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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212화 (212/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12화

나는 어딘가로 발을 내디뎠다.

새벽에 몰래 들어왔었던, 내 방으로 말이다.

신유하가 곧장 인사를 해왔고, 나는 빈 침대를 힐끔 바라봤다.

“최승하는?”

“씻으러, 갔어요!”

타이밍이 아주 훌륭하군.

나는 옷을 꺼내려는 듯, 자연스럽게 장롱 문을 열었다.

[성좌, ‘황금의 신’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장롱의 문이 닫히는 충격이 가해짐과 동시에, 내가 새벽에 앞쪽으로 살짝 밀어놓은 박스의 무게중심이 기울기 시작했다.

아, 상자가 떨어지는 건 당연하게도 성좌의 짓이다.

인간계에 큰 개입은 할 수 없다지만, 이전에 스태프를 넘어뜨린 것이나 사물을 조금 움직이는 것 정도는 가능한 모양이던데.

사전에 나와 타이밍을 맞춘 대로, 상자는 내용물을 쏟으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 이게, 왜 또.”

조금 당황한 얼굴의 신유하가 곧바로 달려왔다.

“다치진 않으셨, 어요? 제, 제가 치울게요!”

이 아연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조금 양심이 찔린다만…….

나는 허리를 숙여 목표물로 손을 뻗었다.

내 손의 방향을 뒤늦게 알아차린 신유하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녀석과 내가 거의 동시에 팔을 뻗었으나, 더 빠른 건 나였다.

“음.”

이 녀석은 내가 자신의 과거를 봤다는 사실을 알 리 없다.

다시 말해, 신유하가 작곡을 배웠다는 걸 나는 몰라야 한다는 뜻이다.

노트를 들어 올린 나는 실수로 내용을 본 것처럼…… 동공에 약간의 떨림을 추가했다.

오늘 새벽, 노트를 마주한 나는 솔직히 놀랐다.

[천상천하(天上天下)] 특성은 기간이 지나 소멸해도 그 잔재가 조금 남는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능력은 사라진다만 감각이 조금이나마 남는 느낌이다.

잠시나마 그 분야에서 천재가 되는 경험을 했는데, 그 감각마저 사라질 리는 없지.

그러니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신유하의 재능을 말이다.

기억상, 신유하는 프로듀싱을 포함한 작곡을 아주 짧게 배웠을 텐데도…….

기억 속 INT의 프로듀서가 신유하의 재능을 칭찬해 준 이유를 알 것 같았다고 해야 할까, 정말 원석이다.

하지만 이 정도론 놀라지 않았을 거다.

내가 정말 놀란 이유는, 이 기록이 최근까지도 이어졌기 때문이다.

라이트온의 데뷔 앨범부터, 가장 최근의 앨범까지.

……신유하는 계속해서 혼자만의 작업을 해왔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은 채.

‘열받는군.’

마음 같아선, 이 녀석을 이렇게 만든 놈들의 대가리를 무쇠 프라이팬으로 후려갈기고 싶다.

[성좌, ‘황금의 신’이 강하게 긍정합니다!]

나는 신유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내 시선이 노트에 닿자마자, 신유하는 눈에 띌 정도로 몸을 떨고 있었다.

“보지 마, 마시고, 저한테 주세요.”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 내가 노트를 한 장 넘기자, 신유하가 내 옷자락을 잡았다.

잡은 손이 작게 떨리고 있었다.

“부…… 부탁이에요. 주, 세요.”

그러면서도 내게 들이받지는 못하는 게, 참 순한 신유하답지 않은가.

솔직히 지금 내 몸은 개복치 새끼라서, 조금만 힘을 줘도 금세 밀치고 노트를 뺏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나는 돌려 말하기보다, 정공법을 택했다.

“작곡?”

“……!”

티가 날 정도로 몸이 굳은 신유하가 고개를 저었다.

“아, 니에요. 정, 정말 아니에요. 잘못 보셨어요.”

말은 느려도 절지는 않는 녀석인데, 적잖이 당황했는지 말이 제대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유하야.”

탁-

노트를 접은 나는, 녀석의 눈에 고여 있는 눈물을 닦았다.

“울지 말고, 왜 울어?”

“형이, 안 봤으면…… 좋겠어요. 실망, 하실 거예요.”

기어코 신유하의 눈망울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태오의 잔재가 아무리 옅어졌대도, 계속해서 받아왔던 가스라이팅은 쉽게 지워질 리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특한데.”

“……네, 네?”

내가 머리칼을 두어 번 쓰다듬자, 신유하의 커다란 눈이 동그래졌다.

그래봤자 눈물범벅이지만.

“우는 이유를 모르겠네. 보인 게 부끄러워?”

“보일, 만한 게, 아니에요…….”

“내가 안 봤으면 좋겠고?”

작게 끄덕여진 신유하의 머리가 금세 푹 숙여졌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훤히 보이는 동그란 머리통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리고 손목을 붙잡았다.

“어디 좀 갈까.”

* * *

“혀, 형……! 어디, 어디 가는 건지.”

“가면 알아.”

“가면 당연히, 알 텐데 그 전에……!”

내 손에 붙잡힌 신유하가 계속해서 몸을 바르작거렸다.

나는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힘 빠지니까, 가만히 있어…….”

어차피 날 밀칠 마음도 없다면, 가만히 있어주길 바란다.

방금도 작은 발버둥에 중심이 나가 넘어질 뻔했거든.

“일단 여기부터 들르자.”

“카, 카페는 왜……?”

딸랑!

신유하의 손을 붙잡고, 어느 한 카페에 들어온 나는 진열대 속 첫 번째 라인을 가리켰다.

“이거 하나씩 포장 부탁드립니다.”

맛있어 보이는 조각 케이크 5개가 박스에 곱게 담겼다.

“자.”

신유하의 한 손에 케이크 박스를 들려준 나는, 이 녀석이 뭐라 되물을 틈도 주지 않고 최종 목적지로 향했다.

‘다시 봐도 귀신이 나올 것같이 생겼군.’

길쭉한 건물들 틈바구니에 끼인, 작고 허름한 건물.

……의 지하.

이제 돈도 좀 벌었을 텐데, 왜 작업실을 이전시키지 않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여, 여기가 대체 어디……!”

“건물.”

“그건, 저도 알아, 요……!”

신유하를 이끌고, 어둑어둑한 계단을 내려간 나는 작업실의 문을 두드렸다.

건반을 두드리고 있었는지, 그 소리가 울려 퍼지다가 이내 끊겼다.

“누구…….”

강찬혁의 목소리와 함께, 작업실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어, 어어? 해온 씨?!”

나를 마주한 강찬혁이 눈을 크게 뜨며, 문을 활짝 열었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란 기색이 역력하면서도, 내 방문이 기꺼운 얼굴이었다.

사실 강찬혁에겐 오늘 아침 일찍 언질을 해놨다.

‘멤버 하나가 작곡과 프로듀싱에 관심이 있는데, 도움을 줄 수 있겠냐’라고 말이다.

강찬혁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내 계획은 일사천리였다.

물론 그 계획의 주가 되는, 멤버 하나의 동의는 없었지만 말이다.

아, 강찬혁에게도 오늘 오겠다는 말은 못 했다.

워낙 다급하게 끌고 나온 거라서 말이다.

“오늘 오실 줄 알았으면, 맛있는 것 좀 사 왔을 텐데……! 내올 게 없어서 어쩌죠…… 이럴 게 아니라, 이 옆에 카페라도!”

“아닙니다. 갑작스러운 부탁에 곤란하실 텐데, 더 폐를 끼칠 수야 없죠.”

나는 고개를 절레 저으며, 계단 쪽에서 얼어붙어 있는 한 녀석을 끌어당겼다.

화악-!

단번에 작업실 쪽으로 끌어당겨진 신유하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프, 프로듀서님……?”

참고로, 강찬혁의 작업실은 보다시피 협소해서 나를 제외한 멤버들은 이곳에 와본 적이 없다.

녀석의 입이 열리기도 전에, 나는 신유하의 허리를 폴더폰처럼 강제로 접었다.

휘익!

“잘 부탁드립니다. 스승님!”

참고로 대사는 내 입에서 나왔다.

이 와중에 강찬혁은 맞은편에서 함께 허리를 숙였다.

강찬혁의 허리가 바로 세워지기 무섭게, 나는 신유하의 왼쪽 팔을 들어 올렸다.

방금, 카페에서 구매한 케이크 상자가 허공에서 애처롭게 덜렁였다.

“이, 이건……?”

당황한 강찬혁이 되물었고, 나는 싱긋 웃었다.

“스승님의 제자가 바치는 조공입니다!”

“제, 제자가요?”

“예!”

나는 신유하의 등을 밀었다.

“강찬혁 프로듀서님의 직속 제자, 신유하라고 합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왜 그 인사를 당신이 하냐며 기함합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을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이 난장판에서, 신유하는 거의 기절이라도 할 기세로 딸꾹질을 시작했다.

“이, 게 대체……! 딸, 꾹! 무, 무슨 상황…….”

나는 신유하가 입고 있는 패딩 모자에 손을 쑥 넣었다.

그리고 이내 내 손에 들린 물체를 보자마자, 신유하의 동공이 사방팔방으로 통통 튀기 시작했다.

“……! 그, 그걸 언제.”

아까 숙소에서 신유하가 그만 봐달라고 애원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에 올려뒀거든.

바로 몰래 챙겼지만 말이다.

심지어 신유하 패딩 모자에 넣어놨다.

끌려 나올 때부터 당황했는지, 눈치도 못 채던데.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강찬혁에게 노트를 건넸다.

“유하가 직! 접! 쓴! 작곡 노트입니다.”

강찬혁의 손에서 노트가 한 장 넘어감과 함께, 내가 붙잡고 있던 신유하가 그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아, 안 되는-!”

“대단한데요.”

둘의 목소리가 거의 동시에 맞물렸다.

말이 끊긴 신유하의 눈이 껌뻑여졌다.

“……네?”

“거짓말이 아니고요.”

강찬혁은 신유하의 작곡 노트를 계속해서 넘겼다.

흥미와 놀라움이 뒤섞인 얼굴이었다.

“전문적으로 배우신 적이 있으세요?”

나는 여기까지 신유하를 끌고 오며 대강 INT 프로듀서에게 배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캐냈다.

이미 과거에서 본 내용이지만, 흥미로운 얼굴로 잔뜩 물었지.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협박이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왜 굳이 그런 걸 물었냐고 한다면, 당연히 이러려고 였다.

“유하에게 듣기로 잠깐 몇 개월 배운 것뿐이랍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나는 뻔뻔한 낯짝으로 계속해서 나불거렸다.

“아, 아, 아니……!”

자신의 입을 거치지 않고 술술 나오는 정보에, 신유하의 안색이 허여멀건해지기 시작했다.

“놀랍습니다!”

강찬혁이 순수한 감탄을 내뱉으며, 신유하의 손을 붙잡았다.

“겨우 몇 개월로 이 정도라면, 제대로 배우기만 하면 일취월장하시겠는데요!”

눈이 커다래진 신유하가 눈을 껌뻑였다.

그리고는 시선을 아래로 피했다.

“제 곡은, 그 정도가 아닌…….”

역시, 그 새끼로 인해 작곡에 대한 자존감이 바닥까지 처박혀 있다.

오타쿠 자아가 실시간으로 이태오에 대한 살인 예고장을 작성하고 있었다.

이봐, 진정해라. 이해성.

내가 오타쿠 자아를 진정시키고 있을 무렵, 강찬혁이 건반 앞에 앉았다.

“아직 미완성인 것 같지만, 제가 한번 연주해 봐도 될까요?”

“아, 아니, 읍! 읍!”

고개를 도리질 치는 신유하의 입을 틀어막은 나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유하가 영광이라고 하네요.”

신유하의 배신당한 듯한 시선이 닿았지만, 나는 살며시 고개를 피했다.

그리고 연주가 시작되자,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성좌, ‘황금의 신’이 경악합니다!]

……그쪽도냐.

건반에 집중하고 있는 강찬혁은 아직 이 난장판을 목격하지 못한 것 같다만 말이다.

[성좌, ‘황금의 신’이 어서 아해의 등을 토닥이라며 성을 냅니다!]

말로만?

약속한 보상을 받을 때가 된 것 같은데.

슬슬…….

그렇지 않나?

내가 눈깔을 예의 없게 부라리자, 한참을 분노하던 성좌가 거래 보상을 내놓았다.

나는 떠오른 창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공상을 빚는 자의 발걸음]

성좌, ‘황금의 신’에게 요청하여 사용할 수 있는 꿈 개입권.

▲ 사용 시, 자동 소멸

내가 원할 때, 이 성좌의 권능으로 누군가의 꿈에 개입해 주는 것이다.

당장 쓸 일은 없다만, 생각만 해도 유용하지 않은가.

골드 몇 푼과 값어치 자체가 다르다.

히죽…….

신유하의 옆에 선 나는 어깨를 토닥이기 시작했다.

마음이 풍요로워지니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군.

♪─

그 순간, 건반에서 손을 뗀 강찬혁이 밝은 목소리를 냈다.

“정말 노래가 좋!”

하지만 이내 수상한 분위기를 깨달은 강찬혁의 고개가 점차 기울어졌다.

그렇다.

눈물범벅인 신유하의 얼굴을 마주한 것이다.

“에……?”

다소 멍청한 목소리를 낸 강찬혁이 고장났다.

“호, 혹시 제 연주가 너무, 안, 안 좋, 제가 너무 오지랖을.”

잊지 말자.

강찬혁도 신유하만큼이나 내성적이라는 걸.

신유하는 음소거로 눈물을 흘리면서도,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때다.

필사의 입 털기를 시전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내가 입을 털면 털수록, 신유하의 동그란 동공에 이채가 돌기 시작했다.

“해온 씨, 물 마시면서 말하세요!”

“……하아, 감사합니다.”

숨 쉴 틈도 없이 입을 턴 나는 마지막 말을 이었다.

“배울 거지?”

젖어 들어간 티슈를 손에 쥔 신유하가 마침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곱게 키운 자녀를 처음 학원에 맡기는 기분이군.

나는 인자한 얼굴로 녀석의 어깨를 그러쥐었다.

“그럼…….”

“……?”

“잘 배우고 와라.”

“……어, 어딜, 가, 가시는! 혀, 형……!”

나는 전력으로 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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