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02화
그 시각, 스위치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 마지막 성해온 핏대 세우는 거 얼빡 미쳤냐 나 지금 너무 벅차올라서 짐승처럼 가슴 두드리는 중
- 공짜로 천사들의 하모니 들은 썰 푼다
- 이걸 어떻게 하이틴이랑 버무려서 분위기를 반전시킬 생각을 하냐… 나 울고 있어…
- 이 천재 그룹을 어떡하면 좋냐고 항상 기대 이상을 보여준다고 라이트온은
- 확신한다 이거 유O브 뜨면 대박 난다
무대 자체가 너무나도 완벽했기 때문이다.
말문이 턱 막힐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성해온의 실수를 붙잡고 늘어지던 이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그로는 무시가 답’ 작전을 펼치던 스위치들이 흥분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 성해온 때문에 그냥 임종할란다
- ??? : 보컬 실수 노간지 ㅋㅋ
성떤남자 : ㅇㅇ 무대로 보여주마
- 어이어이 해온군! 믿고 있었다고!
- 이게 맞음? 나 지금 요정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이게 맞음? 맞음? 맞음?
- 천재갓기블루베리천사말랑촉촉깜찍이요정 보컬 is here
- 방금까지 나대던 놈들 쏙 들어간 것 봐라 진짜 에휴 쯧! 쯧! (개얄밉게혀차기)
게다가 실시간 트렌드까지 올랐다.
사실 이제 국내 팬덤이 꽤 커진 관계로, 라이트온은 실시간 트렌드에 어렵지 않게 올라간다.
그럼에도 오늘 실시간 트렌드에 올랐다는 건, 엄청난 일이었다.
그 이유를 말해보자면, 당연하게도 오늘이 AMA이기 때문에!
힘 꽤나 있다는 팬덤들이 전부 활발해지는 날이 오늘이다.
아무리 규모가 커졌대도, 스위치들은 거대 팬덤들과 비교했을 때 작고 소중한 규모다.
이런 이들이 담합해서 열광한다 해도, 오늘만큼은 실시간 트렌드에 오르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가능했던 것은, 팬덤에 속하지 않은 시청자들까지 언급을 이어갔기 때문에!
그만큼 무대의 임팩트가 엄청났던 것이다!
- 라이트온 무대 레전드다 와 엄빠랑 보다가 소름 돋았음
└ 222 나도 엄마랑 봤는데 어떻게 저 노래를 남자애들이 저렇게 잘 부르냐고 하더라
- 아니 쟤넨 누군데 한 명도 빠짐없이 잘생겼냐… 실력도 좋네…
- 올해 AMA 무대 중에 진짜 제일 몰입해서 본 듯 ㄹㅇ
- 여기 보컬 누구임? 고음 내지를 때 진짜 카타르시스 쩔었음;;;
* * *
대중들의 감탄사를 불러일으킨 무대를 선보인 라이트온.
그중에서도, 가히 폭발적인 고음으로 관심을 이끌고 있는 성해온은 지금.
“혀, 형니이임! 갑자기 왜 복도에 주저앉으십니까!”
차윤재의 경악과 동시에, 등짝으로 무수한 시선이 꽂혔다.
“…….”
굉장히 비참하다.
무대 두 개를 연달아 한 건 무리였던 모양인지, 체력이 거덜 나다 못해 기둥까지 뽑혔다.
이 정도로 거지 같은 체력이라니, 웃기지도 않는군.
날 더욱더 비참하게 만드는 건, 심각하게 멀쩡해 보이는 이 자식들이다.
나와 같은 무대에 선 게 맞나 싶을 정도다.
세 탕을 뛴 류인조차 멀쩡한데, 나만 무박 3일로 노가다를 뛰고 온 꼬라지다.
“…….”
그 순간이었다.
“형님! 잡으십시오!”
우다다 달려온 차윤재가 나를 팔십 먹은 노인네처럼 부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힘드셔도 바닥에 막 주저앉으시면 안 됩니다!”
눈물겨운 건, 부축을 받으니 움직일 만하다는 것이다.
X발…….
덜덜덜덜
부축을 받고 있는데도 사정없이 떨리는 사지가 어이없을 정도다.
대기실로 들어온 내가 비참한 낯짝으로 소파에 퍼져 있을 무렵이었다.
대기실 벽 쪽에 서 있는 최승하가 짤막하고도 불길한 헛웃음을 삼킨 것이다.
참고로 난 저 얼굴을 알고 있다.
이건 최승하가 개빡쳤을 때의 얼굴이다.
물에 불려지고 있는 마른 나물처럼 늘어져 있던 사지에 순간적으로 힘이 들어왔다.
일종의 본능이 주는 경고였다.
최승하의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폰에서 작게 나오고 있는 노래는 분명 연말 버전으로 리믹스 된 이었다.
당연히 알게 될 거라고는 생각했다만, 스마트폰을 잘 보지 않는 녀석들인지라 AMA가 끝난 뒤쯤을 생각했지.
나는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튀자.’
나는 길게 뻗은 복도로 내달렸다.
1분도 안 되어서 붙잡혔지만 말이다.
내가 보기엔, 이 녀석 아이돌이 아니라 체육을 했어야 한다.
체육계가 인재를 빼앗긴 게 틀림없다.
“…….”
생글 웃은 최승하가 내 양 어깨를 붙잡고 소파에 앉혔다.
동시에 최승하는 내 발목을 조심스럽게 그러쥐더니, 바지를 접어 올렸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안 웃고 있다.
“흐으음.”
내 발목을 붙잡고 이리저리 돌리며 확인한 최승하가 눈을 접어 웃었다.
“왜 숨겼어요?”
“숨기고 말고 할 게 어딨어? 다치지도 않았는데.”
“말도 안 됩니다! 안전 매트도 없었는데요! 보시는 분들은 몰라도, 함께 연습한 저희는 속일 수 없습니다! 이렇게 멀쩡하기는 천운이 따라주지 않은 이상 불가능합니다!”
평소엔 눈치를 엿 바꿔 먹은 게 확실한 녀석이 이럴 때만 쓸데없이 예리해지는군!
나는 뻔뻔한 낯짝을 걸쳤다.
“내 순발력이 좋은 덕이지. 착지를 얼마나 완벽하게 했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십시오! 형님의 신체적인 순발력은 젬병이십니다! 저희 중에서도 꼴등이십니다!”
가차 없는 팩트 공격에, 내 낯짝이 흐려졌다.
“정말, 속상해요……! 지금까지, 몰랐, 다는 게…….”
“이런 걸 숨기시다니, 저도 무척 서운합니다. 다치진 않으셨어도 분명 아프셨을 텐데.”
이어지는 말을 참으려는 듯, 입술을 깨문 한수현이 고개를 돌렸다.
“형.”
최승하가 나를 올려다봤다.
“이것 때문에 표정 안 좋았구나. 바보같이 그것도 모르고.”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그렇구나.”
“그래, 그러니까 발목 좀 그만 쪼물딱 거리고 저리 가라. 너네 다.”
“그럼 저도 형이 다쳤다고 생각할래요. 겉만 멀쩡하지, 속은 헐었을지 누가 알아?”
“그러든가.”
대충 내뱉은 답변에, 상쾌하게 웃은 최승하가 고개를 돌렸다.
“들었지?”
“네, 방금 전 답변은 녹음까지 마쳤습니다.”
대체 어느 새에?
황당해할 틈도 없이 한쪽 무릎을 꿇은 최승하가 몸을 빙글 돌려 자신의 등을 내보였다.
“자!”
“……?”
“으응? 왜 안 업혀요? 형은 한국 땅 밟을 때까지 발목이 어마어마하게 아파서 못 걸을 예정인데?”
누구 마음대로?
“누구 마음대로라는 얼굴이네? 수현아.”
- 그럼 저도 형이 다쳤다고 생각할래요. 겉만 멀쩡하지, 속은 헐었을지 누가 알아?
- 그러든가.
“…….”
구조물이 흔들렸을 때보다 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 같다.
힘이 남아돌면 모를까, 지금은 손 하나 까딱할 기력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으음, 왜 안 업히지?”
내가 돌았다고 업히겠냐.
“형도 마음대로 하니까~ 저도 마음대로 해보려고요.”
바로 그 순간이었다.
화사하게 웃은 최승하가 길게 뻗은 자신의 팔을 벌린 것이다.
휘익!
매가리 없이 달랑 들린 몸뚱어리에 경악도 잠시, 나는 주변에 카메라가 없음을 확인한 뒤 최대한의 기력을 짜내 최승하의 등짝을 후려쳤다.
“내려놔, 안 놔?”
“하핫! 안 들리는데!”
“뒈질래?”
험악하게 걸친 낯짝에도 전혀 굴하지 않은 최승하가 나를 고쳐 안았다.
“흐음~ 이대로 가수 대기석까지 가볼까요?”
“미친놈아.”
“에이, 저도 그럴 생각은 없어요. 근데 형이 가만히 안 있으면 생각이 바뀔지도~”
“…….”
* * *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의 얼굴을 지적합니다!]
“…….”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이렇게 생긴건데 왜 기를 죽이냐며 눈을 날카롭게 뜹니다!]
AMA가 끝난 늦은 시각, 곧바로 새벽편 비행기를 타고 입국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피곤해 뒈질 것 같다는 뜻이다.
“숙소 도착하자마자 류인 형 부모님 음식 먹을 생각하니까 설레네요~!”
“엄마랑 아빠도 이야기 전해 드리니까 좋아하시더라.”
“류인 형,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죄송한 것 같아요. 언제 한번 대접하고 싶습니다.”
“맞습니다! 얻어먹기만 하는 게 너무 죄송스럽습니다!”
“……아냐, 엄마랑 아빠가 이런 걸 좋아하셔.”
“그래도요! 아니다, 이 김에 전화 통화 연결 어때요? 아님 영상통화?”
류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음에…….”
흠.
나는 어느새 숙소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응시했다.
때는 AMA의 참석을 위해 출국 수속을 밟고 있을 무렵이었다.
류인이 입을 연 것이다.
- 저기, 얘들아. 부모님이 또 먹을 걸 하셨다는데…… 숙소로 직접 가져다주신다고.
- 오오?! 너무 좋죠! 그냥 비밀번호를 알려 드릴까요?
- 형 부모님께는, 알려 드려도, 좋아요……!
수차례의 맛깔난 반찬으로, 멤버들은 얼굴도 모르는 류인의 부모님을 거의 자신들의 두 번째 부모님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 에잇! 뭘 망설이십니까! 스마트폰 이리 줘보십시오!
- 어어…….
- 뭘 어어, 입니까! 자, 발송했습니다!
이런 사정으로 아마 어제 류인의 부모님이 다녀가신다는 것 같았지.
식욕은 없다만, 내가 먹어봐도 이 녀석 부모님의 요리 솜씨는 무척 훌륭하시다.
“전 숙소 가자마자 먹으려고 기내식도 안 먹었고~”
하하 웃은 최승하가 도어락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삐리릭!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당장 어머님 아버님의 사랑을~ 어라?”
쾅!
곧바로 현관문을 닫은 최승하가 문 앞에 붙은 판을 살폈다.
[1702호]
“……음, 우리 숙소 맞는데?”
“승하 형, 뭐하세요?”
물음표를 띄운 한수현이 도어락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저희 숙소가 아니면, 지문 인식이 될 리가 없죠.”
논리적으로 말을 마친 뒤, 문을 연 한수현이 무표정으로 문고리에서 손을 뗐다.
……쾅!
두 번째로 문이 닫혔고, 이쯤 되니 이 자식들의 행동에 어이가 없어진 내가 도어락 위에 손을 가져다 대던 순간이었다.
……닫힌 현관문이, 스스로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숙소 안쪽에서 말이다.
참고로, 나 아직 손가락 안 댔다.
……휙!
다급하게 고개를 돌린 나는 놈들의 머릿수를 셌다.
나를 제외하고 다섯.
……다 있는데?
매니저도 방금 캐리어를 내려주고 퇴근했고 말이다.
……설마, 도둑?
넋이 나가 있는 최승하와 한수현의 얼굴을 보아하니 이 가설에 힘이 실린다.
멤버들을 멀찍이 보낸 나는 곧바로 신고할 요량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조금씩 열리는 문이 슬로우모션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마침내 문이 열렸고, 보이는 광경에 나는.
주르륵…….
반도 더 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바닥에 떨굴 수밖에 없었다.
대충 봐도 키가 185㎝는 넘어 보이고, 엄청난 어깨와 근육을 자랑하는 인영.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레이스가 잔뜩 달린, 익숙한 핑크색 에이프런을 입고…….
“아이구……! 이걸 어떡해! 예쁜 옷에 커피가 쏟아졌네요!”
내게로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