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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210화 (210/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10화

의현이 내 얼굴에서 모자와 선글라스를 단번에 벗겨냈다.

“내놔. 사진 찍힐 생각 없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자주 오는 곳이거든.”

보안이 좋다는 이야기를 돌려 말한 의현이 상체를 조금 숙여 나와 눈을 마주쳤다.

“뭣보다 너랑 만났는데,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기도 하고.”

“……허.”

징그러운 소리를 잘도 하는군.

“이건 답답하지 않아?”

의현이 내 머플러 끝을 만지작거렸다.

“네가 옆에서 꺼지면 덜 답답하겠는데.”

“음, 그건 아무리 너라도 곤란한 부탁이네. 들어갈까?”

작게 웃은 의현이 내 등을 안으로 떠밀었다.

이 새끼, 과하게 자연스럽다.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 나를 데려올 목적이었던 것처럼.

그리고 난 이 추측이 사실이라는 걸 깨닫는다.

이미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는 두 개의 자리.

다른 이를 기다리는 거라곤 볼 수 없을 정도로 여유로운 이 자식까지, 모든 박자가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내가 뒤를 쫓고 있다는 걸 진즉에 눈치챈 거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완벽한 분장이었다며 기죽지 말라 당신을 응원합니다!]

정말 응원해 주고 싶은 거라면, 조용히 입이나 닫고 있어주시길 바란다.

메시지가 뜨면 자연스럽게 눈이 허공을 향하게 되는데, 이 자식 앞에선 수상한 꼴을 조금도 보이고 싶지 않거든.

나는 자리에 착석하자마자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 알았냐.”

“음, 원래라면 여기서 화를 내야 하는 건가?”

의현의 되물음에,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네 낯짝 보면서 밥 먹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그런데 어떡하지? 그럴 마음이 안 드는데.”

의현이 눈을 사르르 접어 웃었다.

“아무래도 난 기쁜 것 같아, 해온아.”

“……!”

뭐 이딴 또라이 새끼가 다 있는지, 진짜 팔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다행히 뒤따라온 직원 덕에 대화가 끊겼다.

“네 거나 시켜.”

여기서 처먹었다간 분명 얹힌다.

내 말을 들은 척도 안 한 의현이 내 몫의 음식까지 주문을 마쳤다.

“내 마음대로 주문했어. 네가 좋아하던 거니까…… 아.”

말끝을 늘린 의현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지금은 입맛이 다르려나?”

나는 곤란한 질문에 입을 다무는 걸 택했고, 코스 요리 식의 음식이 차례대로 테이블에 오르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나는 눈깔을 시퍼렇게 뜨고 음식을 째려보기만 했는데,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던 의현이 운을 뗐다.

“네가 좋아하는 게 뭔지 궁금해.”

“알 바야? 그걸 네가 왜 궁금해해?”

“말했잖아. 난 이제 네가 누구든 상관없어졌고, 가까워지고 싶다고.”

“내가 네가 친해지자면 친해져야 하는 개새끼야?”

“그렇게 말하면 조금 속상하네.”

커트러리를 조용히 내려놓은 의현이 말을 이었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널 더 좋아하는데, 개새끼라니.”

헛소리를 자연스럽게도 하는군.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처음엔 싫어했잖아? 이해해. 네가 처음부터 내가 성해온이 아닌 걸 알았다면 네 행동도 납득이 되거든.”

나는 물을 한 모금 삼킨 뒤, 잔을 내려놨다.

“그런데 지금 네 행동은 납득이 안 돼. 갑자기 잘 대해주기라도 하면 내가 감사합니다, 하면서 빌빌 기기라도 할 줄 알았나? 정말? 그렇게 멍청하게?”

“음.”

작은 침음성을 낸 의현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해온이는 정말 의심이 많네. 그래, 처음엔 분명 그랬지.”

설핏 웃은 의현이 말을 이었다.

“그 몸에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는 생각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짜증 났거든.”

“…….”

“그 후엔, 그리웠지.”

“잠깐만.”

나는 이 녀석의 말을 끊었다.

듣다 보면 나까지 말려들어 갈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도 납득이 안 되는 건 똑같아. 알맹이가 바뀐 건, 그래. 가까운 사람이면 의심할 수 있지. 하지만 겉이 같은데 그렇게 확신할 수 있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망상을?”

“아하하!”

의현이 낯짝에 싱글벙글한 미소를 띠었고, 나 역시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웃겨?”

“아니, 사실은 그때 대기실에서 너무 성급히 말을 꺼냈나…… 조금은 후회했거든.”

그래도 스스로 또라이라는 자각은 있었군.

“근데 역시 말하길 잘했다. 네가 내 생각을 해줬을 거라 생각하니 기뻐. 해온아.”

발언을 취소하겠다.

이 자식은 또라이라는 자각이 없다.

의현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나와 시선을 맞췄다.

“네가 완벽한 성해온을 연기했어도, 나는 알아냈을 거야. 내가 알던 성해온이 아니라는 걸.”

[수식언을 공개하지 않은 성좌가 이 이 대화에 호기심을 보입니다!]

“그러니까, 넌 나한테서 다른 사람을 보고 있다는 건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네.”

의현이 생긋 웃으며 내 몸통을 가르켰다.

“난 그 안에 있는 진짜 네 모습도 궁금해졌거든.”

턱을 괸 의현이 상체를 가까이했다.

“나이는 뭐야? 이름은? 아니다. 내 소개부터 하는 게 예의겠어.”

의현이 말을 잇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태어났고, 보다시피 지금은 연예인을 하고 있지. 좋아하는 건, 음…… 술을 좋아해. 근데 직업이 이러니 자제하고 있어. 음식은 그다지 즐기진 않지만, 가리지도 않아.”

“…….”

“어때? 술 좋아한다는 건 인터뷰에서도 말한 적이 없어서, 아마 안 나와 있을 텐데…….”

말을 하던 의현이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해온이는 원래 술 좋아했거든. 성인이 되자마자, 엄청나게 마시던데. 내가 술을 좋아하게 된 것도 따지자면 그 때문인가. 그래서, 너는 어떤지 궁금하다.”

의현이 턱을 괸 채로 생글생글 웃었다.

“응? 너에 대해서도 알려줘. 뭐든 좋으니까.”

“너나 떠들어.”

“내 얘기가 재미있어? 말을 재밌게 하는 재주는 없을 텐데.”

“궁금하지도 않은데, 재밌을 리가 없지.”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그런 것치곤 흥미로워 보인다고 전합니다!]

들켰군.

이전 성해온과 가까운 사이였던 건 의현 하나니, 이 정보가 무척 흥미진진하다.

이왕이면 혼자 더 떠들며 술술 불어줬으면 좋겠는데.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뒷목을 문지릅니다!]

거참, 메시지 보내지 말라니까.

내가 무덤덤한 낯짝 아래로 주판을 튕기고 있을 무렵, 의현이 입을 열었다.

“기쁘다.”

“……?”

따지자면 지금 겸상할 위치도 아닌 후배가 말하는 자신 앞에서, 예의를 밥 말아 처먹고 개무시를 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어느 맥락에서 기쁨이라는 감정을 찾아낸 건지, 내 정신이 다 아찔해질 정도다.

내가 눈썹을 꿈틀거리자, 의현이 입꼬리를 설핏 잡아당겼다.

“음식 식겠다. 얼른 먹어. 그리고 이제 궁금한 게 있으면 기자 말고 나한테 직접 물어봐, 해온아.”

“…….”

“…….”

“…….”

미쳐 버린 것 같은 정적이 공간을 휘감았다.

진짜 돌았나.

폭탄 발언을 뭐 저렇게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하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 낯짝을 관리했다.

시선을 피하면 자진 납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내가 눈깔을 부라리자, 뭐가 그리 재밌는지 의현이 웃었다.

“여기 음식 꽤 맛있는데, 입맛이 없어?”

그럼, 네 낯짝이 앞에 있는데 입맛이 돋을 리가.

안 그래도 없는 입맛이 아스팔트를 뚫고 내핵에 처박힐 지경이다.

“역시 내가 메뉴를 잘못 고른 걸까. 다시 주문해야겠다.”

“먹는다.”

테이블에 다 먹지도 못할 음식이 올라오기 전에 음식을 입에 욱여넣은 나는 질겅질겅 씹어 삼켰다.

입가심으로 물을 넘기는 순간이었다.

“원랜 그거 좋아했는데, 지금 해온이는 그다지 입맛에 안 맞나 보네.”

“아니, 맛있어. 네 낯짝만 치워주면 더 맛있을 것 같은데.”

“음, 그건 못 들어주겠다. 그런데, 해온아.”

“왜.”

“기자 계속 붙여주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 생각해 봤는데, 좋더라고. 네가 내 생각해 주는 것 같아서.”

주르륵…….

입가에 흐른 물을 벅벅 닦아내고 있을 무렵, 흐음 소리를 낸 의현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무슨 이야길 들었어? 궁금하다.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안 그래도 해온이 네가 날 싫어하는데, 굳이 더할 필요 없잖아.”

- 예, 그 친구가 무서운 게 뭐냐면! 사람이 너무 흠잡을 게 없대! 바깥에 나도는 걸 쫓아다녀 봐도, 아~~ 무 것도 없대.

- ……그게 무서운 점이라고요? 그게?

- 그렇다니까요? 정말 사람이 무서울 정도로 흠잡을 게 없대!

- 기자님, 실례지만 밀러스 몇 기이신가요?

- 이런 미친! 기껏 정보 알려줬더니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 예, 최애가 의현인 건 잘 알겠습니다. 그래서 몇 기신데요?

“응? 해온아. 궁금하다.”

절대로 말하기 싫어졌다.

그와 동시에 나는 의현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일단 이 새끼, 성해온에 대한 악감정은 없는 게 확실하다.

이전에도 아이템으로 확인한 것이니 믿을 만하다.

내가 궁금했던 건, 호의 뒤에 숨겨진 꿍꿍이였으나…… 이제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 새끼가 제정신이 아님을 다시 한번, 절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 정신 나간 말을 내뱉는 눈깔이 정말 진심을 말하는 것처럼, 조금의 떨림도 없다는 게 그 깨달음에 힘을 실어준다.

* * *

“헤헤헷.”

유인성은 기분이 무척 좋았다.

음악방송의 출근길과 퇴근길은 연예부에서도 기자가 나가곤 한다.

하지만 영양가라곤 찾아볼 수 없는 기사라서, 차출 대상은 주로 신입이나 인턴.

“아~ 내가 갈걸~”

유인성은 스마트폰과 모니터에 성해온의 미끄러진 사진을 띄워놓은 채 어깨를 씰룩였다.

“배경 화면 해놓고 싶을 정돈데. 흨, 헤헤, 흠, 흠.”

사진을 찍어 온 당사자인 톱스타패치의 신입 기자가 다가오자, 유인성은 입꼬리를 내리며 헛기침했다.

“무슨 일입니까?”

“아, 지나가다가 사진이 보여서 잠깐 눈길이…….”

“사진 잘 찍었어.”

칭찬이 인색한 유인성인데, 칭찬을?

신입 기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 그래도 이거 반응 좋더라고요.”

“그래? 반응이 좋아? 어떻게? 그 새, 아니, 성해온 이미지가 좀 그래졌나?”

“네, 멤버들끼리 화목하기도 하고 서로 귀엽다고 난리던데요.”

“X발…….”

“네? 작게 말씀하셔서 잘 못 들었어요.”

“……아니야, 그만 가봐.”

눅눅해진 얼굴의 유인성이 손을 휘휘 저은 순간이었다.

“…….”

스마트폰이 진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방금 좀 비웃었다고 벌을 받는 건가?’

하나님, 잘못했어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유인성의 어머니가 함께 예배를 가자고 할 땐 등짝을 때려도 가지 않던 유인성이 하늘에 대고 기도했다.

‘이 또라이 좀 떼내주세요…….’

* * *

“……?”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의 낯짝을 지적합니다!]

굳이 지적해 주지 않아도 내 낯짝이 무척이나 쓰레기 같을 거란 건 알고 있다.

피곤함에 쩔어있는 데다가, 미친놈에게 탈탈 털리고 오기까지 했으니 볼만하겠지.

그리고 지금 궁금한 건 그게 아니다.

내 눈에 의문이 깃들기 시작했다.

……숙소 분위기가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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