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95화
끼익!
“가, 갑자기 속도가…….”
“아, 여기가 제한 속도가 있는 도로라서요.”
이 정도는 되어야 매니저로 먹고사는구나 싶을 정도로 놀라운 운전 실력이었다.
미친 드라이빙 와중에도, 교통법규는 조금의 오차도 없이 지킨다니.
“우웁.”
“으…….”
밴 여기저기에 널브러진 멤버들 사이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매니저는 상쾌한 얼굴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도착했습니다.”
“제가 갔다 오겠습니다!”
문 쪽에 앉은 차윤재가 밴 밖으로 튀어 나갔고, 멤버들은 조용히 엄지를 치켜올렸다.
“운전 실력 대단하신데요.”
방금까지 보여줬던, 스피드 레이서다운 면모를 벗어던진 매니저가 온화하게 웃었다.
드르륵-
“헉, 흐억. 출발해도 됩니다! 여권 챙겼습니다!”
“윤재 뛰어갔다 왔구나. 여기, 물.”
“류인 형님, 감사합니다!”
물을 삼킨 차윤재가 말을 이었다.
“이걸 끝까지 몰랐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알아차리신 게 다행입니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니 심려치 마세요.”
말을 마친 매니저가 하하, 웃었다.
“자, 여러분. 다시 꽉 잡으세요. 공항으로 출발합니다.”
* * *
인천공항에서 멈춘 차체, 앓는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우우욱…….”
“어읍.”
안색이 파리해진 멤버들 사이에서, 나는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다들, 하…… 사진, 찍히니까 옷매무새 정리하고, 얼굴도 펴고, 우욱.”
“그러는 형님의 안색이 가장 좋지 않습니다!”
“…….”
빌어먹게도 사실이라 별다른 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밴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차차차차차차차착!
동시에 플래시 세례가 여기저기서 터지기 시작했다.
전부 우리의 팬? 그럴 리가.
AMA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하는 연예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보니, 공항은 거의 마비 상태였다.
그 와중에도 상체를 빙글 돌린 최승하가 내게 작게 말을 걸었다.
“비행기 탈 때 신발 벗어야 하는 거 알죠?”
“죽을래?”
“으하핫, 역시 안 속네! ……음, 윤재한테 해볼까? 윤재야!”
“예, 형님!”
“비행기 탈 땐 신발 벗어야 하는 거 알지? 국내선은 괜찮은데, 국제선은 들어가자마자 슬리퍼를 주셔.”
반은 사실이다.
편한 비행을 위해 슬리퍼를 제공하긴 하지만, 좌석에 앉지도 않은 상태에서 신발을 벗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 거짓말 치지 마십시오.”
“어라? 진짠데? 그쵸, 해온 형!”
샤락!
곧장 신뢰의 낯짝을 걸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지. 어기고 신발을 신는 사람도 있지만, 웬만하면 주시는 슬리퍼로 갈아 신는 게 좋을걸. 미리 신발 벗기 좋게 해놔. 들어갈 때 밀리면 곤란하니까.”
아직 의심을 거두지 못한 차윤재가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이자, 최승하가 내 팔을 툭툭 치며 음소거에 가까운 목소리로 호들갑을 떨었다.
“속는다! 속는다!”
안타깝게 최승하의 말을 듣지 못한 차윤재는 긴장 섞인 얼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철썩!
철썩!
최승하의 등짝이 동네북처럼 패이기 시작했다.
“아야!”
다행히 신발을 벗기 전, 대충 무슨 상황인지 눈치챈 승무원의 은근한 센스로 차윤재는 상황을 벗어났다.
“푸흐, 흡, 윤재…… 봤어요? 발뒤꿈치 뺐는데.”
화르륵!
“형님……!”
차윤재의 손이 더 빠르고 정확하게 최승하의 등짝을 갈기기 시작했다.
“근데 윤재야, 내가 생각해 보니까 공범이 있거든? 근데 왜 나만-”
최승하의 말이 끝나기도 전, 나는 싱긋 웃었다.
“최승하가 하자고 했어.”
빛보다 빠른 속도로 남을 팔아먹고 자리에 앉은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눈을 질끈 감습니다!]
* * *
입국 절차를 밟고 공항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최승하가 기지개를 켰다.
“겨우 세네 시간 있던 건데, 나오니까 시원하네요. 좀 설레는 것 같기도 하고~”
“저, 저도 설렙니다!”
“나도……!”
“하하, 너네 다크서클이나 떼고 말해야겠는데.”
“그러는 류인 형도 심각하신데요.”
한수현의 말과 동시에, 멤버들의 안색이 희미해졌다.
“하아아아아아…….”
누구의 입에서 나오는지도 모를 한숨 소리가 가득 찼다.
솔직히 풍경이고 뭐고, 눈에 전혀 안 들어온다.
여행의 설렘, 이딴 게 있을 리가.
출발할 때만 해도 눈을 반짝반짝 빛내던 놈들의 안광도 반쯤 죽어 있었다.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너 나 할 거 없이 바로 곯아떨어졌으니 말 다 했다.
그냥 눈 감았다 뜨니 해외에 와 있는 기분이다.
* * *
“형, 잘 부탁드려요……!”
“인사는 무슨, 원래도 룸메이트잖아.”
호텔 룸은 전부 2인 1실이었는데, 영상을 찍을 것도 아닌지라 간단하게 숙소와 동일한 룸메이트로 배정했다.
“물…… 갖다 드릴까요?”
“…….”
이 녀석, 자발적 셔틀을 자처하고 있다.
“나도 손 있고, 발 있어. 냉장고도 내 침대가 더 가까운데.”
“그래도…….”
“됐으니까, 앉아.”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고개를 돌려 신유하와 눈을 마주쳤다.
“혹시 배고파?”
신유하는 기내에서 먹은 것들 때문에 배고프진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우리 룸서비스 말고, 그냥 잘까. 피곤해 뒈지겠다.”
“네, 좋아요……!”
나는 눈을 껌뻑였다.
비행 내내 잠만 잤는데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군.
게다가 빌어먹을 감기몸살까지 아직 낫지 않아서 말이다.
보컬에 지장이 가는 목 쪽으론 멀쩡해서 다행이긴 하다만.
이 걱정 많은 놈들한테 들키기라도 하면 귀찮아질 테니, 따로 산 약을 가지고 다니면서 먹고 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똑똑똑!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목소리도 안 들었는데 누구인지 알 것 같군.
내가 상체를 일으키자, 신유하가 벌떡 일어났다.
“……! 제가, 열어볼게요!”
나는 어서 누워서 휴식이나 취하라는 듯, 녀석이 팔을 휘적였다.
“누구야?”
“아, 아니에요. 누우세요……!”
팔락팔락 손을 내젓는 신유하의 등 뒤에서, 다시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똑똑!
“누군데?”
“……형은, 쉬어야 해요……! 제가 나가볼게요……!”
“그러니까, 바깥에 있는 놈들이 내 휴식을 방해할 놈이란 거지?”
신유하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척 봐도 최승하군.
뭐라 대답할 기운도 없이, 시야가 까무룩 어두워졌다.
* * *
- AMA 큐시트 떴다 ㄷㅂㄷㅂㄷㅂ
- 헐 TTT 출연진 스페셜 무대 찐이었네
- 유출된 큐시트 그만 퍼뜨리세요 여러분 ㅠㅠ
- 오 라이트온 순서 생각보다 뒤쪽이다
AMA 개최 전날 밤, 공연 순서가 담긴 큐시트가 퍼졌다.
그리고 방금 숙소에 체크인한 곽덕배가 뒷목을 부여잡았다.
- 덕배 님! AMA 보시러 가신 거예여? 돈 많으세여???
- 나 같으면 그 돈으로 인생을 살겠다ㅋㅋㅋ
- 덕배니뮤ㅠㅠ 해온이 파란 볼캡에 하얀 셔츠 입은 날짜가 언제였죠?
- 라이트온 진심 개나댐 그렇지 않아요 덕배 님?
곽덕배의 SNS 속 익명 질문함에 어그로들이 좌표를 찍고 몰려온 것이다.
생각보다 뒤인 라이트온의 순서를 보고 몰려온 게 틀림없었다.
“이 놈들 처리하고 천국 갈랍니다.”
“사이버 도화살 레전드다 진짜…….”
“아니, 이런 도화살은 갖고 싶지 않은데.”
“덕배야.”
“어?”
“이게 ROCK이야.”
힘내라는 듯이 곽덕배의 어깨를 두드린 근돌이 말을 이었다.
“너의 스타성을 자랑스러워해.”
“어떻게 내 오타쿠 친구들은 다 이 모양 이 꼴이지?”
“뭐긴 뭐야 끼리끼리인 거지…….”
* * *
……차갑다?
이마에 차가운 게 닿았다가 떨어졌다가를 반복했다.
게다가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문소리와 조용한 인기척까지.
나는 느릿하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확실히 좋지 않은 컨디션 탓에 시야가 영 흐릿했다.
불투명했던 초점이 점차 맞춰졌고, 보이는 건 익숙하지 않은 천장과 신유하였다.
최승하로 추정되는 문 앞 인영과 대화하는 신유하를 보다가…….
어땠더라.
기억이 없는 걸 보니, 그대로 잠든 모양이군.
작은 수건의 물을 쭉 짜내다가, 내가 깼다는 걸 눈치챈 신유하의 눈이 커졌다.
“……!”
하지만 이내 내 이마에 손을 올리더니, 입을 달싹이며 수건을 다시 얹었다.
“형은…… 아픈 걸, 들키기 싫은, 거죠?”
평소 말수는 많지 않아도 남들을 잘 살핀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만, 신유하는 내 예상보다도 눈치가 빠른 모양이지.
열나는 것까지 들킨 마당에 숨길 수가 있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신유하가 자신의 손을 내 눈 위로 올렸다.
차가운 손이 닿으니,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말 안 할, 게요. ……얼른 쉬세요. 열이 조금 있어요.”
타악-
의식이 반쯤 잠긴 상태에서, 신유하의 손목을 낚아챈 나는 천천히 입을 뗐다.
“너 괜찮아?”
태오는 아직까지 활동에서 제외되고 있으니, 연말 무대에서도 보이지 않겠지만…… 사실 러쉬라는 그룹 자체가 신유하에겐 트리거 요소다.
좋든 싫든 마주치게 될 텐데.
“하하.”
작게 웃은 신유하가 대답 대신, 타월의 물기를 짜냈다.
“저는 정말, 괜찮아졌어요. 이제, 겁나지 않아요.”
형 덕분에, 라는 말이 작게 이어졌다.
무거운 눈을 감은 나는, 반쯤 의식이 잠긴 상태에서 마지막 말을 전했다.
“다행이다.”
* * *
삐비비빅! 삐빅! 삐비빅!
“…….”
칙칙한 낯짝으로 알람을 종료시킨 나는 눈을 껌뻑였다.
그나저나 자고 일어나니 상태가 나쁘지 않다.
어제만 해도 몸이 천근만근이었는데, 오늘은 한결 가볍군.
상체를 일으킴과 동시에, 무릎으로 미지근한 타월이 떨어졌다.
[성좌, ‘황금의 신’이 우리 아해는 어쩜 이다지도 사려 깊은 거냐며 황홀해합니다!]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신유하에게로 시선을 던진 나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잘 시간도 부족한데, 밤새 간호라니.
쯧쯧…….
어디서 사기당하기 딱 좋은 상이다.
[성좌, ‘황금의 신’이 대로합니다! 밤새 간호해 준 아해에게 어찌 그런 망발을 할 수 있냐며 경악합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곤히 자고 있는 신유하를 흔들어 깨웠다.
* * *
AMA가 개최되는 아레나로 이동하는 차 안, 차윤재가 눈을 날카롭게 떴다.
“형님, 너무하십니다!”
어젯밤 찾아왔던 인영엔 의외로 차윤재가 포함되어 있었던 모양.
“어떻게 문전박대를!”
“문전박대를!”
차윤재와 최승하의 합창에,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왜 온 건데?”
“승하 형님이 복수를 하러 가자기에 따라 나갔습니다!”
안 열어주길 잘했군.
“지금 안 열어주길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계신 겁니까!”
“……!”
“왜, 왜 그렇게 눈을 동그랗게 뜨십니까?”
“언제 이렇게 눈치가 빨라졌나 싶어서.”
“……이익!”
스윽…….
분노하는 차윤재를 못 본 척한 나는 매니저에게 말을 붙였다.
“오늘 날이 참 좋네요…….”
“저 형님이 제 말을 무시, 읍! 읍! 류인 형님, 왜 갑자기 제 입을 막으시는 겁니까!”
“윤재야, 오늘 컨디션은 괜찮아? 근육통은 없고?”
“예 괜찮……! 아니, 가만 보면 류인 형님도 말 돌리시는 게 수준급입니다!”
“와아~ 저기 봐. 팬분들 모여 계신다.”
“앞으로 승하 형님 말씀은 절대 믿지 않기로 했습, 허어억!”
착!
창문을 뚫을 기세로, 양 손바닥을 창에 붙인 차윤재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저, 저, 정말 인파가 어, 어마어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