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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226화 (226/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26화

차분하게 생각해 보자.

오늘은 충돌 5일 차.

여태껏 겪어온 바로, 충돌은 오르락내리락하는 패턴을 그린다.

그래서 돌겠는 거다.

지금 당장은 잔잔하지만…….

다음 충돌이 언제 올지 알고?

위기의 상황에 놓인 대가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생각을 이어갈 수조차 없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최승하가 말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있잖아요.”

고개를 돌린 녀석이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의도를 짐작하는 건 내 특기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예상조차 가지 않는, 완전히 가라앉은 얼굴.

“호텔에서 형이 식은땀 범벅이길래…… 형이 챙겨 나간 짐에서 옷을 꺼내서 갈아입혔거든요.”

“……?”

“어차피 안 말해줄 것 같아서, 그냥 묻어두려고 했는데…….”

최승하가 눈을 내리깔더니, 내 쇄골 부근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왜 그랬어요?”

아.

이 녀석의 말과 동시에 깨달았다.

내가 가슴 쪽에 마구잡이로 상처를 냈었다는 거 말이다.

솔직히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숨을 쉬고 싶어서 했던 짓이기도 하고, 뭣보다 바로 기절했던 터라 잊고 있었다.

눈떠보니 28시간이 지나 있고, 장소는 병원으로 뒤바뀌어 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인지하고 나니 가슴 쪽이 따끔거리는 것 같군.

나는 한숨을 삼켰다.

빌어먹을, 상황이 더 난감해지지 않았는가.

그 순간, 최승하가 내 손을 다시금 맞잡았다.

“그렇게 아팠어요?”

“……!”

내 눈이 약간 커졌으나, 나는 곧바로 표정을 지워냈다.

이 녀석의 입장에선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겠군.

이 녀석이 호텔 문을 두드렸을 때, 내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내가 통증을 참기 위해 이런 상처를 냈다는 결론이 나온 모양이지.

“평소에 형은 작은 상처에도 신경 많이 쓰잖아요.”

그거야 팬들이 보면 걱정하니까.

하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이 녀석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형이 이렇게 상처를 낼 정도로 아팠다는 걸.”

최승하가 눈꺼풀을 접어 웃었다.

“왜 나는 몰랐을까요? 응?”

“…….”

반박을 할 수조차 없었다.

이미 봤다는데 무슨 반박을 해?

아파서 상처냈다라, 결과만 보자면 맞는 추론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당당하게 나가야 한다.

나는 뭐 그런 것 가지고 유난이냐는 얼굴로 피식 웃었다.

“아프긴 뭐가 아파? 안 아파.”

“하핫!”

짤막한 웃음과 함께, 녀석의 얼굴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형,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요?”

최승하가 자신의 스마트폰 카메라를 켠 뒤, 거울처럼 내 앞에 가져다 댔다.

그리곤 헐렁한 병원복을 잡아 내렸다.

“……!”

놀란 건 나다.

잔뜩 할퀴어진 피부의 상태가 볼만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X됐음을 느꼈다.

통각이 무뎌졌는지,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한숨을 길게 내쉰 최승하가 내 옷매무새를 정돈해 주더니, 이내 어깨를 눌러 침대에 눕혔다.

“……그래. 형 말대로 안 아픈 걸로 해요.”

이 녀석도 이 대화를 이어 나가봤자, 내 입이 열리지 않을 거라는 걸 안 거다.

바라던 바다.

나는 곁눈질로 최승하를 살폈다.

이 녀석이 나를 주시하고 있는 만큼, 계획을 바꾼다.

원래 계획은 숙소로 가는 길목에서 튀는 거였다.

하지만 우선 숙소로 향한 뒤에…….

기회를 봐서 탈출한다.

나는 침대에서 상체를 번쩍 일으켰다.

“으음? 형, 뭐 해요? 왜 일어나?”

“이제 나가야지.”

내가 병원복 단추를 풀며, 평상복을 손에 쥔 순간이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최승하의 고개가 천천히 모로 기울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더없이 맑아진 최승하의 눈에, 나의 내면에서 불안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물음표를 띄우자, 최승하의 입이 열렸다.

“하루 더 입원할 예정이니까 그렇…… 흐음. 아, 맞다. 여기 병원 아니고 삼촌 집이지? 삼촌 집에서 하루 더 자고 갈 거거든요.”

“…….”

할 말이 사라진 내가 입씨름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환복을 재개하자, 최승하가 방긋 웃으며 손가락 두 개를 내밀었다.

“당장 회사랑 애들한테 형이 정신도 못 차리고 하루 종일 기절할 정도로 아팠다~ 라고 말해서 모든 스케줄을 취소하기!”

두 개의 손가락 중, 하나가 접혔다.

“아니면, 삼촌 집에서 하루 더 자고…….”

나머지 손가락이 서서히 접혔다.

동시에 씨익 웃은 최승하가 자신의 입가에 가져다 댄 손가락을 지퍼 채우듯, 가로로 그었다.

“승하 입 닫기!”

“…….”

이 영악한 녀석.

내 의지는 아니었다만, 입원까지 해버렸으니 최승하가 마음만 먹으면 정말 실현 가능한 것들이었다.

최승하는 눈을 휘어접으며 숫자를 카운팅하기 시작했다.

“5, 4, 3, 2-”

“……후자.”

* * *

사각사각.

사각.

사각사각.

무시하려 해도, 귓가에 계속해서 사각 소리가 퍼졌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묻는다면, 그래. 사과 깎는 소리다.

보호자용 의자에 다소곳이 앉은 최승하가 사과 껍질을 깎아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

잘 깎는다고는 말 안 했다.

사각사각!

“…….”

진짜 더럽게 못 깎는군.

사과의 입장을 들어봐야 할 것 같은 솜씨다.

“……너 과일 깎아본 적 없냐?”

“으음, 있을걸요?”

있을걸요?

“있지, 있지, 생각해 보니까 있어요.”

최승하는 옆에 켜둔 스마트폰을 힐끔댔다.

화면엔 사과 토끼 깎는 법이 포스팅된 블로그가 떠올라 있었다.

나는 그 포스팅 속 사진과, 최승하의 손에 들려 있는 사과를 번갈아 바라봤다.

저건 토끼를 창조해 내기보단, 사과를 고문하고 있는 쪽에 가까웠다.

나는 사과와 칼을 넘기라는 듯이 손을 까딱였다.

“이리 내놔.”

“아앗!”

최승하는 몸을 비틀며 사과를 지켜냈다.

“제가 자를 거예요!”

“지금 그 사과 꼴을 봐라.”

“귀엽기만 한데~ 으음, 형 근데 원래 과일은 껍질에 비타민이 많은 거 알죠.”

“그래서 뭐, 억.”

순식간에 입으로 날아온 사과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자, 냠냠~”

“지랄하지 말고…….”

“어허~ 안 먹어요?”

“지랄, 읍, 읍.”

내 턱을 그러쥔 최승하가 헤헤 웃으며 내 입을 강제로 다물렸다.

“형, 혀 안 씹게 조심해요.”

“이미 씨벘늠데.”

“어떡해. 미안해요! 사과도 일부러 작은 조각으로 줬는데!”

펄쩍 뛴 최승하가 곧바로 내 턱에서 손을 뗐다.

페이크다, 이 자식아.

짜악!

나는 곧바로 최승하의 등짝을 후렸다.

“아야!”

“너나 많이 먹어.”

“한 조각만 더 먹어요. 한 조각만, 응?”

최승하가 포크에 사과를 찔러 건넸다.

참고로 한 조각?

절대 아니었다.

사과 반쪽…… 그러니까, 웬 덩어리가 애처롭게 달려 있는 모양새.

무게를 버티고 있는 포크가 불쌍할 정도로 양심 없는 사이즈였다.

“이거 한 조각만 먹으면 더 안 줄게요! 안 먹으면 계속 여기서 귀찮게 굴고!”

“먹어도 귀찮게 굴 거잖아.”

“으음…….”

심각한 얼굴의 최승하가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네요.”

장난하나.

하지만 이게 유난의 시작이었다는 걸, 이때까진 알지 못했다.

“여기 맞은편에 포장마차 있는 거 알아요? 제가 종류별로 사 왔어요!”

“케이크! 요 앞에 제과점 있길래~”

“병원…… 아, 아니. 삼촌네 집밥은 맛없으니까 제가 사 왔어요! 추우니까 국물 있는 거!”

저 녀석 방금 병원이라고 하지 않았어?

분명 들었는데.

스스로도 인지 부조화가 온 모양이지.

나는 칙칙한 낯짝으로 음식을 바삐 나르는 최승하를 응시했다.

무슨…….

평소에도 날 못 먹여서 안달인 녀석이긴 했다만, 심각할 정도다.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걸 다 어떻게 먹어?”

“그렇긴 하죠~ 근데 제 정성을 봐서라도 한 입씩만 먹어달라는 거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최승하가 들이민 케이크를 한 입 받아먹었다.

최승하는 정말 유난이 맞다.

* * *

어슴푸레한 달빛이 내려앉았던 병실에, 햇살이 스며들었다.

그래.

충돌 6일 차다.

나는 생각보다 때깔 좋은 낯짝으로 눈을 떴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피로에 좋다는 오만 가지 영양제가 몸에 꽂혔고, 최승하가 갖다 나르는 것들을 받아먹었으니까.

몸 상태가 괜찮은 덕인지, 음식이 조금은 들어갔다.

물론 충돌로 인한 고통은 이런 것들로 해결할 수 없다지만, 최근들어 허해진 기력이 많이 차올랐다.

100%로 흐릿한 낯짝이었다면, 지금은 한 60% 정도…….

이게 무슨 뜻이냐 묻는다면, 나를 제외한 사람들에겐 여전히 쓰레기 같은 낯짝으로 보인다는 거다.

바로 여기, 나한테 들러붙고 있는 이 녀석처럼 말이다.

“세상에! 밤새 영양제 맞은 사람 얼굴이 왜 이래!”

최승하가 내 어깨를 붙잡고 펄럭이기 시작했다.

펄럭! 펄럭! 펄럭!

“…….”

매가리 없이 흔들리던 나를 바라본 최승하가 더 울상이 됐다.

“안색이 그새 더 안 좋아졌어요!”

그야 당연하다.

네가 흔들어젖혔으니까…….

“으아앙, 형! 삼촌네에서 하루 더 잘까요? 죽으면 안 돼!”

“약속 지켜.”

허튼수작을 단칼에 차단한 나는 퇴원 준비를 하고 있는 최승하의 등짝을 흘겼다.

그리곤 사뭇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얌전히 숙소에 따라간 다음.

튀자.

바로 그 순간이었다.

최승하가 상체를 빙글 돌리더니, 성큼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방금 내 결심을 혹시 입밖으로 꺼내 버린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최승하가 내 머리 위에 깊은 모자를 씌웠다.

“사진이라도 찍히면 곤란하겠죠? 나가는 길은 제가 알아놨어요. 사람 안 다니는 곳!”

“네 모자는?”

“당연히 여기 있죠!”

원래 최승하는 답답하다며 모자를 좋아하지 않는데, 세뇌식 교육의 효과였다.

훌륭하군.

* * *

병원을 조용히 탈출하는 데에 성공한 나는 최승하의 몸 구석구석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주머니가 있는 곳 위주로.

최승하가 자신의 팔을 엑스자로 교차하더니, 상체를 가렸다.

“변태! 어딜 만져요!”

헛소리를 모른 척한 나는 수색을 이었다.

“퇴원할 때 준다며. 열받게 하지 말고 내놔.”

푸핫, 웃은 최승하가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안 그래도 이제 줄려고 했어요. 자!”

얼마나 지났을까, 스마트폰을 보며 걷던 내 걸음걸이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느려지다 못해 멈춰 섰다.

내가 스마트폰으로 다이빙할 기세로 걸음을 멈추자, 최승하가 몸을 가까이 치대며 작게 투덜댔다.

“옆에 내가 있는데 스마트폰이 보이나~?!”

“…….”

“으음?”

이쯤 되면 저리 가란 말이라도 나와야 하는 내가 조용하자, 최승하가 물음표를 띄우며 내 어깨를 노크하듯 두드렸다.

“똑똑?”

“똑똑똑?”

이래도 반응이 없자, 최승하가 제 자리에서 빙글 돌았다.

“혹시 나 투명 인간인가?”

“……됐다.”

내 입에서 짤막하게 나온 소리에, 최승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가 됐어요?”

“…….”

“응? 잘 못 들었어요. 방금 옆에 차가 지나가서.”

이번엔 잘 들어보겠다는 듯이, 최승하가 상체를 숙였고, 나는 눅눅한 낯짝으로 화답했다.

“X됐어.”

“……?”

내 뜬금없는 말을 이해해보려는 듯, 눈을 한 바퀴 데굴 굴린 최승하가 이내 눈을 접어 웃었다.

자신도 맥락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당연한 일이다.

내 화면을 보지 못했다면, 알 턱이 없으니.

“으음~ 스마트폰으로 뭐라도 봤어요?”

최승하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봐버렸다.

나는 화면에 떠오른 한 계정을 응시했다.

계정명, 성해온 정신 차려.

……음.

나는 눈을 도록 굴렸다.

아무래도 이거.

논란 터지려는 것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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