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29화
곧바로 침대에 누운 내 낯짝에 의문이 스쳤다.
충돌.
충돌이 왜 이렇게 얌전한 거지?
병원에 있을 때도 느꼈던 것이다.
왜?
모순적이게도, 안정적인 몸 상태에 불안감이 피어오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털어냈다.
무의미한 걱정이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그 고통으로 이틀을 내리 기절했으니, 지금은 괜찮을 만하지.
눈을 감은 순간, 방문이 열렸다.
드르륵-
발소리부터 최승하였다.
내 이마에 손을 올린 최승하가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미열인가? 많이 떨어졌네요. 형, 안 자죠? 일어나 봐요.”
“…….”
빙그레 웃은 최승하가 내 손바닥에 병원에서 처방받은 알약을 올려준 뒤 물이 담긴 컵을 건넸다.
“유하랑은 며칠 방 바꾸기로 했어요.”
“마음대로 해.”
내 침대에만 안 올라오면 된다.
방으로 돌아가라 한대도, 그 말을 들을 위인도 아니고 말이다.
-라고 생각했던 나는 5분도 되지 않아 그 생각을 철회했다.
“야.”
“네에?”
“너 그렇게 계속 쳐다볼 거면 네 방 가.”
“하핫! 제가 그렇게 신경 쓰여요?”
안 쓰일 리가.
아까부터 나만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원래 이런 게 신경 쓰이면 그게 바로 사, 어억.”
스르르-
퍽, 소리와 함께 최승하의 얼굴에 부드러운 솜 베개가 날아들었다.
당연히 내가 헛소리 방지용으로 던진 것이었다.
“양치하고 올 동안 그사이에 눈빛 처리하든가, 네 방 가든가. 알아서 둘 중에 하나 골라라.”
말을 마친 내가 멈칫했다.
“……? 왜 따라와.”
“으음, 그으~ 냥?”
한 발자국 떼면, 한 발자국 쫓아오는 녀석에 어이가 없어진 내가 인상을 험악하게 구겼다.
“뒈질래?”
“있잖아요, 형.”
“……?”
“아프면 저한테 꼭 말해야 해요? 알겠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최승하가 헤실 웃었다.
“또 거짓말하면서 혼자 괜찮은 척하면~”
최승하가 작게 속닥였다.
“저 정말 화날 것 같거든요.”
* * *
탁, 탁, 탁.
모두가 잠든 새벽.
홀로 베란다에 나온 신유하가 불안한 얼굴로 왼쪽 손톱을 두드렸다.
불안한 일이 있을 때, 나타나는 습관이었다.
애꿎은 손톱을 계속해서 탁탁거리던 신유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AMA로 해외에 갔을 때, 처음으로 간호하는 것을 들켰다.
그리고 성해온이 지금까지도 모르는 게 있다면, 신유하가 셀 수도 없이 많은 밤 동안 성해온을 살폈다는 것이다.
“…….”
병원에 갈 때마다, 검사 결과는 이상 없음이다.
하지만 밤마다 괴로운 듯 식은땀을 흘리고,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성해온.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유하가 생각할 수밖에 없는 병명은 오직 하나였다.
……마음의 병 말이다.
계속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성해온이 호텔로 가출하고 난 뒤 다시 만났던 <한 밤의 토크>.
……그때 해온 형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곧바로 아래로 숨겼지만, 분명히.
신유하가 알고있는 성해온은 그런 모습을 들키기 싫어하니, 언제나 그랬듯 모른 척했다.
“나는 받은 게, 너무 많은데…….”
하지만 가면 갈수록,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자괴감이 커져만 갔다.
“정작,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신유하는 주머니 속에 넣어뒀던 종이를 꺼냈다.
직사각형의 종이, 그 정체는 명함이었다.
……아주 예전에 받았던 것이다.
INT 측에서 프라이빗한 곳이라며 주선해 줬던 곳이니, 믿을 만한 곳.
가본 적은 없었지만, 당시 듣기로 연예인들이 많이 찾는다고.
“이번엔…….”
신유하는 명함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얕게 짓씹었다.
“내가, 도움이 되어야 해.”
* * *
충돌 7일차의 아침이 밝았다.
껌뻑.
나는 눈을 껌뻑이다가, 상체를 스르륵 일으켰다.
‘한숨도 못 잤다.’
심장이 불안하게 뛴다.
웃긴 건, 이유를 알 수가 없다는 거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정말, 아무런 문제도 존재하지 않는다.
불거질 뻔한 논란도 깨끗하게 해결됐고, 당장 CF 촬영이 오늘이다.
그저 충돌이 오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감?
아니다.
그렇다고 하기엔, 느낌이 다르다.
나는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속이 울렁거린다.
그것도 아주 잔뜩.
어제 늦은 저녁부터 이러던데, 심리적인 문제인 건가.
내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별로다.
아픈 게 아니라 기분이 나쁘다.
정확히 말하자면, 불쾌하다.
* * *
밴이 CF 촬영이 진행될 스튜디오를 향해 달려갔다.
“저, 저는 너무 떨립니다!”
“나는 윤재가 손 잡아주면 안 떨릴 것 같기도 하고~”
“형님은 원래 안 떠시지 않으십니까!”
“윤재 눈치가 가면 갈수록 빨라져?”
“으이이익!”
“하하, 나도 조금 떨린다.”
류인의 말에, 한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긴장됩니다. 뭐든지 처음은 그런 법이니까요.”
멤버들은 조잘조잘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여느 때와 같이 조수석에 앉은 나는 백미러로 신유하를 바라봤다.
‘흠.’
아침부터 계속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쳐다보던데.
하지만 상념은 이어지지 못했다.
울렁임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젠 두통까지…….
나는 미간을 설핏 찡그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 울림이 거세지며 대가리까지 울리는 기분이다.
아, 정말 더러운 기분인데.
나는 눈꺼풀을 내렸다.
잠이라도 청해볼 요량이었지만, 그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기분 나쁜 울렁임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생경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심장이 박동하기 시작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심장이 뛰는 게 과하게 느껴진다.
심장은 원래 뛰는 것이고, 원랜 그에 대한 별다른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게 보통이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마치 심장이 몸 바깥에서 뛰는 것처럼, 생소하고도 낯선 기분.
……그제야,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내 감각이 극도로 날카로워지고 있는 거라고.
자각하기 무섭게, 심박에 맞춰 시야까지 둥둥 두드려진다.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과하게 예민해지고 있는 감각에, 토악질이 날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눈 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아직 복구가 되지 않았는지, 노이즈가 잔뜩 껴 있는 데다가 대부분의 글자가 깨져 있다.
한마디로, 제대로 알아볼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
[■■■■■ ■■의 눈(■)]이 ■동됩니■!
하지만 단번에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익숙한…….
미래 예지.
동시에 어떤 장면들이 뇌리에 파노라마처럼 스치기 시작했다.
처참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의 광경이었다.
역주행 사고로 반파되어 있는 차량.
익숙하다.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밴이니까.
깜빡.
눈을 느릿하게 깜빡인 순간, 펼쳐졌던 모든 장면이 사라졌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왜냐면, 지금 내 시야에 들어온 도로가.
방금 내가 보고 있는 도로와 같으니까.
왜 지금까지 일어난 사고는 우연이라고 생각했을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고 해도, 너는 의심하고 또 의심했어야지.
방금 전 예지는 충돌이 벌였던 크고 작은 사고들까지 보여줬다.
임진각의 구조물 사고부터, AMA에서 이상했던 와이어.
어제 최승하와 나를 덮치려 했던 차량까지.
……어째서 충돌이 내 안에서만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을까.
이건 알량한 자만의 결과였다.
동시에 머리가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직감적으로 느껴진다.
이 빌어먹을 충돌은 어떻게든 오늘 내 생명력을 갈취하려 들 거다.
내 안에서 생명력을 뽑아낼 수 없으니, 진로를 튼 것이다.
외적인 사고로 말이다.
지금까지의 사고는 테스트였다.
이걸로 내 생명력을 빼낼 수 있을까, 하는 테스트.
그리고 이 충돌은 테스트를 마쳤다.
지금 이 상황은 빠져나갈 수 없었다.
내가 본 미래 예지 속 교통사고는 꽤 여러 장면이었거든.
차선을 옮긴대도, 차량을 대뜸 도로에서 멈춘대도, 끝은 전부 동일했다.
전부 끔찍한 사고로 귀결된다는 뜻이다.
어떻게든.
그래, 어떻게든.
하지만 변수는 있다.
바로, 미래를 확인한 나 말이다.
달칵.
나는 내 몸에 둘린 안전벨트를 제거한 뒤, 차분히 뒷좌석으로 몸을 길게 내뺐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내 손 잡아.”
지금 중요한 건 이 녀석들이었다.
멤버들이 나 때문에 위험한 일에 휘말리는 건 죽어도 싫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이들이 다치는 게 싫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내가 본 미래대로라면 곧…….
“빨리!”
내가 소리치자, 놀란 멤버들이 영문도 모른 채 팔을 뻗어 내 손 위에 자신들의 손을 올리기 시작했다.
비어 있는 한 손으론, 내 행동에 당황하고 있는 매니저의 팔을 붙잡은 나는 곧바로 되뇌었다.
이런 강도의 축복은 사용해 본 적 없다.
평소엔 기껏해야 체력 회복 용도였으니까.
하지만 해야 한다.
고민할 여지조차 없는 일이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동시에 노이즈가 잔뜩 낀, 경고 문구 같은 것이 떠올랐다.
읽어내리고, 해석할 시간 따위 없었다.
또, 보지 않아도 어떤 경고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무시한 채, 축복을 되뇌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을.
그와 동시에.
파아아앗-!
여태껏 보지 못했던…… 가장 찬란하고 환한 빛이 차올랐다.
이 녀석들 눈엔 보이지 않을 테지만, 내 눈엔 보였다.
그리고 나는 내가 여태껏 모아놨던…… 꽤 많은 포인트가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처럼 단번에 빠져나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이 사용하는 건 몸이 버틸 수 없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는 것까지도.
왜냐면,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빛이 나에게서 터져 나옴과 동시에.
내 안에서 무언가가 망가지는 느낌이 들었거든.
순식간에 흐릿해진 시야 속에서, 멤버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드는 게 보인다.
삐이이이──
귓가에선 정신 나간 이명이 들려오기 시작됐다.
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있을 리가.
나는 속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핏물을 울컥울컥 뱉어냈다.
속이 타들어 갈 것 같이 뜨거웠다.
멤버들이 뭐라 소리치는 것 같았지만,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정신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나는 입안 살을 콰드득, 물었다.
이미 비릿한 피로 가득한 입안의 여린 살들이 터져 나갔다.
그래.
정신 차려야지.
내가 여기서 정신을 잃으면 안 되는 거지.
다 나 때문에 벌어질 일일 텐데.
감히.
생각해 성해온.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해.
운전대를 잡은 매니저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져 가는 게 보인다.
옆에서 피를 토해낸 나의 영향도 있겠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저 앞에서 비틀거리며, 차선을 넘나드는 트럭이 달려들고 있었거든.
내가 마주한 미래 예지 그대로였다.
밴은 길다.
트럭을 피하려 가드레일에 박는대도, 추돌은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뒷좌석에 앉은 멤버들이 뭉개질 거다.
축복 특성을 최대치로 걸었지만, 장담할 수 없었다.
나는…….
나는 죽지 않는다.
아니,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 선택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그래.
고민할 것도 없었다.
시야가 두 개, 세 개로 갈리기 시작했다.
당장 어디든 꽉 잡으라고 소리치는 매니저의 외침이 귓가에 웅웅 스며들었다.
동시에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거래할게요.’
‘그러니까, 이 녀석들은 지켜주세요.’
바로 그 순간, 성좌와의 증표로 남겨졌던 손목의 흉터가 따끔했다.
……왜인지 모를 안도가 든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무얼 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나는 매니저의 손 위에 손을 가져다 댔다.
경악 섞인 매니저의 얼굴을 뒤로한 나는 핸들을 꺾었다.
끼릭!
차체가 원하는 대로 기울기 시작했다.
동시에 매니저가 내 행동을 수습할 수 없을 만큼 트럭이 가까워졌다.
내 목표는, 트럭과 내가 앉아 있는 조수석이 충돌하는 것이었다.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차량의 유리가 부서지며 내 몸 이곳저곳에 꽂혔다.
시야가 점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