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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197화 (197/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97화

나와 저 자식은, 다른 이들에게 ‘친한 선후배’로 인식되어 있다.

즉, 개빡쳐도 친한 척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샤라락!

“선배님!”

가식으로 점철된 낯짝을 걸친 내가 허리를 꾸벅 숙이자, 단숨에 다가온 의현이 웃으며 내 상체를 바로 세웠다.

‘이 자식, 혼자 왔군.’

당연한 일이다.

우리야 레드 카펫 입장 순서가 앞쪽이라지만, 밀리어스는 무조건 마지막이니까.

“잠깐 얼굴 보고 싶어서 왔어.”

내가 웃는 낯짝 아래로 엿을 날리고 있을 때쯤, 의현의 눈이 조금 커졌다.

“아.”

“……?”

“이제 곧 라이트온 입장 순서구나.”

스태프와 나를 번갈아 바라본 의현이 곱게 눈을 접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가볼게.”

생각보다 깔끔하게 퇴장하는 의현에, 나는 놈의 평가를 상향 조정했다.

그래도 정신머리는 있는 놈인가 보군.

* * *

방금 전, 그 생각을 철회하겠다.

가수 대기석에 입장하기 무섭게…….

고급스러운 벨벳 천으로 덧씌워진 의자에 앉은 아티스트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모여들었다.

게다가.

차차차착착착착착착착착!

저 위에 있는 수많은 팬.

그러니까, 수많은 카메라까지 여기로 집중되는 게 느껴졌다.

주르륵…….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상석 중 상석에 앉은 밀리어스.

그런 놈이 우리가 가수 대기석에 발을 내딛기 무섭게, 손을 흔들며 아는 척을 해왔기 때문이다.

참고로 여기서의 가식 난이도는 아까의 레드 카펫 때와 비할 바가 못 된다.

나는 간신배 같은 낯짝으로 허리를 숙였다.

꿈에도 그리지 못하던 대선배님을 마주친 망돌 컨셉이다.

“……! 선배님.”

“편하게 해도 된다니까. 사람들이 많아서 그래?”

이 자식, 친한 선후배 컨셉을 제대로 잡은 모양인데.

나는 눈을 데굴 굴려 멤버들을 바라봤다.

특히 차윤재가 호기심이 그득 담긴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참고로 이 녀석, 밀리어스를 꽤 존경하고 있다.

반짝반짝…….

부담스러운 시선이 계속해서 등짝에 꽂혔다.

“형님 혹시 저희가 신경 쓰이시는 거라면 걱정 마십시오! 저희는 자리에 앉아 있겠습니다!”

뿌듯한 얼굴의 차윤재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 편히 대화하고 오십시오!”

저 녀석의 눈치, 언젠가는 기필코 갱생시켜 주고야 말겠다.

의현이 어서 앉으라는 듯이, 비어 있는 자신의 옆 의자를 툭툭 두드렸다.

멀쩡한 내 자리를 두고, 거길 왜 앉지?

내가 앉으라면 앉는 개새끼도 아니고 말이다.

착!

“예, 영광입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제발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키라고 전합니다!]

저 위에 어마어마한 수의 밀러스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이쪽을 주시하고 있을 텐데, 감히 의현이 앉으라고 마련해 준 자리를 찬다?

그냥 뒈지고 싶다고 삼창하는 게 나을 수준이다.

얌전히 밀리어스의 옆자리에 앉자, 밀리어스의 멤버들이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기 시작했다.

마치 동물원의 희귀한 동물을 구경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건 나도 다를 바 없었다.

호오…….

누나의 방 벽에 붙어 있던 놈들을 단체로 마주하니 꽤 신기하군.

“진짜 의현이랑 친해요? 정말로? 신기해서 그래.”

“그나저나, 라이트온 진짜 잘생겼네요~”

나는 감개가 무량해 죽어버릴 것 같다는 얼굴로 수줍게 뒤통수를 긁적이며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밀러스 여러분, 보고 계신가요?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을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그 순간, 생긋 웃은 의현이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대화를 차단시켰다.

“해온이 낯 많이 가려. 지금도 곤란해하잖아.”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저기서 말하는 해온이가 당신이 맞냐고 묻습니다!]

“…….”

나는 뒈져가기 직전인 안광을 빠르게 채웠다.

“의현이가 후배님 진짜 좋아하나 보네요? 이러는 애가 아닌데.”

밀리어스의 시선이 순식간에 내 낯짝으로 꽂혔다.

어지간히 신기한 모양이지.

나는 자연스레 일어날 각을 만들 요량으로 입을 털기 시작했다.

“오늘 선배님 무대 보고 많이 배우겠습니다.”

“아하하, 영광인데. 해온아, 정말 봐줄 거야?”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밀리어스 무대 때 시선이라도 뗐다가 영혼 끝까지 패일 일 있나.

만약 내가 이놈들 무대에 집중을 안 한다면, 이런 참사가 벌어질 것이다.

- 라이트온 싸가지 ㅋㅋ 선배 무대 때 딴짓하는 것 좀 봐라

- 느그 무대 때 선배님들은 다 집중해 줬는데 이게 어디서 배워처먹은 예의누

상상만 해도 아찔한 가정에, 나는 처연한 낯짝으로 눈을 반짝였다.

“사실 시상식 자체가 처음인 데다가, 밀리어스 선배님들을 워낙 존경해 와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인 걸요…….”

그 순간, 의현의 오른쪽 옆자리에 앉은 금발 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해성이 매번 천사라고 난리 치던 놈이군.

“사실 신인 후배님들은 저희 어려워하거든요. 근데 후배님은 말도 잘하고, 새로워요! 떨지도 않고! 이래서 의현이가 좋아하나?”

나는 곧바로 정색했다.

“저도 지금 심장이 튀어나올 지경인걸요. 원하신다면 날뛰고 있는 제 심장을 만져보셔도 됩니다.”

“그럼 어디 한번~”

금발 놈이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이었다.

타악.

금발 놈의 손목을 막은 의현이 작게 미소 지으며, 눈짓으로 라이트온의 좌석 쪽을 가리켰다.

“내가 너무 붙잡은 것 같네. 멤버들이 기다리겠다.”

* * *

“형님! 이야기 잘 나누고 오셨습니까?”

“그래.”

나는 가수 대기석의 의자 세네 개를 붙여 드러눕고 싶은 마음을 누른 채,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반짝반짝…….

밀리어스와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달라는 것 같은 차윤재의 빛나는 시선이 직통으로 닿았다.

밀리어스, 까놓고 말하자면 이 바닥에서 견줄 만한 그룹이 없는 위치다.

활동하며 연예인병 걸린 놈들을 하도 많이 본 터라, 이쪽도 인기 따라 기고만장한 타입일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다르게 사교적이었다.

나는 차윤재의 시선을 애써 무시한 채, 빈 좌석으로 시선을 던졌다.

“류인이는 준비하러 갔나 보네.”

“방금 갔어요! 우리 형 무대 기대된다~”

헤헤 웃은 최승하가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댔다.

이 녀석, 카메라가 사방에 깔린 걸 알고 이러는 게 틀림없다.

평소였다면 냅다 치웠을 테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는 걸 아는 거지.

“형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

내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최승하가 말을 이었다.

“불편하죠?”

주어는 없다만, 척 봐도 밀리어스를 지칭하는 이야기였다.

불편하다기보단, 속을 알 수 없는 의현이 찝찝한 거지만…… 그게 그건가.

사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티 났나?

났으면 X되는 건데.

마치 주마등처럼…… 머릿속에 예상 악플들이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흐으음.”

능글맞게 웃은 최승하가 내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콩콩 박았다.

“혹시…… ‘그룹에 도움이 될 거다!’라는 일념으로 맞춰주고 있는 건 아니죠?”

굉장히 어이없는 소리지만, 반 이상 정답이라는 게 더 황당하군.

눈을 도록 굴려 나와 눈을 마주친 최승하가 입을 내밀었다.

“참나, 자기가 소년 가장이야 뭐야? 우리한텐 말도 안 해주고.”

나는 투덜대는 최승하의 코를 잡아당겼다.

“삐졌냐?”

“저보단 저쪽이죠.”

시선을 돌리자, 한수현이 뭐라 작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다른 그룹과 친분이 쌓여도, 가족 간의 유대는 뛰어넘을 수 없죠.”

“……뭐라는 거야? 하지만 그렇긴 하지!”

한수현의 옆에 앉은 차윤재가 고개를 기웃거리며 장단을 맞춰주고 있었다.

나는 눈알을 굴려 최승하를 흘겼다.

이 녀석은, 의현과 내가 진짜 친한 사이가 아니라는 걸 눈치챈 모양인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이번 AMA의 오프닝 무대, 데뷔 2년 차 이하 남자 아이돌 그룹에서 댄스 포지션 멤버 하나씩을 차출해 구성한 스페셜 무대다.

일렉트로닉 기타 사운드가 크게 뒤섞인, 강렬한 비트.

그와 함께 여덟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입을 가린 최승하가 속삭였고,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나도 저 중에 류인만 보인다.

워낙 팔다리가 긴 놈이라, 같은 동작을 해도 더 돋보인달까.

퍼포먼스 무대라고, 죄다 올블랙으로 맞춰 입은 상태였는데…… 그 와중에도 단연코 눈에 띈다.

스마트폰을 할 수 없는 게 아쉽군.

분명 팬들의 반응도 좋을 텐데 말이다.

* * *

정답이었다.

“이 새끼 숨 안 쉬는 거 아냐?”

무대가 끝나기 무섭게, 모든 의지를 잃은 사람처럼 의자 등받이에 널브러진 근돌을 본 곽덕배가 고개를 저었다.

바로 그 순간.

벌떡!

“뭐야! X발, 깜짝이야! 왜 그렇게 갑자기 일어나는데.”

“가수 대기석 찍어야지.”

“진짜 대단하다…….”

“덕배야, 근데 오늘 해온이 헤메코 잘 받는다.”

“당연한 거 아니야? 레드 카펫 중계 영상 볼 때부터 난 이미 하나님이랑 하이파이브하고 왔어…… 단체 셋업 슈트가 말이 되냐고. 이건 그냥 오타쿠 암살이라고밖엔, 잠깐만 생각하니까 또 현기증 나네.”

* * *

“수고했다.”

나는 환복 후 돌아온 류인과 시선을 마주쳤다.

“……후, 좀 덥네.”

옷을 펄럭인 류인이 자리에 앉았다.

“괜찮았어? 걱정된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멤버들이 눈을 반짝였다.

“형님! 최고였습니다! 저어엉말 멋있으셨습니다!”

“정말, 정말로, 요……!”

“흠, 가족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제 눈에도 류인 형만 보였습니다.”

마지막 말은 다른 아티스트에게 들릴까, 속삭이듯 말한 한수현이 입꼬리를 작게 꿈틀거렸다.

왜 자기가 뿌듯해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군.

“너희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안심된다.”

나는 류인에게 물을 건넸다.

“우리 다음 무대까지 텀 있으니까, 천천히 숨 좀 돌려.”

* * *

“오오오! 의상이 정말 멋집니다!”

의상을 입은 차윤재가 대기실 거울 앞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게~ 진짜 신경 써주신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 제복의 형상을 띄고 있으며, 어깨엔 금술 장식이 달려있다.

게다가 디테일도 화려했다.

무대 의상답게, 과하지 않은 부분에 적당히 액세서리가 들어갔달까.

대충 봐도 이해성 취향이군.

헤어와 메이크업까지 마친 뒤, 소파에 앉아 있던 나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우리 순서가 이상하게…… 좋단 말이지.’

보통 이런 연말 무대의 순서는 두 부류로 나뉜다.

연차순으로 정렬하거나, 인기순으로 정렬하거나.

참고로 AMA는 완벽하게 후자다.

인기에 더불어, 하나 더 추가하자면 인맥.

Nnet과 모종의 연이 있는 그룹은 인기가 좀 모자라도 나름 뒤쪽에 배치되는 식이다.

여기서 황당한 건, 연은 무슨 이응 자도 없는 라이트온이 그런 특혜를 받았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그 사람 영향력인가.’

남희연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명훈이가 Nnet에 연줄이 있을 리는 없지 않은가.

뭐, 이유는 모르겠어도…… 서바이벌도 끝난 마당에 권력자의 호의는 나쁠 거 없지.

나는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멤버들을 인솔했다.

백스테이지에 가까워지자, 열기가 느껴지는 함성이 고막을 두드렸다.

“음.”

조금 떨리긴 하는군.

꽤 열심히 준비한 무대인지라, 좋게 봐주셨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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