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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220화 (220/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20화

한나절의 배려가 있었을 뿐, 충돌은 어제부터 시작된 거다.

즉, 오늘은 충돌 2일 차.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껌뻑였다.

“아…….”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군.

숙소에서 나오길 잘한 거다.

이 꼴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여기서 괜찮은 척까지 하는 건 무리였을 테니까.

나는 눈을 데굴 굴려 방을 살폈다.

남들은 들어오자마자 땀을 흘릴 정도로 방 온도를 설정해놨다.

그럼에도.

“추워…….”

나는 덜덜 떨리는 몸을 웅크리며,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 올렸다.

거기에다가, 아직까지도 속이 엉망이다.

‘토하다가 기절하기를 얼마나 반복했는지도 모르겠군.’

넥타르 포션이 간절하다만, 안타깝게도…… 그걸 펑펑 마실 만큼 재정이 여유롭지 않아서 말이다.

이렇게 혼자 있을 땐, 뒈지게 아파도 참아야 한다는 뜻이다.

“진짜, 뒈지겠네…….”

다시 구역질이 올라오는 탓에 침대에서 발을 뗀 순간이었다.

어라.

……털썩!

“…….”

굉장히 비참해지는군.

방금의 상황을 설명하자면,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바닥에 주저앉았다.

난 태어난 지 21년이나 됐는데도.

X발…….

강렬한 현타를 맞은 낯짝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하긴, 아무것도 안 처먹고 밤새도록 구역질이나 해댔는데 멀쩡할 리가 없지.

내가 필사적인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지이잉-

내 시선이 계속해서 울리고 있는 스마트폰에 닿았다.

사실 기절을 반복하다 보니 제정신을 차린 건 얼마 안 된다.

부재중이 수십 통 쌓여 있는 걸 보고 얼마나 기겁했는지.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2~5통씩 걸어젖혔더라.

나는 스마트폰에 시선을 두다가, 이내 거뒀다.

연락은 한번 할 생각이다.

그렇긴 한데, 지금은.

“읍…….”

그럴 정신이 없거든.

* * *

“와아, 이 형~”

최승하가 손가락으로 쪽지를 탕탕 두드리자, 한수현이 소중하게 보관하던 편지지를 꺼냈다.

그렇다.

퀘스트 보상이었던 골드를 얻겠답시고, 멤버들에게 자필 편지를 작성했던 때의 잔재다.

“해온 형 필체가 맞아요.”

두 종이를 유심히 번갈아 보던 한수현의 결론에, 신유하가 끄덕였다.

“어제, 형이 혼자 뭘 쓰고 있었는데, 이건 가, 봐…….”

그와 동시에, 멤버들의 시선이 쪽지에 닿았다.

“계속 보다 보니,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분기탱천한 차윤재가 쪽지를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공백기를 즐기러 떠난다. 스케줄엔 알아서 참석할 테니까 걱정 말고…… 호, 호,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생각이니 연락하지 말라니! 으윽!”

텍스트를 입에 담을수록, 차윤재의 머리에 혈압이 쏠리기 시작했다.

“윤재야, 숨 쉬어.”

“예!”

류인이 건넨 물을 한 모금 마신 차윤재가 쪽지를 마저 읽어내렸다.

“너희도 공백기를 즐겨. P.S…… 노는 건 좋지만 이성과는 안 돼. 사진이라도 찍히는 날엔 너희를 굴비처럼 엮어 숙소 천장에 매달 테니 알아서들 처신하도록.”

“…….”

“…….”

“…….”

거실에 있는 이들의 입이 동시에 다물렸다.

그렇다.

이건 너무나도…….

“해온 형답네요.”

성해온다웠기 때문이다.

“두 번만 더 해온 형님 다우면 큰일 나겠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일언반구도 없이 나가실 수 있단 말이야!”

차윤재가 씩씩거리며 한수현에게로 시선을 보냈다.

“너는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

한수현의 담담한 목소리만을 듣고, 무어라 말을 이으려 한 차윤재가 다급하게 말을 비틀었다.

“……지 않구나!”

그도 그럴 게, 한수현이 홀로 우중충한 기운을 내뿜으며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한 법이죠. 아무리 가족 간이어도, 혼자만의…… 네, 가족 여행은 계획할 게 많으니 이렇게 훌쩍 떠나는 여행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딜 가는지 정도는 저희에게 알려주셔도 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수현아, 혹시 삐진, 음…… 서운한 거야?”

류인의 물음에, 한수현이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가족의 여가생활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속이 좁은 사람은 아닙니다. 물론, 말씀을 해주시고 가셨다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절대 서운한 건 아닙니다.”

네 남자의 시선이 한수현에게 닿았다.

그들의 생각은 전부 일치했다.

삐졌네…….

그렇다.

한수현은 삐졌다.

하지만 한수현만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었다.

다른 멤버들까지 은근하게 삐진 티가 나고 있었다.

그래, 한마디로 라이트온의 숙소는 지금 칙칙한 공기가 가득…….

“아이고~ 어둡다! 그만, 그만~!”

칙칙한 기운을 손으로 휙휙 거둬낸 최승하가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시작했다.

“흐음, 다들 전화해도 안 받죠?”

“예! 저는 네 통째인데, 한 통도 받지 않으십니다!”

“나도 두 번 전화했는데, 음…… 안 받네.”

“으으음~”

소파에 앉아 기다란 다리를 꼰 최승하가 무언가 떠올렸다는 듯이 하핫, 웃고는 손을 내밀었다.

“수현아, 스마트폰 좀.”

“네.”

한수현은 별말 없이 스마트폰을 내밀었고, 최승하는 무어라 메시지를 써 내려갔다.

* * *

그 시각, 성해온은.

‘침대 옆에 바로 욕실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딴 쓸데없는 생각뿐이었다.

게워내러 몇 걸음 걸을 힘도 없는 상태기 때문에.

‘정말 쓸데없이 큰 룸이군.’

말린 나물 같은 낯짝으로 이불을 끌어 올린 내 시야에 반짝이는 스마트폰이 들어왔다.

이번엔 문자였다.

백 통을 보낸대도, 지금 당장 답장할 기력은 없…….

없…….

“정신이 번쩍 드는군…….”

문자를 확인한 나는 자그맣게 중얼거리며 화면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해온 형, 전화를 받지 않으시니 진심으로 걱정됩니다. 혹 무슨 일이 생기신 건 아닐지 우려되기도 하고요. 계속 연락이 안 된다면, 회사에 이 사실을 알리고 경찰에 신고하려합니다.]

“…….”

문자 메시지를 읽어낸 내 낯짝이 눅눅해지기 시작했다.

발신인이 한수현이라는 게 무척 중요했다.

이 녀석은 한다면 하는 녀석이었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쉰 나는 거울로 시선을 옮겼다.

“못 봐주겠군.”

내내 앓았더니, 꼴이 말이 아니다.

이 녀석들은 분명 영상통화를 요구할 텐데.

나는 30분만 기다리라는 문자를 남기고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그나마 봐줄 만한가.”

샤워를 하고 나왔더니, 생기가 조금 도는 것 같기도 하군.

‘멀쩡할 때 해치워야지.’

나는 곧바로 영상 통화 버튼을 눌렀다.

[ 혀, 혀, 형니이이임! 저, 정말 형님이십니까! ]

“……너희 뭐 하냐.”

[ 아니, 들어보십시오! 이 형님이 수현이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내면 형님이, 읍, 읍! ]

영상통화 화면에서, 최승하가 차윤재의 입을 틀어막았다.

“얼굴 보여줬으면 됐지? 끊는다.”

[ 와하하, 잠깐만요! 바로 끊는 게 어딨어요, 스탑, 스탑! ]

나는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머리 울리니까 한 명씩.”

[ 저, 저부터……! ]

가장 먼저 나선 건 신유하였다.

[ 형, 어디에 가신, 건지…… 말씀도 없이 가셔서 놀, 랐어요. ]

“쪽지 놓고 갔는데.”

내 말과 동시에.

터업……!

영상통화 속, 멤버들이 뒷목을 부여잡았다.

[ 아니이이! 이 형님은 대체 뭐가 문제입니까! 세상에 쪽지 하나 덜렁 남겨놓고 가는 사람이 어딨답니까! ]

[ 윤재야, 진정해. 진정해. ]

[ 류인 형님은 절 진정시킬 게 아니라 저 형님을 나무라십시오! 동년배 아닙니까! ]

차윤재가 류인을 질책하자, 머뭇거리던 류인이 화면에 얼굴을 가까이했다.

[ 음, 해온아. 혹시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거야? 공백기니까 여행은 떠날 수 있지만, 말없이 떠난 게 조금 불안해서. ]

“아, 이유.”

나는 흠, 소리를 내다가 말을 이었다.

“없는데. 그냥 조용히 누워 있고 싶어서.”

터업……!

내 말과 동시에 화면 속 멤버들이 다시금 뒷목을 부여잡았다.

그 순간, 스마트폰을 넘겨받은 건 최승하였다.

[ 그리고 형 지금 흐음, 침대 보니까 호텔? ]

사실 부모님을 뵈러 본가에 간다고 둘러대는 게 베스트였을 거다.

공백기에 숙소를 벗어나 장기외박하기 가장 좋은 핑계 아닌가.

나도 마음 같아선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 싶었다만, 차윤재는 내가 고아인 걸 알고 있으니 기각이다.

괜히 본가에 간다고 하면, 그 녀석 성격에 안절부절못해하며 함께 있어주려 할 게 뻔하지 않은가.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동료애란 그런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니 차라리 당당하게 나가야 한다.

원래 헛소리는 당당하게 내뱉어야 ‘그런가?’ 싶어지는 거거든.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뒷목을 문지릅니다!]

아주 뭐만 하면 뒷목을 부여잡는군.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호텔.”

[ 해온 형, 혹시 그 호텔의 위치를 여쭈어봐도 될까요? ]

나는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이름하여, 못 들은 척이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동료애를 중얼거립니다!]

“하아암…….”

[ 졸립지도 않으시면서 갑자기 하품하지 마십시오! ]

“내일 스케줄은 제시간에 나갈 거니까, 너희도 내 걱정 그만하고…… 어라, 눈이 감기네.”

내가 가증스럽게 눈을 감자, 수화기 너머에서 경악하는 멤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쿨쿨…….”

[ 해온이 잘 자네. ]

[ 그렇긴 합니다, 가 아니라! 세상에 그 누가 입 밖으로 쿨쿨댄답니까아! ]

눈을 가느다랗게 떠 올린 나는 슬슬 끊을 각을 재기 시작했다.

몸이 이상해지기 시작해서 말이다.

“눈치가 빠르네. 아, 맞다. 끊기 전에 할 말이 있었는데.”

싱긋…….

나는 옅게 미소지으며, 화면에 얼굴을 가까이 대보라는 듯 손을 파닥였다.

멤버들은 순진하게도 얼굴을 가져다 댔고, 나는 쪽지에도 썼던 내용을 속닥였다.

“이성은 안 돼…….”

여태껏 지켜본 바로, 이 녀석들은 이성의 이응 자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이건 몇 번을 세뇌해도 모자람이 없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 해온아, 정말 나는 관심이 없어……. ]

[ 맞습니다! 마, 만날 생각도 없습니다아아! ]

[ 정, 말……! ]

좋은 태도로군.

멤버들의 황당하다는 얼굴에, 인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나는 손을 두어 번 흔들었다.

“자야겠다.”

-라는 말을 남긴 나는 통화 종료 버튼을 꾹, 눌렀다.

* * *

뚝-

스마트폰을 들고 모여 있던 멤버들의 얼굴이 멍해졌다.

“끊, 겼다…….”

신유하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차윤재가 씩씩대기 시작했다.

“이 형님은 틈만 나면 이러십니다! 이성은 생각조차 없는데요!”

“오히려 해온 형다우신 겁니다. 이런 문제는 사전에 차단하시겠다는 거죠.”

“하하, 해온이답긴 해.”

작게 웃음을 터뜨린 류인의 안색이 조금씩 미묘해졌다.

“조금 많이 해온이다워서 문제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문자가 왔어요.”

한수현이 운을 뗌과 동시에 멤버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내가 그리우면 내 침대에서 자든가]

[아]

[휴가 동안은 전자파를 멀리하려고]

“형님들, 전자파를 멀리하겠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하핫! 무슨 뜻이긴~?”

짧게 웃은 최승하가, 소파 팔걸이를 불규칙적으로 두드렸다.

“이제 연락 안 받겠다는 뜻이지.”

* * *

“타이밍 한번 끝내주는군.”

나는 영상통화를 끝내기 무섭게 코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얼마나 쏟아지는지, 코를 막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린 피가 하얀 이불 위로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피 칠갑 된 낯짝을 씻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9일간의 예약을 통으로 해놨으니, 침구는 교체해 달라고 해야겠는데.

“내일 나갈 때.”

지금은 씻으러 갈 기력도 없어서 말이다.

호텔 직원이 이 꼴을 보면 기절하실 거다.

그뿐인가, 바로 119에 신고하실걸.

연예 1면에 내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붙을 거다.

‘상상만 해도 아찔하군.’

나는 그대로 눈꺼풀을 내렸다.

* * *

“절경인데.”

새벽에 눈을 떠 피 칠갑 된 낯짝을 마주한 감상이다.

하지만 감상을 이어나갈 여유도 없었다.

나는 곧바로 상체를 숙여 세면대를 부여잡았다.

먹은 것도 없는데, 빌어먹을 속은 진정될 줄을 모르는군.

내 눈이 조금 커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

투명한 위액에, 피가 섞여 나온 것이다.

‘……여태껏 이런 적은 없었는데.’

곧바로 입가를 닦아낸 나는 샤워기를 틀었다.

그래.

오늘은 충돌 3일 차.

그리고, 스케줄이 있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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