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06화
“하아아아아아…….”
두 오타쿠가 동시에 넋 나간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다.
AMA가 하루 지난 지금까지도, 이들은 벅차오른 오타쿠 상태인 것이다.
“근데 이게 실화야? 어제 내가 본 게 실화냐고.”
곽덕배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인간이 천사들의 합창을 들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는데.”
“외국 택시라고 주접 뻔뻔하게 말하는 거 진짜 어이없다…….”
데이터를 보정하던 근돌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나저나, 반응 진짜 엄청나네.”
“이럴 줄 알았지. 솔직히 무대 때부터 실트 오르고 난리였잖아.”
“근데 덕배야, 그거 알아?”
“뭔데.”
“지금 TTT 스페셜 무대 조회 수 라이트온이 1위임.”
“……? 뭐, 뭐, 뭐라고?”
“러쉬랑 트웰브 앞질렀다고.”
“……?”
“그게 말이 돼? 걔넨 해외 팬이 있는데? 조회 수를 앞지른다고? 자기 전만 해도 4위인가 그랬는데?”
“진짜라니까. 러쉬랑은 근소하긴 한데, 트웰브는 확실히 앞섬.”
이내 스마트폰을 확인한 곽덕배가 입을 터업, 막았다.
‘와……’ 한 글자로 엄청난 주접을 시작한 곽덕배가 조금은 안타까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번 무대, 트웰브도 솔직히 괜찮았는데 좀 안타깝긴 하다. 진짜 락세 제대로 탔나 보네.”
“3위 다음 2위 무대라서, 순서가 좀 안 좋았지 않나. 심지어 무대도 거의 붙어 있었어서…… 임팩트에서 발린 거지. 마지막에 성해온 고음…… 그걸 어떻게 이기냐.”
다시 생각해도 소름 돋는다는 듯, 근돌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나는 성해온 최애 아닌데도, 그때 솔직히 개쩔었지. 그냥 압도된…….”
말을 잇던 근돌은 무언가 수상함을 느꼈다.
이쯤 되면 천재 블루베리 어쩌구 하면서 주접을 떨어야 할 곽덕배가 지나치게 조용했기 때문이다.
“그, 그, 근돌아.”
“뭔데 또 오타쿠 모드 들어간 거야?”
“그, 그, 그, 그게 너 AMA 영상 댓글 봄?”
“아니, 아직 안 봤는데.”
“해, 해, 해, 해.”
“해온이 개쩐다고?”
“아니, 해, 해외에서…… 바, 반응이.”
“……?!”
* * *
유인성과의 통화를 종료시킨 뒤, 나는 만족스레 웃었다.
‘역시 친구란 나쁘지 않군.’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그건 정상적인 동료 사이가 아니라며 눈을 질끈 감습니다!]
나는 침대 위에서 데굴 굴렀다.
푹신하고 뜨끈한 데에 누우니, 그냥 잠이나 자고 싶다만 모니터링을 해야 했다.
어제 AMA 무대가 끝나고 모니터링을 짧게 한 걸 제외하곤, 제대로된 모니터링을 하지 못했거든.
나는 우선 을 눌렀다.
‘괜찮군.’
아니, 오히려 좋았다.
- 03:42 여기 원래랑 좀 다른 거 같은데
내 실수를 은근슬쩍 언급하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그런 이들이 의견을 제대로 피력할 수 없을 정도의 분위기였다.
라이징의 대열에 선 라이트온을 아니꼽게 보는 사람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이후 무대에서 별다른 임팩트를 주지 못했다면 이 실수는 두고두고 흠이 됐을 거다.
다시 말해, 까일 거리를 대놓고 제공한 게 된다는 뜻이다.
- 억까가 아니라 찐이자너 ㅋㅋ 느그 해궁이가 실수해서 무대 망친 게 팩트인데 개나대지 마셈
이런 식으로 말이다.
크든 작든, 말마따나 실수한 건 사실이기 때문에 팬덤이나 나나 할 말이 없어지거든.
이해성의 기억을 훑어보자면, 이런 사소한 스트레스가 쌓이면 팬들의 탈덕을 부추긴다.
계속해서 스크롤을 내리던 내 손가락이 멈칫했다.
관련 동영상으로 떠 있는 <무지갯빛 세상>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믿기지 않는 숫자에, 내 미간이 설핏 찡그려졌다.
……아직 올라온 지 반나절밖에 안 됐는데?
월등하게 높은 조회 수에, 곧바로 확인해 보니 올해 AMA의 전체 영상 중 무려 8위였다.
조회 수가 말이다.
1위부터 3위까지는 밀리어스의 무대가 장식했고, 대중들에게 인지도 높은 그룹의 무대가 뒤를 이었다.
해외 팬들은 유독 퍼포먼스형 무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고로, 댄스팀과 함께하는 무대는 우리 쪽에서도 기회였다.
‘이목을 사로잡을.’
남희연에게 과 의 콜라보를 제안했을 때부터 이걸 노렸던 건데, 먹혀들어 간 모양이지.
나는 영상을 누르기 전임에도 반쯤 확신했다.
이 정도 조회 수는 해외에서도 반응이 터져줘야 나올 수 있는 거거든.
[- 나는 이런 무대를 본 적이 없다. kpop의 미래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 그들은 다른 차원에 있는 게 분명합니다. 파워풀하면서도 아름답습니다. 화합을 강조! 우정은 모든 것을 시작하는 힘! 너무 좋아!]
[- 저를 이 영상에서 꺼내주시겠습니까? 어쩐 일인지 영상이 끝나지 않아… ヘ(;´o`)ヘ]
[- 모두 메인 댄서이자 메인 비주얼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세상에, 그들의 재능은 장난이 아니야!]
“……!”
내려도 내려도 끝이 없는 해외 반응에 내 눈이 조금 커졌다.
AMA는 글로벌함을 대표로 거는 시상식으로서 이만한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옳았다.
그렇다고 국내 팬 반응이 시들하냐면, 전혀.
오히려 더 난리가 난 쪽은 국내 쪽이었다.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편곡된 <무지갯빛 세상>과 하이틴의 조합은, 원곡을 잘 알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더한 감명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나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천장을 응시했다.
해외 투어 같은 걸 바라는 건, 전혀 아니다.
‘그건 오히려 독이지.’
아직 국내 기반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는데, 해외 진출을 시도한다?
이건 멸망 프리패스 루트다.
그럼에도 해외 파이는 절실했다.
그나마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해외에 이름을 알리긴 했다만, 그걸 감안하고도 글로벌 인지도는 눈물겨운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소속사가 소속사다 보니.’
사실상…… VX, INT, BK 같은 대형 소속사의 신인 그룹은 해외에 진출하지 않아도, 선배 그룹과 소속사의 이름빨로 해외 파이가 자동 생성되곤 한다.
하지만 명훈이의 아이들인 우리에게 그런 요행이 먹힐 리가.
히죽…….
그래도 목표는 이룬 것 같지.
심지어 초과 달성이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가볼까.”
새로운 목표를 향해서 말이다.
* * *
“대표님!”
내가 화사한 낯짝으로 발을 내딛자, 명훈이가 반갑게 맞았다.
“아직 비행의 여독이 다 풀리지도 않았을 텐데!”
나는 입에 침도 바르지 않은 채 거짓을 내뱉었다.
“그야 당연히 대표님께 인사를 드리고 싶었으니까요.”
“크흐흠…….”
명훈이의 얼굴에 감동이 일렁였다.
“이럴 게 아니라, 어서 앉거라!”
“감사합니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나는 테이블에 있는 찻잔을 들어 올려 후룩, 삼켰다.
“대표님과 함께라서 그런지, 차 맛이 아주 좋습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자신의 귀를 의심합니다!]
“크흠! 흐흠…… 그러냐! 나도 해온이 너와 이렇게 차 한잔하는 시간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르겠구나!”
시작된 극강의 싸바싸바에 명훈이의 광대가 사정없이 씰룩거렸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대표님, 혹시 이번 AMA 영상 올라온 걸 보셨을지…….”
“아직 보지 못했다! 흠! 아마 이따가 보고가 올라올 것 같구나. 그런데 그건 왜?”
잘됐군.
서둘러 온 보람이 있다.
나는 비열하게 올라가려는 입매를 다듬은 뒤, 간신배처럼 목소리를 낮췄다.
러쉬와 트웰브를 조회 수로 눌렀다는 소리를 최대한 장황하게 꾸며 말하자, 명훈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러, 러쉬와 트웰브를?”
“예, 참고로 둘은 INT와 BK입니다.”
“흐흐흠! INT와, BK? 크흠!”
명훈이의 입꼬리가 미친 듯이 요동쳤고, 나는 개소리를 이어갔다.
“제 개인적인 사견으로는…… 이미, 대표님이 백준영 대표님을 앞선 게 아닌지…….”
참고로 이건 진짜 개소리다.
트웰브가 아무리 망해도, BK가 괜히 대형이겠나.
“크흐흐, 흠! 내, 내가 말이냐.”
참고로 명훈이는 칭찬에 취약하고, 조금만 구슬리면 바로 지갑을 여는 바보…… 아, 아니, 쉬운 타입이다.
“아이돌 산업에 뛰어든 지 얼마 되지도 않은 MH가 날고 긴다는 3대 소속사와 비견된다?”
나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표님의 능력은 정말 놀랍습니다.”
내 영혼을 갈아 넣은 사회생활에 명훈이의 어깨가 하늘로 치솟았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 다 너희가 잘해준 덕이지! 크흠!”
“……대표님!”
나는 감동받은 얼굴로, 명훈이의 손을 맞잡으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아앗…….”
멀쩡한 허리를 짚으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수식언을 공개하지 않은 한 성좌가 당신의 행동에 주목합니다!]
“왜, 왜, 왜 그러느냐!”
놀란 명훈이가 되물었고,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임진각 사고 후에 생긴 작은 후유증인 것 같습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틈만 나면 거짓으로 공갈을 치는 당신의 모습에 분노를 감추지 못합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의 뻔뻔한 모습에 감탄하며 100골드를 후원합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할 말을 잃어버립니다!]
나는 아련한 낯짝으로 단어에 힘을 주며 끊어 말했다.
“피해보상비 명목으로 뮤직비디오를 받았으니, 괜찮습니다…… 저는, 정말…….”
스윽……!
내가 척 봐도 사연 있는 얼굴로 고개를 돌리자, 명훈이가 비서 쪽으로 다급하게 손짓했다.
“김 비서! 당장, 매니저 호출해! 이럴 게 아니고, 당장 병원을!”
“아닙니다. 대표님……! 김비서님, 괜찮습니다!”
“……?! 왜 그러느냐!”
“괜한 걱정을 끼쳤습니다. 이 정도는 파스 한 장 붙이면…… 예.”
이름하여, 병원 갈 돈도 아끼는 궁핍한 망돌 모드다.
“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신경 쓰지 말라고 하지만, 신경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길 낯짝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병원비는 다 회사에서 처리해 줄 텐데 무엇이 문제야!”
“그래도 제가 어떻게…… 아니, 역시 됐습니다. 저는 정말 파스면 되니까요. 대표님이 신경 써주신 것만으로도…….”
“……!”
명훈이의 눈이 순식간에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김 비서! 그거 가져와 보게, 그거!”
서류를 휙휙 넘긴 명훈이가 이내 말을 이었다.
“정산, 정산이 언제…… 그래, 내년 하반기로 예정되어 있구나. 김 비서!”
나는 도통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순진무구한 눈깔을 걸쳤다.
‘성공이다.’
라이트온이 이번 활동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겼다는 것과 더불어 정산이 내년에 예정되어 있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내년?
늦다.
나야 금전적인 문제가 없다지만, 차윤재의 그림자는 추측컨대 이것과 아주 밀접하거든.
그림자를 최대한 빠르게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첫 정산이라는 건, 여유롭고 궁핍하고를 떠나 모든 아이돌에게 어마어마한 의미를 부여하니까.
아마 신유하의 그림자에도 큰 영향을 끼칠 테다.
히죽…….
그리고 이 소식이 전해지자, 라이트온 숙소는 뒤집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