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22화
짧은 비디오 형식의 숏폼이 전성기를 맞으며, 덩달아 급부상한 컨텐츠가 하나 있다.
바로 댄스 챌린지.
이것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냐면, 아이돌들이 신곡을 준비할 때 일부러 이 챌린지에 쓰이기 좋은 안무를 넣을 정도다.
그만큼 댄스 챌린지의 유행은, 대중성을 이끄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거든.
그런데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그래, 의외의 이득을 본 그룹이 하나 생긴다.
……바로 우리다.
<무지갯빛 세상> 댄스 챌린지가 생각지도 못한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편곡의 분위기도 그렇고, 안무 역시 하이틴 느낌이 잔뜩 배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게 요즘 트렌드를 저격한 모양이다.
원곡 자체의 인지도는 말해 뭐 해 수준이니, 화력은 더더욱 거세졌고 말이다.
심지어 아티스트들이 그 유행에 불을 지펴주기 시작했다.
이전 세대 가수의 노래를 재해석해 소화하는 후배 가수!
-라는 주제가 다른 아티스트들에게도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온 모양이지.
내가 본 아티스트들의 영상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리고 그걸 마주한 내 심정은.
‘솔직히 떨떠름하다.’
……글로벌에 먹힐 건 예상했다지만, 이런 식으로 유행을 타게 될 거라곤 생각 못 했거든.
뭐, 덕분에 공중파 프로그램 단독 출연도 해보는군.
나는 시선을 들어 올렸다.
<한밤의 토크>
진행을 도맡는 메인 MC는 셋.
사실 토크쇼가 재밌어 봐야 얼마나 재밌겠는가?
그런 이유로 시청률도 그닥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중요한 건 우선 공중파라는 점.
공중파는 밥이 되든 죽이 되든 도움 되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이건 SBC 최장수 프로그램 중에 하나거든.
여느 TV 프로그램이 그렇듯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만, 원래는 대중들에게 아주 익숙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엔 화제성 몰이용으로 종종 아이돌 그룹이 단체출연한다.
다만, 인지도 있는 아이돌 위주로.
내가 운이 좋다고 말한 것도 이래서다.
까놓고 말하자면, 우리 섭외는 땜빵인 걸로 추정된다.
정말 급하게 들어왔거든.
아마 갑작스레 펑크 난 스케줄에 멘붕이 온 제작진들이 화제성도 괜찮겠다, 급하게 섭외를 찌른 거겠지.
“오늘의 게스트는, 아~ 요즘 화제인 분들을 모셨습니다.”
아나운서 출신 MC가 오프닝 각을 잡기 시작했고, 나는 낯짝에 생기를 들이부은 채 손뼉을 맞부딪히기 시작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의 가식적인 얼굴을 지적합니다!]
이런, 하마터면 메시지를 보자마자 눈깔이 흐릿해질 뻔했다.
이어지는 성좌의 메시지를 한 눈으로 흘린 나는 자세를 바로 했다.
참고로 이 프로그램은 잔잔한 분위기다.
이전에 출연했던 예능인 <우리 학교에 어서 와>는 타깃층이 명백한 젊은 층이다.
그렇기에 온갖 개그와 개드립이 난무했지만, 이 프로그램은 그 반대라고 할 수 있겠다.
“둘, 셋! 안녕하세요. 라이트온입니다!”
우리는 반 원형으로 길게 이어진 소파에 주르륵 앉아 인사했다.
본격적인 토크쇼의 시작이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우리의 대본은 얼추 정해져 있지만 MC들이 우리에게 건넬 질문은 사전에 공유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뭐…… 질문의 답을 미리 준비해 오면 재미가 살지 않는다고 하던데.
하지만 우리의 신세는 명훈이의 아이들, 긴장할 수밖에 없는 서글픈 현실이라 할 수 있겠다.
“아~ 우리 라이트온, 보니까 소속사가 특이해요. 배우 소속사!”
나는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대가리로는 저 인간이 무슨 말을 이을지 팽팽 굴리고 있다만.
“MH! 배우 좋아하신다면 아실 수밖에 없는 기획사죠.”
“맞습니다. 멋진 배우 선배님들이 많으세요.”
“하핫, 맞아요! 진짜 잘생기셨고!”
최승하가 내 멘트를 유연하게 받아치자, 개그맨 출신 MC가 연계 질문을 날렸다.
“그럼 그 소속사의 1호 아이돌?”
차윤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저희가 첫 번째입니다!”
“오오, 회사의 안목이 엄청나신데요, 어떻게 처음부터 이 멤버를 모으셨담?!”
내 말이.
명훈이가 금단의 흑마법에 손을 댄 건 아닐지, 진지하게 의심되는 바다.
내가 쓰잘데기 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을 무렵, 개그맨 출신 MC가 눈을 빛냈다.
“서유현! 그래, 서유현 씨가 MH잖아요!”
서유현.
MH의 간판 배우이자, 현재 업계에서 가장 높은 주가를 올리고 있는 20대 배우.
첫 필모그래피가 무려 유찬식 감독의 영화다. 주연급 임팩트를 가진 조주연으로 캐스팅된 걸로 모자라, 대박까지 터뜨리며 배우 인생의 시작점부터 레드카펫이 깔렸다.
눈길을 끌 수밖에 없는 단정한 외모와 연기 실력을 지니고 있으니 처음이 뭐였든 간에 인기를 얻었을 테지만, 처음부터 꽃길이 깔렸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멤버들이 서유현과 관련된 일화를 풀기 시작했다.
참고로 나는 서유현을 마주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멤버들은 오다가다 한 번쯤 마주친 적이 있는 것 같더라고.
“정말, 친절하세요……!”
신유하의 멘트에 류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항상 먼저 인사해 주시고.”
아. 서유현에 관련된 분량은, 프로그램 측에서 주문한 거였다.
라이트온만으론 인지도가 딸리니, 초반부터 서유현 언급으로 관심 붙잡기라고나 할까.
이 프로그램의 시청 연령대는 폭이 무척 넓다.
이게 무슨 뜻이냐 묻는다면, 아이돌보단 배우 쪽이 시청자층에게 어필하기 좋다는 거지.
하물며,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그 서유현이지 않은가.
“서유현 씨는 예능 출연 안 하는 걸로 유명하잖아요~ 라이트온이 언제 한번 설득해 주세요. 하하!”
아나운서 출신 MC가 장난기가 그득 담긴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주제를 넘기려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그 시동을 막은 이가 있었다.
개그맨 출신 MC였다.
“근데 배우 소속사라 그런가? 비주얼이 남달라. 다들 얼굴로, 응? 길거리 캐스팅당한 거 아니에요?”
말이 경솔하시군.
녹화라 망정이지, 생방송에서 방금과 같은 발언을 내뱉었다면 눈물겹게 얻어맞으셨을 거라고 확신하겠다.
비주얼 칭찬은 좋다만, 실력을 폄하하는 칭찬은 안 하느니만도 못하거든.
‘아마 편집되겠군.’
벌써 눈치 빠른 아나운서 출신 MC가 수습 중이었다.
“그만~ 큼! 잘생겼다는 거지. 라이트온 실력으로도 유명한 거 전 알거든요.”
말을 마친 아나운서 출신 MC가 한 노래를 흥얼대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무지갯빛 세상>이었다.
“맞아, 이 노래 요즘 다시 역주행하더라고요? 심상치 않게 들리던데?”
1세대 아이돌 출신인 MC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짜 맞춘 듯 아나운서 출신 MC가 입을 열었다.
“예끼, 이 사람이 유행에 뒤처지네. 그 이유가 뭔 줄 알아요? 여기 이 친구들이 그 노래를 재해석해서 화제가 된 거거든!”
“좋은 곡으로 무대를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한수현의 말에, 멤버들이 고개를 위아래로 주억거렸다.
“맞아요! 사실 이미 너무 유명한 곡이니까, 저희도 걱정이 많았거든요. 원곡에 폐가 되면 안 될 텐데…… 하면서요. 그래서 멤버들이랑 몇 번을 뒤엎었는지-”
최승하가 자연스럽게 오프더레코드를 풀기 시작했고, 나는 작게 감탄했다.
대본에서 지시된 사항이었지만, 멘트 자체는 애드립이거든.
‘확실히 눈에 띄는군.’
말을 잘하는 건 둘째치고, 적정선을 정확히 알고 있다.
나는 개그맨 출신 MC를 힐끔 응시했다.
예능에서 수십 년을 굴러먹은 저 인간조차 말실수를 밥 먹듯이 하는데, 이 녀석은 그런 게 없다.
“그 노래를 원래 좋아하세요? 신기하다! 엄청 옛날 노래잖아요.”
1세대 가수 출신 MC의 질문에, 나는 곧바로 입을 털기 시작했다.
내가 원곡에 대한 존경을 가득 담은 칭찬을 술술 불자, MC들의 얼굴에 약간의 당황이 스쳤다.
“저희도 언젠가 이런 곡을 내는 게 꿈입니다. 그러니 저희로서는 너무 존경스러운 선배님이신 거죠.”
겸손한 후배의 정석인 낯짝을 걸친 내가 마지막 말을 덧붙이자, 묘한 얼굴의 아나운서 출신 MC가 입을 열었다.
“아니, 해온 씨는 어떻게 말을 잘해요? 다음에 이거 있는 거 몰랐을 텐데?”
“……?”
다음에 뭐가 있는데?
내가 물음표를 띄운 순간이었다.
파앗-!
갑작스럽게 스튜디오의 가운데에 위치한 모니터가 켜진 것이다.
그 모니터에 등장한 건…….
오.
화제성 몰이용으로 원곡자를 미리 섭외했다라.
현명한 전략이군.
“……!”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차윤재였다.
무의식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차윤재에, MC들이 폭소했다.
칠링의 팬이냐는 물음이 나오기 무섭게, 차윤재가 고개를 위아래로 붕붕 흔들었다.
“다, 당연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노래, 아니, 좋아하던 선배님입니다!”
“눈빛에서 진심이 느껴지네요.”
[ 안녕하세요. 이거, 조금 쑥스럽네요. 카메라 앞에 나서본 게 얼마 만인지. ]
남성 2명, 여성 2명.
혼성 그룹이었던 칠링이 화면 속에서 약간 쑥스러운 얼굴로 인사했다.
[ 오늘 이 방송에 라이트온 친구들이 나온다고 들었어요. 저희는 사실 방송 출연을 다 거절해 왔는데…… 허허, 이건 꼭 하고 싶더라고요. ]
“……!!”
멤버들의 얼굴에 감동이 일렁였다.
그도 그럴 게, 칠링은 여러 히트곡의 인지도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방송에 얼굴을 내밀지 않았거든.
듣기로 중장년층을 타깃으로 한 추억의 음악 프로그램에서 몇 번을 섭외해도, 다 걷어찼다던데.
그런 이들이 우리의 출연 소식을 듣고 영상을 찍어줬다니, 이 녀석들이 감동할 만하다.
아.
물론 내 낯짝도 그렇게 만들었다.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건조한 낯짝을 들이밀었다가는 곧바로 인성 논란 하이패스 루트다.
미치지 않은 이상, 표정 관리 잘해야 한다.
반짝반짝……!
툭 치면 눈물이라도 쏟을 것같이 눈깔에 과한 생기를 주입한 나는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라이트온이 재해석한 무대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냐는 작가의 물음에, 칠링이 입을 열었다.
[ 젊은 친구들이 하니까 일단 새로웠죠? ]
[ 그렇지. 사실 그 소속사에서 미리 허락을 구해오셔서, 공연을 할 거란 건 알고 있었어요. 저는 자식들이랑 같이 보고 있었는데, 애들이 아빠 노래 맞냐고 하던데. 하하하! ]
[ 특히 그 보컬 친구, 고음. 난 진짜 보면서 놀랐어. 어우…… 요즘 친구들은 다 그렇게 재능 있는 거야? ]
[ 아냐, 그 친구가 진짜 남다른 거지. ]
“……?”
갑작스러운 금칠에, 당황도 잠시.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낯짝으로 감격하자, MC들이 흐뭇한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 젊은 친구들이 우리의 곡을 계속해서 이어나가 주는 거잖아. 이것만큼 즐거운 게 어디 있을까? ]
모니터 속 칠링이 훈훈한 말을 내뱉을 때마다, 차윤재가 울망한 얼굴로 몸을 들썩였다.
훌륭한 리액션이군.
나는 곧장 차윤재의 리액션에 합류했다.
앞으로도 우릴 응원하겠다는 칠링의 영상 편지가 끝나기 무섭게, 아나운서 출신 MC가 입을 열었다.
“오? 오오? 라이트온 얼굴 좀 봐! 올망졸망! 감동 잔뜩 받았나 본데요?”
내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 들어갔다.
……온몸의 신경줄이 바짝 얼어붙는 느낌.
동시에 내 동공이 순식간에 확장되고 있음이 느껴진다.
나는 가슴께를 부여잡으며 숨을 크게 들이켰다.
새로운 충돌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