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01화
파앗!
대형 전광판이 켜졌다.
커다란 학교의 외벽에 달린 대형 시계.
똑딱똑딱, 효과음이 뒤섞임과 동시에 시계 침이 정각에 닿는다.
그리고 울려 퍼지는 경쾌한 종소리.
무대 양옆에서 나온 건, 프라잇리스였다.
하얀 티셔츠에 청바지, 그 위에 초록색이 주가 되는 야구점퍼를 입은 댄서들이 마치 버스킹을 연상시키는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자유로운 분위기와 키치한 안무!
“저기 근돌아.”
“어?”
“근데…… 아무래도 무대 컨셉, 하이틴 같지?”
끄덕……!
근돌의 끄덕임에, 곽덕배의 심장이 150bpm으로 쿵쿵대기 시작했다.
그렇다.
곽덕배의 취향은 청량 그 자체였던 것이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반원 형태로 에워싼 대형에서 비보잉을 선보이던 프라잇리스의 한 멤버가, 프리즈라는 기술과 함께 몸을 멈춘 것이다.
동시에 프라잇리스의 고개가 전광판 쪽으로 돌아갔다.
전광판이 반으로 갈라지기 시작했고, 보이는 광경은 책상 여섯 개와 칠판, 락커 따위였다.
책상에 발을 올리고 삐딱하게 앉아 있는 성해온.
무료한 얼굴로 게임기를 두드리고 있는 한수현과 엎드려 자고 있는 최승하와 신유하.
칠판에 낙서를 하고 있는 차윤재, 그리고 락커에서 농구공을 꺼내 손가락 위에서 돌리기 시작한 류인.
방심한 순간, 불쑥 들어온 정신 나간 하이틴에 곽덕배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미, 미, 미, 미미미쳤나.”
흰 티셔츠에 청바지.
그리고 댄스팀과 다른 색상의 파란색 야구점퍼.
……그래, 콜라보 무대이니 예상했던 의상이다.
그럼에도 곽덕배가 이런 반응을 내보이는 이유는.
“찢, 찢, 찢청 미친 거 아니냐고.”
그렇다.
라이트온의 청바지는 대부분 여기저기 찢겨 있던 것이다…….
성해온의 강력한 의지가 들어갔다는 걸 알 리 없는 곽덕배는 뒷목을 부여잡았다.
“명훈이 이 비겁한 새끼…….”
김명훈이 들었다면 억울할 이야기겠지만, 곽덕배는 아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고맙다…….”
본인의 허벅지를 내려치며 날아가려던 정신줄을 붙잡은 곽덕배가 무대에 난입할 기세로 시선을 고정했다.
바로 그 순간.
RRRRRRRRR-
고막에 박히는 알람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라이트온이 기지개를 켜며 중앙 무대로 걸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이 중앙 무대에 거의 당도했을 무렵, 예고도 없이 음원이 시작됐다.
1990년대의 메가 히트곡, <무지갯빛 세상>……!
이 시대를 살지 않은 이들도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심심치 않게 마주해 알고 있을 정도로, 아주 유명한 곡이다.
어느새 중앙 무대에 다다른 라이트온이 군무를 시작했다.
그리고 편곡된 음원에 곽덕배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곡 자체도 그 시대의 유행의 판도를 뒤바꿨을 정도로, 당찬 리듬감을 자랑하는 곡인데…….
거기에 에너제틱함이 더해진 것이다!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비트가 고막을 자극했고, 라이트온의 군무까지 시야에 더해지니 사고회로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곽덕배는 긴장된 얼굴로 느릿하게 침을 삼켰다.
이건 여성 듀엣의 곡으로서, 음역대가 높게 설정되어 있는 곡이기 때문에.
안 그래도 방금 무대에서 꼬투리 잡은 놈들이 드글드글한데, 여기서 잘못되면…….
곽덕배의 우려는 곧바로 깨졌다.
가장 먼저 중앙 무대에 당도한 차윤재가 한 바퀴 턴을 돌더니, 파트를 시작한 것이다.
- 이렇게 아름다워질 수 있다니
내 세상이, 이렇게, 음!
“……!”
편곡으로 자연스럽게 키를 낮췄구나!
감탄하던 곽덕배의 얼굴엔 점차 경악이 물들었다.
완전히 새로운 분위기로 원곡이 재해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된 노래이기 때문에, 원곡엔 당연하게도 복고 느낌이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 이건, 하이틴 팝송 느낌을 주는 편곡이었다!
- 지금부터 시작이야
내 손을 잡아, 이렇게, 음!
신유하의 파트가 끝날 무렵, 동그랗게 모인 멤버들이 장난을 주고받는 것처럼 춤을 추기 시작했다.
키치한 와펜이 잔뜩 달린 점퍼가 펄럭였고, 즐거운 얼굴로 무대를 이끌어나가는 모습은 청춘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어떻게 이런 개천재 하이틴이 존재할 수가…….’
곽덕배가 아득한 얼굴로 이마를 짚던 순간이었다.
성해온이 멤버들을 부르는 것처럼 손을 까딱이더니, 돌출 무대 쪽으로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 이렇게 황홀할 수가 있을까
내 세상이, 이렇게, 아!
“……!”
곽덕배는 성해온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커다란 보폭으로 이동하고 있는데도 흔들림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보컬도 놀라울 따름이었지만.
뭔가…….
시선을 더 이끄는 느낌!
그래, 오늘따라 뭔가 다르다!
물음표를 띄웠던 곽덕배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잘생긴 미남은 늘 새롭지.’
과연, 깜찍이블루베리소다답군.
예리할 뻔했던 고찰에 터무니없는 주접을 덧씌운 곽덕배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돌출 무대에서 시작된 댄스브레이크에 곽덕배는 눈을 껌뻑였다.
마치 경쟁하듯, 마주 보고 선 프라잇리스와 라이트온.
상대가 도발하듯 안무를 내보이면, 곧바로 카피해 따라 하는 식이었다.
……터업.
입을 막은 곽덕배가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어떻게 하나도 안 져……!’
오타쿠 필터를 빼고 봐도, 전혀 뒤지지 않았다.
심지어 보기만 해도 아찔할 정도의 난이도인데 말이다!
상대는 프로 댄스팀이었다.
연습을 얼마나 한 건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제스처와 함께, 두 팀의 멤버들이 활달한 웃음보가 터졌다.
즐기는 데에 이런 경쟁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동시에 무대에 선 모든 이가 걸치고 있던 점퍼를 벗어 던졌다.
소속을 구분 짓는 색 따윈 중요하지 않다는 것처럼!
“류최 등빨 미쳤나!”
사랑하면 과격해지는 특징이 있는 근돌이 카메라를 든 채 험악한 얼굴로 고함쳤고, 곽덕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흰 티에 청바지.
이것이 왜 미남의 시그니처인지, 단번에 이해되는 광경이었다.
‘끝내주는군…….’
펑키하면서도 신나는 기타 사운드가 넓은 공연장을 훑고 지나갔다.
‘너! 무! 좋! 아!’
원곡엔 없던 밴드 리믹스다!
어떻게 이 곡을 이렇게 편곡할 수 있는 건지 놀라울 정도다.
‘이거 진짜 레전드다.’
곽덕배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스마트폰은 보지 못하지만,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다!
밴드 리믹스란 무엇인가.
엄청난 공간감으로, 절로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마법의 그것이다.
괜히 콘서트 다녀온 팬들이 밴드 리믹스 버전을 내달라 소속사의 바짓가랑이를 붙자는 게 아니란 뜻이다!
- 창밖에 추억이 내리고 있어
평소보다도 밝은 에너지로 파트를 소화한 최승하가 웃음기 있는 얼굴로 한수현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그리고 말랑해 보이는 한수현의 볼에 손가락을 콕, 찍으며 파트를 이었다.
- 함께한, 모든 순간이, 아!
모든 게 완벽한 무대에 곽덕배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곽덕배는 이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곡이 슬금슬금 원키로 조정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아니, 사실은 원키 그 이상으로 조정되고 있다는 걸.
밴드 리믹스는 그것을 숨기기 위한 밑밥 중 하나였다는 것을.
* * *
“허!”
무대 아래, 관계자석의 상석에 앉아 있던 남희연이 짧은 웃음을 삼켰다.
스페셜 무대의 최종 곡들은 아티스트들의 자율에 맡겼었다.
이 곡이 정해졌다는 걸 서류로 접했을 때도, 이걸 어떻게 재해석할 심산인지 궁금했다.
오래됐다고 해도, 인지도가 어마어마한 메가히트곡이니 대중들에게 꽤 괜찮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선택지라고 생각하긴 했으니까.
하지만 이걸 하이틴과 버무렸을 줄은!
남희연의 시선이 성해온에게 닿았다.
“정말 재밌단 말이야.”
라이트온에게 부족한 걸 꼽으라면, 단연코 해외파이다.
국내는 어느 정도 팬덤이 형성되어가는 것 같았다만…… 여전히 해외 쪽은 허허벌판.
어느 정도 선을 넘어 성공하려면, 해외 쪽의 파워가 필요한 게 현실이다.
남희연의 손에 들린 펜이 빙글 돌아갔다.
당돌하게 제안했을 때는, 어떻게든 무대를 더 따내고 싶어 하는 줄로만 알았지!
“뒤통수라도 한 대 맞은 기분이군! 아하하하!”
AMA는 전 세계에 글로벌하게 동시 송출된다.
저 녀석은 지금, AMA를 발판으로 쓴 것이다.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으로 글로벌 파이를 가져올 발판으로!
바로 그 순간이었다.
“엥?”
남희연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시작된 성해온의 첫 음이 이전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에.
‘이런 실수를 한다고?’
PD 짬밥을 괜히 먹은 건 아니라, 엔간한 실수는 듣기만 해도 알아챈다.
남희연의 얼굴에 떠올랐던 의문이 강렬한 흥미로 변하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신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곡의 키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하하하!”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
그것도 완전히.
“실수는 무슨!”
이건 무대의 포텐을 극적으로 터뜨리기 위해, 치밀하게 설계된 장치다!
- 색색의 고운 마음을 펼쳐봐
그래, 그렇게, 아!
성해온의 파트와 동시에 폭발할 것 같은 함성이 터져나왔고, 남희연의 눈이 동그래졌다.
보컬이 남다른 건 알았다만, 저 정도였나?
한 번도 놀라울 정도인데, 연이어 펑펑 터지는 성해온의 고음에 아레나 내부의 분위기도 후끈해졌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얼굴을 살짝 튼 채,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고음을 이어가는 성해온을 본 남희연은 카메라팀 스태프를 불러세웠다.
“메인한테 전해. 쓸데없이 스케일 자랑한답시고 풀샷 찍지 말고 무대에 집중시키라고. 지금 파트 하고 있는 놈한테.”
현장감부터 이런데, 카메라에는 더럽게 잘 나오겠군.
AMA의 웅장한 아레나를 조명하던 카메라가, 무대 위 라이트온을 조명하다가, 이내 성해온에게 정착했다.
* * *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화려하게 흩날리는 색색의 컨페티와 함께 무대는 암전됐고, 나는 백스테이지로 내려왔다.
도중에 붙잡혀 버렸지만 말이다.
“세! 상! 에!”
차윤재가 흥분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저는 무대 사고가 난 줄 알았습니아아아!”
“다른 파트도, 평소보다, 헉, 아니……! 원래, 잘하셨는데! 더……!”
“형님은, 어떻게 이렇게! 우와아……!”
말을 잇지 못하는 차윤재 옆에서 한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파트에서 이어졌던 해온 형의 애드립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리허설만 해도 없었던 것이었죠. 흠잡을 데 없는 고음을 내질러 주시면서, 흠…….”
고개를 살짝 돌린 한수현의 귀가 살짝 붉어져 있었다.
“제가 입장 전 불안해한 걸 보고, 그런 애드립을 넣어주신 걸까요. 그 순간의 기분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역시 가족이란…….”
이 녀석, 자기 좋을 대로 생각하고 있군.
하지만 혈압이 오를 대로 오르셨을 스위치들을 위해 무리해 봤다는 사실은 넣어두고 입을 다물도록 하자.
제거한 음향 장비를 스태프에게 건넨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흠.”
등을 돌린 나는 입꼬리를 히죽 올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완벽하게 끝낸 무대.
대기실까지 제대로 걸어가기만 했다면 더욱더 완벽했을 텐데 말이다.
털썩……!
빌어먹을 개복치 몸뚱어리.
내 안광이 실시간으로 메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