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45화
“아.”
분명 그랬지.
눈치를 잔뜩 살피다가 나를 방으로 이끌고 오길래, 뭔가 했더니.
나는 눈앞의 신유하를 바라봤다.
이 녀석과 했던 약속.
곧바로 정신없이 바빠졌던 터라, 솔직히 불자면 잊고 있었다.
[성좌, ‘황금의 신’이 당신을 노려봅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신용은 중요하게 지켜야 하는 것이라며 일침합니다!]
누가 안 지킨다고 했나.
지킬 거다.
내가 아무리 양심이 없대도, 그걸 쌩깔 리가 있…….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스스로를 되돌아보라고 외칩니다!]
음, 있나?
있을 수도 있지.
어?
사람이 살다 보면 말이야.
쯧쯧…….
하지만 내가 아무리 양심을 밥 말아 먹었대도, 이 녀석과 한 약속은 지킬 것이다.
이 약속은 시간을 거슬러 가야 한다.
퇴원한 내가 이 녀석을 이끌고 강찬혁에게 갔을 때 말이다.
촉박한 기간 내에 곡을 완성해 달라는 요구에, 신유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런 말을 내뱉었더랬다.
- 혹시 저…….
- ……?
- 곡을 무사히, 만들어내면…… 그때, 형한테 부탁 하나, 만 해도 될까요?
겨우 부탁 하나가 뭐라고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는 녀석이 별나다고 생각했었지.
나는 고민도 없이 이렇게 답했었다.
- 무슨 부탁이든.
나는 짤막한 과거 회상을 마치며, 입을 열었다.
“말해.”
이런 부탁이 나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형의 하루를, 저에게 주세요.”
* * *
다음 날.
부탁대로 신유하와 바깥으로 나온 나는 여전히 낯짝에서 의문을 지워내지 못했다.
- ……단둘이요.
그러니까, 내 하루를 달라는 소리였다.
그것도 단둘이, 멤버들에겐 말하지 말고 몰래.
어려울 것 없는 일이지만…… 왜?
내가 아는 신유하는, 우스갯소리로 말을 내뱉을 녀석이 아닌데.
내가 뚫어져라 바라보자, 신유하가 눈을 데굴 굴렸다.
“……맛이, 괜찮으실지.”
“아직 먹지도 않았는데.”
나는 시선을 내려 접시를 바라봤다.
며칠째 고기인지 모르겠군.
하루라도 단백질을 먹이지 않으면 내가 뒈지기라도 할 것 같은지, 숙소에서도 끼니마다 고기가 잔뜩이었다.
봐라.
지금도 고작 오전 11신데 스테이크나 썰고 있지 않은가.
간단하게 먹자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 오늘은! 제 부탁으로, 나온 거니까……!
이렇게 약속까지 들먹이면서 끌고 오더라.
하여튼 간에,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내가 고기를 연달아 입으로 집어넣자,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던 신유하가 자신의 몫을 내 앞으로 쌓기 시작했다.
“많이, 드세요……!”
[성좌, ‘황금의 신’이 당신이 아해의 마음에 보답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평소였으면 골드를 뜯어냈을 테지만, 음.
훌륭하게 곡을 완성해 낸 이 녀석이 기특하긴 하지.
나는 고기 하나를 찍은 포크를 허공으로 올려, 녀석의 코앞으로 배달했다.
그리고 한 글자를 내뱉었다.
“아.”
“……!”
얼굴이 화르륵 타오른 신유하가 양손을 파닥파닥 내저었고, 나는 포크을 까딱였다. 반응이 재밌단 말이지.
“팔 떨어지겠는데.”
결국 고기를 받아먹은 신유하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우물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이잉-
나와 신유하의 스마트폰이 동시에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단톡방일 게 뻔했다.
멤버들에겐 잠깐 편의점에 다녀오겠다 하고 나온 것이니.
스마트폰을 옆으로 치운 나는 싱긋 웃었다.
“맛있어?”
“……큽.”
들었던 말을 되돌려준 것뿐인데 당황한 신유하가 가슴께를 콩콩 두드렸고, 나는 피식 웃었다.
[성좌, ‘황금의 신’이 우리 아해를 놀리는 거냐며 분개합니다!]
아니, 그렇지 않은가.
저 녀석.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다.
아까부터 묘하게 안절부절못하는 것도 그렇고…….
다른 건 몰라도, 사람을 살피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는 편이다.
그런데 저런 얼굴을 하고, 그냥 시간을 같이 보내달라?
웃기는 소리.
나는 턱을 괸 채, 발을 까딱이며 눈을 접어 웃었다.
어디 무슨 속셈인지, 놀아나 줘볼까.
* * *
다음 코스는 카페였다.
“……막힌 자리도 있는, 곳이에요!”
물론 대부분 가렸지만, 내가 사람들의 이목을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아는지 신유하가 속닥였다.
오.
녀석의 말마따나, 커다란 카페의 구석에 사방이 얼추 막힌 공간이 여럿 있었다.
미리 알아보고 온 건가.
의현 그 자식처럼 카페를 통으로 빌리는 돈지랄보단, 이쪽이 훨씬 마음이 편하군.
“제가 주문, 하고 올게요!”
얼마 안 가, 신유하가 음료와 케이크가 든 트레이를 가져왔다.
나는 불투명한 핫 음료 테이크아웃 잔에 담겨 있는 커피를 망설임 없이 들이켰다.
그와 동시에.
“……?”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야.”
중얼거리듯 나온 말에, 신유하가 곧바로 대꾸했다.
“형은, 매일 커피 드시니까…….”
그래.
멤버들은 각자의 음료 취향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그냥 잘못 나온 건가.
내가 떨떠름한 얼굴로 잔을 내려놓기 무섭게 신유하가 말을 이었다.
“건강에, 좋은 걸 드셨, 으면 좋겠어서……!”
신유하의 두 눈이 반짝 빛나고 있었다.
제조 실수가 아니라, 네가 주문한 거였냐.
나는 신유하 앞에 놓인 커피를 홱 뺏어서 들이켰다.
“아앗……!”
본인은 평범한 커피를 주문했다는 점이 더더욱 어이없군.
“대체 뭘 시킨 거야?”
“대추차…….”
“…….”
나는 칙칙한 낯짝으로 컵의 뚜껑을 열었다.
설마 이걸 숨기려고 테이크아웃 컵에 담아온 건가.
나는 둥둥 떠다니는 건대추를 내려다봤다.
그래.
아주, 건강에 좋겠어.
딱 봐도 좋아 보이네.
“이거 마시면 오래 살겠다. 그렇지?”
내 물음에 신유하의 얼굴이 화아악 피었다.
“네, 네……!”
싱긋…….
“너 먹어.”
“……?!”
신유하의 옆으로 자리를 옮긴 나는 녀석의 입에 적당히 식은 대추차를 꽂아 넣었다.
[성좌, ‘황금의 신’이 당신의 행동에 경악합니다!]
“읍, 으읍! 잠시, 윽!”
“나는 유하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건강하게.”
[성좌, ‘황금의 신’이 본신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성좌, ‘황금의 신’이 하마터면 말려들 뻔했다며 분노합니다! 아해에게 무슨 짓이냐며 경악합니다!]
나는 녀석의 입가에 붙였던 컵을 떼내며 화사하게 웃었다.
“어때?”
“딸, 꾹……!”
“이 커피는 내가 마실게.”
“커피는 건, 강에 좋지 않은…….”
나는 신유하가 무어라 말할 동안 컵에 담긴 커피를 원샷했다.
카페인이 좀 들어가니 살겠군.
디지털 싱글이래도, 신경 쓸 게 산더미라 요새 잠을 제대로 못 잤거든.
“어쨌든, 정말…… 안 돼요! 제가, 맛있는 다른 음료 사 올, 게요.”
신유하가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순간, 나는 웃으며 빈 커피 잔을 흔들었다.
“다 마셨는데.”
“……! 형!”
“잘 마셨다?”
“……!”
영혼이 털린 초라한 얼굴로 자리에 주저앉은 신유하가 대추차를 홀짝였다.
입맛에 맞지 않는 모양인지, 그러다가 말았지만.
“그래서, 이다음 코스는 뭔데?”
“……영화관?”
어이가 없군.
속셈이 있는 게 뻔히 보이는데, 이 연막조차 되지 못하는 데이트 코스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계속 시간을 힐끔거리는 걸 보면, 아직 그 시간이 안 된 모양인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스크와 모자를 챙겨 썼다.
“배부른데 산책이나 할까.”
* * *
근처 공원으로 향하는 와중에, 요즘 유행한다는 포토 부스가 눈에 들어왔다.
즉석 사진을 찍어준다는 그런 거 말이다.
참고로 나는 친구가 없었으므로 저런 기계는 근처에도 가본 적 없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안타까운 얼굴로 당신을 응원합니다!]
“…….”
내 낯짝이 순간적으로 눅눅해졌는지, 신유하가 내 귀에 대고 속닥였다.
“저희도, 저거 찍을, 까요?”
“……? 갑자기?”
내가 됐다며 고개를 젓자, 신유하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음, 찍어요……!”
설마, 사실은 굉장히 찍고 싶지만 체면치레를 하느라 아닌 척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정확하다며 기겁합니다!]
정말이었냐.
내가 됐다고 하는데도, 신유하는 내 팔을 붙잡고 이끌었다.
체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몸뚱어리는 그저 질질 끌려갈 뿐이었다.
“오늘 하루는, 저한테, 주시기로…… 했으니까!”
상체를 내 쪽으로 돌린 신유하가 웃었다.
“제가, 찍고 싶어요!”
나는 칙칙한 낯짝으로 혀를 끌끌 찼다.
그냥 한번 찍어줘야겠군.
먼저 달려간 신유하가 내부를 살피더니, 아무도 없다며 손짓했다.
“그래.”
고개를 끄덕인 나는 포토 부스 안으로 발을 내디뎠고, 싸늘한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렇다.
이 녀석도 이런 걸 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두 아싸가 허름한 낯짝으로 기계를 이리저리 살폈다.
“이걸…… 어, 떻게?”
“일단 이걸 누르면 시작하는 것 같은데.”
버튼을 누르자 설명이 튀어나왔고, 한국인의 특성상 나는 그것을 대충 넘겼다.
뭐 어려울 게 있겠냐고 생각했던 내 얼굴엔 뜻밖의 당황이 물들었다.
나는 다급하게 앵글 안으로 얼굴을 집어넣었다.
사실 한 컷을 찍고 다시 버튼을 누르면 다음 컷이 찍히는 방식일 줄 알았다.
이렇게 연속일 줄은……!
슬쩍 눈을 굴려보니, 신유하의 동공도 이리저리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심지어 둘 다 키가 있으니, 앵글이 이상하게 잡혔다.
“다리, 다리 접어. 좀 더 가운데로. 붙어. 여기 보면서.”
“네, 네……! 형, 방금 저한테, 설명해 주시느라 입 벌린 상태로, 찍힌 것 같은……!”
나도 안다.
순식간에 촬영이 끝났고, 네 컷을 고르라는데 죄다 오합지졸밖에 없었다.
흔들리거나,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걸 제외하니, 그나마 봐줄 만한 네 컷이 남았다.
‘선택의 여지도 없군.’
사진을 고르자, 즉석 사진답게 곧바로 인화됐다.
두 장?
한 장씩 가지라는 건가.
“너 다 가져.”
“……! 아니에요!”
연신 거절하던 신유하는 이내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다.
“그럼! 한 장은, 저희 방 벽에……!”
“그러든가.”
상기된 얼굴의 신유하가 얼굴에 환한 웃음을 걸친 채, 잘 나오지도 않은 사진을 꼭 끌어안았다.
저렇게도 좋을까.
“저, 사실 처음이에요…….”
그래 보였다.
“형은 능숙하셔서, 답답, 하셨죠.”
대체 어딜 봐서?
누가 봐도 오합지졸들의 첫 포토부스 방문이었는데 말이다.
바깥으로 나선 신유하가 말을 이었다.
“……오늘, 저랑 다녀주셔서 감사해요. 재미, 없으셨을 텐-”
“재밌었어.”
녀석의 말허리를 자른 나는 팔을 뻗어, 신유하의 어깨에 걸쳤다.
“그래서, 나를 데리고 나온 목적은?”
신유하가 움찔했다.
내가 정말 룸메 간의 사이좋은 나들이라고 생각했을까.
한참 대답이 없던 신유하가 나에게 질문을 건네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는…… 저랑, 계속 있어주실 건가요?”
“그래.”
“제가, 어딜 가도요?”
“그래.”
“뭘 하자고, 해도요?”
“그래. 뭐든지 해준다고 약속했잖아?”
그리고 나는 이 발언을 후회하게 된다.
왜냐면 지금 내 시야에 들어온 게.
……정신 건강 의학과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