 대리님은 거의 신처럼…….”

“해성 씨도 해온 씨를 보면 단번에 알게 되실 겁니다.”

“……진짜 추종자 맞네요. 그분은 어디 계신데요?”

“여기 회의실에 계십니다!”

마냥 신난 듯한 정재진의 답변에 경악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그럼 이거 다 들렸을……!”

드르륵-

회의실의 문이 열렸고, 나는 느릿하게 시선을 들어 올렸다.

띠링!

띠링!

띠링!

[수식언을 공개하지 않은 성좌가 예상치 못했던 관계성에 눈을 반짝입니다.]

[수식언을 공개하지 않은 한 성좌가 다음 장면을 기대합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감격적인 상봉을 기대합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100골드를 후원합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상황을 흥미롭게 살핍니다.]

원래 내 몸의 하나뿐인 혈육이라는 걸 알고 있는 성좌들이 메시지를 우후죽순 띄우기 시작했고, 내 대가리는 천둥이라도 맞은 것처럼 그대로 정지됐다.

동시에 나는 손바닥에 손톱을 찔러 넣었다.

꿈이나 헛것이 아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입이 움직이고 있으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모르겠다.

꼭 물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모든 소리가 먹먹하게 들려왔고, 머릿속엔 물음표만이 가득 찼다.

인사를 받아쳐야 할 내가 그 자리에서 굳어 있자, 당황한 얼굴의 정재진이 손을 휘적였다.

“어, 해온 씨가 해성 씨 되게 궁금해했거든요! 기획팀 뉴페이스니까요!”

“정말요? 영광인데요.”

떨떠름한 얼굴로 감사 인사를 전한 이해성이 다시 한번 목을 까딱였다.

“저는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편히 이야기 나누세요.”

회의실의 문이 닫히고,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아무런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서둘러 대가리를 굴려야 하는 상황임에도, 꼭 회로가 망가진 것처럼 말이다.

“……대체 언제부터.”

“해성 씨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셨어요. 활동 시작하실 때쯤요.”

“……제가, 방금 입 밖으로 물어봤나요?”

“네? 네. 방금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제, 제가 잘못 들은 걸 수도 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정재진에게 최소한의 답변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빌어먹을 두통이 다시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 상태로 연습실에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 * *

휴식처 용도로 꾸며낸 옥상정원의 벤치에 앉은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야 살겠군.’

서서히 멘탈이 돌아오고 있었다. 뇌가 굴러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부모님의 사고로 얻은 정신적 충격인지, 무엇인지는 몰라도…… 나에게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이전의 기억은 없다.

부모님의 얼굴도 사진으로밖에 기억하지 못한다는 소리다.

- 우리 몸은 참 신비로워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정신적인 충격이 발생했을 시, 뇌가 위험을 감지하고 퓨즈를 내릴 수도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기억의 회로를 닫아버리는 거죠.

병원에서야 이런 입장이었지만…… 기억 소실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건 흔치 않다는데, 누나를 포함한 주변인들은 굳이 기억을 되찾을 필요가 없다며 나를 다독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트럭에 치여 죽을 때까지 기억을 되찾지 못했고 말이다.

그런 나에게 이해성은 유일한 가족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먼발치에서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던 적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았으니, 일부러 찾지 않았다.

이 X같은 시스템이 이해성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없지 않은가.

만에 하나, 지금 이 상황의 뒤에…… 시스템이 있는 거라면?

나는 곧장 고개를 저었다.

‘과한 짐작이다.’

이해성의 원래 전공은 이쪽이었으니 따지자면 말이 안 될 것도 없다.

애써 터질 것 같은 대가리를 환기시키며, 마른 얼굴을 쓸어내리던 그 순간이었다.

“……!”

마치 이 주제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말라는 것처럼, 통증이 대가리를 후려쳤다.

웬만한 통증엔 이골이 난 상태임에도,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 강도로 말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느껴지던 이 기시감.

그래, 이건 그때 그 느낌이다.

지난번 욕실에서의, 영문을 알 수 없던 그 두통과 유사하다.

그 사실을 인지하기 무섭게, 그때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선명한 것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땐 잔뜩 뭉개져 있어서 해석조차 할 수 없었다면, 이제 읽어내릴 수는 있을 정도로.

[첫■째 기억■ 파편의 해금 조■이 충족되었■니다!]

[기억■ 파편을 해금■시겠■니까?]

동시에 귀에 익은 띠링, 소리가 들려왔다.

[소수의 성좌가 갑작스레 먹통이 된 중계를 비난하며 시스템을 나무랍니다!]

[시스템이 알 수 없는 오류에 의문을 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들에게 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가?

[기억■ 파■을 ■금하시겠■니까?]

[기■의 파편을 해금■시겠습니■?]

[■억의 파편■ 해금하■겠■니까?]

……그럼 계속 갱신되고 있는 이건 뭔데?

내 시야를 가득 채울 작정인지, 계속해서 떠오르고 있었다.

고장 난 기계처럼, 고를 수 있는 선택지도 주지 않은 채 말이다.

뭣보다 계속해서 지끈거리는 대가리에, 제대로 된 생각이라는 걸 하기 힘들다.

속으로 온갖 욕을 내뱉으며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고 있던 그 순간이었다.

머릿속에서 낯선 장면이 재생되기 시작한 것이다.

- 이건 엄마 아빠한테 비밀인데.

틀림없는 과거의 나, 그리고 이해성.

“……말도 안 돼.”

나한텐, 이런 기억이.

……없는데?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본체와 빙의체의 동기화가 흔들립니다!]

[SYSTEM ERROR CODE : 520 UNKNOWN ERROR!]

“허억……!”

누가 내 뇌에 전기 충격기라도 가져다 지지는 것 같은 감각에, 버티지 못한 상체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정신이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고, 사방이 어둠으로 물드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선택 시간 초과로 자동 선택됩니다.]

[첫 번째 기억의 파편의 해금이 시작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