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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190화 (190/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90화

“정신 사납다.”

“하지만 너무 신기합니다! 꼭 캠핑이라도 온 것 같고-”

차윤재의 말이 끝을 맺기 전.

휘이잉-!

허름한 대기 천막이 크게 펄럭이며, 절로 몸이 떨릴 만한 외풍이 들어왔다.

“……방금 했던 말은 취소하겠습니다! 추추춥습니다!”

사방을 휘젓고 다니던 녀석이 얌전히 난로 앞에 앉았다.

이제야 조용해졌군.

그때 천막의 문이 두드려졌고, 나는 뜻밖의 손님에 물음표를 띄웠다.

트웰브가 왜?

나는 천막의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선배님. 저희가 인사를 갔어야 했는데요.”

“뭘요. 우리가 찾아온 건데. 식사는 했어요?”

시답잖은 대화가 이어졌고, 도진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곧 AMA네요. 연말 시상식 참여하는 게 처음이죠? 긴장되지 않아요?”

이게 본론이었군.

“멋진 선배님들의 무대에 버금갈 수는 없겠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번부터 느꼈지만, 역시 말을 참 잘하네요. 사회생활 잘할 타입이야.”

나는 적당히 응수하며, 곁눈질로 도진의 옆에 서 있는 트웰브를 살폈다.

분위기가 묘하군.

평소보다 확실히 가라앉아 있다.

아니, 그보단 원래의 트웰브 같지 않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서바이벌 땐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다른 트웰브 멤버들이 보내는 시선도 따갑고 말이다.

내가 유인성을 들들 볶아 자신들의 컴백일이 미뤄졌다는 사실을 이쪽이 알 리 없다.

그럼에도 컴백의 적기를 놓친 것에 대한 굴절 분노가 우리에게 향하고 있는 모양이다.

자신들이 제때 컴백했다면,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한 건 우리가 아니라 트웰브였을 테니 말이다.

참고로 트웰브는 이번 활동으로 1위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재수 없게도, 음원 최강자로 불리는 아티스트와 활동이 겹쳤거든.

그걸 제외하고도, 사실 성적 자체가 기대 이하였다.

웬일인지, BK에서 자본을 많이 안 들였던데.

내가 잡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도진이 다시금 말을 건넸다.

“아, 근데 이번 곡 좋던데요?”

“……! 아.”

반짝반짝…….

눈깔에 안광을 걸친 나는 45도 각도로 고개를 수줍게 내렸다.

“선배님이 들어주셨다니 영광인데요. 아직 한참 멀어서…… 부끄럽습니다.”

“1위도 축하하고요. 원래였다면 함께 경쟁할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더라고요.”

오호라.

뼈가 있는 말이었다.

“우리가 긴장해야겠던데요?”

맞는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라이트온은 확실한 상승세.

그에 반해 트웰브는 하락세니까.

하지만 현실적인 속마음과 다르게, 나는 곧바로 소금 맞은 미꾸라지처럼 손을 파닥파닥 젓기 시작했다.

“……! 선배님, 그런 말 마세요.”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의 가식에 질색합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의 훌륭한 연기에 감탄합니다!]

[수식언을 공개하지 않은 한 성좌가 ‘연기’라는 키워드에 반응합니다!]

도진의 손을 덥석 붙잡자, 불쾌한 감정이 밀려들어 왔으나 나는 그걸 무시하고는 눈을 마주쳤다.

“……아직 선배님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는걸요.”

반짝반짝…….

“존경하는 트웰브 선배님이 그런 말씀을 해주신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사실…….”

나는 잔뜩 아련한 낯짝으로 눈을 껌뻑였다.

“선배님과 함께 특별 무대에 선다는 게 믿기질 않아서, 소식 듣자마자 밤잠을 설쳤거든요. 물론 무대를 같이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설레더라고요.”

“……하하, 그래요?”

척 봐도 내 말을 믿지 않는 듯한 도진이 떨떠름해하자, 멤버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하핫, 저희 정말 너무 설레서 제대로 잠도 못 잤잖아요.”

“너무, 설레서……! 맞아요!”

“해온 형 말씀을 들으니 그때가 기억납니다. 연습 때문에 피곤했음에도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그 감정이 설레임이군요.”

“수현이 말 듣고 보니 새록새록 떠오른다.”

“마, 맞습니다! 저는 또다시 가슴이 두근거리는 기분입니다!”

“……!”

조금 놀란 건 나다.

이런 기특한 녀석들, 가면 갈수록 죽이 척척 맞는군.

당연히 이 녀석들의 말은 전부 거짓이다.

다들 등만 땅에 붙으면 기절하듯 곯아떨어지기 바빴는데, 겨우 그딴 걸로 잠을 설쳤을 리가 없지.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언제 이렇게 물들어 버린 거냐며 비통해합니다!]

* * *

“후우! 후아! 하아!”

리허설 현장으로 향하는 길.

멤버들이 숨을 내뱉자, 허여멀건 한 입김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겨우 그게 신기하냐.”

“해온 형님은 낭만이 없으십니다!”

싱긋…….

“오, 오늘 눈이 오려나.”

시선을 돌린 차윤재가 어색한 손짓으로 허공에 팔을 올렸다.

“그럴 것, 같기도 해……! 날이, 엄청 추워서.”

“오오! 무대가 미끄러워질 테니 오는 걸 바라면 안 되겠지만, 솔직히 기대되기도 합니다!”

“어, 맞아. 윤재는 겨울 좋아하지?”

“예! 추위는 많이 타지만, 좋아합니다!”

피식 웃으며 차윤재의 외투 지퍼를 끝까지 올린 류인이 무대를 응시했다.

“무대가 꽤 크다. 이렇게 사람 많은 야외무대는 우리 처음인가?”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 사과 축제는 아무래도 사이즈가 작은 무대였다.

그에 반해 이 콘서트는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니까.

나는 줄지어 선 아티스트들의 천막을 바라봤다.

과연, 스케일이 연말무대 부럽지 않다는 데에 이견을 둘 수 없을 정도로군.

스케줄상 불참한 밀리어스를 제외하면, 인지도 있는 그룹들이 대부분 참석했다.

“라이트온 리허설 대기하겠습니다! 이리로 와주세요!”

스태프의 외침에 백스테이지로 향한 우리는 동선 파악에 거슬리는 두꺼운 패딩 한 겹을 벗어냈다.

그러고는 스태프가 건넨 커다란 이름표를 가슴팍에 매달았다.

사실 패딩 안에도 두꺼운 옷을 여러 겹 입었기 때문에, 그다지 춥진 않다.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빌어먹을 몸뚱어리는 지랄을 부렸다.

“에취!”

곧바로 멤버들의 시선이 모여들었으나, 나는 녀석들의 얼굴을 꾹꾹 눌렀다.

“재채기다. 재채기. 이 징글맞은 놈들아.”

“감기가 아니신 겁니까? 그러고 보니 일전에 형님이 식탁에서 읍, 읍! 으븝, 숨막, 으븝!”

나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차윤재를 응시했다.

“뭐라고?”

“저는 아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훈훈함이 물씬 풍겨오는 현장에 흐뭇한 미소를 짓습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할 말을 잃어버립니다!]

우리의 이전 팀이 리허설을 진행하는 동안, 무대에 세워진 구조물을 바라보고 있자 마이크를 관리하던 한 스태프가 입을 열었다.

“저건 오프닝 하는 그룹이 설치한 거예요. 이따가 본 무대에선 오프닝 끝나자마자 철거될 거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큐시트를 보니, 얼마 전 꽤 화려하게 데뷔한 신인 그룹이 오프닝이던데.

하긴, 라인업이 끝내주는 만큼 화제성은 당연스레 따라올 테고…… 이런 구조물에 돈을 투자해도, 그만큼 이득으로 뽑아먹을 수 있을 테다.

주최 측에서도 오프닝 무대에서부터 돈 냄새가 나면 좋으니 곧장 긍정했을 거고.

내가 계속 쳐다보는 걸 오해한 모양인지, 스태프가 말을 이었다.

“안전 테스트는 완벽하게 끝났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예.”

그냥 얼마쯤 들었을까, 습관적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던 건데 민망하군.

그때 무대 위에 있던 그룹의 리허설이 종료됐고, 커다란 이름표를 매단 우리는 무대 위로 올라갔다.

동시에 익숙한 플래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차차차차차차착!

아직 리허설임에도, 굉장히 많은 수의 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고생하시는군.’

물론 이 셔터 소리의 대부분은 스위치가 아닐 것이다.

데이터 팔이 용도, 혹은 테스트 컷이겠지.

우리가 시작 대형을 맞추기 무섭게, 대형 스피커에서 음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입김을 흘리며 무대를 마친 우리에게 다가온 스태프가 추가 리허설을 제안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세 번 정도의 리허설은 흔한 일이다.

무대는 실시간으로 중계될 예정이라니, 카메라 팀은 각 그룹의 동선을 어느 정도 숙지해야 할 테니 말이다.

“여기 목 좀 축이시고, 잠깐만 대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물을 건넨 스태프가 바삐 내려갔고, 나는 알 수 없는 느낌에 고개를 기울였다.

……불안감?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리허설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스태프의 메시지와 함께, 스피커에서 다시 음원이 재생되기 시작했고 우리는 두 번째 리허설을 시작했다.

이제는 자동적으로 몸이 안무를 따라가는 단계에 올랐다.

아래 팬들과 눈을 마주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생겼달까.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욱씬!

머리를 울리는 듯한, 짧고도 둔탁한 통증과 함께.

[K-pop 망령의 눈(A)]이 발동됩니다!

“……!”

메시지와 동시에, 짤막한 장면이 뇌리를 스쳤다.

방심했다면, 인지하지도 못했을 만큼.

아주 찰나의 장면이 말이다.

……파란 하늘과, 무너지고 있는 구조물.

무척 생뚱맞은 장면이었다만, 그 구조물은 분명히.

내 고개가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동시에 몸이 굳어버렸다.

웬만한 인간들은 여기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을 것이다.

웬만한 인간들이라면 말이다.

정신력 덕분인지, 내 머릿속엔 하나의 명령어가 입력됐다.

피해야 해.

라는 명령어가 말이다.

소리를 쳐봤자, 착용한 인이어 때문에 들리지 않을 게 뻔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멤버들의 등을 밀었다.

동시에.

쿵.

무너진 구조물이 무대 중앙을 강타했다.

다르게 말하자면, 방금 우리가 있었던 곳을 말이다.

손바닥이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조금만 늦게 발견했다면?

저 구조물이 강타하는 건 무대 바닥이 아니라 우리들의 대가리가 됐을 것이다.

그럼 아마, 죽었겠지?

머리 위로 저게 떨어지는데, 운이 좋더라도 중상이었을 거다.

“어, 어, 어떡해! 괜찮으세요!”

스태프 하나가 파리한 안색으로 무대에 뛰어들자, 다른 스태프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멤버들을 빠르게 훑었다.

간발의 차로 무너지는 구조물을 피한 녀석들은 무대에 넘어진 채, 입도 벙끗하지 못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다들 얼이 빠져 보인다만, 다친 곳은 없어 보인다.

속이 미친 듯이 울렁거렸다.

내 상황 판단이 조금만 늦었어도 이놈들은…….

나는 곧장 고개를 털어냈다.

정말이지, 쓸데없는 가정이다.

결과만을 봐야 한다.

아무도 다치지 않은, 이 결과를 말이다.

나는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상황 수습이 우선이었다.

나는 무릎을 털며 일어나 멤버들을 챙겼다.

“저, 저는 놀랐을 뿐이지 괘, 괘, 괜찮습니다.”

“나도 괜찮아.”

“저도.”

“저도, 괜찮아요……!”

“해온 형, 안색이 안 좋으신데 괜찮으신 거 맞나요?”

“그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주르륵.

“허.”

타이밍 한번 끝내주는군.

코에서 흘러나오는 액체에, 나는 곧바로 헛웃음을 삼켰다.

차차차차차착!

무대 아래에서 터져 나오는 플래시 소리와 함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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