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03화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달콤이한테 문자가 왔어요!”
“그 시상식, 금요일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정답이다.
생방송되는 AMA의 예정 날짜는 금요일이다.
라이트온은 AMA가 끝나자마자 새벽 편 비행기로 입국할 예정이었으니, 따지자면 토요일 오전에 한국에 도착하는 셈이고 말이다.
……하지만 이 부부에게 전송된 문자 메시지 속, 라이트온의 입국 날짜는 일요일이었다.
- 에잇! 뭘 망설이십니까! 스마트폰 이리 줘보십시오!
- 어어…….
- 뭘 어어, 입니까! 자, 발송했습니다!
그렇다.
손가락이 반쯤 얼었던 차윤재의 실수로 숫자 하나가 틀린 채 전송된 것이다.
스마트폰을 볼 여유가 없었던 라이트온은 이 문자 속 오류를 알지 못했다.
“버터가 분명 금요일이랬는데?”
“으음…….”
그리고 여기, 의문에 빠진 두 중년은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 냈다.
“관광을 하다가 오려나 봐요!”
“하긴, 나간 김에 조금이라도 쉬어야지.”
여자의 끄덕임에, 남자가 눈을 빛냈다.
“그럼 애들 일요일에 온다니까, 토요일 새벽에 후딱 가서 맛있는 거 잔~ 뜩 만들어놓고 와요.”
“아주 좋은 생각이에요! 달콤이도 그렇고, 달콤이 친구들도 반쪽이 됐더만!”
* * *
“히이이이이이이익!”
현관문 앞, 차윤재가 기절할 것 같은 기세로 펄쩍 뛰었다.
“누, 누구, 누구, 누, 누, 누!”
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차윤재가 돌처럼 굳었고, 류인이 마른 얼굴을 쓸어내렸다.
“……우리 아빠야.”
10분 뒤, 모든 사건의 경위를 알게 된 숙소.
자신이 보냈던 문자를 확인한 차윤재가 대역죄인 모드에 들어갔다.
“죄, 죄송합니다아!”
부부는 황급히 팔을 저었다.
“우리가 미안하죠! 쉬어야 하는데, 아이고…….”
“으음? 아니에요. 저흰 뵙고 싶었거든요~ 오히려 좋은걸요!”
저건 진심이다.
반찬을 먹을 때마다, 류인을 붙잡고 부모님에게 영상통화를 걸어달라 닦달하던 놈이니까.
부부의 얼굴에 약간의 감동이 일렁이던 순간이었다.
최승하의 등이 들썩이기 시작한 것이다.
“큽, 하…… 죄송해요. 이러면 안 되는데, 흐흑…….”
눈물이라도 흘릴 기세로 거실 바닥에 엎드린 최승하가 주먹으로 바닥을 콩콩 쳤다.
그렇다.
아무리 웃음을 참아보려 해도, 류인의 아버지의 복장은…….
“반찬 만들다가, 앞치마가 있길래 입었는데…… 아내는 검은색을 좋아해서, 이건 내가 입었어요.”
오타쿠 자아가 류인의 아버지를 향해 물개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저게 바로 상남자라며 감탄하고 있는데, 동의한다.
저 엄청난 에이프런을 아무런 편견 없이 걸치시다니.
“역시 덩치가 커서 안 어울리죠……?”
남자가 화려한 레이스가 잔뜩 달린 핑크 에이프런을 내려다보며 시무룩하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흐…… 아니요, 전혀, 전혀요!”
아직까지 웃음을 멈추지 못한 최승하가 스마트폰을 들어 올리자, 류인이 기겁하며 달려들었다.
“승하야, 뭐해. 승하야……!”
최승하가 내민 화면은 우리의 첫 번째 자체 컨텐츠였다.
그래.
내가 성공에 대한 비겁한 열망으로 류인에게 핑크 에이프런을 입혔던 영상 말이다!
스윽…….
화면 속, 류인과.
스윽…….
자신이 입고 있는 핑크 에이프런을 번갈아 살핀 남자의 얼굴이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끕……!”
“딸, 꾹……!”
차윤재와 신유하가 쌍으로 딸꾹질할 정도로 말이다.
그 순간, 다가온 여자가 혀를 차며 남자의 팔을 붙들었다.
“당신은 좋으면 인상 험악해지는 것 좀 고쳐요! 애들 무서워하잖아!”
객관적으로 보자면 류인의 아버지는 엄청난 미남이다.
내뿜는 기세가 어마어마할 뿐.
류인은 뼈대 좋은 마른 몸에 붙은 슬렌더 느낌의 잔근육이라면, 아버지 쪽은 감탄이 절로 나오는 근육이다.
옆에 있는 류인이 왜소해 보일 지경이니 말 다 했다.
그런 남자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보!”
카리스마 있는 얼굴과 목소리와는 영 매치가 되지 않는, 다소 경박스러운 말투의 남자가 발을 동동 굴렀다.
“지금 내가 입은 게 커플티라잖아요! 내가 이걸 왜 지금까지 몰랐을까! 스마트폰 좀 가까이해야겠어요! 우리 달코, 큽, 읍, 읍.”
로켓처럼 발사된 류인이 아버지의 입을 막았다.
“……아빠!”
“웅? 애? (= 응? 왜?)”
단번에 입이 틀어막혀진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고, 한숨을 삼킨 류인은 부부의 손목을 잡고 자신의 방으로 이끌었다.
드르륵-
방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차윤재가 입을 열었다.
“류인 형님이 저렇게 당황하시는 건 처음 봅니다!”
동의한다.
류인 자체가 아주, 아주, 무던한 성격이라 감정을 크게 내보이는 일이 없는데…….
“형님! 어디 가십니까!”
차윤재의 물음에, 나는 천연덕스럽게 입을 열었다.
“스마트폰 충전하러.”
내 방과 류인의 방은 일직선으로 놓여 있다.
거실에서 방으로 이어지는 복도로 향한 나는…….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의 방은 저 앞에 있다며 대로합니다!]
그래, 내 방은 조금 더 걸어가야 한다.
그리고 엿듣기가 떳떳지 않은 행동이란 건, 나도 알고 있다.
샤샤샥!
방문에 등을 대고 앉은 나는 히죽 웃었다.
하지만 궁금한 걸 어떡해.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눈을 질끈 감습니다!]
귀를 기울이자, 대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아빠.”
어쩐지 체념한 듯한 류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달콤, 달콤이라고 여기선 부르지 마.”
“달콤이가 뭐 어때서! 너희 누나들도 못 부르게 하는데! 달콤이, 너까지!”
“사춘기가 뒤늦게……?”
“엄마, 사춘기 아니야. 내 덩치를 봐.”
“덩치가 뭐 어때! 너 정도면 작고 귀엽지! 네 애비도 이런 앞치마 입고 귀엽다고 좋아하는데!”
씰룩…….
이런, 위기다.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집에서 그러는 건…… 나도 뭐라 안 할게.”
이 녀석, 제법 착한 아들이로군.
저러니 애칭으로 부를 맛이 나는 거겠지.
내 입매가 사정없이 꿈틀거렸다.
그도 그럴 게, 달콤이라니.
달콤이…….
“……큭.”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웃음을 참아낸 나는 허벅지를 내려쳤다.
“……다 큰 자식한테 그렇게 부르는 부모님이 어딨어.”
“여기 있잖아!”
“우리 막내, 사춘기 맞네…….”
“여보가 봐도 그렇죠? 내가 봐도 사춘기야!”
“……아니라니까! 아빠는 그 앞치마 얼른 이리 줘.”
“아직 반찬 덜 만들었어!”
“그래! 네 아빠 이거 은근히 마음에 들어 한다니까!”
“게다가 우리 달콤이랑 커플티, 흐흥…….”
“아빠…….”
“혹시 이 앞치마, 달콤이가 아껴 입는 거였니? 에구…… 아빠가 그것도 모르고…….”
씰룩…….
젠장, 위기다.
나는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향했다.
강적이다.
여기선 더 이상 버틸 자신이 없다.
* * *
내가 자리를 뜨고 얼마 되지 않아 류인과 부모님이 거실로 나왔고, 최승하가 헤실 웃었다.
“아버님, 어머님~!”
오늘 처음 본 거라곤 믿기지 않는 친화력이다.
호칭은 언제 저렇게 된 건지.
그리고 착각이 아니라면 저 부부의 시선이 어쩐지 나에게…….
착각이 아니군.
터벅, 터벅…….
핑크 에이프런을 휘날리며 내게 다가온 류인의 아버지가 허리를 낮춰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달, 아니, 류인이 친구!”
“아버님, 편하게 불러주세요.”
“그, 그럼 해온 군.”
“예, 아버님.”
내가 싱긋 웃자, 남자가 심각한 얼굴로 나를 요리조리 살피기 시작했다.
“아니, 세상에! 왜 이렇게 창백해요! 어디 아파요?”
아까부터 느꼈지만, 생각보다 수다쟁이시군.
“TV로 볼 때보다 살도 빠진 것 같고! 일이 너무 힘들어요?”
“아닙니다. 아무래도 화면은 실제보다 조금 부하게 나오다 보-”
“아버님~!”
내 말을 끊은 최승하가 달려와 말을 이었다.
“맞는 말씀이세요. 이 형은 밥도 제대로 안 먹는다니까요.”
“밥을……?”
“네~ 살도 빠진 거 맞아요. 안 그래도 뼈밖에 없는데, 그렇죠?”
이 자식, 이거 일부러 이러는 거다.
“해온 군!”
어쩐지 결연한 얼굴이 된 류인의 아버지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식탁 앞이었다.
“……?”
나는 조용히 눈을 껌뻑였다.
이 휘황찬란한 식탁은 대체.
육해공이 총집합해 있다.
“와아아아! 엄청납니다!”
“정말, 이걸 손수……? 너, 무 감사합니다…….”
“제 말이요. 아까워서 어떻게 먹죠? 아버님, 어머님의 사랑을~”
“류인이 친구들은 말도 예쁘게 하네요…….”
“당신, 얼굴 펴! 저기 친구들 또 놀랐잖아요! 이 사람이 지금 감동받아서 그래요.”
스윽…….
고개를 돌려보니, 차윤재와 신유하가 서로의 손을 붙잡고 달라붙어 있었다.
아버지의 기세가 남다른 건 맞지만, 저 앞치마를 걸치고 있으니 그저 웃기기만 한데.
또다시 씰룩이려는 입을 황급히 손으로 틀어막은 나는 헛기침했다.
“정말 다음엔 저희가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에이, 됐어요. 우리가 좋아서 이러는 건데 뭘! 그리고 오늘은 피치 못하게 이렇게 만났지만, 앞으론 이런 일 없을 거예요.”
내가 곧장 아니라고 반박하자, 류인의 어머니가 피식 웃었다.
“됐어요. 택배로 보내도 충분한걸. 이번엔 삼계탕이랑 이것저것 끓여주고 싶어서 왔던 거예요. 다음엔 다 같이 우리 집에 와요!”
“좋, 좋습니다!”
눈을 빛낸 차윤재가 고개를 끄덕인 순간이었다.
“저…….”
입을 연 한수현에,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류인 형의 과거 사진이 무척 궁금합니다.”
이 녀석, 아까부터 할 말이 있어 보이더니 목적이 있었군.
한수현의 말과 동시에 남자의 안색이 더더욱 험악해졌다.
무척 신나셨다는 뜻이다.
커다란 손으로 스마트폰을 한참 뒤적거린 남자가 식탁으로 화면을 내밀었다.
“진짜, 귀여워요……!”
신유하의 감탄사를 필두로 여기저기서 호응이 터져 나왔다.
“와하하, 이게 몇 살 때예요?”
“이건 4살, 이건 초등학교 입학이지, 아마? 우리 달콤.”
“엄마!”
“크흠흠.”
다행히 마지막 단어를 듣지 못한 멤버들 사이에서 최승하가 물음표를 띄웠다.
“네에에에? 이 사진이 4살이라고요? 한 5~6살인 줄 알았는데!”
“류인이가 어렸을 때부터 키가 컸어요. 모델 제안도 엄청 받았지!”
“오오! 그럴 만합니다! 어린데도 키가 크고, 늘씬합니다!”
박수를 짝짝 친 차윤재가 이내 화면을 가리켰다.
“그런데 사진마다 형님이 이런 걸 들고 있습니다!”
정말 류인의 어린 시절 사진의 대부분은 손에 달달한 게 들려 있었다.
사탕, 과자, 쿠키, 케이크 등…….
“이 형님이 어렸을 땐 이런 걸 좋아하셨던 모양입니다!”
“응? 류인이는 지금도-”
“아빠!”
말을 끊은 류인이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씰룩…….
아예 모르면 모를까, 다 알고 있으니 참기가 고역이군.
내가 꿈틀거리는 입매를 손으로 가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
최승하가 부부의 귓가에 대고 무어라 속삭임과 동시에, 부부가 내 앞접시에 온갖 음식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
나는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반짝반짝…….
핑크 에이프런을 입은, 미중년의 반짝이는 시선이 정면으로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