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36화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상태로 눈썹을 까딱였다.
어라?
“앗, 선배님! 오셨습니까!”
원래의 차윤재라면, 의현 앞에서 떨린다고 제대로 말도 못 꺼낼 텐데?
저 녀석이 언제 저런 사회생활 능력을 키웠…….
“음, 해온이는 잠들었나 보네요.”
“예? 형님은…….”
차윤재의 시선이 양심 없게 눈을 감고 있는 내게 꽂혔다.
“……? 방금 전까, 읍! 으븝!”
차윤재가 눈을 동그랗게 뜬 순간, 누군가가 녀석의 입을 막았다.
최승하, 나이스다.
“형은, 주무세요.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신유하가 의현에게 말을 내뱉은 순간, 내 낯짝이 조금 흐려졌다.
“…….”
거짓말에 재능이 없군.
하지만 난 더더욱 편안하게 표정을 정돈했고, 얼마 안 가 어떤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쇼핑백들이 서로 스치는 소리로 추정되는…… 음, 무언가를 사 온 모양인데.
“일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굳이 이런 걸 가져오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바쁘실 텐데 오실 필요도 없으시고요.”
나는 한수현의 말에 물음표를 띄웠다.
……일전에도?
“해온 형은 저희가 잘 돌볼 테니까요.”
“하하, 해온이 멤버들이면 저한테도 남다르니까요. 편하게 생각해 주세요.”
“저는 그다지 남다르지 않은데요.”
“수현 후배님은 쑥스러움이 많으시네요.”
거의 자강두천이로군.
서로 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스파크가 튀는 게 느껴질 정도니 말 다 했다.
의현도 의현이다만, 한수현도 대단하다.
어떻게 보면 아이돌들이 존경해 마지않는다는, 그 밀리어스 아닌가.
그를 상대로 저렇게 불손하게 굴 수 있다는 것도 재능의 영역이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의현의 것으로 추정되는 발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깨어났다는 연락 받자마자 왔는데, 조금 더 서두를 걸 그랬네요.”
좀 전부터 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다만, 오늘 처음 찾아온 게 아닌 모양이지.
차윤재가 의현을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지 않은 이유도 그래서였을 테고.
할 일이 정말 더럽게 없는 모양이라는 생각이나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해온아.”
어느새 근처로 다가온 목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네가 깨어나서 기뻐.”
바깥의 찬 기운이 남아 있는 손이 내 손등을 덮었다.
“그래도 다음엔 얼굴 보고 싶다.”
해석하자면, 안 자는 거 안다는 뜻이다.
애초에 속을 거라고 생각도 안 했다만 굉장히 당당하군.
그 순간이었다.
몸을 내 쪽으로 숙인 의현이 작게 속닥였다.
“나 미칠 뻔했어.”
“……!”
순간적으로 온 몸에 소름이 삐쭉 돋아올랐다.
“그러니까, 다음엔…….”
내 손등을 덮고 있던 기다란 손가락이 살풋 올라가더니 내 손목을 얕게 그러쥐었다.
“보여줄 거지, 해온아?”
내가 조금의 미동도 없이 자는 척을 이어가자, 작게 웃은 의현은 멤버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등을 돌렸다.
타악!
병실의 문이 닫히기 무섭게 차윤재가 펄쩍 뛰었다.
“수, 수현이! 너! 너어!”
그 이유를 묻는다면, 의현이 나중에 다시 오겠다는 말과 함께 한수현의 공포의 주둥아리가 열렸기 때문이다.
- 안정을 취하셔야 하니 외부인은 되도록 출입을 줄여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심지어 외부인이라는 단어엔 강조의 악센트까지 실려 있었다.
차윤재가 아찔한 얼굴로 한수현에게 시선을 보냈다.
대체 어디서부터 짚어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너, 너어…… 선배님께 그러면 안 돼!”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요. 애초에 듣지도 않은 것 같고, 쯧.”
“으하하, 우리 귀여운 막내~!”
“승하 형님! 형님이 이렇게 오냐오냐하니 그러는 게 아닙니까!”
“으음~ 귀여운 걸 어떡해?”
“으윽!”
차윤재가 뒷목을 부여잡았다.
* * *
“후.”
드디어 좀 조용해졌군.
나는 텅 빈 병실을 훑었다.
이마까지 짚어대며 피곤해서 좀 자야겠다는 메소드 연기를 펼친 뒤에야 녀석들을 내보낼 수 있었다.
미련 가득한 얼굴로 매니저에게 끌려 나간 걸 보니, 금방 다시 올 것 같다만.
멤버들이 야무지게 덮어놓고 간 이불을 풀어헤친 나는 상체를 훅 일으켰다.
솔직히 말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눈을 뜨자마자, 일이 몇 개가 터진 건지.
……우선 사고 직전의 기억은 떠올리지 못하는 것 같지.
성좌에게 부탁했던 부분이다.
그걸 기억하면 어디 제정신으로 살 수 있겠는가.
나는 조용히 상태창을 불러내, 업그레이드된 특성을 살폈다.
[교주의 신성(SS)]
: 떠오르는 신성(新星)의 자격을 갖춘 자.
교주의 권한으로 지배력이 250% 상승합니다!
포교 활동을 통해 신도를 모을 수 있습니다!
신도의 수에 따라, 당신의 영향력이 거세집니다!
상단에 한 줄이 추가됐다.
신성(新星).
뜻만 놓고 보자면 새롭게 나타난 별이라는 뜻이다.
주로 연예계에서 쓰이는 말이기도 하고.
누군가가 새로이 인기를 끌며 라이징 자리를 차지했을 때 이 한자의 의미가 담긴 ‘신성’이라는 호칭을 붙여주지 않는가.
그리고 이전부터 직접 깨달은 거지만, 이 특성…….
사이비 같은 이름과는 다르게 꽤나 연예계 특화형이다.
우선 저 지배력.
이전엔 200%였던 것이 250%로 늘었다.
그리고 이 지배력은 무대 위에서 빛을 발한다.
같은 보컬 실력이어도, 이 특성이 있으면 사람들의 이목을 조금 더 집중되는 식이다.
이거야 활동을 재개하면 어느 정도의 효과인지 자연스레 알게 될 일이니 패스.
병원 침대에서 고민해 봐야 알 수 있는 것도 없다.
나는 머리맡에 놔둔 무언가를 손에 들었다.
자색 원석이었다.
“흠.”
깨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살핀 게 이것들이었다.
손목에는 팔찌가 채워져 있었고, 손아귀엔 원석이 있었다.
다른 이들의 눈엔 보이지 않는 듯했지만.
겨우 이걸 지키는 게 거래라고?
팔찌는 내 몸에서 떼내면 목숨이 댕강이라지만, 강제로 잡아 빼도 빠지지 않는 것이라 걱정 없다.
‘문제는 이건데.’
이 원석 말이다.
나는 은은한 빛을 내뿜는 원석에 시선을 보냈다.
정체는 모르겠지만, 계약까지 한 이상 난 이것들을 지켜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음.”
아무리 끼고 다닌대도, 분실의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단 품에 넣고 다니는 게 안전하려나.
나는 병원복을 뒤적거리며 중얼거렸다.
“들어갈지 모르겠군.”
이 원석이 나름대로 사이즈가 있어서 말이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파아앗!
사방으로 뿜어지는 자색 빛과 함께, 원석이 사라진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같은 원석으로 추정되는…… 팔찌에 박힌 작은 보석 속으로!
“뭐야.”
나는 다급하게 상체를 조금 더 바짝 일으켰다.
그리고.
탈탈탈!
손목을 미친 듯이 털기 시작했다.
“돌려놔. 이봐. 이봐.”
내가 지랄을 떠는 와중에도, 성좌들의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정말 이 거래에 관한 모든 것들은 왜곡되어 보이는 모양이지.
멤버들을 미리 보내서 망정이지, 이 광경을 보였다면 미친놈 취급당했을 게 뻔했다.
나는 손목을 더 강하게 털어냈다.
탈탈탈탈!
“나오라ㄱ-”
내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이었다.
다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
나는 벙찐 얼굴로, 손바닥 위에 얌전히 올라가 있는 원석을 내려다봤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작게 속닥였다.
“들어가.”
말과 함께 원석이 다시 자취를 감췄다.
아.
설마.
‘들어가’, ‘나와’ 같은 키워드로 출납할 수 있는 건가.
아까 병원복을 뒤적거리며 중얼거린 말에 반응해 들어간 거고?
“…….”
꽤나 황당하군.
하지만 이거라면 안심이다.
적어도 잃어버릴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것이니.
* * *
한편, 병실에서 나와 밴에 올라탄 멤버들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가라는 성해온의 말에 바로 나간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작당모의를 하듯,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열심히 의견을 피력하던 차윤재가 운전석 쪽으로 몸을 내뺐다.
“매니저님! 이따가 저녁에 다시 병원으로 가도 되는 것입니까?”
“그, 내일 가는 편이…….”
성해온도 휴식을 취해야 할 것이다, 라고 말하려던 매니저가 멈칫했다.
차윤재의 눈빛이 심각할 정도로 간절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멤버들의 눈빛 공세까지 더해졌다.
결국 항복한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고생을 옆에서 지켜본 입장에서, 어떻게 모른 척하겠는가.
“지금이 1시니까, 음. 여러분도 휴식을 취한 다음 6시에 다시 가는 거 어떠신가요.”
“5시…… 는 어떨까요.”
작게 말을 꺼낸 한수현에, 매니저가 하하 웃었다.
그러던 매니저의 얼굴에 근심이 스쳤다.
창밖의 인영들 때문이었다.
사생이라고 불리는 이들.
그나마 숙소의 보안이 있으니 큰 문제로 번지지는 않고 있지만, 사생의 머릿수가 날이 가면 갈수록 많아졌다.
이들은 성해온의 병실과 숙소를 매일같이 오가는 멤버들에게 말을 붙였다.
그중에서도, 멤버들의 멘탈을 터뜨리는 걸 즐겁게 생각하는 몇몇이 있었다.
- 얘들아! 여기 인사해 줘! 우리 스위치야!
- 아직 해온이는 아픈 거야? 얼마나? 얼마나 아픈데?
- 왜 요즘 셀카 안 올려줘? 라이브는 왜 안 해?!
주로 이런 식의 말을 걸면서 말이다.
멤버들은 매번 그랬던 대로 이들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딱 한 번.
그러니까, 이틀 전을 제외하고 말이다.
- 근데~ 해온이 진짜 심정지야?
누군가의 외침과 동시에, 멤버들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리고 이들은 옳다구나 싶었는지 계속해서 키득댔다.
- 아니~ 그렇잖아. 너흰 다 퇴원했는데, 해온이는 왜 퇴원 안 해? 뭐 숨기는 거 있는 거 아니야?
- 야야, 쟤네 눈빛 무섭다! 사진 찍어야지~ 너네 표정 관리 안 해~? 이거 트윗 올려도 돼?
사실 사생도 결이 나뉜다.
그저 아이돌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부류가 있다면.
이렇게 어떻게든 관심을 끌며, 그것을 즐거워하는 부류가 있다.
그리고 이들은 지극히 후자였다.
보통 그룹에서 사생 관련 문제가 터지면, 그 이유는 대부분 후자에서 생성되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들이 원하는 ‘관심’을 라이트온은 주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들이 무슨 막말을 내뱉던, 라이트온의 머릿속엔 성해온밖에 없었다.
그에 대한 결과로 이들이 받는 타격은 0% 수준이었으니, 사생들이 원하는 반응을 보여줄 리가 있나.
한번 걸음을 멈췄던 때도, 멤버들은 곧장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런 대꾸 없이.
아무런 반응 없이.
성해온이 깨어나리란 걸 믿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 * *
“오늘은 바로 가네? 평소엔 병원에서 오래 있더니.”
깨어난 성해온이 휴식을 취하겠다는 명목으로 멤버들을 쫓아냈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사생이 병원 밖으로 나서는 밴을 보며 중얼거렸다.
사고 난 밴은 폐차됐고, 저 밴은 얼마 전부터 새로 배정된 밴인 듯했다.
“오늘도 성해온 없었지?”
“어. 매니저 빼고 다섯이었는데?”
“걔는 진짜 뭔데 코빼기도 안 보여? 이럴 수가 있는 건가?”
“설마 아직도 못 일어난 거 아님?”
“에이, 설마. 며칠이 지났는데.”
“아니~ 이상하잖아. 이 정도면 진짜 뭔 일 난 거 아닌가?”
“……!”
동시에 입을 다문 두 사생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들의 눈동자에 짙은 호기심이 일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