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94화
“오늘 너무 재밌었습니다!”
상기된 얼굴의 차윤재가 말문을 열자, 밴에 올라탄 멤버들이 조잘대기 시작했다.
“나도……! 스위치, 응원이 엄청 컸어……!”
“저희 팬분이라서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라, 오늘 오신 팬덤 중에, 흠. 가장 응원 소리가 듣기 좋았던 것 같습니다.”
멤버들을 돌아보며 작게 웃은 류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눈까지 내려서 진짜 놀랐어.”
“으하하, 그렇죠! 너무 예뻤어요. 어떻게 거기서 눈이 내리지?”
류인의 말에 동조한 최승하가 상체를 조수석 쪽으로 가까이하더니, 내 어깨를 콕 찌르며 속닥였다.
“형, 괜찮아요?”
“그래.”
대화에 끼지 않은 내가 신경 쓰였던 모양이지.
나는 피곤해서 그렇다며 손을 내젓고는, 벌써부터 느껴지는 X된 몸 상태를 빠르게 진단했다.
밴 내부가 훈훈할 만큼 따뜻한데도 불구하고, 몸이 달달 떨린다.
무대에 서 있을 땐 몸 상태가 이런 것도 몰랐다만…….
열받는 건, 비슷한 의상을 입고 같은 무대에 선 다른 녀석들이 무척이나 쌩쌩해 보인다는 것이다.
체력이 나보다 좋은 이유도 한몫하겠지만, 축복 특성도 큰 이유일 테다.
나는 다시금 내 가슴팍에 조용히 손을 올렸다.
‘당신에게 축복을.’
[ERROR ERROR ERROR!]
[축복의 대상자가 설정되지 않았습니다!]
미친 놈들, 진짜 싫다.
“…….”
칙칙한 낯짝으로 고개를 털어낸 나는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멤버들 몰래 꺼낸 약을 으적 씹어 삼킨 뒤 눈을 감았다.
자고 일어나면 좀 나아지겠지.
* * *
“실환가?”
곽덕배는 홀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얼굴이…… 그 장면이…… 실환가?”
참고로 임진각 콘서트는 이미 한참 전에 끝났다.
지금 곽덕배도 택시 안에 몸을 싣고 있고 말이다.
“믿을 수가 없는데…….”
“진짜 오타쿠 같다.”
“진짜 오타쿠에게 듣는 오타쿠 소리? 타격감 제로.”
“열받네…….”
부정하지 못한 근돌은 몸을 숙인 채, 프리뷰 촬영을 이어가고 있었다.
찰칵! 차차찰칵!
사랑하면 과격해지는 특징이 있는 근돌은 무척 화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직캠이고 사진이고 전부 레전드를 찍었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얼른 프리뷰 올려야지, 하 X발 의상 진짜 미친 것 같다.”
“너 코피 난다.”
스윽.
자신의 코밑을 빠르게 훑은 근돌이 고개를 저었다.
“구라인 거 알면서, 그럴듯해서 속았다…….”
그렇다.
오늘 자 라이트온은 그냥 레전드였던 것이다.
- 와 진심 이건 하늘이 도운 거 아님? 어떻게 엔딩 때 첫눈이 내림;; 아직도 쩌렁쩌렁한 함성 소리가 귀에 맴돎;;
- 집에서 보는데도 임종할 뻔했는데 현장에서 본 사람들 인내심 ㄹㅇ 대단하다 나였으면 고릴라처럼 옷 북북 찢고 가슴 두드리면서 무대 난입해서 끌려갔을 듯
아득한 얼굴로 스마트폰의 스크롤을 내리던 곽덕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하…….”
“오타쿠 특, 말하다 벅차오름.”
“일단 내 말 좀 들어봐.”
“오타쿠 특, 일단 내 말 좀 들어보라고 함.”
억울한 얼굴의 곽덕배가 가슴을 탕탕 쳤다.
“오늘 해온이가 진짜 깜찍이블루베리소다였잖아.”
“오타쿠 특, 이상한 별명 다 갖다 붙임.”
“진짜 열받는데 다 맞는 말이라서 할 말이 없네. 아니, 근데.”
“오타쿠 특, ‘아니, 근데’로 반박함.”
곽덕배의 주먹이 떨렸다.
“이해성만큼 열받게 하기 잘하는 애는 오랜만이네…….”
“이해성?”
“아아, 내 친구.”
고개를 작게 끄덕인 근돌이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덕배야, 근데 너 이거 봤어?”
“……?!”
다급하게 스마트폰에 얼굴을 갖다 댄 곽덕배가 경악했다.
[이번 AMA TTT 출연진 무대 뭐 하나 본데ㅋㅋㅋㅋ]
찌라시 떠돌고 있는데 찐 같음 ㅇㅇ
TTT 시청률도 좋았으니까 연말에 자리 만들어줄 만하지 기대된닼ㅋㅋㅋㅋㅋ
“미미미미친 거 아냐? 찐인가?”
“내가 알아본 결과, 맞는 것 같아.”
곽덕배와 근돌이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 판에서 이런 찌라시는 구라도 많지만, 진실인 것도 많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관계자들의 지인이나 가족들이 퍼뜨리는 것이다.
“갈 거?”
“지금 연차 쓰기 직전인데.”
곽덕배가 괴로운 얼굴로 머리칼을 헤집다가, 이내 눈을 빛냈다.
“근데 이거 진짜면, 애들 무대 세 개는 할 거 아닌가? 가성비상 가야겠는데.”
“가성비 지키려면 TV로 봐야지…….”
근돌의 팩트 폭력에 곽덕배의 얼굴이 눅눅해졌다.
“전치 12주…… 가 아니라, 넌 갈 거잖아.”
“당연한 걸 묻네. 난 이미 항공권 예약까지 끝냈다고.”
타닥타닥…….
“뭐 해?”
갑자기 스마트폰을 타닥거리는 곽덕배에, 고개를 내뺀 근돌이 기함했다.
“아니, 대체 언제 결심한 건데?”
그렇다.
곽덕배의 스마트폰에 떠오른 것은…… 항공권 예매 화면이었던 것이다.
* * *
“하아아아아…….”
자고 일어나면 좀 나아지겠지, 라고 했던 개소리를 취소하겠다.
이 몸뚱어리한테 뭘 바란단 말인가.
새벽 3시.
그러니까, 잠이 든 지 2시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눈이 떠졌다.
말린 우거지와 다를 바 없는 낯짝으로 상체를 일으킨 나는 방 밖으로 나서며 이마에 손을 올렸다.
‘역시 뜨겁군.’
스마트폰을 켜 낯짝을 점검하니, 얼굴에도 열이 올라있다.
“쯧.”
곧장 욕실로 향한 나는 수도의 레버를 가장 끝으로 돌렸다.
찬물로 얼굴을 헹구자, 옅게 떠올랐던 열 기운이 어느 정도 사라져 있었다.
팽팽 울리던 골이 더 쑤신다만, 이 정도야 참을 만하다.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 아직도 감격하고 있는 중 라이트온은 신이다 ssibal 하늘까지 따라주는 아이돌이 신이 아님 뭔데
- 오늘 랕깅이들 의상 코디해주신 분 만수무강하세요 들숨에 현금 날숨에 건물 어쩌구저쩌구 다 받으세요 진짜 당신은 최고입니다 감사합니다
- 애들 퇴근길에 팬들한테 인사해 주는 것 봐 마이 러블리 키티들아… (영상)
- 와 ㅅㅂ 라이트온 임진각 직캠 조회 수 미쳤어
└ 근데 그럴 만함 진짜 레전드 그 자체였음 ㅋㅋㅋㅋㅋ
“……?”
무심코 직캠을 검색해 본 내 동공이 커다래졌다.
업로드한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조회 수가 예사롭지 않았다.
사실 무대의 반응이 좋았다는 건 진즉 알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밴에서 잠시 봤을 때, ‘라이트온 첫눈’, ‘임진각 레전드’ 등이 실시간 트렌드에 올라와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우리와 한참 커다란 규모의 팬덤을 자랑하는 그룹들과 비교해도 웃도는 조회 수니 말 다 했다.
가장 큰 이유는 사고로 모인 관심이겠지만, 시각적인 것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흠.”
겨울 야외무대에서 레전드를 찍지 않으면 범죄라는 오타쿠 자아의 강력한 주장에, 나는 곧바로 기획팀에 의상을 건의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획팀에 있는 이해성에게 말이다.
- ……! 아니, 이, 이건 너무 여기저기 뚫린 게 아닐지, 그래도 겨울인데요.
그렇다기엔 이해성의 눈이 반쯤 돌아가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내 오타쿠 자아는 이해성에게서 파생된 것이니까.
즉, 이해성 본인의 취향 저격일 거라는 소리다.
- 괜찮습니다. 어차피 무대에 올라가는 건 겨우 몇 분인걸요. 아시다시피 임진각 야외무대는…….
- 항상 레전드죠…… 가 아니라, 아니, 제가 무슨 말을. 너무 자연스럽게 넘기시니까 말이 헛 나왔습니다.
나는 이해성이 겨울 야외무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다.
그런 무대에 캠셔틀로 따라갔던 전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서 말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는 이해성을 보며, 나는 미리 짜놨던 기획안을 넘겼다.
- 어차피 옷에 구멍 몇 개 안 뚫어도, 추운 건 똑같아요. 무대의상이 다 얇고, 그렇잖아요?
- ……이상하게 설득되네요.
내 기적의 논리에, 이해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결과로 마음에 드는 의상이 나왔고 말이다.
히죽…….
비겁한 성공, 역시 나쁘지 않다.
열 기운으로 대가리가 울리는 와중에도 입꼬리를 비열하게 끌어 올리자, 성좌들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주로 내 인성을 지적하는 것이었는데, 띠링 소리까지 더해지니 지끈거림이 더 심해졌다.
“푸우…….”
나는 달뜬 숨을 뱉으며 소파에 늘어진 채 눈을 껌뻑였다.
“진짜 뒈지겠군.”
* * *
“으하하하! 희승 쌤, 잠깐만요. 잠깐만요.”
실성한 최승하가 구희승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저희 이러다가 죽어요. 선생님, 이건 아냐! 저기 봐요! 류인 형이랑 윤재! 죽어 있잖아요!”
“쟤네도 이거 하고 잘 안 되던 안무 되는 거 봤지?”
“보긴 봤는데요~ 하핫!”
구희승의 트레이닝은 힘들긴 해도, 효과만큼은 믿을 만했다.
“말하는데 누르는 게 어딨어요! 끄아아, 다, 다리 찢어져요. 다리!”
“고, 고문…….”
참혹한 광경(?)을 보며 희게 질린 신유하의 중얼거림에, 구희승의 목이 느릿하게 돌아갔다.
“유하야, 뭐라고?”
고개를 숙인 신유하가 등을 돌렸다.
“물, 떠와야겠다…….”
“유하 너! 어디 가, 아아악! 쌤, 자, 자, 잠깐만요. 타임~ 타임~!”
“타임은 무슨 타임이야, 인마. 봐, 누르니까 유연해지잖아. 그래, 안 그래.”
“그렇긴 한데, 아무래도 이건 좀, 끄아악.”
“으휴, 우리 귀여운 제자. 걱정 말거라. 네 다음 타자는 저기, 저기서 널려 있는 쟤니까.”
척!
구희승이 손짓으로 한 인영을 가리켰다.
연습실 구석, 초췌한 낯으로 멤버들의 패딩을 덮은 채 기절하듯 누워 있는 성해온이었다.
“앗, 안 돼요!”
“뭐? 안 돼?”
“네, 안 돼요.”
“이상하다? 우리 승하는 이렇게 말하면, 바로 ‘하핫!’ 하면서 튀어야 하는데?”
“으음~ 근데 오늘은 진짜 안 돼요. 저 형은 어차피 보컬 파트라 그 안무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잖아요. 제가 열심히 할게요.”
“그래? 흐음, 오케이. 설득력 있어. 네가 해온이 몫까지 찢으면 되겠다.”
“그렇죠? 제가 또 한 설득해서 왕년에 별명이 최설득…… 끄하하, 흐읍. 하하핫, 흐흑…….”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동료의 고통을 모른 척할 거냐 대로합니다!]
나는 억지로 눈을 감은 채, 마음의 눈을 사용해 최승하를 따뜻하게 바라봤다.
‘네 희생은 잊지 않으마.’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할 말을 잃어버립니다!]
* * *
AMA 1일 전, 출국 당일.
공항에서 만난 두 오타쿠가 손을 흔들었다.
“일찍 왔네.”
“너도.”
“이 상황에서 설마 여권 안 챙겨왔으면 진짜 레전드 웃수저인 거지.”
곽덕배의 말에, 근돌이 낄낄댔다.
“에이, 설마 그걸 안 챙길 리가 있나.”
* * *
“……어, 그러니까 지금 여권들이 숙소 테이블 위에 있다는 거죠?”
운전대를 잡은 매니저가 온화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래도…….”
끼리릭!
순식간에 차체를 튼 매니저가 나지막이 읊었다.
“다들 꽉 잡으세요. 출국 시간 맞추려면 달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