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99화
다음 무대에 대한 전달을 받아야 한다는 핑계로 멤버들을 먼저 가수 대기석으로 보냈다.
“윽…….”
긴장이 풀린 탓인지, 멤버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더욱더 날카로운 통증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식은땀으로 젖은 손을 쥐었다 편 나는 혀를 찼다.
내가 다친 것까진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만, 그 곡을 수백 수천 번 들은 녀석들이 내 실수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 정말 잊지 못할 무대였습니다! 인이어를 뚫고 함성이 들리지 않았습니까?
- 맞아요……! 수고하셨, 습니다!
- 나도 그래, 큰 무대라 긴장했나 봐 아직까지 조금 떨린다.
- 형도요~? 저도 엄청 떨렸는데.
- 형들, 그런 것치고 정말 훌륭하게 해내셨는걸요.
뭐라고 하는 놈이, 어떻게 하나도.
“……쯧.”
바보같이 순해 터진 놈들.
무작정 복도를 걷던 내 눈에 주인 없는 대기실이 들어왔다.
* * *
“안색이 무척 안 좋아 보이셨습니다! 실수를 자책하고 계신 게 틀림없습니다……! 무대 전만 해도 컨디션이 좋아 보이셨는데…….”
“……내가 봐도.”
대기석으로 향하던 류인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음…… 우리 이따가 해온이 오면,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하자. 그게 나을 것 같아.”
“예? 아예 모르는 척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 형님 자존심에 말하면 오히려…… 애초에 큰 실수도 아니었습니다!”
“맞아! 별 실수도, 아니었어……!”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해온 형 성격상, 저희가 모른 척해봤자 더 불편해하실걸요. 류인 형 말씀대로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 * *
“……읍.”
나는 소리를 참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워커의 끈을 푸는 데도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니 말 다 했다.
살을 칼로 후비는 기분이다.
마침내 드러난 발목에, 내 미간이 찌푸려졌다.
“허.”
예상은 했다만, 완전히 나갔군.
퉁퉁 부어 있는 꼴이 말이 아니다.
[구매가 완료되었습니다!]
[넥타르 포션(1%)]이 활성화됩니다!
포션을 활성화시키자, 통증이 차츰 옅어지기 시작했다.
살갗 아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몰라도, 붓기까지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이 페이스면 곧 괜찮아질 것 같군.
한 10분 정도…… 여기서 숨을 돌리다가, 돌아가자.
“후우.”
생각을 마친 나는 대기실 화장대에 걸터앉아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드르륵-
대기실 문이 느닷없이 열린 것이다.
어둑한 대기실 구석에 앉아 있던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주인이 있는 대기실이었나.
문에도 명단이 안 붙어 있었고…… 내부도 비어 있어서, 몰랐는데.
‘사과하고 나가야겠군.’
아직까지 심각하게 욱신거리는 발을 워커에 대충 욱여넣은 나는 낯짝을 관리한 뒤, 상체를 빙글 돌렸다.
그리고 마주한 인영에, 나는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예상하지도 못한 놈이었으며…….
눈깔까지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로-”
말이 끝마쳐지기도 전에, 단숨에 다가온 의현이 내 가슴팍을 밀었다.
“윽.”
다시금 화장대에 걸터앉혀진 내가 인상을 와락 구긴 순간이었다.
“……!”
타악!
몸을 숙인 의현이 내 발목을 그러쥔 것이다.
대강 욱여넣었던 발이 순식간에 워커와 분리되며 퉁퉁 부은 발목이 드러났고, 의현은 엄지손가락으로 그 부근을 느릿하게 문질렀다.
그리고 그 시각, 나는 심각하게 X됐음을 느끼고 있었다.
여전히 꼴이 말이 아닌 발목이다만, 방금보다 상태가 확연히 좋아졌기 때문이다.
나야 포션 덕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일반인이 보기에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이대로면 실시간으로 눈앞에서 호전되는 마법의 발목을 보여주는 꼴이 된다.
1) 발로 깐다.
2) 턱을 들어 올려 시선을 위쪽으로 옮긴다.
두 개의 선택지 중에서, 내 선택은 이거다.
숙이고 있는 의현의 몸통을 발로 후려치자,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몸이 뒤로 약간 기울었다.
허, 약간?
……전력으로 깠는데 힘이 얼마나 좋은 거야?
그러쥐고 있던 발목도 일부러 놔 준 기분이라 굉장히 재수 없다.
나는 속으로 온갖 욕을 지껄이며 워커에 발을 욱여넣었다.
아직 회복되지 않은 발목이 더럽게 아프지만, 일단 이 공간에서 빠져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이상한 놈은 피하는 게 상책이거든.’
봐라, 까마득한 후배가 자기를 발로 깠는데도…… 뭐라고 하기는커녕, 상태가 이상하잖아.
그러니까, 지금 이 새끼는…….
웃고 있다.
솜털이 절로 쭈뼛 서는군.
“아, 발목은 백스테이지에서 나오면서 다친 거라서요. 괜찮습니다. 보기보다 아프지도 않고요.”
눈치를 살핀 내가 슬슬 몸을 빼낸 그 순간이었다.
“해온아, 해온아, 해온아.”
커다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 의현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길게 뻗은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이놈의 눈깔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겠다.
반쯤 몸을 빼내는 데 성공했을 무렵, 몸이 다시금 제자리로 향하며 날갯죽지가 거울에 부딪혔다.
의현이 내 몸뚱어리를 밀친 것이다.
“……! 윽.”
“왜일까.”
“…….”
“활동을…… 하고 싶은 게 맞나?”
의현이 자신의 다리로 내 발목을 짓눌렀다.
“이런 상태로 무대를 하는 게?”
“…….”
“이제 네 몸이잖아.”
“……!!”
“내가 미치는 꼴 보기 싫으면, 잘 지켜야지.”
“…….”
“그렇지?”
심장이 과하게 빠르게 박동한다.
‘이제’ 네 몸이라고?
나는 눈을 데굴 굴려 의현을 응시했다.
내가 성해온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하하, 선배님.”
나는 싱긋 웃으며 의현과 시선을 맞췄다.
“농담이 지나치시네요.”
의현이 말없이 웃었다.
가늘게 뜬 눈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떠보는 게 아니다, 라…….
이 새끼는, 원래 성해온과 모종의 관계가 있었던 놈이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관계.
그럼 나도 같잖은 연기에 애를 쓸 필요가 없지.
나는 곧바로 질문을 바꿨다.
“이해가 안 되는데.”
시선이 부딪혔고, 찰나의 정적이 흘렀다.
“진짜가 아닌 걸 알면서도, 내 낯짝을 아무렇지도 않게 마주한다고? 지금도?”
“해온아,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의현이 벽 쪽으로 팔을 뻗자, 그사이에 갇힌 모양새가 됐다.
내가 무어라 말문을 열려던 순간.
후욱!
얼굴을 가까이 댄 의현이 눈을 사르르 접어 웃었다.
“이제 나는 네가 누구든 상관없어졌어. 전에 말했던가, 가까워지고 싶다고.”
말끝을 늘린 의현이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건 너한테 한 말이거든.”
“……!”
“원한다면…… 둘이 있을 때는 네 이름으로 불러줄까. 알려줄래?”
자신의 얼굴을 내 손에 가져다 댄 의현이 작게 웃었다.
“너를 알아주는 유일한 사람, 괜찮지 않아?”
“…….”
“응?”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 새끼는 정말 나에게 ‘호의’를 보이고 있다는 것.
내가 진짜 성해온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를 옆에 두고 싶어 한다는 것.
나는 의현의 손을 쳐냈다.
“야.”
“응, 해온아.”
“너, 이 안에 뭐가 들어왔어도 상관 쓰이지 않을 만큼.”
나는 손가락으로 내 어깻죽지를 쿡 찔렀다.
“이 몸을 꽤, 소중하게 생각하잖아. 그렇지?”
“…….”
“그렇다면 나한테 신경 꺼. 심기 뒤틀리면 도로에 뛰어들 거니까.”
팔꿈치로 의현을 깐 나는 곧바로 등을 돌렸다.
뒈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만, 이 수상쩍은 새끼 앞에서 센 척을 할 필요가 있다.
나는 복도로 발을 내디디며 혀를 찼다.
일단, AMA가 끝나는 대로 이놈이 뭐 하는 놈인지부터 알아봐야겠군.
* * *
“저만 그래 보이는 겁니까?!”
“나도, 그래 보여……!”
차윤재와 신유하의 속닥거림에, 멤버들이 동의한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이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물음표가 띄워져 있었는데…….
그 물음의 이유를 꼽으라면, 무대에서 내려올 때까지만 해도 칙칙한 낯짝이었던 성해온이.
“너, 너무 멀쩡해 보이십니다!”
그렇다.
너무나도 멀끔한 상태로 돌아온 것이다.
아작 난 발목을 붙이고 돌아왔다는 걸 알 리 없는 멤버들은 미궁에 빠졌다.
“멘탈이 조, 좋으신 걸까요. 역시 저희의 위로는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그냥, 모른 척 입을 다무는 게……!”
“윤재야, 쉿쉿.”
“무슨 쉿쉿이야? 다 들리는데.”
내 말에, 입술에 검지를 올리고 있던 류인과 차윤재가 동시에 흠칫했다.
“너네가 실수했어? 분위기가 왜 이래.”
내 말에, 가수 대기석의 분위기가 굉장히 묘해졌다.
웃자고 한 소리였는데, 좀 아니었나.
“해온 형.”
“그래.”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실수하신 거 신경 쓰고 계신다면 그러지 마세요. 해온 형은 저희가 실수하시면 어떡하실 건가요.”
“굴비처럼 매달 건데.”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의 답변에 경악합니다!]
“그렇군요. ……굴비처럼 매단다는 답변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받아주니까 저 형님의 말버릇이 점점 이상해지는 거 아니야……!”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차윤재의 발언에 깊이 공감합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말버릇은 원래 나빴지 않냐며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내 안색이 흐려지고 있을 무렵, 한수현에게 잔소리를 마친 차윤재가 고개를 홱 돌렸다.
“하지만 정말 티도 나지 않았습니다. 형님! 그러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티는 났지.”
내가 피식 웃으며 대답하자, 녀석의 낯빛이 허여멀건해졌다.
“혀, 형님……!”
“내가 죽을 만큼 큰 실수를 했나.”
“예에에에? 절대 아닙니다!”
“그래, 나도 알아. 그러니까 신경 안 써. 너희들 표정이나 풀어. 나까지 우중충해진다.”
굳이 따지자면 거기서 그 정도로 버틴 내가 무척 기특하다.
솔직히 마지막에도, 시야가 그냥 새하얘졌는데 죽자 사자 파트 마무리해 낸 거거든.
리허설도 아닌 본 무대에서 그 지랄이 났으니, 내 대응이 아니었다면 열심히 준비했던 무대는 그대로 끝장이었을 거다.
죄송한 건…… 팬분들한테지.
결론적으로 실수를 냈고, 그로 인해 무대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셨을 것 아닌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
“푸하하하! 형님 말씀이 옳습니다!”
연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차윤재의 웃음보를 필두로 다른 녀석들까지 열심히 거들기 시작했다.
“그게, 맞아요! 형은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형이 자책이라도 하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말이에요~”
“은근슬쩍 붙지 말고 떨어져.”
“매정해라~ 이런 말 하면서 카메라에 찍힐까 봐 얼굴은 웃고 있는 것 봐!”
“그뿐이 아닙니다. 해온 형은 혹시라도 입 모양이 찍힐까, 음료로 입을 가리고 계십니다. 과연, 철저하시군요.”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그런 걸로 감탄하지 말라며 기함합니다!]
카메라를 의식하는 듯, 한 손으로 입을 가려 내 귀에 입을 가져다 댄 최승하가 속닥였다.
“카메라 있을 때, 열심히 치대야겠다. 그렇죠?”
내가 음소거에 가까운 목소리로 최승하에게 협박 메시지를 내뱉고 있을 무렵, 류인이 말문을 열었다.
“해온아, 근데.”
“어?”
“뒤에, 음…… 계속 쳐다보시는 것 같은데.”
곁눈질로 살짝 돌아보자, 의현이 생긋 웃으며 대놓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정신 나간 새끼가 틀림없다.
절대 눈 마주치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