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54화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양 팔을 휘적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빠르게 낯짝관리를 마친 뒤, 손을 흔들었다.
“Hey~!”
“케이, 오랜만이네.”
“내 영상 통화도 무시하고! Bad guy…….”
케이가 입으로 우우 소리를 내며 눈썹을 내렸다.
앞으로도 받지 말아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마친 나는 싱긋 웃었다.
그 순간, 케이가 서운하다는 얼굴로 나를 툭툭 쳤다.
“혹시 케이 귀찮아?”
들켰군.
나는 최대한 상냥한 미소를 걸쳤다.
“그럴 리가.”
“다행이다~ 나는 해온 형 좋으니까!”
난 그다지…….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눈을 질끈 감습니다!]
호탕하게 웃은 케이가 신유하에게 말을 붙였다.
“유하 형, 오늘 얼굴도 Nice네! 케이는 오늘 어때?”
“잘 생겼어……!”
“오우~ Thanks.”
그리고 돌연 비장해진 얼굴의 케이가 내게 속닥였다.
“e스포츠는 케이가 금메달.”
누구 맘대로?
“케이는 밥 먹고 게임만 했다구!”
자랑이다.
“eye bags! 보여? 게임하느라 생겼어!”
케이가 자신의 다크서클을 가리키며 얼굴을 들이밀었고, 신유하가 작게 외쳤다.
“우리도 열심히, 연습했어!”
“형도 열심히 했어?”
“응! 우리도, 메달 따고 싶어서!”
“Hmm, 그럼 우리 당당정정한 라이벌이네!”
“정정당당……?”
“맞다! 정정당당! 헷갈려쓰~”
둘의 어처구니없는 대화를 보고 있던 나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과거에 엮이지 않은 케이라지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한다고?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신유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기울였다.
정말 그림자가 사라지긴 했나 보군.
나는 피식 웃으며 파이팅을 제안했다.
멤버들의 손이 금세 모여들었고, 나는 대표로 입을 열었다.
“다들 다치지 말고, 오늘 촬영 잘 끝내자.”
멤버들이 고개를 위아래로 붕붕 끄덕였고, 나는 속으로 되뇌였다.
[당신에게 축복을!]이 발동됩니다!
접촉만으로도 공짜 축복을 내릴 수 있긴 하다만, 오늘은 나도 체력을 아껴야 하는 날이니 웬만하면 포인트를 사용한 축복을 걸어줄 셈이다.
다른 그룹은 끽해봐야 비타민이나 먹지 않겠는가.
우리 애들은 축복이다.
대회가 진행되는 내내, 지치지 않는 에너자이저로 만들어주지.
나는 비열하게 입꼬리를 당겼다.
* * *
긴장되는군.
해당 게임은 6인 특별 스쿼드로 진행된다.
나는 지정된 자리에 앉아 손을 풀었다.
“해온 형, 긴장하지 마세요.”
“그래.”
[─예, 맞습니다. 저번 e스포츠는 올타임과 레인보우가 휩쓸었어요.]
경기 시작 전, 중계진들의 중계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종목과 다르게, e스포츠는 매번 왕좌가 바뀌거든요. 그렇죠?]
[맞습니다. 선수들의 기량이 매번 달라지고, 매해 신예가 나오지 않습니까? 혹시 눈여겨보는 선수가 있습니까?]
[아아, 아까 러쉬의 케이 선수가 호언장담을 하고 있더라고요. 자신감 넘쳐 보입니다!]
[……케이 선수라면, 작년 e스포츠 종목에서 가장 먼저 탈락하지 않았던가요?]
이봐, 전적이 그랬던 거냐고.
[제가 기대하는 선수는 저기, 성해온 선수입니다.]
[오! 성해온 선수요?]
나는 두 귀를 의심했다.
어째서?
[포스 좀 보세요. 다른 선수들은 긴장해서 좌불안석인데, 성해온 선수는 내 집 같은 편안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얼굴에 동요가 하나도 없어요!]
정신력이 남다른 관계로 외적으론 고요하다만, 나도 인간인지라 긴장은 하고 있는데 그게 무슨 헛소리들이냐.
[오오! 듣고 보니 정말 고수의 아우라가 느껴집니다! 지금 보니까 얼굴에서도 신뢰가 팍 느껴져요! 그렇지 않습니까?]
“…….”
내 낯짝이 빠르게 칙칙해졌다.
중계진이 나를 콕 집어 언급했을 때, 팬석에서 함성이 터지는 걸 두 귀로 들어버린 것이다.
안타깝게도, 여기서 내가 크게 활약할 확률은 제로에 수렴한다.
내가 사활을 건 종목은 양궁이라서 말이다.
e스포츠에서 믿는 구석은 저 녀석들이지.
나는 한수현과 신유하를 힐끔 응시했다.
하지만 나도 자존심이란 게 있다.
적어도 중반까지는 살아남는 게 목표라는 뜻이다.
나도 한수현의 특훈을 견뎌냈거든!
[아체대 1부의 포문을 여는, e스포츠.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 * *
“…….”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을 안쓰럽게 바라봅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나는 허망한 눈깔로 날 죽인 스피디를 응시했다.
저 새끼들, 밥 먹고 게임만 한 게 틀림없다.
내가 뒈질 때를 잊지 못한다.
[아~ 성해온 선수, 파밍하는 속도가 엄청납니다! 팀원들이랑 거리를 두는 데도 거침이 없네요. 역시 기개가 남다릅니다!]
[제가 뭐라 했습니까? 제가 이런 눈 하나는 좋습니다. 작년에도 제가 예측한 선수가 최종까지 남지 않았습니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안목입니…….]
[다아……?]
[성해, 성, 성해온 선수! 뒤에서 공격당해 아웃당합니다! 이야, 스피디의 합공! 첫킬을 따낸 클락션이 환하게 웃습니다!]
파밍(Farming), 땅에 떨어진 아이템을 줍는 행위를 말한다.
그래.
게임 시작과 동시에 아이템 줍다가 뒈졌다는 뜻이다.
중계진들도 놀랐는지 말을 절더라…….
나는 비참한 낯짝으로 눈을 껌뻑였다.
물론 메달에 기여하리라는 기대도 안했지만, 첫킬이라니.
이건 무조건 편집 안 당하고 방송 탄다에 전 재산을 걸겠다.
X발…….
[아~ 최승하 선수, 방심했습니다! 그대로 올타임에게 당합니다!]
“이잉.”
나보단 오래 버텼지만, 결국 초반부에 킬 당한 최승하가 시무룩한 얼굴로 내 어깨를 콕 찔렀다.
그리고는 얼마 안 가, 푸핫 웃었다.
“저는 형이 있어서 외롭지 않아요~!”
“좋냐?”
“아니, 저도 좀 일찍 죽어서 민망했거든요? 근데 고개를 돌려보니까 형이 이 얼굴로 앉아있는 거야.”
최승하가 내 망연자실한 낯짝을 재연했다.
“…….”
나는 더욱더 흐릿해진 시선을 모니터에 고정했다.
과연, 미리 점쳐놨던 에이스들이 남다르군.
한수현과 신유하 말이다.
[한수현 선수, 신유하 선수 정말 영리하게 판을 짜갑니다! 벌써 두 선수가 다섯 선수나 잡았어요! 놀랍습니다!]
이거, 꽤 손에 땀을 쥐는군.
[아~ 류인 선수, 안타깝게 아웃됩니다…… 오! 그 옆의 한수현 선수 또 킬각을 세웁니다! 킬! 와우! 정확하게 들어갑니다!]
[이야, 한수현 선수는 지금 무서운 게 없어요. 현재 라이트온의 유일한 미성년 선수입니다. 하지만 플레이는 가장 거침없어요. 아! 말씀 드리는 순간, 차윤재 선수가 아웃됩니다!]
“어, 억울합니다! 숨어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은! 스피디 선배님한테 당했습니다!”
나도 그렇게 뒈졌는데…….
뜻밖의 동질감을 느낀 나는 억울해하는 차윤재에게 아련한 시선을 보냈다.
[오~ 오늘 스피디 감 좋아요. 전략이 존버인가 봅니다? 명당에서 자리 잡고 다가오는 선수들을 처리하고 있어요! 근데 그게 또 타율이 좋습니다!]
우리 팀에서만 나와 차윤재, 둘씩이나 당했으니.
거의 지금 우리 팀의 원수 수준이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클락션과 눈이 마주친 것이다!
……찡긋?
“푸하하, 클락션 형님이 방금 윙크하셨는데 보셨습니까?”
“내가 답할게!”
최승하가 맞받아치며 눈을 찡긋거리자, 스위치 팬석에서 환호가 터졌다. 전광판에 잡힌 모양이군.
[과연, 최종 우승자는 누가 될지! 15명의 선수만이 살아남았습니다!]
동시에 중계석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터졌다.
[아아아아아아아! 방금! 방금! 우승 후보로 점쳐지던 올타임의 마지막 멤버가 라이트온! 한수현의 손에 아우우우웃! 아웃됩니다!]
현재, 12명의 선수가 생존했다.
그룹으로 따지면 8그룹.
참고로 러쉬는 초반에 광탈 당했다.
메달을 따내겠다 호언장담하던 케이는 저 멀리서 나와 별 다를 거 없는 낯짝으로 흐느적거리고 있고.
[지금 라이트온 상황, 좋지 않습니다. 사려야 합니다. 여러 그룹이 눈에 불을 켜고 있어요. 근처에 동료의 원수 격인 스피디도 있고요.]
말마따나, 전세가 몰려 있어서 몸을 사려야 할 타이밍이었다.
뭐, 한수현이라면 알아서 할 것 같지만.
-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수현이 겁도 없이 튀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한수현 선수! 도, 돌진합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신유하 선수도 뒤를 따릅니다! 상대 진영, 스피디도 깜짝 놀랍니다만 바로 전투태세에 돌이이이입!]
흥분한 목소리로 중계하던 남자의 목소리가 멈췄다.
그도 그럴 게!
[한, 하, 한수현 선수! 신유하 선수! 사이좋게 스피디를 처치합니다!]
[대하드라마입니다! 동료의 복수를 한다! 동료를 둘이나 죽인 스피디를, 자신의 손으로 끝내는 라이트오오온!]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전광판으로 이 경기를 보고 있는 팬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한수현 선수 미쳤습니다! 완전히 미쳤습니다! 날아다니기 시작합니다!]
[세 선수나 처리하고 명예롭게 전사한 신유하 선수의 복수까지 완수합니다!]
* * *
라이트온.
금메달!
실시간으로 전해진 소식과 함께, 팬덤은 들썩였다.
- [긴급속보] 라이트온 e스포츠 금메달
- 얘들아 성해온 표정 좀 봐 한수현 신유하 합공때 놀라서 뒤로 넘어갈 기세임 (사진)
- 라이트온 첫 출전부터 폼 미쳤네 시작부터 금메달 돌으셨나요?
그리고 여기.
그 뜨거운 열기로 가득찬 현장에 앉아있는 곽덕배는 방금 전광판에 잡혔던 레전드 장면을 회상했다.
e스포츠 경기가 끝나자마자, 다정한 얼굴로 모든 멤버들을 쓰담쓰담하며 챙기는 성해온을 말이다!
그 장면이 전광판에 잡히자마자, 스위치 팬석에선 어마어마한 함성이 터져나왔더랬다.
곽덕배는 아득한 얼굴로 눈을 질끈 감았다.
‘성해온…… 사랑할 수밖에…….’
* * *
라이트온의 대기실.
다정한 모습으로 팬들의 현기증을 유발한 성해온은 지금.
“물 가져다줄까?”
“어깨는 안 결리고?”
“여기 초콜릿 먹을래?”
어마어마하게 상냥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물론 승리의 주역인 한수현과 신유하에게 말이다.
“와, 저 먹을래요. 초콜릿!”
최승하의 말을 가볍게 필터링한 나는 둘에게 다가갔다.
“이거 맛있더라고.”
“제가, 먹을게요……!”
나는 온화한 낯짝으로 초콜릿 포장지를 손수 까내려갔다.
“아냐. 녹아서 손에 묻을 수도 있잖아. 자, 아아.”
“와아아아아! 아까, 아까! 팬들 있을 땐 막 상냥한 목소리로 수고했다고 토닥여 주더니! 대기실 오자마자 사람이 변해!”
세상 억울한 얼굴의 최승하가 소파를 팡팡쳤다.
“자식 차별하는 부모도 아니고!”
한참을 왁왁거리던 최승하가 다가와 본인의 입술을 콕 찔렀다.
“형이 초콜릿 먹여주면 나도 메달 딸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망설임 없이 한주먹의 초콜릿을 최승하 입에 욱여넣었다.
“와악, 잠, 잠시만, 이건, 왑.”
볼이 빵빵해진 최승하가 초콜릿을 삼키는 동안, 나는 심각한 낯짝으로 대가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제 다음 종목은 수영이다.
최소한 은메달.
바람으론 금메달을 가져와 줬으면 좋겠는데.
내 생존이 걸린 중요한 문제라서 말이다.
“……! 읍, 해온아.”
기습적으로 류인의 입에 초콜릿을 집어넣은 나는 녀석을 응시했다.
너만 믿는다.
살려주라!
달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