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33화
사고에 휘말린 이들 중 가장 먼저 눈을 뜬 건 류인이었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누군가의 이름을 되뇌었다.
성해온.
- 환자분! 그렇게 바로 일어나시면!
- 괜찮습니다. 어지럼증 없어요.
크게 떨지 않고,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것.
누군가는 답답하다고 할 정도로 매사에 덤덤한 것은 그의 천성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안개가 잔뜩 낀 것같이 뿌연 머릿속에 단 한 명만이 떠올랐다.
왜?
이유는 모르겠다.
생각하려 할수록 두통이 몰려온다.
지끈!
머리를 붙잡자, 그럴 줄 알았다는 의료진이 자신의 몸을 침상에 눕히려 들었다.
평소였다면 얌전히 그 손길에 따랐을 테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근처에 있던 의료진 둘로는 류인을 막을 수 없었다.
류인은 근처 병실의 문을 마구잡이로 열기 시작했다.
공인이라는 신분상, 소속사에서 일반인의 출입이 없는 라인에 병실을 마련한 듯 싶었다.
드르륵-!
류인은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한 멤버들의 얼굴을 전부 확인했다.
자신처럼, 괜찮아 보였다.
……약간의 두통과 근육통을 제외하면, 자신의 몸은 아주 멀쩡했으니까.
멤버들 역시 아직 의식만 차리지 못한 듯 싶었다.
사고가, 경미했나?
그럼 왜 정신을 잃은 거지?
사고 직전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머릿속에 계속해서 한 명만이 떠올랐다.
성해온.
그래, 아직.
한 명을 확인하지 못했다.
……타악.
마지막 병실의 문을 남겨두고, 류인은 의미 없는 행동을 멈췄다.
어쩐지, 성해온은 아무리 찾아도 여기 없을 것 같았기에.
류인은 자신을 뒤따라온 의료진을 붙잡았다.
“해온, 해온이는.”
“……!”
“지금 어디 있나요?”
* * *
심장이, 너무 뛰었다.
류인은 마른 얼굴을 쓸어내렸다.
도무지 침착해지지가 않았지만, 침착해야만했다.
그는 할 수 있는 최대의 평정을 유지했다.
‘괜찮아.’
류인은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병실 라인에 없던 성해온은 수술실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수술은 잘 끝났다고 한다.
자신의 눈으로 수술을 마치고 일반 병실로 옮겨진 성해온을 확인했다.
이제 곧 멤버들이 깨어날 것이다.
자신이 놀란 모습을 보여선 안 됐다.
류인은 숨을 짧게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옆 병실에서 소란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드르륵-
문을 열자, 엉망이 된 병실.
그 안에 선 한수현의 팔에선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무식하게 뜯긴 링거들이 원인이었다.
류인은 한수현을 막고 있는 의료진들을 부드럽게 떼어냈다.
“수현아.”
한수현의 손목을 잡으며, ‘괜찮아’라고 속닥인 류인이 의료진들에게 시선을 보냈다.
“지혈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네……!”
곧바로 의료진들이 다가왔고, 한수현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류인 형.”
“응.”
“해온 형은요?”
“괜찮대.”
“거짓말.”
한수현은 시선을 올려, 류인과 눈을 마주했다.
“속이 울렁거려요.”
“…….”
“토할 것 같아요.”
“…….”
“류인 형.”
“…….”
“이 기분은 뭐예요?”
“…….”
“이상해요.”
한수현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흐르는 눈물과 반대로 얼굴은 전혀 울고 있지 않아, 기이할 정도였다.
“저는 원래 꿈을 꾸지 않아요. 그딴 공상, 제 인생에 필요 없으니까요.”
한수현은 류인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해온 형이 죽는 꿈을 꿨어요. 원래 제가 죽었어야 했는데…… 해온 형이 대신 죽었어요.”
“…….”
“이상하죠? 저도 헛소리인 거 알아요. 근데 너무 생생했다고요.”
둘의 시선이 맞닿았다.
“그러니까, 전 해온 형을 보러 가야 해요.”
류인은 한수현의 어깨를 작게 두드렸다.
“지혈만 끝나면, 같이 보러 가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류인 형은 기억하시나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한수현이 무얼 말하는지.
사고 직전의 기억.
류인은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떴다.
처음엔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류인의 상태를 보러 온 의사는 그에게 사고를 겪은 환자에게 꽤 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강한 충격이 발생하면, 뇌가 그 기억을 지워낸다고.
마치 방어기제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감정은 뭐지?
류인에게도 울렁이는 감정이, 너무나도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성해온이 자신을 지켜준 것만 같은.
아니, 지켜준.
아니, 구해준.
따뜻하고도, 숨이 막힐 것 같은.
그런 것들이 각인처럼 남아 있었다.
류인은 한수현의 덜덜 떨리는 몸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끌어당겨 안았다.
그런데 있잖아.
……사실, 나도 모르겠어. 수현아.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할 수 없었다.
“응, 기억나.”
류인은 한수현의 등을 토닥였다.
“해온이는 괜찮아.”
* * *
라이트온 멤버들은 사고를 기점으로 3일 만에 퇴원이 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물론 완벽하게 나은 건 아니었지만, 경미한 부상이라 통원 치료가 가능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단 한 명, 성해온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는 병원에서 놀랄 정도의 차도를 보였다.
모든 수치가 빠르게 정상으로 돌아간 건 기본이오, 수술의 상처까지 빠르게 아물고 있었다.
가끔 회복이 남들보다 빠른 이들이 있다지만, 성해온은 그 수준을 넘어서 가히 놀라울 정도였다.
의료진들이 회진을 돌 때마다 놀랄 정도니 말 다 했다.
“그 환자 눈 언제 뜰 것 같냐?”
성해온을 담당하는 의료진들 사이에서 ‘그’ 환자는 당연히 성해온이었다.
공인이 입원하는 것도 주목을 끌 일인데, 어쩐 일인지 의식도 못 찾고 있으니 말이다.
“이 정도면 진작 눈을 떴어야 하는데. ……왜 정신을 못 차리지?”
“그치. 그것도 그런데, 나는 다른 게 놀라울 지경이다.”
숙직실에서 기지개를 쭉 켠 남자가 말을 이었다.
“그 멤버들 말이야. 아무리 친하대도…… 가족도 아닌데 그렇게 할 수 있나?”
“야. 가족도 그렇게 성심성의껏 간호 안 해. 뭐…… 같이 사고 났는데 자기들은 멀쩡하니 죄책감 같은 거 아니겠어?”
그 말을 들은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보기엔…….
분노에 가까웠는데.
아, 물론 남을 향하는 분노 말고.
자신에게 향하는 분노 말이다.
* * *
성해온은 보안이 강력한 1인 병실로 옮겨졌다.
얼마 전에도 사생이 출입하려던 걸 잡아냈다.
다름 아닌, 멤버가 직접 말이다.
- 야! 한수현! 수현이네! 나 해온이 선물 주러 왔어!
- 아.
한수현은 아무 감정도 찾아볼 수 없는 얼굴로 사생의 손에 들려진 스마트폰.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켜져 있는 무음 카메라 어플을 가리켰다.
스마트폰을 빠르게 숨긴 사생이 한수현에게 쇼핑백을 내밀었다.
- 잘못 켜졌나 보다. 근데 수현아, 해온이는? 응? 어딨어? 아니면 네가 대신 전해줄래?
평소라면 진작 표정 관리를 했을 그였다.
한수현은 언제나 표정 관리를 했으니까.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팬이 아니었다.
사생을 마주하자마자 연락을 넣어놓은 상태였기에, 그 사생은 곧바로 관계자들에게 끌려 나갔다.
하지만 그 사생은 한수현에게 막말을 이어가며 끌려 나갔다.
- 팬한테 눈깔 그렇게 뜨는 게 맞아? 초심 찾자~ 수현아? 응?
- 다음에 또 올게~ 해온이 안부 궁금하다!
이런 것들은 한수현에게 조금의 공포감조차 심어주지 못했다.
자신에게 화가 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그저, 바라고 바랄 수밖에 없는 자신이.
“해온 형.”
한수현은 성해온의 손을 맞잡았다.
“저 무서워요.”
한수현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얼른 일어나 주세요.”
* * *
띠리릭-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멤버들이 숙소로 발을 내디뎠다.
평소였다면 입구부터 시끌벅적했을 숙소가 조용했다.
그것도 아주.
숨이 막힐 정도로.
하지만 멤버들 중, 그 누구도 입을 떼지 않았다.
그 최승하조차도 말이다.
하지만 최승하는 어느 순간부터, 평소처럼 밝게 웃기 시작했다.
“와아~ 오늘 날이 엄청 춥네!”
상체를 빙글 돌린 최승하가 헤실 웃었다.
“형들~ 동생들~ 다 따뜻하게 입어요. 감기 걸리겠다!”
자신의 목도리를 꺼내 차윤재에게 돌돌 매준 최승하가 빙그레 웃었다.
“따뜻해?”
“……예! 무척이나 따뜻합니다!”
“그럼 가볼까~?”
이제는 숙소보다 익숙하게 느껴질 지경인 병실엔,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만 같은 백색소음이 가득했다.
최승하는 웃는 얼굴로 성해온의 침대 옆에 착석했다.
“형~ 언제 눈뜰 거예요? 아주 우리 마음을 얼마나 졸이려고~”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투덜거린 최승하는 성해온의 콧등을 톡톡 쳤다.
“뭐가 예쁘다고 매일같이 오게되는지~ 모르겠다니까~”
최승하가 침대의 빈 공간에, 자신의 상체를 엎드리듯 무너뜨렸다.
그리곤 성해온의 허벅지를 콕콕 찔렀다.
“일어나기만 해봐! 걷지도 못하게 해야지~”
장난스럽게 휜 눈매 아래로, 차마 꾸며내지 못한…… 차갑게 물든 눈동자가 성해온을 조용히 훑었다.
사고로 실려 와 처음 눈을 떴을 때, 최승하는 기시감을 느꼈다.
뭔가를 잃어버린 듯한…….
뒤늦게 사고 소식을 듣고 헐레벌떡 찾아온 최승하의 삼촌은 자신의 조카를 보고 기겁했다.
- 너, 너! 이 자식! 이 자식아! 사고 소식 듣고 나는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괜찮아? 어?
- 삼촌, 시끄러워. 나 방금 눈떴어.
- 흠, 미안하다.
두어번 헛기침을 한 남자의 눈에 경악이 물들었다.
상상도 못 했던 것이 최승하의 볼을 타고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 야! 야, 임마! 너 설마 우냐? 울어? 내가 너 우는 꼴은 기어다닐 때밖에 못 봤는데?
- 나 때문인가?
- 너 설마…….
- 내가 해온 형을 붙잡았으면? 병원에 계속 입원시켰으면? 회사에 말해서 스케줄이고 뭐고 전부 뒤로 미뤘으면? 응? 삼촌.
- ……!
- 그럼, 이 사고는 나지 않았을까? 그 형은 다치지 않았을까?
자신의 삼촌은 그런 가정이 제일 쓸모없는 것이라며 열변을 토해냈다.
‘나도 알아.’
머저리도 아니고, 그걸 모를 리가 있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최승하의 옆에 신유하가 착석한 것이다.
“일부러 안, 웃어도 돼.”
“오늘따라 유하가 조금 뜬금없는데? 나랑 대화하고 싶은 건가~?”
“……너, 힘들어 보여.”
신유하는 고른 숨을 내뱉고 있는 성해온을 바라보다가, 이내 작게 웃었다.
“해온 형은, 곧…… 일어날 거야.”
“…….”
“우린 기다리, 면 돼. 형을 믿고.”
커진 눈을 껌뻑인 최승하가 이내 푸하핫 웃었다.
“아~ 우리 유하 다 컸네! 근데.”
“……?”
“웃는 건, 웃을래.”
이렇게 평소처럼 굴어야, 이 형이 눈을 뜰 것 같거든.
최승하를 시작으로, 라이트온 멤버들은 차츰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물론 겉으로 꾸며낸 것이었다.
활기라, 현재 이들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 아닌가?
이들의 얼굴은 전부 말이 아니었다.
사고 이후, 얕은 수면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걸 알고도, 어떻게…….
잠을 이룰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