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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196화 (196/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96화

“우린, 이번 기회를 잘 잡아야 해. 연애, 그런 거 할 때가 아니야, 얘들아.”

트웰브를 모아놓은 도진이 덤덤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지금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거예요?”

유인성이 찍은 파파라치 컷의 주인공인 멤버가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그런 이야기 아니라는 거 알잖아. 나는 너희 리더야. 내가 언제 사사로운 감정으로 너희 혼낸 적 있어?”

순식간에 트웰브의 입이 다물렸고, 도진은 말을 이었다.

“이번 연말 무대…… 우리가 프로그램에서 부진했던 게 잊혀질 만큼, 잘해야 해.”

열셋의 나이로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도진은 주변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 도가 튼 인물이다.

그러니까, 알 수 있었다.

- 허, 라이트온…… 그 나부랭이들도 한 1위를 못 했다고. 내 귀가 잘못된 게 아니고.

- 대, 대표님 그게 이번엔 동시 발매로 헤레인이 나와서, 운이 나빴습니다. 그래도 애들 음반 판매량은 예상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쿠당탕!

자신들을 담당하는 실장님에게 날아든 걸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바닥을 나뒹구는 소리.

그럼에도 실장님의 목소리는 밝았다.

- 대표님, 그래도 애들이 AMA 준비를 아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신인 때처럼 군기가 바짝 들은 것 같더라고요.

- 김 실장.

- ……네.

- 이 바닥에서, 동시 발매 대진운…… 그래 중요하지, 하지만 2년 전만 해도 그깟 솔로 하나랑 활동이 겹쳤다고 성적을 못 냈을까?

- 대표님, 그게…….

- 데뷔 때부터 키운 애들이니, 정이 가는 건 알겠다만…… 김 실장이 봤을 땐.

- …….

- 정말 운이 좋지 않았던 건가, 아니면 그놈들이 거기까지였던 건가?

“……제발, 내 말 좀 들어줘 얘들아. 이번에 못 하면 정말 끝이야.”

끝이야.

라는 말에 트웰브 멤버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들도 어느 정도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BK, 아이돌 지망생이라면 선망하는 소속사 중 하나지만…….

얼마나 잔인한 곳인지,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아무리 빛나던 그룹도, 하락세를 타면 잊혀지는 게 이 업계.

자신들은 지금 그 벼랑 끝에 몰려 있다.

* * *

“흠.”

앞 그룹이 항공편 문제로 리허설을 펑크낸 탓에, 아레나에 도착하자마자 리허설을 마친 우리는 대기실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트웰브]

[라이트온]

아티스트가 대거 참석하니, 단독 대기실은 기대하지 않았다만…… 트웰브도 대기실을 같이 쓴다고?

BK와 Nnet의 관계가 있는데?

아무리 하락세라지만, 트웰브는 여전히 BK의 대표 그룹 중 하나다.

‘저번부터 느꼈지만…….’

이놈들, 지금 BK에서 입지가 좋지 않은가 본데.

그 소속사답지 않은 앨범부터 낌새를 느꼈으나, 이쯤 되니 확신이다.

드륵-

대기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멤버들이 허리를 꾸벅 숙여댔고, 의례적인 인사가 시작됐다.

“선배님 식사는 하셨나요.”

“간단하게 먹었어요. 라이트온도 저녁 비행기 타고 왔어요?”

“예, 저희도 저녁 비행기로 도착했습니다.”

“엄청 피곤하죠? 우리도 도착하자마자 바로 뻗었다니까요. 라이트온은 해외 스케줄이 처음이죠?”

“……?”

이 새끼, 전부터…… 왜 이렇게 친절하게 구는 거지.

몹시 찝찝하다.

하지만 불손한 생각과는 다른, 공손한 낯짝을 걸친 나는 만면에 미소를 걸쳤다.

“예, 그래서 긴장이 많이 되더라고요.”

“하하! 그렇다니까, 이게. 은근 해외 스케줄이 낭만이 없어. 관광할 시간도 없고…… 아.”

도진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오늘 밀리어스도 왔잖아요. 인사했어요? 되게 친하던데.”

“……아, 예.”

마음 같아선 여기에서 대화를 차단하고 싶다만, 나는 사회성을 발휘해 적당한 질문을 던졌다.

“선배님도 아는 사이이신가요?”

“그냥 동갑이기만 하죠. 저도 따지자면 후배고, 제대로 말 나눠본 적도 없거든요.”

‘끽해야 데뷔 초 때 스페셜 무대 한 번 같이 서봤나’라는 말을 덧붙인 도진이 중얼거리듯 말을 이었다.

“그래서 더 의외네. 곁에 사람 안 두는 걸로 유명한데.”

슬슬 이 대화가 짜증 나기 시작했다.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거지?

유치하게 뒷담에나 어울려 달라는 건 아닐 테고.

“있잖아요.”

단숨에 목소리를 낮춘 도진이 대기실 거울 속으로 나와 눈을 마주쳤다.

“트웰브랑은 어때요?”

그러니까, ‘절친한 선후배’ 그룹으로 언론 플레이를 하자는 건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기 싸움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우리는 라이트온이랑 예능도 같이 나가줄 수 있고, 우리 쪽이 실질적으로 더 도움 되지 않을까?”

밀리어스 정도 되는 그룹은 아무리 친해도 이렇게 어울려 주진 못할 거라며, 도진이 말을 덧붙였다.

“갑작스럽네요.”

“그럴 만하지. 근데 손해 볼 제안은 아니지 않아요? 우리가 아무리 죽었다지만 아직 라이트온에게 득 될 건 많을 테니까. 아무리 해졌대도, 이름값이라는 게 있잖아요.”

호오.

그룹에 대한 프라이드가 꽤 높아 보였는데, 스스로 내려치기까지 하면서 내게 이런 제안을 한다고?

아무리 입지가 약하대도…… 굳이?

잠시 물음표를 띄웠던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 뜻은?”

“거절하겠다는 소립니다.”

“……하하, 정말요?”

내가 미쳤다고 트웰브랑 손을 잡게?

이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리에게 좋을 게 없다. 즉, 손해라는 뜻이다.

지금 라이트온의 이미지는 아주 좋다.

성장 서사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으니까.

물론 트웰브의 대중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인지도 있는 예능이나 프로그램 등에 진출하기가 조금 더 쉽겠지만…….

- 물드는 거 아님? ㅎ 아무리 ㅌㅇㅂ 남은 멤들이 마약 안 했다지만 끼리끼리는 사이언스라고

- 순수했던 이미지 뭔가 와장창임… 잘못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그냥 그래…

이런 말이 물밑에서 무조건 나올 거라 확신할 수 있다.

나는 눈을 데굴 굴려, 곁눈질로 도진을 응시했다.

꽤 야망도 있어 보이고…… 리더로서 팀을 지탱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게 잘 안 되고 있는 상태로 보인다.

내가 보기에 트웰브는 지금 내부 결속부터가 망가진 상태 같거든.

연애 현장이 찍혔던 멤버를 제외하고도, 듣자 하니 클럽 같은 곳에도 뺀질나게 드나든다고 하던데.

트웰브, 아니, BK가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지만…….

난 어울려 줄 생각 없다.

나는 대화 주제를 틀었다.

무례라면 무례겠지만, 알 반가.

“오늘 선배님들의 멋진 무대, 잘 보고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모쪼록 잘 부탁드려요.”

드르륵-

때마침 대기실 문이 열렸고, 들어온 인영은 트웰브의 매니저였다.

“얘들아, 대기실 새로 받아 왔어.”

여기저기 뛰어다녔는지,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나에게 까딱 눈인사를 건넨 도진이 트웰브를 통솔해 일어났다.

탁.

내 어깨에 손을 올린 도진이 목소리를 낮췄다.

“전 라이트온이 싫지 않아요. 그러니 제 제안 잘 생각해 보세요. 지금 말은 못 하지만…… 제 생각에, 저희랑 손잡아서 볼 손해보다는 득이 많을 거거든요. 물론, 미래에요.”

“……?”

묘한 말이다.

지금이 아니라, 미래에?

드르륵, 쾅-

“흐아아아아아아아!”

대기실 문이 닫히기 무섭게 차윤재가 엄청난 길이의 한숨을 토해냈다.

“어, 엄청나게 눈치 보였습니다! 트웰브 선배님들의 분위기가, 무서웠습니다!”

“그러게. 진짜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더라. 다들 얼굴이 굳어 계시고, 뭔 일 있으신가?”

흠, 소리를 낸 최승하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니까 우리가 상관할 바는 아니네~”

“맞아요. 저흰 저희의 무대에 집중하면 됩니다.”

한수현은 곧장 매니저가 촬영해 준 리허설 영상을 재생했다.

“무대 크기가 생각보다 커서, 리허설 때 적응이 안 됐어요.”

“맞아……! 무대가, 엄청 컸어!”

“저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군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나는 멤버들의 의견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AMA의 규모가 크긴 하다만, 예년과 비교했을 때 상상 이상이었다.

‘아주 돈을 발랐던데.’

* * *

대행표를 손에 쥔 둘은 이를 바득 갈았다.

“이 양아치들…….”

“플미충들 다 잡아넣어야 하는데!”

“선량한 오타쿠들 삥이나 뜯고 …….”

“알면서 사주는 우리가 레전드.”

“……오타쿠 인생 레전드.”

둘은 눈물겨운 티키타카를 자랑하며 아레나의 뒤편, 은밀한 공간으로 향했다.

“시큐한테 잡히면 뛰어내려야지 …….”

근돌은 작게 중얼거리며 장비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예 다 잡으면 몰라. 보여주기 식으로 몇 명만 잡잖아.”

그렇다.

사실 시상식장 내부에서 대놓고 찰칵대도 잡지 않을 만큼, 시상식 측에서도 대부분 사진 계정들을 용인해 준다.

개념 외의 짓만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시상식 홍보에 도움이 되니까.

문제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게 민망한지, 몇 사람만을 보여주기 식으로 잡는다는 것이다.

카메라와 렌즈를 차곡차곡 숨긴 근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간 첩보 영화 조연 같다.”

“이런 조연은 원래 빨리 뒤지지 않아? 일단 그 전에 오타쿠 생활 하면서 첩보 영화 찍는 게 말이 되냐고. 류인이랑 승하 화끈한 옷 입었으면 좋겠다.”

“오늘 해온이가 얼마나 끝내줄까?”

맥락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두 오타쿠의 대화가 동시에 끊겼다.

입장이 시작된 것이다.

* * *

“레, 레, 레드 카펫 ……!”

차윤재가 음소거로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신기하다. 레드 카펫.”

“저도……! 처음, 이에요.”

다른 녀석들도 티는 안 내려고 노력하지만, 신기함을 감추지 못한 얼굴들이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내 시야에 누군가가 들어온 것이다.

샤라락!

“아, 기자님! 여기서 뵙네요!”

가식적인 낯짝을 걸친 내가 눈을 반짝이자, 등을 한껏 구부린 채 발걸음을 옮기던 인영이 몸을 흠칫 떨었다.

톱스타 패치의 대표로 AMA에 참석한 유인성이었다.

라이트온의 기사를 기깔나게 써줄 노예, 아니, 기자님을 놓칠 수는 없지.

유인성이 바득바득 이번 AMA에는 자신의 후배가 갈 예정이라고 주장하기에, 약간의 담소를 나눴다.

그 결과로 지금 유인성이 여기 있고 말이다.

히죽…….

손아래에서 비열한 미소를 짓자, 유인성이 다급하게 시선을 피했다.

“저는 기, 기자석에 가서 자리를 잡아야 해서, 하하.”

유인성이 떠나자, 멤버들이 힐끗 질문을 건넸다.

“해온아, 아는 기자님이셔?”

“응. 많이 아는 건 아니고, 라이트온 팬이시래.”

“오오! 남성 팬분이신 겁니까! 흔치 않아서 조금 신기합니다!”

유인성이 들었다면 뒷목 잡고 쓰러질 얘기지만, 나는 신뢰의 낯짝을 걸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저 팀 나가면, 라이트온 입장입니다. 대기해 주세요!”

스태프의 안내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AMA의 레드 카펫은 영화제의 레드 카펫과는 다르다.

리무진 같은 데서 내려, 관객의 환호를 받으며 걷는다기보단…….

카메라가 없는, 넓은 공간에 아티스트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각자 순서를 지키며 입장하는 식이다.

아예 레드 카펫용으로, 양옆이 막힌 통로 같은 세트장이 마련되어 있다.

“흠.”

무대에서도 놀랐지만, 이 세트장에서도 자본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군.

초청한 기자들의 라인업도 아주 화려하고.

내가 세트장을 둘러보고 있을 무렵이었다.

“……?”

다섯 팀 정도가 대기하고 있던 공간이 갑작스레 조용해진 것이다.

그리고 정적 속에서, 정신 나간 놈의 목소리가 무척 선명히 들려왔다.

“해온아.”

의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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