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11화
“……형!”
답지 않게 붉으락푸르락한 얼굴의 신유하가 내 앞으로 다다다 달려왔다.
“다른, 방에서 자세요!”
[성좌, ‘황금의 신’이 우리 아해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며 노발대발합니다!]
미안하지만 나도 모르겠다.
갑작스러운 각방 선언에 내가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무렵, 신유하가 말을 이었다.
“말이……! 안 통해요……!”
……나랑?
[성좌, ‘황금의 신’이 아해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의 평소 행적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두 성좌의 우매함에 고개를 젓습니다!]
굉장한 분노를 체감 중인지, 신유하의 얼굴이 평소보다 확연히 붉었다.
“정말, 다른 데서, 자세요……!”
이쯤 되니, 내가 잠결에 오타쿠 자아로 주접이라도 떤 게 아닐까 하는 의문마저 떠오르는군.
드르륵-
하지만 방문을 열자마자, 원인은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뭐야?”
어젯밤에 류인의 도움을 받고 간신히 내보낸 최승하가 또다시 내 침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형, 제가 오늘 아침에 씻다가 엄청난 걸 발견해 버렸지 뭐예요?”
훌렁 반팔을 깐 최승하가 침대에 앉아 등을 들이밀었다.
“여기, 여기! 보여요? 여기, 멍!”
정말 새끼손톱만 한 멍이 들어 있었다.
“역시 다쳤죠!”
“그래서 내 침대를 차지했다?”
“아침에 보자마자, 형한테 보여주려고 머리도 안 말리고 달려왔는데 형이 없는 거 있죠?”
“그래서 이 등짝을 보여주려고 누워 있었다?”
“하핫, 정답~!”
추측하건대, 신유하는 돌아올 나의 휴식을 지켜주려 사투를 이어온 게 틀림없다.
하지만 최승하와 신유하의 말발은 승부가 안 된다.
안 봐도 뻔하다고 할 수 있겠다.
100마디를 나눴어도 100마디 모두 신유하의 말문이 막힌 채 끝났을 테지.
그러니 한쪽은 여유만만하고, 한쪽은…….
고개를 저은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저 녀석은 내가 처리한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소라게처럼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간 최승하가 눈만 빼꼼 드러낸 채 옆자리를 팡팡 두드렸다.
“여기 누워요. 제가 형 오기 전에 데워놨다고요~ 이거 완전 귀공자의 삶 아닌가. 침대 미리 데워놔 주는 사람도 있고~”
싱긋…….
내 낯짝을 정면으로 마주한 최승하가 이내 헤헤 웃었다.
“그 쇼핑백은 뭐예요?”
나는 이 녀석이 더 캐묻기 전에, 머플러와 선글라스, 모자가 든 쇼핑백을 저 멀리 던졌다.
“별거 아니다.”
“싱겁긴!”
스스로 이불에 둘둘 감긴 최승하가 눈을 껌뻑였다.
“그나저나, 어디 갔다 왔어요? 윤재 일어났을 때부터 없었다던데.”
“운동.”
“와아, 진짜 안 믿기는 핑계다! 차라리 친구라고 하지!”
“그것도 안 믿깁니다! 저 형님은 저희 빼고 친구가 없지 않으십니까!”
열린 문틈 사이로 새어나간 대화를 들은 듯한 차윤재의 팩트 폭력에 내 낯짝이 눅눅해졌다.
반박할 수도 없는 사실이라 더더욱 비참해지는군.
침대 모서리에 앉은 나는 패딩을 벗으며 최승하를 흘깃 훑었다.
“네 방 가라, 눕게.”
팡팡!
같이 누우면 되는데, 뭐가 문제냐는 듯이 최승하가 다시 침대를 두드렸다.
“아니면 혹시 제 팔베개가 필요, 으아아, 이 사람이 무슨 짓이야!”
내가 팔을 잡아당기자, 신유하로 노하우가 생긴 모양인지 최승하가 다른 한쪽 손으로 매트리스 커버를 움켜쥐었다.
“어디 한번 해보세, 으아, 악! 아야! 아야! 나 이거 사극에서 봤어! 능지처참(?)”
“아프면 네 발로 내려오든지.”
“이렇게 된 거 자존심이 있지! 못 내려가요!”
“원래도 내려갈 생각 없었잖아.”
“으하하, 그렇긴 하죠~?”
“…….”
힘으론 못 당해내겠군.
내가 손을 떼자, 최승하가 눈을 반짝였다.
“형이 끓여준 죽을 먹으면 제 발로 나가고 싶어질 것 같기도 하고?”
이 와중에도 정신을 못 차린 최승하에, 나는 은은한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그냥 던져본 건데, 진짜로? 진짜?”
“그래.”
내 대가리가 깨지는 걸 방지해 준 건 사실이니, 죽 정도는 데워줄 수 있다.
곧장 주방으로 향한 나는 구비되어 있는 레토르트 죽을 전자레인지 안에 집어넣었다.
띵!
경쾌한 소리와 함께 죽이 데워졌고, 나는 그것을 조심스레 그릇에 옮겨 담았다.
아무렴, 생명의 은인인데 포장 용기째로 건넬 수는 없다.
드르륵-!
문을 연 나는 화사하게 웃으며 침대의 머리맡에 앉아, 죽과 물컵이 든 쟁반을 내 무릎 위에 살포시 올렸다.
“……? 설마 먹여주려고요?”
눈이 휘둥그레진 최승하에, 나는 행동으로 답을 대신했다.
죽이 담긴 숟가락을 들어 올린 것이다.
“자, 아~ 해야지.”
“이건 상상도 못 했는데? 오늘 무슨 날인가?!”
“자, 아~”
“와아아~!”
신난 최승하의 입에, 나는 다이렉트로 죽을 꽂아 넣었다.
“잠깐만, 후후 식혀서 넣어줘야, 읍, 핫뜨! 읍! 으븝.”
“승하가 아파서 엄살이 느나 보다. 자, 싹싹 먹어야지…….”
“자, 잠깐만요. 형, 타임! 와악! 으븝, 우물!”
최승하의 턱을 붙잡은 나는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자, 아~”
몇 분 뒤, 작은 죽을 강제로 싹싹 비운 최승하가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엎어졌다.
“나만 괴롭히고…….”
“엄살은.”
내가 돌았다고 입안이 데일 만한 걸 먹였겠는가.
후후 불어주는 정성을 추가하지 않았을 뿐이지, 데일 정도는 아니었다.
먹이기 전에 손등에 테스트도 한 번 했고 말이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을 가느스름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맹세코 아니었다.
“흑흑…… 슬퍼서 잠이나 자야겠다…….”
“어딜 꾸물꾸물 들어가.”
곧바로 최승하를 잡아챘지만, 힘이 대체 얼마나 센 건지 꿈쩍도 안 한다.
“나는 정말…… 너무 슬퍼…… 흑흑흑…… 죽 맛도 못 느꼈어…….”
“우는 척 그만하고,”
“하핫, 티 났어요?”
“그럼 내가 네 방 가서 잔다.”
누군가와 함께 눕는 건 사절이니, 내가 비어 있는 침대로 가면 될 일이다.
사실 이 녀석에게 죽을 먹일 때부터 이럴 생각이었고 말이다.
“형, 솔직히 말해봐요.”
“……?”
“사실은 제 침대에서 자고 싶었던 거예요? 하여튼 사람이 수줍, 읍, 읍.”
“말을 말자.”
할 말을 잃어버린 내가 갈아입을 옷가지를 챙기기 위해 장롱의 문을 연 순간이었다.
키가 큰 장롱 위에 있는, 작은 갈색 상자가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더니 추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상자가 내 대가리에 내리꽂히기 전에 신유하가 상자를 붙잡았다.
내용물이 우르르 쏟아졌지만 말이다.
침대에서 튀어나온 최승하가 내용물을 줍기 시작했다.
“유하야, 안 다쳤어?”
“으응, 안 다쳤어. 괜찮아……!”
최승하의 물음에 바로 대답한 신유하가 우리 둘의 등짝을 꾹꾹 밀었다.
“다들, 쉬세요! 제가 치울, 거예요……!”
허겁지겁 내용물을 주워 담은 신유하는 상자를 원위치로 밀어 넣었다.
나는 그런 신유하를 응시했다.
“흠.”
내 기억과 눈깔이 삐지 않았다면, 분명 그건데.
* * *
지이이잉-
베개 아래에 넣어둔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다른 녀석들 몰래 일어나기 위해 설정한 진동 알람이었다.
나는 눈을 껌뻑이며 시야를 정돈했다.
‘바로 잠든 건가.’
씻고 나오자마자 최승하 방에서 기절하듯 잠든 모양이다.
나는 스마트폰을 켜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3시경.
작전을 실행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야심한 시각이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또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거냐며 우려를 표합니다!]
일이라니.
뭘 모르는군.
이건 굳이 따지자면 대의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발걸음 소리를 죽인 채, 나와 신유하의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드르륵-
역시, 둘 다 세상 모르게 자고 있군.
특히 최승하, 저 녀석은 아주 제 침대라도 되는 것처럼 잘 자고 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이 더 잘 잤다고 전해줍니다!]
“…….”
흐릿한 낯짝으로 입을 다문 나는 조용히 의자를 끌어왔다.
그 위로 올라간 나는 장롱 위에 있는 박스를 꺼내 들었다.
나와 신유하의 짐 더미에 섞여 있었기에 아마 오늘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존재도 몰랐을 것이다.
나는 망설임 없이 박스의 내부에 손을 뻗었다.
원하는 건 단 하나였다.
“찾았다.”
작게 중얼거린 나는 노트 하나를 집어 들었다.
세월의 흔적이 조금 묻어나 있는, 연회색의 하드커버 노트.
나는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신유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 녀석의 과거를 보았을 때, 마주했던 것이다.
뭐가 그리 소중한지, 계속 품에 들고 다니던 노트.
그리고…….
- 유하야, 너 다음 월평에선 자작곡 한다며?
- 다 소식통이 있지~ 이거 데뷔하면 네가 우리 곡도 만들어주는 거 아니야?
- 혹시 나도 들어봐도 돼? 네가 만든 곡, 궁금하다.
이 싸이코패스의 가스라이팅이 짙어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품에서 사라졌던 노트.
“흠.”
숙소에서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는 노트라서…… 내가 보지 못한 과거에 버린 줄로만 알았더니,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지.
타악-
노트를 가지고 거실로 나온 나는 옅은 간접등 하나를 켰다.
그리고 노트를 펼치자, 내 눈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허.”
내가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기고 있을 무렵이었다.
띠링, 소리가 울려 퍼진 것이다.
[성좌, ‘황금의 신’이 당신에게 거래를 요청합니다!]
“……?”
떠오른 메시지를 본 나는 빠르게 대가리를 굴렸다.
정확한 거래의 내용을 아직 보지 않았음에도, 이 성좌가 뭘 원하는지 알 것 같다.
그리고 사실대로 불자면, 이런 거래가 아니어도 나서려고 했다.
이 야심한 시간에 물건의 정체를 확인한 것도 그 이유에서였고.
하지만 저 위에 있는 분께서 이런 걸 친히 던져주신다면, 모른 척 받아먹는 게 인지상정이다.
“제가…… 그걸……?”
나는 최대한 처연한 낯짝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유하의 개인 물건인 데다가…… 저도 양심이란 게.”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뒷목을 부여잡습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지금 그 노트를 손에 들고 있는 것부터가 양심이 없는 거라고 지적합니다!]
양심이 없다니.
이건 엄연히 신유하를 위한 일인 것을!
쯧쯧…….
내 불손한 낯짝을 지적하는 메시지가 우후죽순 떠올랐으나, 거래가 먼저였다.
허공으로 고개를 치켜든 나는 작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원하는 거래 보상 선제시였다.
내가 보상을 제안하자, 곧바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성좌, ‘황금의 신’이 곤란함을 표합니다!]
[성좌, ‘황금의 신’이 차라리 골드와 거래하자고 주장합니다!]
허어?
허어어?
거실 바닥에 엎드린 나는 비통해 죽겠다는 낯짝을 걸친 뒤, 바닥을 퍽퍽 두드리기 시작했다.
“우리 유하!”
[성좌, ‘황금의 신’이 이럴 때만 아해를 정답게 부르는 거냐며 기겁합니다!]
“불쌍한 녀석, 이분이 겨우 골드를 가지고 너를 저울질하시는구나!”
[성좌, ‘황금의 신’이 평소에 골드를 좋아하지 않냐며 당황합니다!]
“정말 사랑하면 아까운 게 없다던데……! 이분은 아까우신 모양이다……!”
[성좌, ‘황금의 신’이 두 눈을 질끈 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