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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241화 (241/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41화

기획 3팀에 발을 내디딘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이해성은…….

없는 건가?

아니면 잠시 자리를 비웠나.

잔뜩 긴장한 게 머쓱해지는군.

정재진은 여기 있다고 했지.

나는 숨을 돌리며 회의실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하마터면 커피 떨굴 뻔했다.

정재진만 있을 줄 알았던 회의실에, 이해성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문가에서 얼어붙어 있자, 정재진이 다가와 커피를 받아들였다.

“해온 씨, 아직 몸이 아프신 건 아니고요? 회사까지 찾아온 게 무리는 아니셨을지…….”

“아니요. 괜찮습니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애초에 각오하고 온 거다.

더 이상 피할 수만은 없기도 하고.

느릿하게 침을 삼킨 나는 자리에 착석했다.

내 시선이 알게 모르게 이해성에게 닿았는지, 정재진이 환한 얼굴로 이해성을 소개했다.

“아, 여기 해성 씨는 요즘 라이트온 기획 일등공신입니다!”

알다마다.

모를 수가 없다.

기획을 메일로 주고받을 때마다, 사측에서 제안하는 기획들은 이해성의 취향 그 자체였으니까.

아마 이해성이 주도한 기획이었겠지.

나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기 위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차가운 액체가 식도를 지나칠 때마다, 정신이 돌아오는 기분이다.

좋았어.

이제 대화를 시도하자.

“근데 정말 신기하더라고요.”

내 결심이 끝나기 무섭게, 이해성이 입을 열었다.

“해온 씨 취향이 저랑 정말 비슷해서요.”

“쿨럭! 큽! 쿨, 럭!”

내가 병든 닭처럼 기침하자,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난 정재진이 곧장 티슈를 건넸다.

나는 됐다는 의미로 손바닥을 내보이며 목을 가다듬었다.

……주르륵!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언젠가 이런 대화 주제가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바로 튀어나올 줄이야.

이해성과 성해온의 취향은 겹칠 수밖에 없다.

이해성의 오타쿠 자아를 보유하고 있는 것도 한몫하지만, 그것을 제외한대도 그렇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의와 관계없이 케이팝 조기교육을 받았다.

다름 아닌, 눈앞의 인영에게 말이다.

오타쿠 자아 없이도 이해성을 비롯한…… 이 바닥의 메이저한 취향을 A부터 Z까지 술술 불 수 있을 지경이니 말 다 했다.

이러니 생각하는 게 비슷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큼, 흠. ……흠.”

가까스로 목을 가다듬는 데에 성공한 나는 입을 열었다.

대충 신기한 일이라고 얼버무린 나는, 연계 질문이 들어오기 전에 서둘러 화두를 변경했다.

“두 분, 무척 피곤해 보이십니다.”

사실 기획 3팀에 들어오자마자, 다른 팀원들의 초췌한 안색에 놀랐는데, 이들은 그보다 더했다.

실질적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기획 3팀이었을 테니…… 터진 일들을 수습하느라 제대로 잠도 못 잤겠지.

두 인영이 멋쩍게 웃었고, 나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제가 심려를 끼쳤네요.”

내 말과 동시에, 회의실에 둔탁한 음이 울려 퍼졌다.

정재진이 회의실의 두꺼운 나무 테이블을 주먹으로 친 것이다.

오, 아프겠는데.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상대를 걱정하는 아름다운 마음씨에 감동합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저게 어딜 봐서 걱정이냐며 기함합니다!]

정재진은 마음이 아파 죽겠다는 얼굴로 내 손을 맞잡았다.

“해온 씨가 왜 죄송합니까!”

이봐.

아직 죄송하다고는 안 했는데.

“해온 씨는 아무,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일도 잘 마무리되었고요! 걱정하실 건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반응.

내가 원하던 것이었다.

샤라락!

낯짝에 아련함을 걸친 나는 고개를 휘익, 사선으로 돌렸다.

“저희 탓은 아니라지만, 고생하신 건 맞으니…….”

“고, 고, 고생이라니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나는 회의실 테이블에 큼지막한 박스 하나를 올렸다.

프리미엄 인삼으로 만들었다는 홍삼 엑기스였다.

“이건 팀원들이랑 나눠 드시라고…… 아, 이쪽으로 배송도 시켰으니 팀원분들이랑 두 박스씩 가져가 주세요.”

“……! 어!”

이해성의 눈이 조금 커졌다.

당연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해성이 좋아하는 브랜드 제품이니까.

이해성은 온갖 영양제를 달고 살았으며, 그중에서도 이 브랜드의 홍삼 엑기스를 좋아했다.

가격은 다른 브랜드에 비해 사악하지만, 기력이 채워지는 느낌이 남다르다나 뭐라나.

애초에 이걸 이해성에게 자연스럽게 넘기려고 가증스러운 낯짝을 걸친 거고.

이렇게라도 안 하면 정재진은 한사코 거절할 게 뻔하니까.

보아라.

“해, 해온 씨. 이건…….”

벌써부터 돌려줄 각을 세우고 있지 않은가.

나는 눈깔에 촉촉함을 더했다.

“이거라도 받아주셔야 제 마음이 편합니다.”

“그, 그…….”

고민하는 듯하던 정재진이 이내 목례했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팀원들도 좋아하겠네요.”

“맞아요. 센스 최고신데요?”

긍정한 이해성이 내가 건넨 홍삼 팩을 하나 받아들였다.

“이거 진짜 좋거든요.”

“알죠. 많이 드세요.”

나는 피식 웃으며 홍삼 팩을 여러 개 꺼내 이해성 앞으로 밀었다.

“저랑 영양제 취향도 비슷하시네요. 약간 저만 아는 브랜드 느낌이었는데, 신기해요.”

“쿨, 럭……!”

갑작스러운 2차 공격에, 나는 턱에 흐른 커피를 닦아냈다.

눅눅해졌을 게 분명한 낯짝을 정돈한 나는 시선을 들어 올렸다.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저희 스케줄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고가 나던 날, 촬영 예정이었던 CF 말이다.

“그게…… 음.”

정재진이 내려앉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계약 해지가 진행됐습니다. 사고로 인한 일이었기에, 당연히 위약금 같은 불이익 없이요. 최대한 애써봤으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봐라.

그렇게 시끌벅적했던 사고에, 기사엔 우리가 CF 촬영을 가던 길이었다는 사실까지 공개됐다.

정확한 브랜드명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상황이 이러니, 브랜드 측에선 계약을 깨고 싶을 수밖에.

워낙 크게 보도됐으니, 아마 그대로 진행했으면 기사도 여럿 났을 것이다.

이 CF를 촬영하러 가다가 그 사고가 난 것이라고.

그쪽에서도 그런 식의 우중충한 프레임이 덧씌워지는 건 내키지 않을 테니까.

그래.

지금 라이트온은 이게 문제다.

엎어진 CF 따위가 아니라, 대중들의 인식 말이다.

아무리 우리가 ‘저희 멀쩡해요!’ ‘저희 건강해요!’를 외쳐도, 다른 사람 눈엔 그렇게 안 보인다는 것.

아이돌은 밝게 빛나야 한다.

그 반짝거림에 매료되는 것이지, 동정 여론? 이딴 건 좋지 않다.

동정 여론이 먹히는 건 서바이벌뿐이지.

그래서 나는 두 가지 제안을 할 셈이다.

첫 번째는 이거다.

“저희 아체대 섭외 들어왔었죠?”

[아이돌 체육 선수권 대회]

통칭, 아체대.

원래 명절마다 진행되던 공중파의 프로그램이다.

설과 추석.

연에 2번 진행되는, 꽤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었으나…… 4년 전 한 아이돌이 육상에서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그 일로 온 팬덤에게 욕이란 욕은 다 처먹고 다음 해에 중단됐다가 되살아났다.

부상을 입은 아이돌은 소위 말하는 망돌로, 육상 경기 전부터 다리 상태가 안 좋았는데 인지도를 얻어볼 욕심으로 꾹 참고 경기에 출전했다고.

씁쓸한 이야기지만, 아무튼 그렇게 대국민에게 욕을 처먹은 아체대는 주기를 줄였다.

추석 특집 아체대는 사라졌고, 이제 일 년에 단 한 번.

설에만 개최된다.

대부분의 아이돌이 참석하는 프로그램이니만큼, 아마 우리는 무조건 출연 예정이었을 것이다.

사고만 없었더라면 말이다.

나는 테이블에 상체를 가까이했다.

섭외는 사고 이전에 되었을 테니, 지금은 아마도.

“진즉 거절하셨거나, 거절하실 예정이겠죠?”

“예.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 중으로 출연 불가 의사를 전하려했습니다.”

이해성의 대답에, 정재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진작에 했어야 하는데 저희쪽도 경황이 없었어서요. 아마 그쪽에서도 예상하고 있었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해온 씨!”

“출연하겠습니다.”

……투욱.

이해성의 손에 들려 있던, 빈 홍삼 팩이 테이블에 떨어졌다.

못 들을 걸 들었다는 얼굴의 이해성이 물음표를 띄웠다.

“……?”

“출연하겠습니다. 아니, 합니다. 해야 해요.”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 가장 좋은 키는 아체대다.

그날엔 SNS를 비롯한 각종 커뮤니티까지 그 프로그램 관련으로 도배된다.

그뿐인가? 공중파인 데다가, 날짜가 날짜이니만큼 팬덤에 속하지 않은 이들도 시청한다.

여기서 멀쩡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큼 쉽고 빠른 길이 어딨겠는가.

물론 멤버들 중에 한 명이라도 몸이 안 좋다면, 이딴 루트는 고려도 안 했다.

하지만 다들 멀쩡하다 못해 팔팔했다.

내가 깨어난 첫날만 해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말이 아니었던 안색들이 서서히 회복되어, 지금은 반짝거릴 지경이니까.

“어…… 그러니까…….”

인지 부조화가 온 듯, 손을 허공에서 까딱이던 정재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저, 절대 안 됩니다! 해온 씨, 퇴원한 지 얼마나 되셨다고요!”

“저는 괜찮습니다. 들으셨겠지만, 모든 부분에서 이상 없고 멀쩡해요. 그리고 아체대는 아직 기간이 남았으니까 더더욱.”

그리고 그 순간, 입을 연 건 이해성이었다.

“혹시 제가 하고 있는 생각이 맞을까요?”

이해성은 내가 하고 있는 우려와, 아체대에 출연함으로써 얻는 이득을 나열했다.

얌전히 그것을 들은 나는 고갤 끄덕였다.

“정확합니다.”

“……!”

놀란 듯, 눈이 커졌던 이해성이 이내 입을 열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따지자면 놀라울 정도로 맞는 말이죠. 지금 당장 이미지를 확실하게 바꿀 수 있는 건 아체대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해성이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팬덤에선 난리가 날 겁니다. 그건 어떻게 감당하시려고요? 멀쩡한 아이돌이 나가도 우려와 질타가 쏟아지는 게 아체댄데.”

“해성 씨는 그걸 어떻게…….”

“어디서 주워들었습니다.”

“그렇군요.”

거의 매년 아체대에 출석 체크를 했으면서도 저렇게 모른 척을 할 수 있다니, 연기 실력이 굉장하군.

나는 올라가려는 입매를 다듬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팬덤의 원성이 커지겠죠. 하지만 그 비난은 어디로 향하나요?”

멈칫한 이해성이 중얼거렸다.

“……아체대.”

나는 손바닥으로 입을 가린 채, 입꼬리를 비열하게 올렸다.

“어차피 아체대는 매년 욕을 먹으니 새로울 것도 없죠. 저희는 저희의 이득을 챙기면 되는 겁니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이해성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하마터면 설득될 뻔했네!”

아쉽군.

“욕받이는 프로그램한테 넘긴다 칩시다. ……제가 봐도 욕은 그쪽이 먹어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럼, 팬덤의 민심은요? 사고 후 첫 공식 스케줄이 아체대면 이거 난리 난다고요. 그것도 보통 난리가 아닐 겁니다.”

“아니요.”

톡, 톡.

규칙적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던 나는 히죽 웃었다.

“저희의 첫 공식 스케줄은, 아체대가 아닙니다.”

* * *

곽덕배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생각지도 못한.

충격적인 걸 마주했기 때문이다!

“미, 미, 미, 미, 미친.”

마치 뇌가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말문이 제대로 트이지 않았다.

터업!

그저 입을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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