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09화
타운 하우스를 연상케 하는 초호화 빌라.
밀리어스는 대부분 개인 생활을 하기 때문에, 여기는 의현 홀로 거주하는 곳이다.
유인성에게 알아낸 주소 앞으로 온 나는 매복을 시작했다.
경호원까지 깔릴 만큼 보안이 대단해서, 외부인은 출입조차 하지 못한다고.
대기업 오너 일가는 물론, 정치계 인물들, 탑급 연예인들이 많이 사는 이유가 있다더라…… 하는 유인성의 말을 전해 들었다.
시트에 등을 기댄 나는 작게 하품했다.
‘지루하군.’
스케줄이 없을 땐 주로 바깥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솔직히 이건 도박이다.
오늘따라 쉬고 싶다며 집에 짱박히면, 이 짓거리도 말짱 도루묵이되어버린다는 뜻이다.
창틀에 기대 창밖을 바라보던 내 낯짝이 점점 칙칙해졌다.
이 짓을 하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현타가 몰려오기 시작했거든.
인생이 쉽지 않음을 매일 깨닫고 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낄낄댑니다!]
“…….”
메시지를 무시하고 있을 무렵, 기사가 말을 붙였다.
“남편이 부자여?”
타운 하우스로 시선을 보낸 기사가 잘 됐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꼭 재산 싹~ 싹~ 받아내! 개털을 만들어버려! 그래야 하는 겨! 썩을 놈이 울면서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도 쳐다보지도 말어!”
“예…….”
“근데 목소리가 생각보다 굵네!”
젠장, 들킨 건가.
그래.
애초에 키가 180 가까이 되는 내가 얼굴 가리고 롱패딩 좀 걸쳤다고, 이런 오해를 받는 게 더 이상한…….
“우리 딸이랑 친구 맺어주고 싶어지는디! 맨날 남자라는 것들이 자기보다 키가 작다면서 툴툴대더라고! 허허! 나도 사실 딸내미보다 작어!”
나는 입을 다문 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짝을 만나 결혼했다는 딸을 떠올리니 다시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모양이신지, 기사가 이를 바득 갈았다.
“바람 피우는 놈들은 아주 잘라 버려야 하는 건디…….”
스윽…….
어쩐지 할 말이 사라진 나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대충 이러면, 슬픔에 잠겨 아련해하는 모습으로 보이겠지.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뒷목을 부여잡습니다!]
“척 봐도 마음이 약해 보이는데 말이여…….”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대체 어떻게 보면 마음이 약해 보이냐며 경악합니다!]
“절대로 약해지면 안 되는 겨! 써글 놈은 따로 있는디, 애꿎은 사람이 마음고생 하면 안 되는 거지!”
“……예.”
“지금도 하도 울어서 선글라스 끼고 나온 거지? 쯔쯔, 튀겨 먹어도 시원찮을 놈…….”
이쯤 되니, 절대 들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최대한 몸을 웅크리며, 어깨를 꾸깃하게 접었다.
비참하군…….
“아가씨! 어깨 펴! 여자가 그런 걸로 움츠러들면 안 되는 겨!”
“예…….”
- 이거 아무한테나 알려주는 정보 아닌데…… 의현 팬들도 모르는 차 번호예요. 이게.
의현의 차는 여러 대인데, 그중에서도 바깥에 나갈 때 스토커들의 눈을 속이기 위한 차가 있다고 한다.
속으로 번호를 곱씹고 있던 순간이었다.
“……!”
내 눈이 커다래졌다.
유인성에게서 전해 들은 것과 일치하는 번호판이 붙은 차량이 유연하게 빠져나오고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상체를 일으키며 손가락질했다.
“기사님, 저 차입니다!”
내가 번호를 읊자, 기사가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접수 완료여!”
시동을 켠 채 대기하던 택시는 곧바로 차량의 꽁무니를 쫓기 시작했다.
“옆에 같이 타고 있는 거 아니여? 증거 잡을 준비혀! 뭔 놈의 드라이빙을 이렇게 해대는 겨! 써글 놈!”
그리고 이내 의현의 차량이 카페에 멈춰 서자, 기사는 확신했다.
“카페! 확실한 거여! 같이 브런치를 먹으러 온 겨! 우리 딸내미도 브런치를 좋아하는디, 분명혀!”
안타깝게도 기사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혼자여? 빌어먹을 놈! 커피 먹고 만나려는 게 확실한 것이여.”
생각하면 할수록 어이없지만 쓸 만한 오해군.
기사님이 알아서 이유를 만들어주고 계시지 않은가.
아련하게 고개를 끄덕인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중심에서 떨어진 외곽, 그중에서도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골목에 위치한…… 중년의 사장이 홀로 장사하는, 무척 한적한 카페였다.
‘사람들의 눈이 부담스러워서?’
하긴, 밀리어스쯤 되면 가려도 다 알아본다.
이 자식도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낯짝을 가리긴 가렸다만, 누가 봐도 연예인이었다.
애초에 간지를 포기하고 롱패딩으로 무장했다면 모를까, 이 날씨에도 코트를 입고 있군.
쯧쯧…….
이래서 연예인들은 안 된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도 연예인이라며 어이없어합니다!]
이 추운 날, 감기 안 걸리는 것만큼 중요한 게 어딨다고.
나를 봐라.
얼마나 따뜻해 보이냐고.
“아가씨, 더운 겨? 더워 보이는디? 히터 꺼줄까?”
“……예.”
사실은 택시 내부에서까지 롱패딩과 머플러를 싸매고 있자니, 더워 뒈질 지경이다.
“패딩을 벗는 건 어뗘?”
나는 다급하게 도리질 쳤다.
“괜찮습니다.”
“그려, 더우면 말해. 아! 내 정신 좀 봐.”
기사가 조수석에 있던 쇼핑백을 뒤적거렸다.
“이거 먹을려? 아니, 먹어야지. 배가 불러야 일을 하는 거여!”
새벽에 구매한 듯한 샌드위치였다.
“저번에는 밥 먹을 시간이 없더라고! 내가 미리 준비해 왔지.”
“…….”
불륜을 잡은 경력이 있어서인지, 철저하게 준비하셨군.
이럴수록 내 등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 내가 말여! 작년에 어떤 아가씨가 택시를 하루 죙일 빌린 겨. 왜인가 했는데, 남편 잡으려고 그랬던 거였어. 에잉, 그런 놈들은 싸그리 잘라 버려야 하는 데!
이번에 택시를 하루 종일 빌리고 싶다는 나의 문자를 받자마자, 예감하셨다고한다.
물론 적중률 0%의 헛다리 예감이지만 말이다.
‘입을 다물도록 하자.’
내가 기사님에게 건네받은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문 순간이었다.
춥지도 않은지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신 의현이 차에 오른 것이다!
“써글 놈! 밥 먹을 시간도 안 주는 겨!”
당연하게도 곧바로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우린 그 뒤를 따라붙었다.
차가 신호에 걸린 순간, 기사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아까 내가 슬쩍 보니까는, 별로여. 그렇게 생긴 놈은 여자 문제로 고생시키는 거여! 딱~ 봐도 얼굴 값 하게 생겼잖어.”
기사님의 뒷담화를 들으면 들을수록 의문이 생겼다.
이건 칭찬 아닌가?
“아가씨가 훨씬 아깝지!”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양쪽에서 황당하게 구는군.
지금 내 꼴은 우스우면 우스웠지, 좋게 평가할 꼴이 아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그걸 알고 있었던 거냐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
내가 흐릿한 눈깔을 껌뻑인 순간이었다.
“어어? 어어? 저 시끼, 속도 높이는디?”
정말 의현의 차 속도가 조금 빨라지기 시작했다.
“외제 차라고 으스대는 거여, 뭐여!”
어쩐지 분노한 듯한 기사가 핸들을 고쳐잡았다.
“걱정 말어! 내가 괜히 드라이버로 돈 벌어먹고 사는 게 아니여.”
기사는 숙련된 드라이빙 실력을 자랑하며, 의현의 차를 쫓았다.
여권 사태 때도 느꼈다만, 전문직이란 역시 남다르군.
그나저나 저 자식, 어딜 가는 거지.
“…….”
“멀미 하는 겨? 저 시끼 한강 올 거면 진즉 오든가. 아주 뺑뺑 돌아서 오네.”
그렇다.
그다음 목적지는 한강이었다.
“내가 감이 왔어!”
기사가 자신 있게 외쳤다.
“이제 여기서 바람을 피우려고 하는 것이여. 써글 놈…… 차도 은밀한 데다가 세운 것 좀 봐!”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도…… 의현은 차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구경도 저쯤 하면 지겹지 않은가.
게다가 자기 집 거실에서 한강이 통창으로 보일 텐데, 왜 굳이 여기 와서 청승을 떨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왜 의현에게 붙은 기자들이 모두 두 손 두 발을 들고 포기하는지 알 것 같군.
“…….”
그나저나, 계속 앉아 있었더니 허리가 뻐근하다.
일어나서 스트레칭이라도 하고 싶은데.
“어차피 저기서 이쪽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텐데! 잠깐 스트레칭 좀 어떤 겨?”
기사님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셨나.
“좋습니다.”
“바깥에서 보니까 더 훤칠하고 인물이 좋네! 웬만한 남자보다 훤칠한 것이여!”
“…….”
내가 키라도 작으면 모를까, 당장 이 기사님보다도 훨씬 크다.
듣기론 아내분이 키가 크시고, 자녀분이 그 유전을 받으셨다고.
‘역시 입이나 다물자.’
고개를 작게 끄덕인 내가 스트레칭을 이어갈 무렵, 기사가 내 몸을 황급히 뒷좌석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저 차 시동 걸렸어! 이제 갈려나벼!”
* * *
그리고 차는 멀지 않은 곳에서 멈춰 섰다.
프라이빗한 분위기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입구부터 직원이 뛰쳐나와 의현의 차 키를 받아 들었다.
“흠.”
역시 저렇게 입고 나와서 혼자 재미없는 드라이브나 이어갈 리 없지.
게다가 사람이 없는 시각, 프라이빗한 룸에서 식사라…… 누구를 만나기에?
‘그나저나, 허탕이군.’
정말 누군가가 들어간대도, 이런 장소에선 증거를 잡아내지 못한다.
이 수상쩍은 복장으로 어찌저찌 출입에 성공한대도, 식사하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거든.
오히려 섣부르게 행동했다간 낭패다.
속으로 혀를 튕긴 나는 기사에게 차 안에서 대기하자는 말을 건넸다.
‘운이 좋으면, 상대방 얼굴쯤은 볼 수 있으려나.’
상대가 공인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이윽고, 창에 머리를 기댄 채 바깥을 바라보던 내 미간이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
의현이 이 택시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머플러에 얼굴을 묻으며, 선글라스 아래로 눈알을 굴렸다.
똑똑-
내 쪽의 창이 가볍게 두드려졌고, 나는 곧바로 결론을 내렸다.
그냥 튀는 게 상책이겠다, 라는 결론을 말이다.
내가 이 정도로 가리고 있는 이상, 이 새끼도 나임을 알아채진 못했을 것이다.
그냥 질 나쁜 스토커로 생각했지 않을까 싶은데.
뭐가 됐든, 여기서 내리면 X될 거라는 것쯤은 알겠군.
지금 정확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거든.
……심지어 선글라스까지 벗은 채로 말이다.
마치, 자기가 누군지 알고 있지 않냐는 듯이.
“…….”
이 상황에 호선을 그리고 있는 입매가 더 호러였다.
등골이 오싹해질 지경이었으니 말 다 했다.
나는 기사님에게 조용히 질문을 건넸다.
“기사님, 혹시 이 차 선팅이 어떻게 되나요?”
“있긴 헌디…… 내 직업상 야간 운전을 해야 하니까는…….”
한마디로 하면, 짙지 않다는 뜻이다.
“음.”
나는 화사하게 웃었다.
“기사님, 출발할까요.”
내 말과 동시에, 택시에 시동이 걸렸고…… 나는 경악했다.
“저, 저, 저거 미친 시끼 아니여!”
동의한다.
……이 정신 나간 새끼가 시동까지 걸린 차량 앞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이혼혀! 절대로 이혼혀! 또라이여! 또라이!”
나는 차체를 막아선 채로, 내 쪽을 정확하게 응시하고 있는 의현을 보며 작게 기함했다.
“……허.”
“내가 기사 생활 30년 하면서 이런 시끼는 처음, 처음인디…… 그려, 후진! 후진으로 나갈 수 있어! 내가 괜히 모범택시가 아닌 겨!”
“아니요.”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기사님에게 인사를 전했다.
“이만 가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 감사했습니다.”
“으응? 오후에도 다녀야지!”
나는 고개를 저으며,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저 새끼, 이 안에 있는 게 나인 걸 안다.
방금 웃으며 속삭인 입 모양이 분명.
해온아, 였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