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47화
숙소로 향하는 길.
나는 신유하의 상태창을 불러냈다.
사실 병실에서 의식을 차리자마자 마주했던 신유하의 그림자 수치는 2% 오른 38%였다.
이유는 아마도 나였겠지.
사고 당시 기억은 사라졌다지만, 내가 10일 동안 눈도 못 뜨고 있었으니…… 신유하에겐 극심한 타격이었을 거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가 깨어난 이튿날 1%가 옅어졌고…….
의 곡 작업을 시작하며, 그림자는 빠른 속도로 옅어져 35%까지 떨어졌다.
1시간 전까지는 말이다.
이 녀석의 지금 그림자 수치는 33%였다.
나에게 큰 문제가 없다는 소견이 나오기 무섭게 수치가 옅어진 것이다.
바라던 것이지만, 놀라울 정도군.
……대체 얼마나 신경 쓰고 있었길래?
자기 인생 신경 쓰기도 벅찬 세상에, 이 녀석은 너무 물러 터졌다.
사기꾼들이 침을 질질 흘릴 인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혀를 끌끌 차올리며, 신유하의 등을 밀었다.
“얼른 들어가자.”
* * *
[성좌, ‘황금의 신’이 안쓰러운 얼굴로 손수건을 물어뜯습니다!]
정말 심각하긴 하군.
아까 잠깐은 괜찮아졌나 싶더니, 시간이 다가올수록 떨림이 더 심각해지고 있었다.
나는 파리한 안색으로 방 이곳저곳을 빙글빙글 돌아다니던 신유하의 손목을 잡아끌어 침대에 앉혔다.
“지금이라도, 곡, 끕, 곡 정보에서, 제 이름을, 빼는 게-!”
딸꾹질까지 하는 게 가히 안타까울 지경이군.
나는 인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돌았어? 빼긴 뭘 빼. 저작권료 안 받고 싶어?”
“딸, 꾹……!”
“저작권료 받아서 나 맛있는 거 사준다며. 네 주머니 탈탈 털어서 비싼 거 먹을 건데 어림도 없는 소리지.”
나는 끼기긱 고개를 돌렸다.
“안 사주려고?”
“아니요! 살, 거예요! 백번, 천번……!”
이봐, 네 저작권료를 내 위장에 들이부을 셈이냐.
“한 번이면 돼.”
바로 그 순간이었다.
띠리릭!
현관문이 열리는 도어락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우당탕거리는 소음이 퍼졌다.
여러 개의 발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더니, 이내.
드르륵-!
방문이 벌컥 열렸다.
온갖 음식을 포장해 온 멤버들 사이에서 차윤재가 히히 웃었다.
“유하 형님의 첫 작업물이 발매되는 날인데, 맛있는 걸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어지간히 놀랐는지, 떠는 것도 멈춘 신유하가 눈을 껌뻑였다.
사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차윤재가 은밀하게 날 부르더라고.
오늘은 좋은 날이니, 서프라이즈로 파티를 열자고.
바로 그 순간, 신유하가 고개를 푹 숙였다.
……설마 우나?
걱정과 달리, 고개를 든 신유하가 웃었다.
“얼른, 먹어요! 식기 전에!”
“하핫, 좋지~”
시끌벅적한 멤버들과 음식을 먹고 있으니, 금세 시간은 다가왔다.
- ㄷㄱㄷㄱㄷㄱ
- 끝내주게 스밍해 주마
- 하루 종일 듣고 싶어 진짜 어제부터 계속 뮤비만 반복재생한 사람 나야 나
스위치 역시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점점 안색이 흐릿해지는 멤버가 있었으니.
“유하, 체한 거 아니야? 얼굴이 너무 허여멀건 한데.”
류인의 물음과 함께, 신유하가 숨을 참았다.
“아니, 에요. 맛있어요!”
현재 시각.
음원 공개 4분 전이었다.
파리한 안색으로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녀석이 초조하게 마른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신유하가 작게 외쳤다.
“저…… 저는, 잠깐, 방에 들어가 있을게요.”
어딜 도망가려고?
“유하야.”
“……! 딸, 꾹!”
불길함을 느꼈는지 신유하가 바르작댔고, 나는 녀석을 소파로 밀며 멤버들에게 눈짓했다.
“잡아.”
“접수 완료~”
“예! 알겠습니다!”
사전에 말을 맞춰놓은 덕에, 멤버들은 일사불란하게 신유하의 사지를 하나씩 담당하듯 잡았다.
순식간에 소파 위에서 밧줄 없이 꽁꽁 묶인 신세가 된 신유하가 눈을 껌뻑였다.
“이, 게 무슨……?”
“유하 형, 죄송합니다. 하지만 해온 형의 말씀을 들으니 일리가 있어서요.”
[성좌, ‘황금의 신’이 예상치도 못한 광경에 먹던 포도주를 줄줄 흘립니다.]
[성좌, ‘황금의 신’이 당신의 행동에 경악합니다!]
여유롭게 커피를 홀짝인 나는 난장판을 뒤로한 채, 무릎에 올려놓은 노트북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 * *
주르륵……!
곽덕배의 입에서 커피가 반납됐고, 근돌이 질색했다.
“미친 거 아니야 이 오타쿠.”
그렇다.
이들은 오늘 오후 6시에 공개되는 음원을 기념해, 만남을 가진 것이다.
목적은 당연히 주접떨기였다.
“노래는 어제 뮤비로 들었으면서 그렇게 충격적인 거냐고.”
본인은 오타쿠 축에도 끼지 못한다며 근돌이 고개를 절레 저었다.
스마트폰을 테이블에 조용히 내려놓은 곽덕배가 운을 뗐다.
“근돌아.”
“……?”
“라이트온은 미쳤다.”
근돌은 언제나와 같은 주접을 가볍게 무시한 뒤, 음원에 대한 감상평을 말했다.
“음원으로 들으니까 음질이 더 좋아서 그런지 또 색다르긴 하네. 곡도 진짜 잘 뽑혔고.”
사실 근돌은 MH의 행보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팬덤의 분위기가 단번에 반전됐기에.
물론 사고 이후 라이트온의 사진이 공식적으로 올라왔을 때나, 박철상을 땅에 묻어버릴 때 등등 스위치들은 조금씩 똘똘 뭉쳐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분위기만은 확실히 전환되지 못했는데…….
어제 그 뮤직비디오와 함께, 비하인드 컨텐츠까지.
퇴원한 멤버들이 아픈 기색 하나 없이 뛰어다니는 뮤직비디오는 팬들의 근심을 덜어내다 못해 지워내기 충분했다.
……이건 팬이라면 뽕이 찰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로, 스위치들은 어제부터 스트리밍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이러려고 공개 텀을 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얼떨결에 성해온을 간파해 버린 근돌이 생각을 이어갔다.
물론 라이트온보다 더 유명한 아이돌도 팬송의 차트 진입은 어렵다.
그럼에도 스트리밍 열풍이 돌면, 팬덤의 분위기가 더 살아날 수밖에 없지.
고개를 주억이던 근돌이 멈칫했다.
“……뭔데?”
곽덕배가 스마트폰을 앞으로 들이밀었기 때문이었다.
별생각 없이 화면 속 작은 텍스트를 읽어 내린 근돌의 입에서 커피가 반납됐다.
그렇다.
그들은 끼리끼리 오타쿠였던 것이다.
“미친…….”
턱에 흐른 커피를 닦아낸 근돌이 눈을 부릅떴다.
“말이 돼?”
“……지금 난리 났다.”
* * *
예상대로다.
아니, 예상보다 더.
벌써 실시간 트렌드에 ‘신유하 미친’이 올라왔다.
의도된 것이 아닌, 날것의 단어 조합.
벌써 스위치들의 흥분이 느껴지지 않는가.
- 곡 정보 보신 분 곡 정보 보신 분 곡 정보 보신 분 (사진)
- 신유하 미친 tlqkf 너 그렇게 하면 천재 프로듀서밖에 못 돼
- 이 다재다능 아기사슴을 어떡해야 함 어떡해야 함
- 라이트온 대체 뭐 하는 그룹임? 뭔데 프로듀싱 능력자가 둘이나 있는 거임???
그중 하나는 허위매물입니다만.
나는 반응들을 살피며, 열심히 노트북을 타닥거렸다.
[성좌, ‘황금의 신’이 어서 아해를 풀어달라 명합니다!]
[성좌, ‘황금의 신’이 눈을 질끈 감습니다!]
눈앞에 띠링띠링 떠오르는 메시지에, 나는 인상을 구겼다.
시끄럽군.
[성좌, ‘황금의 신’이 아해의 저 얼굴을 보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거라며 대노합니다!]
신유하 얼굴이 어떤데.
나는 노트북을 두드리다가, 잠시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아직까지도 딸꾹질이 멎지 않은 신유하의 커다란 눈망울과 눈이 마주쳐 버렸다.
어…….
이거 굉장히.
양심이 찔리는군.
저 눈빛은 유독 사람의 양심을 더 아프게 한다고나 할까.
음.
역시, 못 본 척하도록 하자.
나는 양심 없는 낯짝으로 싱긋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성좌, ‘황금의 신’이 뒷목을 부여잡습니다!]
“유하 형님! 물을 드셔보십시오. 이렇게 하면 딸꾹질이 멈춘다고 합니다!”
물을 건넨 차윤재가 고개를 숙이고 물을 꿀꺽 삼키는 시늉을 했다.
“내가 마, 실게…….”
“해온 형님이 절대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형님이 바로 자리를 피하실 거라면서요!”
차윤재는 조심조심 신유하의 입에 물을 흘려 넣었다.
……약간 고문 현장 같기도 하고.
나는 그 현장을 애써 무시하며, 노트북과 TV를 연결했다.
미리 확인해 본 결과, 당연하게도 욕은 없다.
애초에 시간이 지나 어그로가 붙었을 때면 모를까, 지금 실시간으로 난리가 난 건 음원을 기다렸던 스위치뿐이다.
게다가 이 녀석은 어제부터 반응을 일절 보지 않았다지만, 나는 보지 않았나.
뮤직비디오도 그렇지만, 곡 자체도 잘 빠졌다는 호평이 끝도 없었다.
그런데 그 곡 작업에 신유하의 이름이 박혀 있으니 어련하겠는가.
죄다 놀라워하시거나, 애정이 담긴 말을 하고 계셨다.
나는 천천히 스크롤을 내렸고, 신유하의 동공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
룸메이트로서, 이 녀석을 지켜보며 깨달은 게 있다면 이 녀석의 그림자는 더 이상 과거에 얽매여 있지 않다는 것이다.
INT나 러쉬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건 신유하에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
왜냐고 묻는다면, 간단하다.
그런 과거를 스스로 떨쳐낸 지 오래니까.
이 녀석은 라이트온이었다.
하지만 길고 긴 시간 동안 깊이 새겨진 자기혐오만은 뿌리 뽑지 못했다.
결과물을 확인하지 못한 이유도 스스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유하는 즐거웠다.
신유하는 두려웠다.
공존하기 어려운 감정들이지만, 신유하는 그랬을 거다.
매일 수백 개의 물음표가 가득했겠지.
나나 멤버들이 하는 말은, 상냥한 이들의 칭찬쯤으로 받아들이고 있을걸.
하지만 대중들은 다르다.
신유하는 대형에서 구른 짬밥이 있어서인지, 이들의 반응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있다.
팬이라고 마냥 감싸주지 않는다는 것도.
‘그러니, 더더욱 두려워하는 거겠지만.’
그런고로, 내 선택은 간단했다.
형체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자신이 해낸 결과물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는다면, 내가 보여주면 되잖아?
이건 예정된 해피 엔딩이니까.
“어떡해? 저 진짜 기분 좋아요. 스위치들이 이렇게 좋아해 주는구나.”
최승하가 웃었고, 평소 스마트폰을 잘하지 않는 편인 차윤재가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저도! 저도! 너무 좋습니다! SNS에 이렇게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많으시다니…….”
“……쑥스러운데 좋다. 약간 팬사인회 같아. 앞에서 칭찬…… 음, 엄청 해주시는.”
“스위치들은 저희한테 항상 애정만 주시니까요.”
류인의 작은 중얼거림에 답한 한수현이 작게 웃으며 신유하를 응시했다.
“유하 형, 고마워요. 저도 이번 곡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하지만 신유하는 대답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
눈 한번 껌뻑이지 않고, 텍스트 하나하나를 눈에 각인하듯이 읽던 신유하의 눈에서 맑은 액체가-
한 방울.
두 방울.
이내 이어진 방울들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여태껏 신유하는 울면서 소리를 낸 적이 없다.
항상 보지 않으면 우는지도 모를 정도로 조용히, 눈물만 흘렸지.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흐.”
짤막한 울음소리를 시작으로, 신유하의 얼굴에 울음기가 가득 찼다.
“흐윽, 흡…….”
당황한 멤버들이 신유하를 감싸 안았고, 신유하는 이내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눈이 커진 것도 그쯤이었다.
[ERROR! ERROR! ERROR!]
[망돌의 그림자가 요동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