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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184화 (184/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84화

“다 했다!”

“으악~! 야! 칼 위험하니까 만지지 말랬잖아. 잠깐 한눈판 사이에 그걸 만지네!”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금 이건, 아마도 과거의 이해성과 나.

직감으로 느껴진다.

이건 환상 따위가 아닌, 내가 잃어버린 시간 속 기억.

공간은…… 우리 집이군.

가구 몇 개가 내가 기억하는 것과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이 유사하다.

나는 시선을 내려 불투명한 몸을 살폈다.

‘내가 보이지도 않는 것 같지?’

……정말 과거의 파편을 ‘열람’하는 느낌인데.

기겁하며 달려간 이해성이 어린 내 손에 들린 서슬 퍼런 식칼을 뺏고는, 식탁에 앉혔다.

“넌 여기 앉아서 구경이나 해!”

“……하면 안 대?”

“발음이 왜 그래? 안 돼가 아니고, 안 대?”

“이건 이, 이가 빠져서 그래!”

“푸하하하, 앞니로 발음이 줄줄 새?”

“놀리지 마! 엄마한테 이를래!”

“이해온, 이리 와.”

“……응.”

“자아, 너는 여기서 나 응원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죽을 만들어볼까?”

“응! 파는 것보다 더 마싯게 만들자!”

“네가 썰어놓은 당근 꼬라지를 보니까 그건 안 되겠는데~”

도마엔 성인의 손톱만 한 당근들이 몹시 개성 있는 모양새로 썰려 있었다.

카레라면 몰라도, 죽에 들어갈 용이라기엔 과하게 큰 사이즈라는 소리다.

“……너무 커?”

“엄마는 해온이, 네가 썰었다고 하면 좋아할걸~ 그냥 하자.”

“진짜? 아닐 거 가튼데,”

“이봐, 콩알만 한 주제에 의심하지 말라고~ 내 실력을 보여주지!”

촤르르!

끽해봐야 갓 중학교에 입학한 정도로 보이는 이해성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냄비에 쌀과 물을 부었다.

“자~ 여기서 뭘 해야 할까……?”

“……계획이 업써?”

“어린애가 왜 이렇게 팩폭을 잘하지……?”

작게 중얼거린 이해성이 고개를 저으며 그 시절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계, 계획이 없긴 왜 없어? 나에겐 스승님들이 있다고.”

레시피를 검색하는 듯하던 이해성이 망설임 없이 간을 시작했다.

그리고 몇 분 뒤.

덜 익은 죽을 한 스푼 맛본 이해성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어라? 이게 아닌데. 야. 이해온, 먹어봐.”

“싸리 안 익었는데…….”

“안 죽어, 안 죽어.”

이해성이 후후 불어 가져다 댄 숟가락을 입에 넣은 내 안색이 미묘해졌다.

“어때?”

“……솔지키 말해?”

“아니, 맛없는 거 아니까 말하지 마.”

“그, 그럼 나 왜 먹였어!”

“그거야 나만 죽을 수 없으니까.”

“……엄마한테 이를래!”

“장난이지~ 칼국수 라면 스프 넣으면 맛은 해결돼. 이거 넣은 건 비밀이다?”

“응!”

“하여간 말은 잘 들어.”

내 옷자락을 붙잡은 이해성이 방긋 웃으며 싱크대에 등을 기대앉았다.

“여기 앉아봐. 끓는 동안 토크나 하자.”

“누나 아저씨 같애!”

“그래, 귀여운 총각 이리 와 앉아봐.”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팡팡 친 이해성이 말을 이었다.

“있잖아. 이건 엄마 아빠한테 비밀인데.”

“……?”

“난 약사가 될 거야. 엄마 약은 내가 지어줘야지!”

“의사 선생님은?”

“네가 아직 어려서 세상을 모르는구나.”

“응?”

“그건 차마 내 성적이…… 아니다. 내가 어린애 붙잡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둘을 지켜보던 나는 어느 문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모님이 사용하던 안방.

사고 이후에도, 이 방만은 그대로였으니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안엔 아마도.

내가 문고리에 손을 올린 순간이었다.

파츠츳!

[기억의 파편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

스파크가 튀는 느낌과 함께,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이 행동이 제지됐다.

‘지켜보는 것만 허락해 준다는 건가.’

그렇다면 저 애들이 문을 열어주길 기다려야겠군.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은 채, 턱을 괬다.

“야! 이해온, 베란다 문 왜 열었어! 얼른 닫아! 으으, 춥다고!”

“누나! 누나!”

베란다 문을 낑낑대며 닫은 어린 내가 추위에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이해성의 옷을 꾹꾹 잡아당겼다.

“얼른 나와봐! 얼른!”

죽을 휘젓던 이해성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뭔데 그래?”

못 이기는 척 베란다로 따라간 이해성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하늘에서 눈송이가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첫눈이다.”

작게 중얼거린 이해성이 내 손목을 붙잡고 히히, 웃었다.

“해온아, 소원 빌어야지! 첫눈 오는 날은 원래 소원 비는 거야!”

“소, 소원을 빌어?”

“당연하지~”

금세 심각한 얼굴이 된 내가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소리쳤다.

“우리 가족 행보카게 해주세요!”

“이 바보야, 그걸 입으로 말하면 어떡하냐? 속으로 해야지.”

“이거 그럼……?”

“소원 취소 안 되니까 심각해지지 마. 미간 펴라고. 이 쬐끄만 한 게 자꾸 미간을 찡그려?”

손가락으로 슥슥, 내 미간을 편 이해성이 방긋 웃었다.

“근데 내 소원은 비밀로 해야지! 이해온 소원은 동네방네 소문 다 났지만~”

“우우!”

나는 피식 웃었다.

이해성의 소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에.

입 밖으로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중얼거리는 입 모양으로 유추가 가능했다.

엄마가 낫게 해주시고, 저희 가족이 행복하게 해주세요.

이게 이해성의 소원이었다.

생각하는 거라곤, 둘 다 비슷하군.

그나저나, 엄마가 나아?

어린 이해성이 엄마를 위해 약사가 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의문이었지만…….

지금 이 시기에, 엄마가 아팠던 건가?

하지만 나는 그런 쪽으로 들은 게 없다.

정말 단 하나도.

문득, 부모님의 기일에…… 익숙하게 앨범을 넘겼을 때가 떠올랐다.

신기하게도, 엄마와 나의 사진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있어도 아빠와의 사진뿐.

그래도 이해성과의 사진은 제법 많아서 불만은 없었다.

옆에 누가 있든, 얼굴만 보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내가 흘려 지나가듯 이야기를 꺼내자, 이해성은 별거 아니라는 듯 웃었었다.

- 아아, 엄마 아빠가 너 태어나고는 바빠서 사진을 많이 못 찍었거든.

하긴, 벌이로 바쁘다 보면, 어디 사진을 남길 여유가 있었겠는가.

-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 말을 믿었다.

하지만 지금 이 과거의 기억을 보니, 묘하게 작위적이다.

뭐, 지금 이 방 안에 있는 엄마가 단순한 감기라거나…… 그런 종류라면, 당연히 내가 알 필요는 없다.

나는 앳된 얼굴의 이해성에게 시선을 던졌다.

누군가가 조금 아픈 것 가지고, 저 나이대 아이가 소원으로 그런 것을 빌고, 진로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치나?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그 의문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쟁반에 죽과 물을 올린 둘이 안방의 문을 연 것이다.

드르륵-

나는 방 안의 인영을 보자마자, 입술을 짓씹었다.

……기가 막히는군.

기억을 하지 못한다고, 전부 속일 셈이었던 건가.

척 봐도 병색이 완연한 얼굴이다.

무슨 병이 있어도, 아주 큰 병이 있을 것 같은.

“……! 세상에, 우리 공주님이랑 왕자님이 이걸 만들었어?”

“흠흠, 이게 뭐 별거라고.”

“머 별거라구!”

“따라 하지 마, 이해온! 앞니도 없는 게!”

“……! 엄마! 누나가 맨날 저래!”

“후후, 누나가 귀여워서 그래. 귀여워서. 하지만 해성아?”

“안 그럴게…….”

“그럼 어디 죽 맛 좀 볼까?”

죽이 담긴 쟁반을 끌어당긴 엄마가 폭소했다.

“이 당근 이거 뭐야? 하하하. 거기 엄마 폰 좀 줄래? 찍어서 남겨야겠다!”

“엄마, 그거 당근 해온이가 썰었어.”

“……!”

이해성의 다급한 속삭임에, 슬쩍 눈을 굴려 볼을 부풀리고 있는 어린 나를 본 엄마가 손뼉을 짝, 부딪혔다.

“어쩐지 예술적이더라. 엄마는 당근 커다란 거 좋아해. 달달한 맛이 좋잖아.”

“……아.”

나는 시선을 떨궜다.

사실 앨범 같은 걸 보며, 부모님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종종 상상하곤 했다.

기억은 없어도 사진이 있으니,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일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이성적으로, 이게 과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속이 마구잡이로 울렁이기 시작했다.

잠깐만, 울렁여?

지금 나는 그저 기억의 파편 중 일부를 ‘열람’하기 위한 상태다.

본체도 빙의체도 아닌…….

아, 따지자면 불투명하대도 이해온의 외관이니 빙의체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그런고로, 이 상태에서는 감각이 느껴질 리 없다.

그 순간, 눈앞에 있는 인영들이 흐릿해졌다가 선명해지기를 반복하며 지지직거렸다.

……허락된 기억은 여기까지라는 것처럼.

[첫 번째 기억의 파편의 해금이 종료되었습니다.]

* * *

몸의 감각이 서서히 돌아옴과 동시에, 누군가가 내 몸을 흔들고 있는 모양인지 대가리가 울렸다.

느릿하게 눈을 떠올리자, 시야에는 신유하가…… 음.

나는 흐릿한 정신인 와중에도, 물음표를 띄웠다.

얜 또 왜 이래?

툭 찌르면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얼굴로 입을 달싹거리고 있다.

설마 내가 또 처참한 꼴로 쓰러진 걸까 싶어 눈알을 굴려보니, 멀쩡하게 옥상 정원 테이블에 엎어져 기절한 모양인데.

이 정도면 그냥 잠든 걸로 보이지 않나?

나는 눈을 껌뻑거리며 상황 파악을 이어갔다.

심지어 등엔 신유하의 재킷이 걸쳐져 있고, 테이블과 얼굴 사이엔 돌돌 말린 담요가 두툼한 쿠션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아주 풀코스로 세팅해 놨군.

그 순간, 신유하가 쭈뼛대며 내 눈가에 티슈를 가져다 댔다.

끝이 젖어가는 티슈를 보며, 나는 혀를 찼다.

신유하가 당황을 감추지 못한 이유가 이거였군.

설마 했는데, 정말 과거 기억이나 보며 질질 짠 모양이다.

깨닫고 보니 시야도 끈적하게 뭉개져 있는 것 같고.

티슈를 뺏어 들어 눈을 벅벅 문댄 나는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여긴 왜 왔어?”

“잠깐, 바람 쐬러 왔는데 형이, 자고 있어서…… 추우니까 형한테 외투를, 덮어주려고 가까이 갔는데.”

머뭇거린 신유하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나쁜 꿈을, 꾸는 것 같아서.”

종합하자면, 내가 눈물이나 줄줄 흘리고 있으니 악몽이라도 꾸는 줄 알고 뭐 마려운 개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는 것이군.

“마음대로, 깨워서 죄송해요…….”

어차피 첫 번째 기억의 파편이 해금이 끝난 타이밍과 맞물렸을 뿐이다.

신유하가 깨우지 않았어도, 딱 이 타이밍에 눈을 떴을 거란 소리다.

하지만 바로 정정해 주기엔 이 녀석에게 부탁할 게 있다.

나는 신유하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미안하면, 나 오늘 연습 땡땡이칠 거니까 애들한테 잘 둘러대 줘.”

* * *

한 약국의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앞에 놓인 비타민 몇 개를 골라 들며 입을 열었다.

이전에 있던 약사의 친구인 양,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나는 시선을 올려 머쓱하게 볼을 긁적이는 남자를 훑었다.

“아, 여기가 임대 약국이다 보니 아마 계약 기간이 끝나셔서…….”

대충 사이즈 나오는군.

건물주인 병원장에게 아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똑 닮았다.

게다가 계약 기간은 무슨, 내가 알기론 남았는데.

인테리어를 하나도 건들지 않고 주인만 바뀐 걸 보니, 권리금 몇 푼 쥐여주고 내보낸 게 틀림없다.

어느 정도의 상황을 파악한 뒤, 곧장 약국 밖으로 나온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실, 지금도 어느 정도 퍼즐은 맞춰졌다.

이해성의 행보에 관한 이유 말이다.

이해성은 꽤나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지만, 여느 직장인이 그렇듯 항상 무료해 보였다.

나는 그런 이해성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더라?

딸려 있는 내가 있으니, 아무래도 부담이 되겠지. 내가 얼른 부담을 덜어줘야겠다…….

뭐,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알겠다.

엄마를 위해 약사를 꿈꾼 이해성은, 부모님의 사고로 목표가 사라졌음에도 관성적으로 그것을 이뤄냈다.

……하지만 목표를 잃었는데, 즐거울 리가 없지.

그럼에도, 내가 이 세계에서 사라지지 않았더라면 이해성은 안정적인 직업을 뒤로하고 모험을 시도하지 않았을 거다.

당장 임대처에서 쫓겨났대도 페이 약사든 뭐든,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겠는가.

하지만 여기서 변수가 생겼다.

이해성이 책임져야 할 이해온이 흔적도 없이 세상에서 도려내 졌다는 것.

계기는 계약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내쫓긴 것이었겠지만……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한 이해성이 이런 모험을 시도한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 책임질 사람이 없으니까.”

나는 조금 올라가려는 입매를 다듬었다.

내가 보기에, 이해성은 항상 엔터 쪽 일에 미련이 넘쳐 보였거든.

나는 어느 건물의 문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확인해야 할 게 있다.

대충 아귀는 들어맞지만, 나는 이 일을 그저 우연으로 치부하며 넘어갈 생각이 없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시스템의 복구가 완료됩니다!]

[다수의 성좌가 시스템의 무능함을 지적합니다!]

[시스템이 원인 모를 오류였다며 억울함을 표합니다!]

때마침 메시지들이 떠오른 것이다.

이제야 복구가 된 모양이지?

타이밍 하나는 끝내주는군.

아, 참고로 나는 지금…….

어느 허름한 건물의 옥상이다.

나는 히죽 웃으며 난간에 몸을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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