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30화
“응급! 응급환자입니다!”
환자 여럿이 줄지어 들어왔다.
환자를 이송한 구급대원들이 곧바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덤프트럭과 충돌한 대형 사고라는 건 이미 환자들이 도착하기 전 전해 들었다.
트럭 기사는 CPR(심폐소생술)을 시행했으나, 결국 이송 도중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DOA(Dead On Arrival) 환자는 안타깝지만, 당장 숨이 붙어 있는 사람이 우선이었다.
의사의 시선이 성해온에게로 향했다.
구급대원은 성해온의 바이탈 사인을 빠르게 읊었고, 의사의 얼굴이 가라앉았다.
‘좋지 않은데.’
의사는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우선 CT부터!”
세부적인 지시까지 마친 의사의 얼굴에 서서히 의문이 스치기 시작했다.
사고 현장을 봐서가 아니었다.
밥 먹듯이 보는 광경인데, 이런 거에 놀랄 리가 있나.
지금 의아한 건, 부상의 정도였다.
의사의 시선이 성해온을 제외한 멤버들과 매니저에게 닿았다.
‘……뭐가 이렇게 멀쩡해?’
다들 사고의 충격으로 의식을 잃은 상태였지만, 이렇다 할 외상이 없었다.
아니, 멀쩡한 게 문제가 아니다. 멀쩡할 수 있다.
교통사고라고 해서, 전부 중상인 건 아니니까.
오히려 이런 경미한 부상의 환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역주행으로 가해를 저지른 트럭 운전자가 즉사할 정도의 추돌인데, 이럴 수 있는 건가?
천운으로 추돌의 충격이 덜했다 하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 지점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동승자 중 하나인 성해온의 상태 말이다.
‘같은 차량인데, 차이가 이렇게 극심할 수 있다고?’
성해온의 부상은 심각했다.
희미한 바이탈은 막말로 오는 길에 심장이 멎었대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니까.
체온, 맥박, 혈압, 호흡.
뭐 하나 정상인 게 없었다.
간혹 운이 나쁜 경우, 교통사고의 충격으로 사람이 유리창 밖으로 튕겨 나가는 케이스가 있다.
그런 거라면 이런 상태가 이해될 테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음…….”
짧게 생각을 마친 의사는 등을 돌렸다.
지금 이런 추리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 * *
그리고 그 시각.
역주행 사고의 소식이 퍼지고 있었다.
[역주행 차량 추돌 사고 발생]
이번 사고는 중앙선을 넘은 5톤 덤프트럭이 맞은편 차량과 충돌하며 발생했으며, 트럭 운전자는 의식 불명인 채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던 도중 숨졌습니다. 이 사고로 1명의 사망자와 7명의 중경상 환자가 발생했으며……(중략)
처음 기사가 떴을 때만 해도, 대중들은 커다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무척 안타까운 일이지만, 대중들에겐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니까.
이러한 사고 소식은 계속해서 들려오는 것이기에 무뎌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고 소식은 빠른 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공인이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익히 알고 있는 공인이 아닌 무명의 공인이어도, 대표 사진을 첨부할 수 있는 인물이 사고에 휘말린다면 기사의 양은 대폭 늘어난다.
그만큼 쏠리는 관심이 많아지니까.
하물며, 이 사고에 휘말린 공인은 라이트온이었다.
인지도까지 있는 아이돌!
한 명도 아니고, 멤버 전원!
이런 상황에서, 기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발 빠르게 소식을 문 기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써 내리기 시작했다.
[유명 아이돌 그룹, 오늘 오전 역주행 차량으로 인한 추돌 사고 휘말려.]
[이송 과정을 목격한 시민 진술, 한 멤버가 크게 부상 입었다.]
[한 그룹에게 닥친 갑작스러운 비극, ‘제발 아무 일 없길’.]
[오늘 발생한 추돌 사고, 유명 그룹 A가 타고 있던 밴으로 밝혀져…… 충격!]
관심은 폭발적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아주 급격하게 말이다.
- 누군데? 설마 진짜야? 어그로 기사 아니고?
└ 여러 신문사에서 나는 거 보면 어그로 아닌 것 같음
- 미치겠다 덤프트럭 역주행이 말이 되냐고 대체 누군데
SNS의 실시간 트렌드는 단번에 장악됐다.
대체 누구, 어느 그룹, 역주행 사망, 덤프트럭 같은 키워드로 말이다.
아직 그룹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기에, 온갖 팬덤이 뒤집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뿐인가, 사이버 렉카들은 이 사고와 관련된 자극적인 영상을 급하게 만들어냈다.
자극적인 썸네일, 제목과 함께 말이다.
[광고 촬영장으로 향하던 유명 그룹 A는 누구? 전문가 피셜, 역주행 사고 사망 확률은 □□%!]
[오늘 발생한 역주행 사고! (유명 아이돌 그룹 A는 누구?) 끔찍한 사고 현장 되돌아보기!]
이러한 영상의 조회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뭔가 있어 보이는 제목과 달리 내용은 두루뭉술했다.
당연한 일이다.
아직 제대로 된 팩트가 등장하지도 않은 기사들과, SNS에서 떠도는 찌라시를 종합해서 만든 영상이니까.
하지만 이들의 목적은 초과 달성이었다.
애초에 당장의 자극적임으로 조회 수를 뽑아내는 것이, 이들이 추구하는 것이었으니까.
동시에 팬덤들의 불안감은 미친 듯이 치솟기 시작했다.
- 찐이면 왜 아직까지 누군지 기사가 안 나옴 아 미치겠네 일이 손에 안 잡혀
- 우리 애들은 지금 해외에 있으니까 아닐 듯요 ㅠㅠ 진짜라면 누구든지 건강하시길… 별일 아니길…
그러던 무렵이었다.
슬금슬금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 오늘 사고 난 거 ㄹㅇㅌㅇ이라던데
- 라2트온 맞는 듯
관계자의 입소문일 수도, 아니면 병원에서 그 현장을 목격한 이의 주장일지도 모르는 시작점.
- 팩트 체크도 안 된 거 퍼뜨리지 마라 미친놈들아
- 진짜 나대지 마 아 손 떨려
- 사이버 렉카 욕하지 마라 너네도 똑같다 인류애 상실
당연하게도, 라이트온 팬덤은 분노했다.
하지만 이런 규모의 찌라시는 근거 없이 튀어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라이트온 팬덤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 아닐 거예요 저흰 그냥 기다리면 돼요
- 지금 혹시 숨쉬기 버겁고 그런 증상 있으면 잠깐 스마트폰을 내려놔 얘들아
이렇게 주변을 진정시키려는 스위치들이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무용지물이었다.
얼마 안 가 피해자가 공개됐기 때문이다.
유명 그룹, 아이돌 그룹 A 등으로 지칭되던 사고의 피해자가 공개된 것이다.
……라이트온.
기사가 뜨기 무섭게, 대중들은 입방아를 찧어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고를 목격한 시민이 공중파 뉴스에 사진을 제보한다.
길쭉한 형태의 검은 차량.
밴이라고 불리는 차량 조수석이 반파되듯 찌그러졌고, 온갖 잔해가 나뒹굴고 있는 사진이었다.
여기서 팬덤이 어떤 반응을 보일 수 있겠는가?
정답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였다.
이들은 잘게 부서진 멘탈을 수습하기에도 버거웠다.
* * *
“…….”
이제는 나름 익숙하기까지 하군.
끝이 어딘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광활하게 트인 공간.
참고로 뒈졌을 때와 거래 제안을 받았을 때 한 번씩 와봤다.
이게 무슨 뜻이냐 묻는다면, 지금 내 상태가 파악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말이다.
“음.”
시선을 내려보니, 핏자국 하나 없이 멀쩡했다.
이 공간에 왔을 때마다 그랬듯이, 아프지도 않고.
주변을 몇 걸음 거닐던 나는 이내 주저앉았다.
그리곤 눈을 느릿하게 껌뻑였다.
파편이 몸을 꿰뚫음과 동시에 의식을 잃은 탓에, 다른 녀석들을 보지 못했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축복을 사용했으나, 불안한 건 매한가지였다.
그 정도로 사용해 본 적이 없으니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도 모르겠고.
나는 허공에 들어 올린 손을 살피며, 흠 소리를 냈다.
꽤 길었던 정규 활동을 진행하며, 상당히 많은 포인트가 쌓였다.
그것을 전부 사용했다만,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그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길 바랄 뿐이지.
무심코, 그때의 느낌을 상상한 내 미간이 구겨졌다.
단전이 찢어지는 느낌이 들며, 뭘 어찌할 도리도 없이 피가 울컥 치솟는 경험은 정말 구렸다.
나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내 몸뚱어리의 꼴이 슬슬 궁금해지는군.
[그거라면, 아주 만신창이가 되었다네.]
“……!”
무슨 계시라도 받는 것처럼, 소리를 인식함과 동시에 머리가 둥둥 울리기 시작했다.
[이런…… 자네에겐 무리였으려나.]
[내 증표를 이레 정도 품었으니, 이 정도는 괜찮을 거라 여겼는데 말이야.]
나는 바닥으로 향했던 고개를 치켜들었다.
주변의 공기를 짓누르는 위압감에, 그 간단한 행위조차 쉽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어떤 인영을 처음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마젠타빛이 옅게 감도는 기다란 은색 머리칼.
시원하게 가로로 찢어진 눈매와 그린 것처럼 화려한 이목구비.
아마도, 이건…….
이 성좌의 본래 모습이겠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이유로, 여태껏 다른 이들의 얼굴을 빌려 내 앞에 나타났으니까.
인간의 것일 리가 없는, 투명한 홍안이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어떤가.]
……대체 뭐가?
내가 물음표를 띄우자, 성좌가 말을 이었다.
[내 본체를 다 보이진 못하겠다만, 이렇게 생겼다네. 사실, 이것보다 더 잘생겼지. 나약한 자네에게 보여줄 수 없음이 안타까워.]
낯짝이 놀라우리만큼 신성하게 생겨서 잠시 낯을 가릴 뻔했으나, 나불거리기 시작하니 익숙하군.
굉장히 재수가 없다는 뜻이다.
[아하하하하하하! 평가가 생각보다 후하군그래!]
눈앞의 인영이 움직일 때마다, 몸에 걸쳐진 투명한 색상의 보석들이 맞부딪히며 청아한 소리를 자아냈다.
사락-
부드러운 천이 내 볼에 닿았다.
어느새 내게 가까이 다가온 성좌의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
상체를 낮춘 성좌가 내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호오, 벌써 적응이 된 건가?]
적응이라니, 아까부터 손이 개처럼 떨리고 있는…….
생각을 이어가던 나는 시선을 내렸다.
……몸이 떨리지 않고 있다.
어느새에?
[과연, 놀랍군. 자네를 선택한 내 안목이 틀리지 않았어.]
빙그레 웃은 성좌가 허공에 둥실 떠올라, 평상에 눕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른하게 턱을 괬다.
[연결은 복구되지 않았으나, 자네에게 남긴 그 증표. 그것으로 불러올 수 있었으니…… 참으로 다행이 아닌가.]
“하고 싶은 말씀을 하시죠.”
[본론만 말하자면, 이 정도로 난동을 부릴 거라곤 예상 못 했다네. 단지.]
성좌의 손가락이 내 가슴께를 가리켰다.
[조만간 그 녀석이 큰일을 치르겠다 싶긴 했지.]
그 순간, 성좌의 눈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곤 못 참겠다는 듯 폭소했다.
한참을 웃은 성좌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내 몸이 순식간에 성좌의 앞으로 옮겨졌다.
[자네, 지금 이 상황에서도 그것들을 걱정하고 있는 것인가!]
웃음기가 잔뜩 섞인 목소리가 퍼져 나갔다.
[정작 자신의 몸뚱이는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면서? ……하하하! 우습지 않은가!]
* * *
움찔.
의식이 없는 상태로 누워 있던 누군가의 손가락 끝이 살짝 떨려왔다.
흐트러진 검은 머리칼.
핏기가 사라진, 창백한 얼굴.
류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우연히 마주한 의료진이 소리쳤다.
“……! 여기 환자 깨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