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31화
[자네가 그리 끼고도는 그것들의 상태쯤이야, 내 알려주지 못할 이유가 없지.]
입꼬리를 나른하게 올린 성좌가 공중에서 몸을 내려 공간을 거닐었다.
[아주 멀쩡하다네. 자네의 그 축복 덕에 말일세.]
성좌가 움직일 때마다, 보석끼리 공명하는 소리가 고요하게 퍼져 나갔다.
마치 잉크가 물에서 퍼져 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아아.]
[반대로 자네는 죽을 뻔했지만 말이야.]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매만진 성좌가 몸을 빙글 돌렸다.
[나와 나눈 증표가 아니었다면…… 자네의 숨은 손쓸 새도 없이 사그라들었겠군그래!]
챠라락, 탁.
성좌의 움직임이 멎어 든 것도 그 무렵이었다.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짓을 벌인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 그래, 자네는 웬만해선 죽지 않는 건 사실이지. 하지만.]
무언가를 가늠하는 것 같은 눈빛이 내려앉았다.
[신계와 자네의 연결이 끊기다시피한 상황에서…… 대체 무얼 믿고?]
본인의 얼굴을 얕게 그러쥔 성좌가 말을 이었다.
얼굴엔 분노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것이 담겨 있었다.
[그 행동들이 가히 깜찍하긴 하다만, 한낱 필멸자라는 분수를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글쎄요. 뭐, 믿는 구석이 있으니 그랬겠죠.”
내 말과 동시에, 성좌의 눈에 흥미로움이 스쳤다.
[그 믿는 구석이 나로군? 재밌단 말이지. 나를 신뢰하진 않으면서도…….]
“정확합니다. 신뢰하진 않지만, 저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죠.”
나는 눈을 데굴 굴렸다.
“추가로, 제가 죽게 두지 않을 거라는 것도.”
성좌의 눈이 동그래졌다.
[푸하하하하하하! 그래, 그래. 나는 자네가 설령 명계에 떨어졌대도 찾으러 갔을 거야!]
농담인지 진담인지도 모를 말을 꺼낸 성좌가 말을 이었다.
[나로선 괘씸하지만, 자네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꽤나 현명했다네.]
“……?”
[그것들 말일세.]
멤버들을 말하는 건가.
[자네의 부탁도 있으니, 최대한 살려봤을 테지만…… 아마 반절은 자네의 충돌에 휘말려 숨을 거뒀을 거야. 그렇게 됐다면, 다른 성좌들도 시끄러워졌을 테지.]
……등골이 오싹해지는군.
[그런 표정 말게. 자네 덕에 그것들은 문제가 없으니.]
[우습게도 지금 난리가 난 건 자네의 몸이야. 서둘러 이 공간으로 부른 것도 그 연유에서지.]
성좌의 눈꼬리가 길게 접혔다.
[거기서 정신이라도 차렸다가는 끔찍했을 거라네~]
“알 만하군요.”
……그 사고가 났는데, 내 몸이 멀쩡하길 바라는 건 우스운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겐가? 내가 설마하니 계약자를 외면할까. 자네의 몸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네.]
투명한 홍안에 자신감이 담겼다.
[나는 자네의 생각보다 강대하거든.]
목숨 걱정은 하지 말라는 뜻이군.
[어디 목숨뿐이겠는가? 자네의 몸에 상처 하나 안 남게 해줄 수도 있어.]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앞으로의 활동에서, 흉터라도 눈에 띄었다간 팬분들의 마음이 찢길 테니.
나는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거래 내용이나 말씀해 보시죠.”
[적극적이군그래.]
타악!
허공을 작게 가르는 손짓과 동시에, 작은 상자가 성좌의 손아귀로 떨어졌다.
“……?”
[그리 뚫어져라 쳐다보지 않아도, 자네의 것이라네. 자네가 계약에 동의한 순간, 이미 계약은 시작됐거든.]
벌써 구두계약이 성립됐다는 뜻이로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웃고 있는 성좌의 시선이 아래에서 위로 움직임과 함께…… 동기화라도 된 듯, 내 팔이 자동으로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하지만 이건 놀란 축에 끼지도 않았다.
달칵-
성좌의 손에 들린 상자가 열림과 동시에, 내용물이 내게 옮겨졌다.
그리고 그것을 마주한 내 동공이 기름에 들어간 팝콘처럼 이러저리 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게, 이건 자색 보석이 박힌…….
반지였다!
[왜 그러는 겐가?]
상황 파악을 마친 나는 그 자리에서 펄펄 날뛰기 시작했다.
“죽어도 안 됩니다.”
자고로, 아이돌에게 반지란 무엇인가?
패션용 반지가 아닌 이상, 멤버나 가족들과의 우정링 정도만이 허용된다.
하지만 이 반지는 누가 봐도 위의 예시에 해당되지 않는다!
내가 만약 이런 반지를 끼고 돌아다닌다면?
- 이야 해궁이 당당하네 ㅋㅋㅋ
- 해온아 너 서치 많이 하잖아 불만 나오는 거 알면서 왜 반지 안 빼? ㅎㅎ 여친이 빼지 말래? ㅎㅎ
- 얘들아 그만해라… 성해온의 그녀가 빼지 말라신다…
이런 반응이 나올 거라고 확신하겠다.
오싹하다 못해 피가 차게 식는다.
그렇다고 같은 디자인을 여럿 만들어서 멤버들에게 뿌리기엔…… 이 보석, 출처를 알 수 없다.
보랏빛의 색상만 보고 자수정이라고 여기기엔, 뭔가 달라도 심각하게 다르다.
[당연한 생각을 하는군. 이건 겨우 그딴 돌 조각이 아니라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혹시 이 반지, 제 의지에 따라 탈착이 가능한 걸까요.”
내 물음과 동시에, 성좌의 고개가오른쪽…… 왼쪽…….
그러니까, 가로로 저어졌다.
X됐다.
[이런, 빼려고 하지는 말게. 만약 강제로 제거한다면 자네의 목숨도 온전치는 못할 테니.]
“아하, 그러니까 이 반지를 빼는 순간 뒈진다는 말씀이시군요?”
내 상쾌한 물음에, 성좌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음, 그런 셈이지.]
싱긋…….
“성좌님.”
[그래.]
“제정신이신가요?”
나는 어느 순간 커플링으로 추정되는 수상한 반지를 착용하고 등장해, 팬들에게 뭇매를 맞은 아이돌들의 역사에 대해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겨우 이게 인간계에서 그리 큰 영향을 끼친단 말인가?]
성좌가 짐짓 흥미롭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그것까진 생각하지 못했군. 흐음, 그래. 위치 정도야.]
성좌의 손끝에서 작은 마법진이 펼쳐졌고, 방금까지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반지가 팔찌의 형태로 뒤바뀌며 손목으로 옮겨졌다.
보석의 크기는 반지일 때와 동일하다 보니, 확실히 임팩트가 적었다.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일단, 반지만 아니면 됐다.
나는 손목을 작게 흔들었다.
“이게 거래와 무슨 상관인지 궁금한데요.”
물음이 끝나기 무섭게, 성좌가 작은 보석을 가리켰다.
[수천 개의 세밀한 마법진, 그리고 나의 권능까지 중첩되어 있다네. 꽤 오랜 시간 공을 들였지. 귀찮은 이들에게 보여서 좋을 게 없으니.]
이것에 관련된 게……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군.
다른 성좌들에게까지도.
……잠깐, 이럴 거면 굳이 형태를 팔찌 형태로 바꿀 필요가?
[드디어 눈치챘는가? 하하하하! 자네가 걱정을 한가득 품으며 조잘대는 게 꽤 깜찍했다네~]
“…….”
가만 안 둘 것이다.
한참을 처웃은 성좌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걱정할 것 없네. 이 거래로 인해 자네의 일상이 바뀔 리는 없으니 말일세.]
“……그 말은?”
[그저 이전과도 같은 일상을 보내면 된다는 의미지. 자네는 아직 해내야 할 것들이 많지 않은가.]
종합하자면, 나는 아이돌 활동이나 열심히 하면 된다는 뜻이로군.
[정답일세. 역시 영특하군.]
타악.
성좌가 손짓하자, 허공에서 직경이 6cm 정도 될 것 같은 원석이 떨어져 내 손아귀에 얹어졌다.
“……?”
내 팔찌에 박혀 있는 작은 보석과 같은 것이었다.
[거래 조건은 이게 다일세. 그것을 잘 지켜주게나.]
“……그게 끝이라고요?”
[내 누누이 말하지 않았는가? 이 거래는 자네에게 해가 되지 않을 거라고.]
당연히 안 믿었지.
[자네는 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겐가? 섭섭해지려 하는군그래. 그리고 이 거래는 자네에게도 꽤 도움이 될 거야.]
성좌가 손을 내밀어보라는 듯, 자신의 손을 까딱였다.
[자, 그럼 이제 약속의 시간이라네.]
구두로 체결된 언약이 아닌, 제대로 된 계약을 말하는 것이다.
짧게 호흡한 나는 성좌의 손 위에 손을 얹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성좌가 자신의 손목을 스스로 그은 것이다.
그의 손목에서 흐르기 시작한 피가 내 팔목에 채워진 보석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다음은 원석.
마지막으로, 성좌가 자신의 손가락 두 개를 내 입에 집어넣었다.
스륵.
“……!”
상황을 파악할 틈도 없이 말캉한 혀에 피가 닿았다.
그것에 기함하고 있을 무렵, 날카로운 손톱이 내 오른쪽 손목을 세로로 훑었다.
사아악!
동시에 손목 안쪽이 그어지며, 내 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방금의 과정과 같이, 보석과 원석.
마지막으로 자신의 입에 내 피를 머금은 성좌가 피식 웃었다.
[계약은 계약일 뿐이니, 당황하지 말게나.]
동시에 광활한 공간…….
그 공간이.
화아아악!
자색 마법진으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 * *
- 코드 블루, 중환자실.
- 코드 블루, 중환자실.
병원에 안내 음성이 방송되기 시작했다.
CODE BLUE. 심정지 환자가 나왔다는 뜻이며, 의료진들을 불러모으기 위한 알림이다.
타다다닥!
역시나 안내 음성을 들은 의료진들이 각자 하던 일을 제쳐두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한편, 중환자 처치실.
가장 근처에 있던 의사가 CPR을 시작했다.
의사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몇 번을 해도 긴장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소생에 성공하는 경우보다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툭.
흉부 압박을 받던 성해온의 팔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온 힘을 다해 흉부 압박을 진행하던 의사는 성해온을 살폈다.
핏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
‘돌아와라, 돌아와라. 제발.’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한 의료진의 얼굴에 희망이 스쳤다.
“매, 맥박 돌아옵니다!”
“……!”
잠시나마 환희에 찼던 의료진이 멈칫했다.
바이탈 사인이 돌아오고 있다.
하지만 이건…….
“말도 안 되는데?”
멈췄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면, 당연히 모든 활력징후는 좋아진다.
그럼에도.
성해온의 바이탈 사인은 급격하게 좋아지고 있었다.
……보통의 수준을 벗어날 정도로 말이다!
빠르게 판단을 마친 의료진은 곧바로 상체를 빙글 돌렸다.
“이거 고장이야! 빨리 가져와! 당장!”
기계의 결함이라고 판단한 의료진은 사람을 보낸 뒤, 곧장 자신의 손가락을 성해온의 목 부근에 가져다 댔다.
“……!”
경동맥에서 박동하는 맥박을 직접 체크하기 시작한 의료진의 눈이 커지기 시작했다.
……고장이 아니라고?
심지어 그새 맥박이 더 좋아졌다.
의료진의 경악 어린 시선은, 이내 성해온에게 닿았다.
“대체…….”
* * *
코리아 연예.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신문사다.
규모도 소형!
인지도도 소형!
이런 이들에게 도의적인 윤리와 기삿감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후자였다.
가장 중요한 건, 덩치를 불릴 만한 자극적인 기삿감이었으니까!
이런 코리아 연예의 개국공신은 박철상.
박철상은 소식을 발 빠르게 캐치했다.
캐치해서 어떻게 했냐고?
병원에서 기자의 출입을 삼엄하게 통제하기 전에, 위경련인 척 연기해 들어오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운도 더럽게 없지.
주변을 경계하며 통화를 이어가는 MH의 관계자들만 보일 뿐, 박철상은 라이트온의 털끝 하나 보지 못했다.
위급한 환자는 당연히 분리된다.
그리고 중환자 처치실은 의료진을 제외한 이들의 입장이 불가능하다.
박철상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뭐라도 하나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쯧, 허탕이잖아.”
혀를 찬 박철상이 중얼거린 순간이었다.
코드블루가 나왔다는 안내 방송과 함께 의료진들이 한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호오?”
박철상은 흥미로운 얼굴로 턱을 쓰다듬으며, 그런 의료진의 뒤를 쫓아 그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환자분! 여기 근처는 출입 금지입니다!”
의료진의 날카로운 경고에, 고개를 끄덕인 박철상은 등을 돌리는 척하며 발걸음을 바꾸지 않았다.
‘정신 없나 보네. 따라붙는 것도 모르고.’
어차피 안엔 못 들어가지만, 근처까지만이라도 가보자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르륵-
……중환자실의 자동문이 열린 순간 말이다.
박철상은 마주했다.
의료진이 둥글게 모여, 한 인영의 심장 압박을 진행하고 있었다.
코드 블루가 들어왔다던 환자가…… 저 친구였어?
이미 성해온의 바이탈이 정상궤도를 찾고 있다는 걸, 박철상이 알 리 없었다.
닫혀가는 자동문 사이로, 박철상은 작게 중얼거렸다.
“특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