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24화
“형.”
“…….”
“형.”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최승하가 자신의 얼굴을 코앞까지 들이밀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요? 응?”
미안하지만, 나도 입을 닫고 싶어서 닫은 게 아니다.
지금 다시 정신이…….
내가 눈을 느릿하게 껌뻑이며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애쓸 무렵, 최승하가 자신의 머리를 헤집었다.
“……모르겠다, 화내려고 했는데.”
작게 중얼거린 최승하가 내 몸을 번쩍 들어 올렸다.
……번쩍?
정신이 확 드는군.
내가 발버둥 치자, 최승하가 눈매를 휘어 접었다.
“떨어질라~ 가만히 있는 게 좋을 텐데!”
나를 침대에 눕힌 뒤, 이불까지 덮어준 최승하가 그 옆에 걸터앉았다.
“지금 온몸이 불덩이인 거 알아요?”
모를 리가 있나.
방금도 까무룩 기절할 뻔한 걸 간신히 붙잡았는데.
나는 눈을 굴려, 차갑게 가라앉은 최승하의 눈동자를 훑었다.
……평소였다면, 나를 둘러메고 곧바로 병원으로 직행해야 할 놈인데.
역시, 평소 같지 않다.
“형이 처음 숙소 나간 날 저희 통화했잖아요. 저는 그때부터 알았어요. 으음…… 이 형 목소리가 조금 이상하지 않나?”
“…….”
“다른 애들은 눈치 못 챈 것 같지만, 되짚어보니 얼굴도 좀 안 좋았던 것 같아.”
혼잣말을 하듯, 최승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제가 넘겨짚은 걸 수도 있었지만…… 정말이었네요. 그렇죠?”
나긋한 목소리와 다르게, 양심이 콕콕 찔리는 질문이었다.
X발, 대가리도 안 굴러가는데 죽을 맛이군.
나는 가장 간편한 방법을 택했다.
입을 다무는 것 말이다.
“하핫, 형은 항상 불리하면 입 다물거나~ 째려보고~? 으음.”
스스로 말을 뭉갠 녀석이 방긋 웃었다.
“최승하.”
“네~ 저 여기 있어요.”
생글 웃은 최승하가, 무슨 어린애 재우듯이 계속해서 이불을 토닥이기 시작했다.
마치 잠들어도 괜찮다는 듯이.
여기서 뭐 같은 점은 눈꺼풀에 돌덩이라도 매단 듯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는 것일 테다.
그도 그럴 게, 최승하의 말대로 내 몸은 펄펄 끓고 있거든.
나는 생각을 더 이상 이어가지 못했다.
지금은 그저…….
자고 싶다.
내가 손을 파닥파닥 흔들자, 눈을 동그랗게 뜬 최승하가 상체를 서서히 낮췄다.
나는 마지막 기력을 짜내 팔을 들어 올렸고, 최승하가 입은 회색 니트를 내 쪽으로 주우욱- 끌어당겼다.
“병원…… 가지 마. 잘 거니까.”
이미 반쯤은 무의식에 잠겨 있을 정신이 대답을 재촉했다.
그러자, 최승하가 푸스스 웃더니 침대에 엎드렸다.
내 상체 위에 가볍게 엎어진 모양새가 된 최승하가 고개를 돌려 나와 시선을 맞댔다.
“약속할게요.”
그러곤 자신도 눈꺼풀을 접어 내렸다.
“잘 자요, 형.”
* * *
망막에 스며드는 빛이 밝았다.
나는 눈을 설핏 찡그리며, 시간을 유추했다.
분명 아까 호텔에서 시간이…….
그래.
오전 10시쯤이었지, 그리고 오늘 오후 5시엔 스케줄이 있었…… 다.
나는 집에 불이라도 난 걸 목격한 사람처럼, 단번에 상체를 일으켰다.
한 방에 몸을 일으킨 탓에 대가리가 핑글 돌았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황당한 건.
껌뻑.
껌뻑.
“……허.”
순간적으로 욕설을 내뱉을 뻔한 내 입이 다물렸다.
스스로가 공인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뇌가 이 장소를 외부라고 인지했기 때문이다.
나는 속으로 욕을 삼켰다.
X발, 여긴 호텔이 아니잖아.
나는 곧바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덜컹!
팔에 꽂힌 링거가 내 행동을 제지했지만 말이다.
내 팔에 꽂힌 주삿바늘들과 링거를 마주하자마자, 그라데이션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대충 예상이 가지 않는가.
기어코 나를 병원에 데려온 거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던가.
내가 분노를 삼키고 있을 무렵, 병실의 문이 경쾌하게 열렸다.
드르륵-!
“일어났네요~?”
한달음에 달려온 최승하가 내 이마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으음, 열은 안 떨어졌네. 형, 몸은 어떤 것 같아요? 조금 나아요? 아!”
최승하가 링거대에 매달려 있는 팩을 가리켰다.
“이건 포도당이랑 비타민 수액이니까 걱정 말아요. 이상한 거 아니니까!”
옆에서 조잘조잘 떠드는 최승하를 보고 있자니, 점점 더 어처구니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어어? 형 안에서 지금 제 평가가 실시간으로 깎이고 있는 것 같은데? 얼굴이 딱 그런데?”
눈치 하난 일품이군.
정답이다.
최승하를 마주한 순간, 한편으론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럴 거면 아까 병원에 가지 말라는 말에 답은 왜 했단 말인가.
약속하겠다 확언해 놓고 끌고 올 녀석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틀렸군.
내가 혀를 끌끌 차고 있을 무렵이었다.
“전 형이랑 한 약속 지켰어요.”
“……?”
그게 무슨 헛소리냐, 라는 시선을 보내기 무섭게 최승하가 하핫 웃었다.
“으음~ 형, 지금 그게 무슨 헛소리냐는 얼굴이네!”
“잘 아는군.”
말을 마친 나는 힐끔 링거를 응시했다.
근래들어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이거 덕인지 기력이 나름대로 채워졌다.
그리고 충돌도 얼추 진정된 모양인지, 몸도 살만해졌고.
싱긋…….
나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몸을 일으켰다.
“세! 상! 에!”
자신의 미래를 예감한 최승하가 몸을 샤샤샥 피했다.
“눈 뜨자마자 사람을 치려는 사람이 여깄네!”
“네가 허튼짓을 안 하면-”
되는 거잖냐, 라고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드르륵-
갑작스레 열린 병실 문과 함께, 3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의사가 들어온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최승하가 구세주라도 찾았다는 얼굴로 남자의 팔을 붙잡았다.
“하핫, 마침 잘 오셨어요! 말 좀 해주세요! 여기 병원 아니죠?”
“승하야, 여기가 병원이 아니면 어디야?”
방금 이 대사는 의사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내 말이.
누구신진 모르겠으나, 정상적인 사고를 하시는군.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얼마 안 가 멈칫했다.
……승하야?
‘이 의사는 뭔데 이렇게 최승하를 친근하게 부르는 거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이어지는 최승하의 말에서 알 수 있었다.
“삼촌! 삼촌이라고요!”
“……?”
내가 얼을 타고 있자, 최승하가 말을 잇기 시작했다.
“삼촌을 뵈러 온 거니까, 병원은 아니죠. 그냥 뭐…… 우리 삼촌이 있는 곳으로 나들이? 온 거지.”
“응, 그렇구나. 그 김에 영양제도 맞고?”
“음음~ 그렇죠! 영양제도 맞고, 휴식도 취하고~”
보아라.
내가 괜히 개소리를 지껄일 땐 당당하게 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는 게 아니다.
지금 최승하는 누가 봐도 헛소리를 내뱉으면서 당당하지 않은가.
“당당하네?”
“와아, 환기 좀 시킬까아~?”
벙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최승하가 병실의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할 말이 없어서 말을 돌린 게 확실하다.
“에고, 춥네! 우리 형 감기 걸릴라! 닫아야지!”
나는 저 의사가 나가는 즉시 최승하의 등짝을 후려갈기겠다 결심했다.
하지만 우선 인사부터 해야겠지.
“안녕하세요, 성해온입니다.”
“저도 반가워요. 저는 이…… 철 없는 녀석, 삼촌 되는 사람입니다.”
“삼촌도 진짜, 내가 철이 없긴 뭐가 없어? 내가 들은 삼촌 20대 이야기 여기서 한번 풀어봐? 질풍노도 시절 풀어봐?”
“…….”
최승하에게 완벽히 말려들어 간 남자가 차트지를 들어 올려, 최승하의 뒤통수를 약하게 후려쳤다.
“으그.”
“아야!”
우는소리를 하고 있는 최승하를 뒤로한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저 녀석 돌봐주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저는 이만 일하러 갈 테니…….”
남자가 최승하를 힐끔 바라봤다.
“이 녀석 마음껏 때리세요. 튼튼하거든요.”
나는 곧바로 가식적인 낯짝을 걸친 뒤, 팔을 펄럭펄럭 흔들었다.
“아닙니다. 승하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요.”
“와아, 이 형 진짜, 읍, 으븝, 븝!”
최승하의 입을 틀어막은 나는 싱긋 웃으며 남자 쪽으로 목을 까딱였다.
남자는 바쁜지 금세 등을 돌렸고, 나는 최승하의 입을 틀어막았던 손을 떼냈다.
“푸~ 하! 숨 막혀 죽을 뻔했네!”
“뗄 수 있었으면서, 난리는.”
“형이 화난 것 같으니까~ 반성의 의미로 가만히 있었죠? 하핫!”
말은 잘하는군.
최승하가 실없게 웃으며 나를 침대에 눕혔다.
“저 잠깐만, 삼촌이랑 이야기 좀 하고 올게요. 5분? 5분만 기다려요!”
* * *
“삼촌.”
“최승하, 인마. 연락도 안 하고, 집안 모임에도 안 나오는 놈이 무슨 염치로 찾아와?”
“삼촌이랑 나는 친구 같은 사이지!”
“어련하셔?”
피식 웃은 남자가 이내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워냈다.
“원래 본인이나 보호자 동의 없인 안 되는 거 알지? 작은 검사기도 하고, 내가 봐도 심각해 보여서 진행하긴 했다만, 원랜 안 돼.”
“아니까 삼촌한테 온 거지. 얼른 말이나 해줘.”
“싸가지 없긴.”
혀를 짧게 찬 남자가 차트지를 다시 한번 훑었다.
“뭐…… 큰 문제는 없어. 네가 하도 죽을 병이 있는 것처럼 굴길래, 정말 그러-”
남자의 말허리가 싹둑 끊겼다.
“삼촌, 돌팔이야?”
“이 새끼가.”
“아니, 가는 병원마다 무슨 다 문제가 없대? 그럼 내가 본 건 다 헛거야? 아니면 의료 수준이 전부 읍, 읍.”
“승하야, 삼촌 화나게 하지 말고 끝까지 들어봐.”
최승하가 고개를 한번 끄덕이자, 남자가 말을 이었다.
“우선…… 이 친구 밥은 먹긴 하니?”
“아니, 잘 안 먹어. 먹어봤자 아주 조금.”
“조금이라도 먹는 거 맞아?”
의사의 말에, 최승하는 눈을 까딱였다.
매번 자신이 어느 정도의 음식은 먹게 했으니까.
“혹시, 그 친구 그거 게워내고 그러진 않고?”
“……게워낸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만, 음.”
“……! 더 자세히 말해봐. 삼촌.”
“아주 네가 의사 하지 그래?”
“나 장난칠 기분 아닌데. 그리고 삼촌한테 물어본 거, 하나 더 있잖아.”
최승하의 서늘한 얼굴을 마주한 남자가 멈칫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 * *
삼촌과 대화를 끝낸 모양인지, 최승하가 성큼 다가왔다.
나는 그런 녀석을 응시하며, 곧바로 손바닥을 내밀었다.
처억!
얼른 무언가를 내놓으라는 듯이.
“형도 참, 적극적이라니까~”
후우, 하고 한숨을 내뱉은 최승하가 고개를 절레 저으며 내 손바닥 위에 자신의 턱을 올려놨다.
“……?”
내 손에 얼굴을 비비적거린 최승하가 이내 눈을 데굴 굴려, 나를 올려다봤다.
“원하시는 게 이거 맞죠?”
“겠냐?”
나는 혈압이 더 치솟기 전에, 다른 손바닥을 내밀었다.
“얼른 내놔.”
“이미 절 드렸는데! 뭘 더 원하시는 거예요? 하여간 보기와는 다르게 욕심쟁이야.”
“내 스마트폰, 네가 챙겼지?”
“그으래앴더언가아?”
“뒈질래?”
한숨을 삼킨 나는 벽에 달린 시계를 가리켰다.
“저 시계, 건전지도 네가 빼놨지?”
안 봐도 훤하다.
오늘 스케줄은 오후 5시였고, 창문 밖을 보니 한낮쯤 된 것 같다.
나는 팔에 꽂힌 주삿바늘을 셀프로 제거하며, 최승하에게 턱짓했다.
“너도 얼른 준비해. 가자.”
“응?”
순진한 얼굴을 한 최승하의 고개가 모로 기울어졌고, 내 낯짝에도 의문이 드리워졌다.
“응은 무슨 응이야?”
“아아, 형 지금 화요일 스케줄 말하는 거 맞죠?”
“그래. 얼른 출발하자고.”
“하핫!”
최승하가 느슨하게 웃었다.
“진짜 정신없었구나? 형 지금 몇 시간 만에 일어났는지 알아요?”
“……?”
“28시간 만에 일어났어요.”
녀석의 목소리가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갔고, 내 입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 말인즉슨~ 오늘은 수요일인 셈이죠!”
“……”
분명 마지막으로 눈을 감기 전이 충돌 4일 차의 오전이었는데.
그러니까…….
저 녀석 말대로라면.
오늘은 충돌 5일 차고, 스케줄은 펑크가 났다는 거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최승하의 멱살을 틀어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