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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250화 (250/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50화

아체대는 정말 별의별 종목을 진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나마 올해 들어서 종목을 줄인 거라지.

대표적인 종목 리스트로는 계주, e스포츠, 양궁.

그 외에…… 승마, 씨름, 수영, 리듬 체조, 에어로빅, 댄스 스포츠, 컬링, 볼링, 풋살, 높이 뛰기 등등이 있겠다.

정말 다양하기도 하군.

눈에 띄는 게 간절한 신인들은 주최 측인 MBS가 넣는 대로 울며 겨자 먹기로 출전하겠지만, 어느 정도 인지도가 쌓인 아이돌은 원하는 종목 위주로 출전한다.

라이트온도 그렇고.

굉장히 대단한 발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년, 그러니까 라이트온이 갓 데뷔했을 때는 아체대 섭외조차 받지 못했으니까.

그래.

정말이지 대단한 발전이지.

하지만 어째서 내 손가락은 발전이 없는 걸까?

이건 진지하게 고찰해 봐야 할 문제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을 안쓰럽게 바라봅니다!]

탁, 타닥, 탁!

나는 흐릿한 얼굴로 키보드를 연타했다.

라이트온이 유일하게 단체 출전하는 종목, e스포츠다.

그리고 그것에 대비한다는 목적으로 멤버들과 게임을 시작한 지 4시간째였다.

원래는 PC방에 가야 하는 걸까 고민 했지만, 정재진이 쓸 만한 사양의 남는 컴퓨터가 있다며 회의실 하나에 자리를 마련해 줬다.

그리하여.

기다란 테이블의 양쪽으로 컴퓨터가 세팅됐다.

타다다닥!

내가 분노의 키보드질을 이어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푸핫!”

모니터에 처참한 게임 결과가 떠올랐고, 차윤재가 짧게 웃었다.

“해온 형님은 이번에도-”

싱긋…….

내 낯짝을 마주한 차윤재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처, 처음 해보는 것치곤 굉장히 잘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멋진 경기였습니다!”

다급하게 말을 바꾼 차윤재의 시선이 먼 산으로 향했고, 류인이 웃으며 물었다.

“윤재는 해봤어?”

“아니요! 친구가 없어서 해보지 못했습니다!”

무척 해맑은 얼굴로 눈물겨운 소리를 내뱉은 차윤재에, 분위기가 미묘해졌다.

“예? 형님들! 표정이 왜들 그러십니까!”

눈을 부릅뜬 차윤재가 고개를 이리저리 휘둘렀고, 여기저기서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건 순식간이었다.

얼굴이 흡사 토마토가 된 차윤재가 고개를 키보드 쪽으로 처박았다.

“그만 놀리고 연습이나 하, 하십시오!”

“응응~”

만면에 웃음기를 머금은 최승하가 몸을 왼쪽으로 비틀더니, 테이블에 턱을 괴고 나를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슬슬 이 녀석이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이 가는군.

“지금 형 몇 판째 꼴, 어억.”

주먹으로 허벅지를 강타당한 최승하가 테이블에 엎어져 끙끙댔다.

“와아, 진짜! 진짜 아파! 형 지금 그, 아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

“형님은 왜 갑자기 이를 악무십니까?”

그거야.

[자애로운 교주는 신도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이봐.

교주가 치는 것도 포함이었냐.

[축하합니다!]

[한층 더 자애로운 교주가 되었습니다!]

[11포인트가 적립됩니다!]

이 정신 나간 새끼들아.

이전에 등짝을 갈기거나 했을 때 알림이 떠오르지 않았던 걸로 봐서…… 상대가 일정선 이상의 통증을 느껴야만 발동 조건이 달성되는 건가.

뭐, 포인트 벌이가 되니 기분이 썩 나쁘진 않긴 한데.

내가 쳐놓고 고통을 돌려받는다니.

웃기고 어이없는 건 둘째 치고.

……약간 강제 회개의 의미가 담긴 것 같지 않은가.

실낱같은 죄책감을 쥐어짜 참회의 감정을 느끼고 있을 무렵이었다.

드르륵-!

“저희, 왔어요……!”

언제 아파했냐는 듯 최승하가 벌떡 일어났다.

“우와, 점심! 뭘 이렇게 많이 사 왔대? 무거웠지! 같이 가자니까.”

“형들은 연습하셔야 하니까요.”

그렇다.

짧은 외출은 가장 게임 성적이 좋은 한수현과 신유하가 다녀온 것이다.

“서둘러 먹고 연습을 재개하는 게 좋겠습니다. 해야할 게 아주 많아요.”

한수현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멤버들의 안색이 초라해졌다.

곧이어 식사가 시작됐고, 멤버들의 대화는 자연스레 게임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처음 접하는 게임이라 손에 익히기가 쉽지 않다는 주제로 말이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나는, 이 게임 처음 아닌데…….”

단번에 시선이 모여들었고, 눈을 동그랗게 떴던 신유하의 얼굴이 금세 수줍어졌다.

“그게…… 응. 옛날 회사에서, 연습생 애들이랑 몇 번.”

오호라.

INT에서 따돌림을 당하기 전, 경험이 있었던 모양이군.

이전 회사라는 민감한 주제가 나오기 무섭게, 회의실에 있는 모든 인영의 입이 자동적으로 다물렸다.

정작 신유하는 괜찮은 것 같았지만.

현재 자신이 나름대로 잘하는 분야라 그런지, 신유하는 그림자 하나 없이 밝은 얼굴로 주먹을 쥐었다.

“열심히 할, 게요! 메달을 위해서! 수현이도, 저보다 잘하니까!”

훅 다가온 칭찬에, 조용히 식사를 이어가던 한수현이 멈칫했다.

“수현이는 해본 적도, 없는데 우리 중에서, 제일 잘하고! 대단해……!”

“그야 게임에서 시키는 대로 조작하니까요. 어려울 것 없-”

부끄러운지, 무표정으로 와다다 말을 내뱉던 한수현의 말허리가 끊겼다.

우중충한 내 낯짝을 마주한 것이다.

내 참담한 스코어를 익히 알고 있는 한수현의 눈빛이 결연해졌다.

“해온 형.”

“……?”

“저만 믿으세요.”

대체 뭘?

“오늘부터, 특훈입니다.”

* * *

나는 사람이 가만히 앉아서도 이렇게 너덜너덜해질 수도 있는 것이구나, 를 매일같이 깨닫고 있다.

“해온 형, 방금은 그렇게 대응할 게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식으로-”

“…….”

나는 한수현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하는 실력이로군.

이 게임을 이번에 처음 접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첫날부터 눈에 띌 정도였는데…… 당장 오전보다도 실력이 크게 늘었다면 설명이 되겠는가.

프로게이머의 무기 중 하나는 나이라고들 하지.

어릴수록 판단 속도나 반응속도를 비롯한 피지컬이 최상일 테니까.

하지만 끽해봐야 한 살에서 최대 세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우리와 이런 격차를 내다니.

이건 핑계를 댈 게 아니라, 그냥 재능의 차이인 것이다.

“승하 형, 방금 실눈 뜨고 있는 거 봤어요. 일어나세요.”

“으으…….”

“해온 형도 일어나시고요.”

“드르렁.”

데친 시금치 같은 낯짝으로 의자에 늘어진 내가 드르렁 소리를 내자, 한수현이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게임 하셔야죠…….”

공포의 속삭임이 따로 없군.

“근데 막내는 다른 게임 좋아하는 거 있어?”

최승하의 물음에, 나는 귀를 집중시켰다. 나도 조금은 궁금했던 거라서.

왜, 게임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다른 게임도 잘하는 경향이 있지 않는가.

“그럴 리가요.”

한수현이 정말 의아하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프로게이머를 지망하지 않는 이상, 게임 같은 오락은 제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

“자, 해온 형. 이제 정말 일어나세요.”

한수현이 말한 ‘일어나세요’는 자는 척하며 드르렁거리지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어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라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저 얼굴을 안다고 주장합니다!]

무슨 얼굴인데.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양심 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의 얼굴이라 확신합니다!]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간파로군.

어차피 이 게임, 팀전이지만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메달을 따내는 식이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느냐?

나는 양심 없이 이래도 된다는 거지.

“수현아.”

나는 한수현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우린 가족이지?”

조금 놀란 듯한 한수현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보기에, 수현이 너는 정말 잘해. 최고야. 멋있어.”

“……고작 게임인데요.”

한수현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느슨해졌다.

통한다.

통해.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뒷목을 부여잡습니다!]

나는 더욱더 신뢰가 담긴 낯짝을 걸치며 짧게 언성을 높였다.

“고작 게임이라니.”

“……?”

“이건 네 생각보다 대단한 거야. 저길 봐.”

나는 테이블 쪽을 가리켰다.

한수현의 혹독한 게임 트레이닝을 악착같이 쫓아가던 멤버들이 늘어져 있었다.

아침에 내 체력 버프를 받았음에도, 저 모양 저 꼴이 된 것이다.

“아.”

한수현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얼굴로 고갤 끄덕였다.

“형들을 깨우라는 말씀이신가요? 저런, 잠깐 해온 형과 대화 하는 사이에 다들 키보드에서 손을 떼셨군요.”

한수현의 목소리를 들은 멤버들이 움찔했고, 나는 다급하게 한수현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거 말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

“네가 애써준 특훈 덕에.”

나는 눈깔에 촉촉한 생기를 걸쳤다.

“바로 죽임당하는 지경에선 벗어났지만…….”

나는 아련한 낯짝으로 눈을 마주쳤다.

“솔직히 말해서, 가망이 크진 않지.”

한수현이 아무리 가족애에 들썩이는 녀석이라고 해도, 지극히 이성적인 성정이다.

이런 케이스는 논리로 설득해야 한다.

“e스포츠 룰은 알고 있지?”

“네. 전부 외워뒀어요.”

외울 필요까지 있는 거냐고.

“그룹별 출전 인원이 제각각이어도 공평한 이유는 뭘까?”

“그야,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니까요. 참여 인원이 많을수록 도움이 되기야 하겠지만, 큰 상관이 되진 못해요.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도 있고요.”

그렇지.

그거라고.

만약 내 게임 실력이 승패에 무조건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특성을 구매해서라도 게임 천재가 되어보겠지만…….

확신하건대, 한수현은 혼자 내보내도 메달을 따 올 녀석이다.

“우리 팀 최대 전력은 누구지?”

“객관적인 지표로 판단했을 때, 현재로선 저인 것 같습니다. 아직 한참 모자라지만요.”

이렇게 짚어주면, 이 녀석도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다.

백날 천날 우리에게 시간을 들이는 것보다, 스스로의 연습을 재개하는 게 더 나을 거라는 것 말이다.

하지만 한수현의 입에서는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형들도 메달에 열정적이시잖아요? 특히 해온 형이요.”

설마 저번에 멤버들에게 MVP를 들먹이며 좋은 성적을 가져오자고 지껄였던 게…….

승부욕이 철철 흘러넘치는 리더, 그 어딘가로 보였던 것일까?

“연습량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숙소에서도 계속 연습하고 있으니까요. 나름대로 만족스럽습니다.”

그 순간, 차윤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 맞습니다! 형님이 한마디 해주십시오! 저 녀석 밤새 게임만 합니다! 잠도 제대로 안 자고요!”

밤새 게임만 한다.

한수현과 가장 안 어울리는 문장 Top10에 들지만, 이게 아이돌 활동 중 하나라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형들을 지켜보면서 저 역시 공부가 됩니다. 다양한 케이스를 보며 학습도 되고…… 그러니 그 부분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조금 감동한 게 분명한 한수현이 반짝이는 시선을 내리깔며 작게 헛기침했다.

이봐.

그게 아니라고.

그게 아니야.

지금 완전히 잘못 짚었다고.

나는 그냥 떠넘기고 싶었던 거란 말이다.

“과연, 해온 형. 제 연습 시간까지 신경 써주시다니…… 솔직히 놀랐습니다.”

티끌 하나 없이 완전한 진심에 더더욱 할 말이 사라진 내가 아득한 낯짝으로 입을 다물자, 한수현이 의자를 드르륵 빼냈다.

“앉으세요. 오늘 하루는.”

벌써부터 느껴지는 불안함에 나는 고개를 느릿하게 저었다.

다음 말은 뭐가 됐든 넣어둬라.

“해온 형을 전담으로 봐드리겠습니다.”

“…….”

한수현의 등 뒤에서, 벌떡 상체를 일으킨 멤버들이 음소거로 환호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정면으로 마주한 내 낯짝이 눅눅해지기 시작했다.

X발…….

이래서.

이래서 착하게 살아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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