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51화
그렇게 며칠이나 지났을까.
숙소에 하나뿐인 컴퓨터 앞.
나는 흐릿한 낯짝으로 모니터를 응시했다.
참고로 익숙한 패배 문구가 떠올라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조심스레 다가온 최승하가 내 낯짝을 살피더니, 속닥였다.
“제가 봤어요.”
“…….”
청춘만화의 한 장면처럼, 최승하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형은 노력했어요.”
싱긋…….
“놀려?”
“으하하, 누가 누굴 놀려요? 저도 못하는데.”
그렇다.
최승하도 나와 비슷한 게임 열등반이다.
물론 나보다는 잘하지만.
“지금 무슨 생각 해요? 어? 방금 내 얼굴 뚫어져라 봤는데? 눈빛이 미묘했는데?”
“잘생겼다는 생각.”
“그거 아니었는데? 분명 약간 동지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눈치가 남다르군.
푸하하 웃은 최승하가 되물었다.
“형은 오늘 양궁 연습이죠?”
“어.”
사실 처음 종목을 정할 때 계주 정도는 나가보려 했다만, 멤버들의 극구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 형, 그런 거 나가려면 절 밟고 가세요!
- 그래.
- 와아악, 진짜 밟았어!
- 승하 형님 좀 보십시오! 밟히셨으면서도 해온 형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놔주지 않으십니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특히 이 녀석이 온갖 난리를 피우며 막아댔지.
나는 조용한 숙소를 두리번거렸다.
원래 이 시간쯤이면, 한수현이 엄청난 아우라를 내뿜으며 노트북을 붙잡고 게임 연습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수현이는?”
“아아, 수현이는 계주 연습 갔어요.”
어쩐지, 숙소가 조용하더라.
내가 자고 있는 사이에 나간 모양이지.
위아래로 주억거려지던 내 고개가 기울어진 것도 그쯤이었다.
“……너는?”
그래, 계주는 분명 나를 제외한 라이트온 전원이 출전하는데 말이다.
이 녀석은 왜 여기 있는 거지?
최승하가 헤실 웃었다.
“저는 형이랑 좀 더 놀다가 나가려고, 어억.”
“당장 나가.”
메달 따야지.
어?
네가 메달을 사야 내가 산다고.
“스탑, 스탑!”
최승하가 자신의 몸에 팔을 엑스자로 교차시켰다.
“손상(?)시키면 메달 못 따요! 저 나름 에이스라고요!”
“……에이스?”
“으음, 전체로는 잘 모르겠는데 지금 연습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제가 제일 잘 달리는 것 같은, 잠깐만 형 눈빛이 왜 그래요?”
“갑자기 달라 보여서. 홍삼 먹을래? 아니, 가져다 드려야지.”
나는 벌떡 일어나 홍삼 엑기스에 빨대를 꽂아 건넸다.
“저 무서워지려고 해요.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한 번에 변하지?”
“얼른 쭉 들이켜고 연습 갈까?”
“아니, 연습을 갈 건데, 읍! 써!”
“건강에 좋은 거다, 하고 마셔.”
나는 최승하의 귓가에 대고 속닥였다.
“기록 줄여오고.”
“정말 무서운 사람이야!”
몸을 잘게 떤 최승하가 나간 뒤, 나는 시계를 응시했다.
10시에 양궁 코칭 예약이 잡혀 있으니, 슬슬 나가야겠군.
내가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이었다.
[자애로운 교주는 신도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어억.”
갑작스레 욱신거리는 전신에, 나는 침대에서 꿈틀거렸다.
하지만 이내 얌전히 드러누워 통증의 종류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음.”
이건 근육통 종류인 건가.
그렇다면 연습 종목을 고려했을 때, 그럴 만한 녀석이…….
최승하는 방금 나갔으니 아닐 테고.
이 녀석인가.
통화 연결음 끝에, 류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해온아?
“너, 혹시 다쳤냐.”
- ……! 어, 그건 어떻게 알았어? 별건 아니고 근육통이 잠깐 와서…… 연습 중단하고 스트레칭하고 있었어.
역시나, 정답이다.
대충 얼버무린 뒤 전화를 끊은 나는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따가 밤에 축복이나 걸어주도록 할까.
근육통이 올 정도로 연습하다니, 나도 가만히 누워 있을 수만은 없군.
내 할 일을 하러 가야지.
* * *
아체대의 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들은 반절은 양궁이라 답할 것이다.
양궁에서 두각을 보이는 그룹은 무조건 눈에 띌 수밖에 없는 구조랄까.
게다가 양궁은 그룹별 3명 출전.
이게 무슨 뜻이냐 묻는다면, 책임감이 막중하다는 뜻이다.
물론 멤버들은 안전해 보이는 종목에 나를 밀어 넣은 거겠지만, 아무튼.
나는 곧바로 지정된 연습장인 실내 양궁장 내부로 발을 내디뎠다.
“해온 님, 안녕하세요!”
“코치님, 안녕하세요.”
이번에 우리의 양궁 코칭을 맡아주기로 하신 분이다.
듣기로, 아체대에 출전하는 그룹들을 대부분 가르쳐 보셨다고.
“호칭 편하게 해주셔도 괜찮습니다.”
“에이~ 이게 편해서요. 해온 님, 일단 이리 와보시겠어요? 스트레칭 전에 활부터 골라볼게요. 이게 체형에 따라 천차만별이라서요.”
코치는 나를 훑어보더니 활 두세 개를 집어 들었다.
“뭐가 제일 편한지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자세는 이렇게. 어깨너비로 벌려주시고, 활은 한쪽 발 위에 놓는다는 느낌으로~”
“아, 예.”
나는 곧바로 자세를 취했다.
“와, 양궁 처음인 거 맞아요? 자세 진짜 잘 잡네요?”
칭찬이 많으신 타입이군.
나는 가운데에 있는 활을 들어 올렸다.
“이걸로 하겠습니다.”
“좋은 선택이에요! 그럼 이제 스트레칭하고, 실전으로 들어가 볼까요?”
“아, 바로 실전이군요.”
“하하, 아체대 출전하는 연예인분들은 바쁘신 데다가 시간도 촉박하니까 약간 그거거든요. 속성 강의?”
속성 강의라.
바라던 바군.
* * *
잠깐만.
이게 아닌데?
이봐.
정신 차려라.
덜덜덜덜덜…….
시위를 당긴 팔이 처량한 갈대처럼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연습장에 정적이 휘몰아쳤다.
“…….”
“…….”
잠시 얼이 빠져 있던 코치의 입이 열렸다.
“이게…… 보통이 아니죠? 홀딩하는 게 원래 어려워요! 원래!”
이 친절한 코치님은 옆에서 이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지만, 퍽 당황한 얼굴이었다.
아무렴.
화살을 활에 노킹할 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인간이 시위를 당기기 무섭게 뭐 잘못 처먹은 놈처럼 진동하는데 놀랄 만도 하지.
- 해온 님은 잘하실 것 같아요. 집중력 좋은 사람이 양궁도 잘하거든요! 자세도 좋으시고, 노킹이랑 후킹도 이렇게 한 방에!
직전에 이런 말만 듣지 않았다면, 덜 비참했을 텐데 말이다.
이 코치님도 얼마나 민망하시겠냐고.
제가 집중력이 좋은지는 모르겠고.
일단 체력이 없습니다.
체력이…….
X발.
나는 이 죽도록 민망한 상황에서 활을 쐈다.
슈우우-
탓!
“오! 첫발!”
코치의 감탄사와 동시에 화살이 꽂혔다.
미안하지만, 가운데에 꽂혔다고 하진 않았다.
“……어어.”
과녁을 살핀 코치가 하하 웃으며 말을 이었다.
“처음은 원래 다 이래요! 과녁 못 맞히시는 분들도 여럿 계신데, 해온 님은 잘하시네요! 과녁 끝자락이어도 첫발에 이 정도면 베스트예요!”
칭찬을 들으면 들을수록 비참해지는 마법이라니.
그렇게 몇 번의 화살을 쐈을까.
나는 내가 답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양궁을 못한다는 게 아니다.
의외로 재능이 있었다.
기본자세부터 집중력이나, 각도, 위치 등에 대한 건 기가 막히게 잘 잡는다.
하지만 그 모든 재능을 커버하는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힘이다.
애초에!
현을 제대로 당기지 못한다!
아니, 당기기야 할 수 있지.
하지만 당기고 바로 쏠 수도 없는 노릇인데, 시위를 당긴 채로 버티는 게 불가능하다.
비 맞은 고양이의 영혼이 내 팔에 들어온 것처럼 달달 딸린다니까?
돌겠네.
내가 의자에 널브러져 있을 때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앗, 형님! 먼저 와 계셨습니까!”
“왔냐.”
상기된 얼굴의 차윤재가 실내를 두리번거렸다.
“오오, 양궁! 굉장히 신기합니다! TV에서만 보던 건데요!”
“계주 연습하다가 온 거야?”
“예! 땀을 흘린 탓에 샤워하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듣기로, 육상 종목 연습이 진행되는 곳에선 다섯 그룹 이상이 모여 연습한다는데.
나는 손을 은밀하게 까딱였다.
물음표를 띄우며 내게 다가온 차윤재가 자신의 귀를 앉아 있는 내 쪽으로 가져다 댔다.
“메달 딸 수 있을 것 같냐.”
“흐으음.”
눈을 꼭 내리감은 차윤재가 골똘히 고민을 시작했다.
“사실 그 장소가 굉장히 넓은데다가!”
“음음.”
“제 연습에 집중하느라 잘 못 봤습니다!”
내가 김빠진다는 낯짝을 걸치고 있자, 차윤재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아! 소리를 냈다.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승하 형님이 엄청나게 열심히 달리셨습니다! 오늘 최고 기록을 세우기까지 하셨습니다!”
그 녀석이?
홍삼을 꽂아 넣은 게 효과가 있었나 본데.
“제가 물을 건네며 쉬엄쉬엄하라고 전해 드렸더니!”
차윤재가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열심히 안 하면 누군가가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웃으시던데요!”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그 누군가가 당신 아니냐고 묻습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
나는 입을 다문 채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유하는?”
“아! 그 형님도 금방 오실, 저기 오시네요!”
“형! 윤재야……!”
이 녀석도 방금 씻고 온 모양인지, 뽀송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무렵, 저 멀리서 코치가 다가왔다.
“아, 윤재 님이랑 유하 님도 오셨네요! 저기 가서 활부터 골라보겠습니다!”
아까 나와 동일하게 활을 고르고, 짤막한 연습을 한 뒤, 과녁 앞에 선 녀석들이 숨을 골랐다.
“첫발은 과녁에 안 맞아도 정말! 정말로! 상관없으니까 편하게 쏴보세요! 감부터 찾아야 합니다!”
정말! 정말로! 상관없다니.
옆에서 듣고 있는 내가 상처받지 않게끔 일부러 한 말이라는 데에 모든 걸 걸겠다.
나는 그 뒤에 앉아 눈을 껌뻑였다.
어디 실력 좀 볼까.
그리고 그 순간.
슈우우-
타앗!
“……!”
차윤재의 화살이 튀어 나갔고, 코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윤재 님, 처음이시라고요?”
“예! 저기에 맞으면 몇 점인 겁니까?”
해맑게 답한 차윤재에, 코치가 놀라움을 삼켰다.
“9점입니다! 조금만 연습하면 바로 텐 맞출 수도 있겠는데요!”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의 얼굴을 지적합니다!]
“저도, 쏴볼게요!”
신유하의 작은 외침과 동시에 날아간 첫 화살이 8점에 꽂혔다.
“와우. 라이트온 이번 아체대에서 양궁 메달 따는 거 아니에…… 요? 딸, 딸 수 있어요! 라이트온 파이팅!”
코치와 내 눈이 마주쳤고, 감탄 섞인 목소리가 빠르게 얼버무려졌다.
그래, 양궁은 팀전이니까.
e스포츠와 다르게, 구멍이 하나만 있어도 패망이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을 위로합니다.]
나를?
나는 의문이 잔뜩 담긴 낯짝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슴팍을 쿡 찔렀다.
그러니까, 내가 양궁의 구멍인 것 같아 위로를 해주는 건가?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째서?
이해가 안 가네?
나는 눈에 반짝이는 생기를 더한 채 허공을 응시했다.
저는 첫발 망했을 때도 망할 몸뚱어리에 대한 현타만 왔을 뿐, 전혀 경기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답니다!
성좌님들이 계신데, 제가 구멍일 리 없죠!
[성좌, ‘황금의 신’이 갑작스러운 극존칭에 불안감을 느낍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며 몸을 파르르 떱니다!]
주어진 건.
써먹어야 하지 않겠어?
나는 히죽 웃었다.
이번 양궁은, 라이트온이 금메달 먹을 거거든.
무슨 일이 있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