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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192화 (192/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92화

인철호는 잠시 대기실 내를 훑어보더니,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사고를 알아챈 것도 나였고, 멤버들을 피하게 만든 것도 나니까.

게다가 리더도 나니, 가장 먼저 사과할 모양이다.

매니저에게 팔을 뻗어 명함을 건넨 인철호가 말문을 열었다.

“어떻게 사과를 드려야 할지…….”

나는 이 인간이 대표라는 걸 알고 있지만, 일부러 눈을 껌뻑였다.

그리고 눈치 빠른 매니저가 입을 열었다.

“호아이 엔터 대표님이셔. 이 친구들 소속사.”

“……! 아.”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벌써부터 기대감을 감추지 못합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불길함을 느낍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저 인간에게 동정심을 느낍니다!]

나는 마치 까마득한 대표를 마주친 연습생처럼, 반짝이는 안광을 걸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비틀……!

“아, 현기증이.”

“괘, 괘, 괜찮으십니까!”

“선배님!”

인철호를 비롯한 엔어스가 경악하며 달려들었고, 라이트온 멤버들은.

“뭐, 뭡니까? 저 형님 분명히 방금까진 멀쩡, 읍, 으븝븝.”

……눈치 좋게 차윤재의 입을 틀어막았다.

“죄송합니다. 아직 어지럼증이…….”

아련한 낯짝을 걸친 채 사과하자, 인철호가 펄쩍 뛰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이, 이럴 게 아니라 당장 병원으로…….”

“대표님과 나누고 싶은 말이 있어서, 잠시 바깥에서 이야기 가능할까요?”

“……! 당연합니다.”

* * *

성해온과 인철호, 엔어스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모두 빠져나간 대기 천막.

“형님! 아까 제 입은 왜 막으신 겁니까!”

차윤재의 말에, 류인이 시선을 돌렸다.

“……그런 게 있어.”

“그런 게 뭐란 말입니까? 갑자기 형님이 입을 막으셔서 얼마나 놀랐는지!”

내가 막지 않았다면, 해온이에게 끝장나는 건 바로 윤재 너였다…… 라는 말을 삼킨 류인이 입을 다물었다.

그건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인지, 은은한 미소로 답을 대신할 뿐이었다.

하지만 라이트온의 공포의 주둥아리, 공주님을 막을 수는 없었다.

“윤재 형은 그걸 눈치 못 채셨군요.”

“내, 내가?”

“해온 형이 척 봐도 큰일을 계획하고 계셨잖아요.”

본인이 더 뿌듯하다는 얼굴의 한수현이 말을 이었다.

“저희 형이지만,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어쩌면 그렇게 상황 판단도 빠르시고요. 솔직히 존경스럽습니다. 가족이라고 과대평가하는 게 아니라, 정말 그렇지 않나요?”

* * *

천막 뒤, 인기척이 없다시피 한 공간으로 걸음하기 무섭게 나는 배를 움켜쥐며 미간을 찌푸렸다.

“스트레스성 복통이……!”

“괘, 괜찮으십니까!”

“아무래도 아까 너무 놀란 모양입니다. 후…… 청심환을 먹어도 도통 가라앉지 않는군요.”

참고로 내 정신력은 일반의 범주를 크게 웃돌고, 놀람도 잠시 곧 평온을 되찾았다.

청심환을 먹은 건 내가 아닌 멤버들이지.

“고작 청심환 가지고 되겠습니까. 당장은 다치지 않으셨어도, 후유증이 남을 수 있으니……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전부 요구해 주세요.”

오호라, 이 대표는 꽤나 사람 다루는 법을 안다.

하지만 그래봤자, 병원비.

우리가 겪은 일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되는 푼돈이다.

“아까 전엔 정말 큰일이 날 뻔했지 뭡니까. 대표님 앞에서 이런 말씀은 뭐하지만…… 제가 빠르게 알아차려서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으면.”

질끈!

내가 눈을 감자, 대표도 눈을 질끈 감았다.

“아아……! 떠올리자니 다시 두통이!”

“죄, 죄송합니다!”

“대표님, 사과는 더 이상 말아주세요. 고의가 아닌 걸 알고 있으니, 마음이 불편합니다.”

이쯤 되니 대표의 표정이 묘해졌다.

대충 분석하자면, ‘이 새끼 암만 봐도 멀쩡해 보이는데, 사과를 받고 싶은 것도 아니고, 대체 뭐지?’ 싶은 얼굴이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기겁합니다! 당장 돗자리를 깔라 합니다!]

“친절하신 분이시군요. 하지만 사과는 몇 번을 드려도 모자랍니다. 입이 백 개여도 할 말이 없습니다.”

당연히 그쪽 주둥이는 백 개든, 천 개든, 만 개든, 할 말이 없어야지.

그리고 영양가 없는 사과는 필요 없다.

내가 원하는 건…….

“아, 아까 피하면서 허리를 조금 삐끗한 것 같기도…….”

“허리를! 이, 이럴 게 아니라 멤버 분들과 병원으로 가시죠. 제 차로 모시겠습니다!”

나는 손을 느릿하게 저었다.

천막에서 확인 결과, 빠른 대피로 다친 녀석이 없거든.

바닥이 매끈한 탓에 살이 까지지도 않았다.

“지금 병원으로 가면, 논란이 더해질 게 불 보듯 뻔합니다. 대표님도 아시겠지만, 지금 워낙…….”

난리가 났잖아?

이 타이밍에서 우리가 병원으로 향한 사진이라도 찍히면, 엔어스의 이미지는 끝장이다.

내 말에 감동이라도 받았는지, 대표의 눈이 반짝였다.

“어떻게 그렇게 저희 생각을…….”

“같은 업계 사람으로서, 후배들이 안쓰럽더군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구조물이 무너질 줄 누가 알았겠냐고요. 아무도 몰랐겠죠.”

“……!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안전 테스트를 얼마나 많-”

싱긋…….

“그 우연에 저희의 명줄이 끝날 뻔했지만 말입니다…….”

“……!!”

“하하, 장난입니다.”

“네, 네에. 장난……!”

“근데 장난이라기엔 정말 죽을 뻔하긴 했습니다. 하하하!”

지금 이 인간은 아마 내 얼굴을 한 대 갈기고 싶을 거다.

고작 아티스트 하나가 자신을 협박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

사실상 다치지도 않은 거, 이쪽 대표 입장에선.

- 해온 씨가 이 바닥 잘 모르나 본데, 이런 일 비일비재해요. 그래도 다치진 않았으니 다행이죠. 피해보상으로 병원비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으니, 편하게 생각해요.

라고 떠들고 싶을 거다.

지금 상황이 난리통만 아니라면 말이다.

이 고고한 대표님이 내게 빌빌대고 있는 이유는, 지금 우리의 행보 하나하나가 호아이 엔터를 비롯한 엔어스의 명운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막말로 우리가 당장 이번 스케줄을 취소하고 병원에 드러눕는다면?

먼지 나도록 패이며 욕받이가 될 건 이쪽이다.

비단 스위치뿐만 아니라, 구조물 사고에 예민한 다른 팬덤까지 비난에 가세할 테니까.

게다가 언론에서도 신명 나게 떠들어대겠지.

한마디로 종합하자면, 그날부로 호아이 엔터는 제삿날이란 거다.

다른 아티스트가 많은 것도 아니고, 그중 가장 밀고 있는 게 엔어스인 놈들인데 타격이 어마어마하겠지.

그러니 인철호 입장에선, 자기가 조금 숙이는 한이 있더라도 최대한 합의를 보고 싶은 것이다.

스윽…….

나는 화사하게 미소 지으며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대표님. 지금 이걸 올리면, 아무래도 엔어스 친구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죠?”

멀쩡한 우리 모습이 담긴 셀카였다.

업로드 버튼 하나만 누르면, 공식계정에 등록될.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아무렴 그렇겠지. 피해를 본 그룹이 직접 괜찮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는데, 효과가 얼마나 좋겠는가.

지금 엔어스와 호아이 엔터가 처먹고 있는 욕이 단숨에 줄어들 거다.

그리고 사실대로 불자면, 이 인간이 아니어도 곧 올릴 예정이었다.

‘팬들한테 걱정을 끼치고 싶진 않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걸로 공갈을 칠 생각이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에게 감탄하며 100골드를 후원합니다!]

“저기, 우선 그 게시물 먼저 올려주실 수…….”

“아아……!”

난 아찔한 얼굴로 미간을 짚으며 ‘몸이 이래서 오늘 무대를 할 수 있을는지’라고 중얼거렸다.

단숨에 대표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나마 우리의 부상이 없는 것 같다는 후기 덕에, 호아이는 ‘죽여 버려야 할 미친 소속사’에서 ‘정신 나간 미친 소속사’ 정도의 평을 받고 있으니까.

아마 방금 내 말이 그 무엇보다 두려웠을 테다.

애초에 지금 이 판세에서, 우위는 우리다.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나는 눈깔을 최대한 순진무구하게 떠올렸다.

“저는 사실…… 인철호 대표님을 언제 한번 뵙고 싶었답니다.”

“저, 저를요. 하하, 이거 참! 영광입니다. 요즘 떠오르는 신예께서요.”

아주 혀에 버터를 바르셨군.

“사실, 엔어스 후배님들의 데뷔부터 지켜봤거든요.”

인철호가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모양새였다.

“업계 종사자로서, 항상 모니터링을 하는 편입니다.”

“……? 예, 예. 그러시군요.”

“특히 뮤직비디오가 아주 훌륭하더군요.”

엔어스가 데뷔부터 화제성을 끈 이유를 꼽자면, 단연코 끝내주는 뮤직비디오 덕분이었다.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반응이 조금 터질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아!”

드디어 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달은 모양인지, 인철호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거라면 제가 동생에게 이야기를 전해보겠습니다. 아니, 스케줄이 안 되어도 내달라고 해야지요!”

그렇다.

인철호의 친동생이 어마어마하게 유명한 뮤직비디오 디렉터, 인규호다.

밀리어스와 같은 1군 아이돌 위주로 촬영하는, 웬만한 아이돌은 예약조차 불가능한 뮤직비디오 디렉터.

나는 곧바로 몸을 쭈뼛거리며, 어쩔 줄 모르겠다는 낯짝으로 뒤통수를 매만졌다.

“……예? 그런 걸, 너무 죄송해서…….”

“죄송할 게 어딨답니까!”

단숨에 내 손을 잡은 인철호가 눈을 빛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예약을 잡아드리겠습니다.”

“뮤직비디오에 들어가는 돈이 얼만데 정말 죄송해서……!”

“……네?”

이 인간은 어차피 외적으로 다치지도 않은 거, 끽해봐야 고급 물리치료 비용이나 생각했을 거다.

어림도 없지.

“그, 그러니까 뮤직비디오 대금을…….”

나는 똘망하게 뜬 눈으로 대표를 바라봤고, 잠시 뇌가 정지된 걸로 추정되는 대표가 서서히 입을 벌렸다.

“그러니까…….”

“정말 내주실 필요는 없는데도!”

“제, 제가 내준다고 말을 했, 했 ……?”

“아아!”

나는 아득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온몸이 아프군요. 아무래도 오늘 무대는 무리일-”

내 말을 다급하게 끊은 인철호가 눈을 부릅떴다.

“내! 내드려야죠! 예! 못 내드릴 이유가 어, 없습니다!”

“……이렇게 사려 깊으시다니! 이럴 게 아니라, 역시 대표 대 대표. 회사 대 회사로 이야기해야 하는 게 아닐지…….”

나는 내리깐 눈으로 대표의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응시했다.

먹고 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니, 방지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대표님의 마음이 정 그러시다면, 관련 내용을 담아 저희 회사 측으로 문서를 보내주시는 편이 어떠실는지요.”

“예? 예…… 그, 그렇지요. 회사 대 회사로. 예에에.”

그 순간이었다.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얼굴로 인철호의 손을 맞잡았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대표님의 커다란 뜻을요!”

“예? 제, 제 뜻이요?”

“대표님이 뮤직비디오 대금을 내주신다는 건, 일종의 피해보상비 명목이었군요! 정말이지 그럴 필요는 없으신데도……!”

미안하지만, 명훈이도 돈은 많다.

중요한 건, 명목이다.

HoI 측에서 순수한 피해보상비 명목으로 뮤직비디오를 주선해주는 것.

그럼 명훈이를 적당히 구워삶아, 뮤직비디오 대금을 멤버들과 나눠 가질 수 있다.

말 그대로, 우리에 대한 피해보상비니까.

나야 정체 모를 현금이 많다지만, 멤버들의 상황은 다르다.

아마 큰 도움이 되겠지.

“……허.”

“예? ‘허’요?”

“허허허! 아닙니다! 너무, 명쾌해서 그랬습니다! 뮤직, 뮤직비디오를…… 피해보상비…… 예에, 좋습니다.”

“하하, 전 또 헛웃음이라도 치신 줄 알았지 뭡니까! 피해보상에 대한 것이라는 건, 문서에 당연히 명시되겠죠?”

“당연합니다. 해, 해드려야지요.”

“아, 대표님.”

이번엔 대체 뭐냐는 얼굴로, 인철호가 느릿하게 침을 삼켰다.

“금액 제한은 없을까요. 아시다시피 저희 뮤직비디오도 스케일이 작진 않아서…….”

수줍은 낯짝의 내가 말을 건네자, 인철호가 피눈물을 삼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 예에에, 한도가 있으면 안 되는 거죠. 있을 리가 없죠. 당연합니다…….”

사실 뮤직비디오에 돈이 얼마가 쓰이든, 이놈들에게는 전혀 손해가 아니다.

엔어스는 현재 시기가 무척 중요하니까.

호아이는 규모에 비해 자본이 어마어마하고, 엔어스를 전폭적으로 밀고 있어서 일본 투어도 예정되어 있더라고.

게다가 이 논란이 제대로 사그라들지 않는다면 신인상마저 물 건너갈 게 뻔하지 않은가.

그 모든 논란을 이거 하나로 퉁 쳐준다는데, 이 얼마나 자비로운 처사인가.

그때, 인철호가 약식 문서를 MH 측에 전달했다는 말을 꺼냈다.

“저도 한번 확인해 볼 수 있을까요? 아아, 확인했습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의 끊이지 않는 의심에 경악합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흐뭇한 얼굴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나는 눈을 내리깔며 처연한 낯짝을 만들었다.

“제가 인 감독님의 팬인데, 어…… 촬영할 때 분위기가 좋지 않으면, 아무래도 조금 그렇죠? 그런 기류는 다 티가 나곤 하니까요. 아무리 대표님의 선의라지만, 감독님께서 오해하실까 걱정됩니다.”

“예. 그…… 처, 처음부터 끝까지 제 선의로.”

“아아, 두통이!”

“아니, 아니, 서, 선의가 아니라! 선의가 아니라! 예, 죄송한 마음…… 죄송한 마음으로 주선해 드리는 건데! 제가 예, 입도 벙끗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살풋 끄덕이며, 쥔 주먹을 흔들었다.

“오늘 엔어스 응원하겠습니다. 파이팅!”

“라, 라이트온도 파이팅!”

“예, 파이팅!”

나는 속으로 휘차람을 불며,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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