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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223화 (223/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23화

심장이 멎어버리기라도 할 것 같은 통증에, 나는 숨을 멈춘 채 사정없이 떨리는 동공을 붙잡았다.

[넥타르 포션(1%)]이 활성화됩니다!

나는 입술을 짓씹었다.

여태껏 겪지 못했던 종류의 통증이다.

만능은 아니더라도, 여태껏 포션을 사용했을 때 최소한 반나절은 통증이 가셨다. 그동안은 아프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은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즉, 이 포션이 효능의 범위를 크게 상회하는 통증이라는 의미다.

……얼마나 큰 충돌이기에?

손아귀가 식은땀으로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스튜디오 분위기가 조용해진 게 느껴진다.

침착하자.

곧바로 포션을 복용했고, 별다른 티를 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멘트를 하려던 놈이 갑자기 멈칫하니, 다들 내게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웃어.

웃어야 한다.

입꼬리를 자연스럽게 끌어당긴 나는 곧바로 가슴팍에 올렸던 손을 갈고리처럼 휘며 옷자락을 틀어잡았다.

“……감동입니다.”

이딴 단편적인 말 말고.

제대로 된 말을 이어.

나는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대가리를 재촉했다.

“정말 상상치도 못했던 거라, 아직도 꿈같아요.”

한 글자를 내뱉을 때마다, 목소리가 얕게 떨려 들어갔다.

……이건 내가 애쓴다고 해결되는 부분이 아니었다.

낭패라고 생각한 순간, MC들이 알아서 핑계를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떨릴 정도로 감동인 거에요? 히야, 우리 작가진들 뿌듯하겠는데?”

“난 처음에 무슨 일 난 줄 알았잖아!”

“이 친구가 예능을 좀 아네. 밀고 당기는 실력이 있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다시 돌아왔다.

아, 다행히 낯짝 관리는 잘된 모양이지.

멤버들 역시 아리송한 얼굴이었다.

이 녀석들은 내가 프로그램 등지에서 가식 떠는 걸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그러니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는 거다.

진행이 이어지던 그 순간이었다.

“저, 혹시 잠깐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요?”

최승하가 방긋대며 건의하자, MC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오우, 당연히 되지! 나도 마침 화장실 가고 싶었어.”

촬영에 들어가기 전, 스태프들에게 전달받은 사항이 있었다.

스트레이트로 촬영할 수도 있지만, 한두 번은 쉬어 갈 수 있으니 편하게 말하라는 것이었다.

최승하는 지금 그걸 써먹은 거고.

나는 켕기는 게 있으니 입을 다물고 있었다만, 바라던 것이었다.

“그럼 저도 잠시.”

고개를 꾸벅인 나는 곧장 촬영 스튜디오 바깥으로 발을 내디뎠다.

……바람이라도 쐬야 제정신이 들 것 같아서 말이다.

바깥으로 나가자, 칼바람이 머리칼을 흩날렸다.

평소 같았으면 이 추위에 몸부터 미친 듯이 떨렸을 테지만, 지금은 추위라는 감각도 안 느껴진다.

아직까지도 방금의 그 느낌이 선명하다.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은…….

포션을 사용했음에도, 손이 덜덜 떨린다.

“……후우.”

헛웃음이 다 나는군.

이럴 때를 대비해 미리 포션을 구매해 놓길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미친 새끼처럼 헐떡이다가 기절했을 거다.

SBC에서 그런 대참사를 낸다? 방송가에 어떤 소문이 퍼질지 안 봐도 뻔하다.

게다가 내 계획까지 어그러졌겠지.

멤버들이 그런 모습을 보고도 나를 가만둘 리 없지 않은가.

안 봐도 병원, 입원, 숙소 감금 엔딩이었을걸.

나는 훤히 그려지는 미래에 고개를 저었다.

난 누군가와 함께할 생각이 없다.

……적어도 9일 동안은 말이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해온아.”

등 뒤에서 무언가가 걸쳐졌다.

고개를 살짝 돌려보니, 류인이 대기실에서 챙겨 온 롱패딩을 걸쳐준 것이었다.

“아.”

고맙다고 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머리가 멍했다.

‘입이 제대로 떨어지지도 않는군.’

나는 눈을 까딱이며, 간단한 인사를 건넸다.

“해온아, 혹시 오늘 컨디션 안 좋아?”

내가 고개를 내젓자, 허공에 입김을 내뱉던 류인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 없는 거지?”

시선이 정확히 나에게 닿았다.

“당연히 없지.”

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찬 바람이 폐부에 가득 차며, 머릿속이 조금 맑아진다.

포션이 뒤늦게 조금씩 도는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뒈지게 아픈 건 동일하다만, 정신력으로 버티면 녹화를 잘 마칠 수 있을 것 같은 정도였다.

나는 류인의 등을 툭툭 쳤다.

“들어갈까.”

* * *

“해온 형.”

녹화가 끝나자마자, 한수현이 말을 붙였다.

“아까는 안색이 아까 갑자기 나빠지신 것 같아서…….”

“착각이다.”

나는 팔을 휘휘 저었다.

이 정도 재롱은 의심 차단용으로 부릴 수 있었다.

“다행입니다. 쉬는 시간에 따라 나가려고 했는데, 승하 형이 막으시더군요. 역시 해온 형은 혼자가 편하신 걸까요…….”

한수현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우중충해지기 시작했고, 나는 적당한 변명을 내뱉으며 물음표를 띄웠다.

방금 한수현이 한 말 때문이었다.

……저 녀석이, 막았다고?

나는 저 멀리서 스태프들과 밝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 최승하를 응시했다.

이상하단 말이지.

사실 아까부터 느끼고 있었다.

내가 류인과 짧은 대화 후, 녹화 재개를 위해 들어갔을 때도.

- 어어? 형 손이 얼음장이네~ 이리 와봐요. 내가 녹여줄, 읍, 읍.

- 수작 부리지 말고 대본이나 봐라.

- 얼음장인 건 우리 형 마음인가 본데!

최승하는 평소와 같이 실없는 말장난을 쳐댔다.

솔직히 불자면 저 녀석이 타이밍 좋게 휴식을 제안하기에, 이상한 낌새를 차린 줄 알았다.

나는 금세 생각을 종결했다.

최승하가 눈치를 챘다면,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지.

아마 온갖 유난을 다 떨었을걸.

게다가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착각이 아니라면…….’

성좌들의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성공했나 보군.’

만일 내가 아흐레를 버텨낸다면, 성좌는 내 충돌을 소멸시켜 주기로 약조했다.

반대로 실패하면, 내가 거래에 응하기로.

하지만 결과가 어찌 되든 간에, 이건 이 성좌의 독단 행동이었다.

다른 성좌들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으니, 연결이 끊겨도 놀라지 말라며 미리 언질을 줬었다.

사실 반신반의였는데, 정말 해냈군.

뭐,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으니 나야 편하다만.

내가 생각을 이어갈 무렵, 멤버들이 우르르 달라붙었다.

“형님! 호텔에서 묵을 바엔 숙소로 가시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 굳이 집을 두고 다른 곳으로 가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맞아요……! 제가, 조용히 할게요. 아니면 다른 방으로…….”

“…….”

이 녀석, 저번부터 자발적 따까리 롤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 성좌들과의 연결이 끊기지 않았다면, 한 성좌가 울부짖었을 거다.

“왜 멀쩡한 네 방 두고 자꾸 나간대? 이미 숙박비도 냈고, 조용해서 좋아.”

다행히 내 상태를 눈치챈 놈은 없어 보인다.

아쉬움에 나를 붙잡고 있는 느낌이니까.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럼 호텔까지 밴으로 이동하는 건 어떠실까요? 택시보단, 이편이 나으실 것 같은데요.”

나는 곧바로 싱긋 웃었다.

“위치 알아내려고?”

“……!”

순식간에 얼굴에 억울함이 스며든 한수현이 고개를 도리질쳤다.

“그럴 리가요.”

“그런 마음이 1%도 없었다고?”

한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이면 나한테 큰일 터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수현이 빛과 같은 속도로 이실직고했다.

“……사실 한 75%쯤 있었습니다.”

연기 실력 하나는 좋군.

웬만하면 저 억울하다는 눈빛에 속아넘어갔을 거다.

나는 피식 웃으며 한수현의 머리칼을 흩뜨렸다.

“이미 택시 불렀어. 간다.”

나는 서운한 얼굴의 멤버들을 뒤로하며, 곧장 등을 돌렸다.

계속 말을 섞다보면, 이 녀석들이 눈치를 챌 수밖에 없으니까.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졌을 때쯤, 나는 상체를 빙글 돌렸다.

저 멀리서 최승하가 팔을 붕붕 흔들며 폴짝 뛰고 있었다.

입 모양을 보아하니, 잘 가라는 배웅 같은데.

그래, 저 녀석도 슬슬 내 걱정을 덜 할 때가 됐다.

나는 발걸음을 조금 더 재촉했다.

……사실 지금 이렇게 여유를 부릴 틈이 없어서 말이다.

나는 손을 말아쥐었다.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빨리 가야해.

* * *

덜덜 떨리는 손에, 카드키가 미끄러지듯 바닥으로 떨어졌다.

정신 차려.

나는 손바닥에 손톱을 박아넣었다.

주운 카드키를 꽂자, 문이 열렸다.

“……허.”

아까는 충돌의 시작과 동시에 포션을 활성화시켜서 확신하지 못했는데.

심장 쪽이다.

상체가 자연스럽게 아래로 기울어진다.

나는 몸을 둥글게 웅크린 채로, 숨을 헐떡였다.

침대까지 향하지도 못했다.

“콜록, 컥.”

숨, 숨까지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다.

지극히 생리적인 반응으로, 눈물이 차오르는 게 느껴진다.

“흡, 하, 으…….”

지금까지 충돌을 질리도록 겪어봤다고 자부했다만, 이건 아니다.

아니.

아프다 괜찮다를 논하기 전에 일단 숨이 안 쉬어지잖아.

숨이…….

숨이 부족해지니 당연하게도 공포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허, 하아, 윽…….”

차라리 누구한테 목이 졸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쿵댔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게 눈물인지 뭔지 분간할 수도 없이 시야가 점점 흐릿해진다.

* * *

충돌 4일 차.

“흐으…….”

극한의 통증에 기절, 그리고 그런 통증으로 인해 다시 눈을 떴다가, 다시 기절.

이걸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어슴푸레한 빛에, 지금이 새벽쯤이라는 것만 짐작할 수 있을 뿐.

눈물로 끈적해진 시야에, 눈을 감은 나는 가슴을 할퀴었다.

짧은 손톱에 긁힌 살이 붉게 물들다 못해 방울방울 피가 맺히기 시작했으나,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있을 리가.

단지 숨, 숨을 제대로 쉬고 싶을 뿐이다.

머릿속엔 그 욕구만이 가득했다.

“윽…… 흐으.”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이 따가웠다.

이번엔 몇 분을 버텼을까, 사지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익숙한 감각이다.

또 기절이군.

* * *

똑, 똑.

“……시끄러워.”

나는 내 목에서 나오는, 잔뜩 쉰 목소리에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똑, 똑, 똑.

계속해서 문이 두드려지고 있었다.

나는 눈꺼풀을 천천히 떠올렸다.

동공은 시계를 향했다.

오전 10시 23분.

새벽에 기절해서 그대로 잠든 모양이지.

통증은…….

손을 가슴께에 가져다 댄 나는 한숨을 삼켰다.

‘어느 정도 진정됐다.’

내 시선은 이내 문 쪽으로 향했다.

어제 스케줄에 나서며 피가 잔뜩 묻은 침구의 교체를 요청했는데, 그걸 보고 무슨 일이 터졌을 거라 생각했을 수도 있겠군.

왜, 이런 곳에서 죽으려는 사람이 있다지 않나.

나는 살려고 온 것에 가깝지만, 아무튼.

호텔 측에 룸 청소는 필요 없다고 덧붙였는데, 그 때문에 오해가 깊어졌을수도.

나는 마른세수를 하며, 침대 밖으로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아.

딱, 죽을 것 같다.

힘이 하나도 없어.

똑, 똑.

나는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살짝만 열어, 뒈지지 않았다는 사실과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해달라는 말을 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 바람과는 다르게, 문이 크게 열렸다.

내 쪽에서 문을 열기 무섭게, 바깥에서 문을 잡아 벌린 것이다.

“……!”

내가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이.

후욱!

익숙한 인영이 나를 밀며, 안으로 들어왔다.

넘어지려는 내 몸뚱어리를 가볍게 받친 최승하가 내 허리에 두른 팔에 힘을 줬다.

“형.”

타악, 최승하의 등 뒤에서 문이 자연스레 닫혔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가리를 굴려보려 부단히 노력했다만, 아직까지 몸 상태가 최악인지라 효율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최승하의 이런 얼굴은 처음 보는군.

……무어라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녀석이 식은땀으로 범벅이 됐을 내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윽고, 상체를 숙여 나와 시선을 마주한 최승하가 짧게 웃었다.

“이러려고 나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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