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14화
침착하자.
나는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창고?
아니다. 창고라기엔…….
아주 드넓은 공간이지만, 마치 창고를 흉내낸 느낌이다.
잡동사니 같은 게 존재하지 않거든.
납치인 건가?
……아니, 이것도 사실 말이 안 된다.
내 침대가 그대로 옮겨져 왔기 때문이다.
세상 어떤 납치범이 침대를 통째로 들고 튄단 말인가.
“…….”
나는 익숙한 이불을 움켜쥐었다.
몸통과 다리는 결박되어 있었지만, 팔만은 자유로웠다.
파악을 끝낸 나는 조용히 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철썩!
철썩!
철썩!
뺨을 3연속으로 갈겼다.
“아픈데?”
철썩! 철썩!
“확실히 꿈은 아니군.”
이게 개꿈 따위가 아니라는 확신을 얻었음에도, 나는 계속해서 뺨을 후려갈겼다.
이 정신 나간 상황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굳이 뺨을 후릴 것도 없이 매듭으로 묶인 발목이나, 잠옷이 약간 말려 올라가 맨살에 묶여 있는 허리가 X나 따가웠다.
“…….”
이쯤 되니 그냥 어이가 없어지는군.
나는 몸뚱어리에서 힘을 뺀 채, 침대에 몸을 맡겼다.
“음.”
일단 납치…… 라기엔 수상하지만, 납치를 당한 것 같은데.
골드 상점이라도 둘러볼 생각으로 시선을 정면으로 옮긴 순간이었다.
“자네, 오랜만이라네.”
“……허어.”
멍청한 소리를 내뱉은 나는 손가락으로 미간을 꾹꾹 눌렀다.
진정하자.
저 또라이한테 말리지 말자.
그러니까 지금 상황을 설명하자면…… 그래.
저 미친 성좌가 천장에서 대가리만 내밀고 있었다.
차라리 스스로의 시야를 차단하는 것을 선택한 나는 눈꺼풀을 내렸다.
그리고 나는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장 쪽에서 들리던 목소리가, 이제는 바로 옆에서 들리기 시작했거든.
“나를 봐주지 않을 생각인가?”
“예.”
“알겠네. 그럼 이 상태로 나가보겠네.”
“성좌님, 오늘도 정신이 나가셨나요?”
나는 곧바로 경악했다.
저 미친놈이 실오라기 하나 안 걸쳤단 말이다.
낯짝에 내 얼굴을 걸치고 말이다!
성해온의 얼굴을 한 성좌가 눈을 곱게 접어 웃었다.
“일단 아무거나 걸쳐주시겠어요.”
“설마, 내가 부끄러운 겐가?”
“아니요. 따지자면 제 사회적 체면 문제입니다. 이건 공연음란죄에 해당하는-”
아득한 낯짝의 내가 말을 잇는 와중에, 성좌가 내 말허리를 끊었다.
“생각보다 보수적이군.”
“성좌님이 생각보다 제정신이 아닌 것 아닐까요?”
“뭐, 자네가 원한다면.”
성좌의 손가락이 한번 까딱여짐과 함께, 자신의 취향인지 뭔지는 몰라도 온갖 화려한 보석이 박힌 옷이 입혀졌다.
“…….”
취향 참…….
“다시 벗을까?”
“엘레강스하십니다.”
“아무래도 그런 편이라네.”
화사하게 웃은 성좌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그 끈은 몸을 절단 내지 않는 이상 풀리지 않을 테니 애쓰지 말게.”
“…….”
“아아, 그런 얼굴은 조금 신경 쓰이는군.”
단숨에 내 지척으로 다가온 성좌가 말을 이었다.
“오늘과 같은 일은 이제 없을 거야. 내 약조하지.”
“이렇게 대뜸 납치하는 일 말씀이신가요?”
“납치라니, 당치 않은 말이니 표정 풀게. 내 자네에게 미움받는 건 내키지 않아서 말이야.”
“…….”
여기서 이게 납치가 아니면 뭐냐, 와 같은 상식적인 물음은 통하지 않을 게 뻔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야지.
“저도 하나 묻겠습니다. 오늘 이 정신 나간 짓을 하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그야, 확인해 볼 게 있어서 말일세.”
“……확인이요?”
“그래, 확인.”
눈을 휘어 접은 성좌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이런.”
“……!”
“살이 다 쓸리지 않았는가.”
손이 닿자마자 몸이 자연스럽게 굳어 들어갔고, 성좌가 답지 않게 차분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작정이라도 한 것이야?”
성좌의 손끝에서 하얀빛이 꽃봉오리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쓸려서 벌게진 피부가 역재생되듯……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자네는 오늘 하루 푹 쉬면 되는 걸세. 이 공간에선 피로도 느껴지지 않을 테니 말이야.”
……확실히, 듣고 보니 몸이 유난히 가볍다.
하지만.
“설마하니, 그런 개수작으로 얼버무리시려고요.”
나한테 통할 리가 없지.
내 험악한 낯짝을 본 성좌가 기다란 손가락으로 내 볼을 쓸어내렸다.
“내가 자네에게 해를 끼칠 만한 행동을 할 리 없지 않은가? 자네는 영특하니 알고 있을 텐데.”
“…….”
“확인을 마치면 곧바로 자네를 돌려보내 줄 테니, 걱정은 말고.”
무언가가 생각난 듯, 등을 돌렸던 성좌가 ‘아!’ 소리를 내며 상체를 돌렸다.
“아무리 오래 걸린대도, 음…… 인계의 시각으로 해가 지기 전에 자네를 돌려보내 주겠네.”
샐쭉 웃은 성좌가 손가락을 허공에서 빙글 돌리자, 톱으로 썰어도 끊기지 않을 것만 같던 매듭이 모래처럼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자네가 묶여 있을 거라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려서 도저히 떠날 수가 없어서 말이야.”
어쩌라고…….
내 눈깔에서 안광이 사라지고 있을 무렵, 성좌가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어련히 잘 알 거라 생각하지만, 여기선 어떤 귀여운 짓을 해도 그다지 쓸모가 없을 거라네. 괜히 아까운 짓 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걸세.”
한마디로 골드 낭비하지 말라는 거다.
“그리고 여기 위치, 자네는 모르지? 서울 한복판일지, 아님 자네의 회사일지…… 지금은 내가 자네의 얼굴을 하고 있으니, 사진이라도 찍히면 참 흥미로울 것 같지 않나~”
나올 생각은 말라는 뜻이군.
“하지만 자네의 비상하고 깜찍한 머리 때문에 영 불안하군.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말끝을 흐린 성좌가 눈을 내리깔며, 손가락을 작게 튕겼다.
타악!
동시에…….
내 안광이 빠르게 메말랐다.
내가 입고 있던 잠옷이 저 성좌에게 옮겨진 것이다.
당연히 나는 실오라기 하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곧장 이불을 몸에 칭칭 감은 내가 시선을 올리자, 내 얼굴을 한 성좌가 씨익 웃으며 다가왔다.
“뭐 하는……!”
“쉿.”
내 손등을 가져가, 본인의 이마에 가져다 댄 성좌가 무어라 중얼거리자, 거대한 빛이 공간을 휘감았다.
“귀찮은 놈들이 눈치라도 채면 곤란하니.”
“음. 이제 정말 가봐야겠군. 자네가 심심할 수도 있으니…….”
내가 무언가 되물을 틈도 없이, 성좌가 손짓하자.
타앗!
허공에 커다란 프레임, 그러니까 반투명한 느낌의 네모난 화면이 생겨났다.
그리고 내 낯짝은 심각할 정도로 흐려졌다.
첫 번째 이유는, 내 눈앞에서 있던 성좌가 눈 깜짝할 새에 사라졌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그 사라진 인영이 내 눈앞에 둥둥 떠다니는 화면 속에 있기 때문이다…….
세상 어떤 납치범이 사람을 납치해 놓고 심심할까 우려된다며,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단 말인가.
나는 화면 속 침대와, 내가 누워있는 침대를 번갈아 바라봤다.
능력으로 똑같이 만들어낸 건지, 뭔지는 몰라도…… 숙소에 침대가 사라졌다거나 하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다.
숙소, 그러니까 내 방은 그대로라는 뜻이다.
그리고.
내 얼굴을 한 성좌는 내 이불 속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동태 같은 눈깔로 그것을 얼마나 바라보고 있었을까, 룸메이트인 신유하가 눈을 떴다.
그리고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며, 물음표를 띄웠다.
“……?”
그도 그럴 게, 신유하는 계속해서 잠든 내 곁을 맴돌고 있었다.
그것도 홀로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 깨울, 아, 아니야……! 조금이라도, 더 주무시게, 이따가 깨워드려야, 겠다! ]
[ 하지만 슬슬, 스케줄이…… 아, 아냐. 조금 더, 쉬셔야……. ]
“그냥 깨우면 될 걸, 뭐 저렇게 안절부절…… 흠.”
말을 잇던 도중에 어떤 사실이 뇌리에 강렬하게 스친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바로 어제.
내가 신유하를 강찬혁한테 던지고 도망쳤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양심이 찔리는군…….”
늦은 점심을 먹자마자 기절하듯 잠에 빠져든 탓에, 돌아온 신유하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신유하가 서성일 땐 가증스럽게 자는 척을 하던 성해온이 눈꺼풀을 떠올린 것도 그 무렵이었다.
[ ……하암? ]
“하암은 무슨 하암이야, X발.”
누가 봐도 가짜 하품을 하는 꼬라지도 어이없을뿐더러…….
스스로도 이게 맞나, 싶었는지 물음표로 끝나지 않았어?
[ ……! 일어, 나셨어요! ]
내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신유하가 다가왔다.
“음.”
신유하가 아무리 순둥이여도, 솔직히 냅다 던지고 튄 것에 대해 짜증은 낼 줄 알았는데 말이다.
저건…….
부정적인 감정 따윈 전혀 섞이지 않은 얼굴이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프레임 속, 성해온의 입이 열린 것이다.
[ 피곤한데, 나중에 말할까. ]
내 모든 것을 걸고 확신하겠다.
척 봐도 자신이 대답하기 곤란한 상황이 연출될 테니, ‘진짜’ 내 몸이 돌아오면 이야기하라는 심산이 틀림없었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신유하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네! 좋, 아요! ]
좋긴 뭐가 좋아?
하여튼간에, 순해 빠져 가지고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화면 속 성해온의 눈이 데굴 굴려지더니, 그 시선이 정확히 나를 마주한 것이다!
신유하를 앞에 둔 성해온의 입이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곤 입 모양으로 내게 메시지를…….
잘했나?
……실시간으로 혈압이 치솟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혈압 상승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 어라? 어라? 어어라아? 이 형 왜 이렇게 오늘따라 안광이 있지이이? ]
스케줄을 위해 주차장으로 향하는 와중에, 최승하가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 뭐지? 이상하게 생기가 넘치는데? 오늘따라? ]
[ 내가? ]
성해온의 되물음에, 최승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 네! 다크서클도 좀 줄어들었고, 흐음……. ]
최승하의 눈이 성해온을 순식간에 훑었다.
[ 오늘 컨디션이 유독 좋은가? ]
[ 많이 자서 그런가 보지. ]
[ 와하하, 형은 맨날 재워야겠다! ]
화면을 살피던 내 낯짝에 의문이 감돌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내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해 내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수상한 행동을 해봤자, 낯짝이 나인데 의심을 얼마나 받겠는가.
하지만, 의외로 눈치 빠른 녀석들이 많다는 게 문제다.
예를 들면, 저 녀석 말이다.
[ 같이 갑시다~ ]
밴은 곧 라디오가 진행되는 방송국에 도착했고, 최승하가 뒤에서 달려와 내게 업히듯 치댔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최승하의 눈이 커졌다.
[ 와! 내가 무슨 짓을! 이러면 형 쓰러지는데?! ]
……무의식적으로 뛰어든 모양.
내가 개복치 새끼가 된 이후, 어깨에 팔을 걸치는 것만으로도 휘청댔으니 저럴 만도 하다.
[ 형님은 지금 살인(?)을 저지를 뻔하셨습니다! 어서 사과하십시오! ]
“…….”
나는 보기만 할 뿐인데, 왜 비참해지는지 모를 일이군.
최승하는 내 몸 구석구석을 살피며 난리브루스를 떨기 시작했다.
[ 형, 괜찮은 거 맞아요? 진짜로? 으아, 미안해요. ]
[ 괜찮아. ]
평소였다면 최승하의 등짝을 후려갈기며 저리 가라고 했을 성해온이 눈을 곱게 포개 접자, 멤버들이 경악하기 시작했다.
[ 으에에에에에에? ]
[ 예에에에에?! ]
“……아주 합창을 하는군.”
내 낯짝이 점차 칙칙해지기 시작했다.
휙, 휙!
주변을 빠르게 살핀 차윤재가 작게 속닥였다.
[ 형님! 여기 카메라 없습니다! ]
[ 나도 알아. ]
[ ……허어어억! ]
귀신이라도 본 듯 놀란 차윤재가 펄쩍 뛰며, 류인의 옷자락을 흔들었다.
[ 오늘 저, 저 형님이 어디 아프신 게 분명합니다! 눈빛이 너무 다정합니다! ]
“…….”
라디오 시작 전부터, 강렬한 불안함이 엄습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