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258화 (258/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58화

경기장에서 바로 진행되는 육상 종목이다 보니, 중계가 다이렉트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예, 설 특집 아이돌 체육대회! 아체대 하면 무엇이죠? 전통은 계주와 양궁 아니겠습니까~]

[오늘 계주 라인업 좋습니다. 예선인데도 어마어마하지 않습니까? 선수 소개하겠습니다.]

[─3트랙은 라이트온의 최승하 선수입니다! 이 선수 눈여겨봐야 합니다. 연습을 함께한 아이돌들의 증언을 듣자 하니, 다크호스라고.]

예선은 여러 개의 조를 나눠서, 조 1위가 결승전에 진출하는 식이다.

나는 잔디밭에 멀뚱히 앉은 채, 최승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팡!

스타트를 알리는 총소리와 동시에, 트랙 위의 선수들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최승하! 최승하 선수! 이 선수 뭡니까!]

[또 라이트온입니다! 또 라이트온이에요!]

“……!”

나는 놀란 눈으로 최승하를 응시했다.

직접 본 적은 없으나, 나도 귀가 달려 있다 보니 최승하가 계주에서 두각을 보인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단숨에 라인으로 들어옵니다! 60m 예선 A조, 최승하 선수가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단숨에 결승으로 진출합니다!]

눈 깜짝할 새에 1위를 거머쥔 최승하가 신난 강아지처럼 달려오기 시작했다.

“형들~ 동생들~ 저 어땠, 으음.”

그러다가 갑자기 잔디밭에 폭삭 앉았지만 말이다.

최승하가 자신의 다리를 통통 두드리기 시작했다.

“승하야, 혹시 다쳤어?”

“……! 형님, 괜찮으십니까?”

곧바로 달려간 멤버들에, 최승하는 별거 아니란 얼굴로 대답했다.

“근육을 덜 풀고 뛰어서 그런가, 잠깐 근육통 왔었어요. 괜찮!”

밝은 얼굴로 일어난 최승하가 멀쩡하다며 헤헤 웃었다.

물론.

……나는 멀쩡하다고 하지 않았다.

[자애로운 교주는 신도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해온아, 왜 갑자기 안색이……?”

“아.”

나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읊조렸다.

“나도 근육통이 조금 와서.”

“……? 근육통?”

류인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당연하다.

밥 먹고 앉아 있기만 했는데, 대체 무슨 이유로 근육통이 오나 싶겠지.

직접 뛴 것도 아닌데.

나는 눅눅한 낯짝으로 시선을 돌렸다.

차윤재의 예선전이 준비되고 있었다.

[이번엔 2트랙이 라이트온의 차윤재 선수, 3트랙이 페이즈의 예준 선수입니다.]

그 새끼들의 원래 계획대로라면, 여기서 차윤재를 넘어뜨리려 했겠지.

결승이야 성적순이니 트랙도 실시간으로 배정된다지만, 예선은 진득 정해졌으니 그딴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눈을 도록 굴려 예준을 응시했다.

계속해서 한영에게 시달린 모양인지, 짜증이 잔뜩 서린 낯짝이었다.

* * *

“죄송합니다아아아!”

“아냐, 2등도 잘, 한 거야……!”

하필이면 블랙보이즈의 계주 유망주와 같은 조로 붙은 차윤재는 장렬히 패배했다.

“하지만 조금 아깝긴 합니다!”

차윤재가 목소리를 낮춰 속닥였다.

“옆 트랙 분이랑 동선이 조금 겹친 탓에 속도가 덜 나긴 했으니까요.”

시무룩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사실 그래도 1위는 무리였겠지만요. 다시 달려도 블랙보이즈 선배님은 못 이길 것 같습니다.”

그렇다.

예준은 결국 한영의 말대로 수작질을 포기한 듯 보였으나, 초반부엔 차윤재와 동선이 계속 겹치더라고.

중반부엔 넘어지면서 더 이상 겹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근데 굉장히 아프게 넘어지셔서……! 걱정됩니다……!”

페이즈의 인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차윤재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속닥였다.

내가 설마하니 한영 한 놈만 조질까.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을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체대의 관계자가 정확히 차윤재의 앞으로 달려온 것이다.

“방금 예선 끝났는데, 윤재 씨 본선 진출입니다! 참고하고 계세요!”

“……!”

“아, 원래 각 조 2위 중에 성적순으로 몇 분이 들어가기도 해서요. 차윤재 씨 성적이 딱 커트라인에 걸렸어요. 결승 괜찮으시죠?”

차윤재의 얼굴이 화아악 피었다.

“예!”

* * *

“와~ 우! 여기는 아체대!”

아이돌 업계에서 예능돌로 통하는 클락션이 특별 캐스터 역할을 맡았다.

이 역할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중계진들과 소통하며 선수들의 인터뷰를 따는 거라 답하겠다.

클락션은 1번 트랙부터 바쁘게 인터뷰를 시작했다.

“예선과 같은 3번 트랙! 최승하 선수! 예선 성적으론 전체 2위입니다. 대~ 단해요!”

최승하에게 다가간 클락션이 마이크를 들이댔다.

“예선같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거라 자신하십니까?”

“아니요!”

뜻밖의 대답에 놀란 클락션이 눈을 휘둥그레 떠올렸다.

“자신이 없으시다고요?”

고개를 좌우로 저은 최승하가 웃었다.

“예선보다도 더 잘할 겁니다! 1위!”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스위치 팬석에서 함성이 터졌고, 최승하가 여유로운 얼굴로 팬석과 멤버들을 향해 팔을 휘적였다.

“호오, 자신이 만만합니다? 자, 그럼 같은 그룹의 차윤재 선수에게 가봅니다!”

클락션이 마지막 트랙으로 이동했다.

“차윤재 선수! 포부가 있으십니까?”

“다치지 않고 메달 따기입니다!”

“색상은?”

“……동메달?”

“아니요. 차윤재 선수는 은메달을 지망하셔야 할 겁니다.”

클락션이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은~ 제나 빛나니까~ 푸하하하! 미안합니다!”

곧바로 카메라 쪽으로 허리를 숙인 클락션에, 여기저기서 웃음보가 터졌다.

나 역시 사방에 깔린 카메라를 의식하며 폭소한 척, 잔디밭을 팡팡 두드렸다.

클락션의 인터뷰가 끝나기 무섭게, 본격적인 결승의 막이 올랐다.

팡!

스타트 소리와 함께, 자세를 잡고 있던 선수들이 동시에 달려 나갔다.

과연, 결승다운 속도로군.

사실 이 경기 직전에 두 녀석에 유료 축복을 걸어줬다.

그런 이유로 두 녀석 모두 컨디션이 최상이었다.

최승하는 말할 것도 없이 선두였고, 차윤재 역시 꽤 선방하며 달리고 있었다.

“윤재 엄청 신났나 봐.”

류인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연습할 때부터 결승 가고 싶어했거든. 메달엔 욕심 없다고 했는데, 그냥 진출로 좋은가 봐…… 아?”

순식간에 류인의 입이 벌어졌고, 관전하던 멤버들이 우르르 일어났다.

차윤재가 트랙에서 콰당, 넘어진 것이다.

[아~ 차윤재 선수, 속도를 주체하지 못해 넘어집니다! 하지만 완벽한 착지!]

[타고난 운동 신경이 좋은 친구에요. 곧바로 일어나 달리기 시작합니다! 포기하지 않아요!]

“윤재, 씩씩해요……!”

신유하가 눈을 빛내며 내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형……?”

내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 신유하의 얼굴에 경악이 물들기 시작했다.

“혀, 형……!”

“…….”

지금 차윤재보다 심각한 건 내 낯짝이었다.

[자애로운 교주는 신도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차윤재가 넘어지기 무섭게 떠오른 알림과 함께, 허리와 엉덩이에 저릿한 통증이 찾아왔다.

뭐, 저 녀석 통증이 덜할 테니 다행인가.

그리고 지금 내 통증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 최승하 선수! 아까 전의 공약이 진짜였습니다! 블랙보이즈를 제치고 가장 먼저 들어옵니다아아아아!]

[금메달! 금메달 확정입니다!]

* * *

세 번째 메달 소식에, 스위치 팬석이 환호로 가득 찼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흥분이 어느 정도 진정되고 난 뒤, 팬석은 또 다른 의미로 들썩였다.

그러니까, 이제 릴레이 계주의 순서였다.

라이트온에선 류인, 최승하, 신유하, 한수현이 출전하는.

그 넷은 조금 전에 경기 준비를 위해 떠났고, 나머지 두 멤버.

성해온과 차윤재가 잔디밭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두 멤버가 인생무상이라는 얼굴로 앉아 있으니, 팬들은 미칠 지경이었던 것이다.

귀여워서!

지금 이미 SNS엔 저 둘의 사진이 미친 듯이 떠돌고 있었다.

- 성해온 차윤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기력 없이 둘이 앉아 있는 것 봐

- 윤재 실수로 메달 못 따서 시무룩 고영임 지금 ㅠㅠ

다행히 넘어진 차윤재의 처치가 팬석에서 보였고, 붓거나 눈에 보이는 피 같은 게 없었기에 팬들은 안심했다.

성해온이 경기 직전 걸어준 축복 탓에 상처 하나 안 난 것이지만 말이다.

- 그나저나 성해온은 왜 이리 지친 것임? 개웃기다 직장인 같아

- 아니 지금 아체대에서 제일 삶이 힘겨워 보이심

둘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곽덕배는, 순간적으로 감전이라도 당한 듯 몸을 떨었다.

“잠깐만!”

“왜 또 무슨 일인데.”

“저 둘…….”

곽덕배가 심각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너무 고양이 같지 않아?”

근돌이 ‘진짜 오타쿠 새끼……’ 라는 얼굴로 바라봤고, 곽덕배가 본인의 가슴을 탕탕 쳤다.

“아니, 근데! 내 말 좀 들어봐.”

곽덕배가 진지하게 외쳤다.

“그룹마다 냥냥즈, 멍멍즈, 멍냥즈, 냥멍즈 이런 거 있잖아.”

그렇다.

이 바닥에서 가장 흔하게 모에화되는 동물은 개와 고양이.

자매품으로 토끼와 햄스터 등이 있다.

“내가 윤재가 아기고양이라는 거에 매료돼서 그 생각을 못 했는데, 해온이도 보니까 고양이야.”

“이거 듣다 보니까 또 설득되네…….”

“그렇지! 해온이 얼굴도 딱 고양이라고! 굳이 따지자면 해온이는 삶에 찌든 고양이고, 윤재는 아기 고양이지.”

“너 해온이 최애 맞아?”

근돌의 물음을 가볍게 무시한 곽덕배가 입을 가렸다.

“어떡해! 성해온 블루베리 고양이야!”

* * *

냥냥즈.

그중에서도 블루베리 고양이라는 별명을 얻게 될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는 성해온이 퍼석한 얼굴로 눈을 껌뻑였다.

‘뒈지겠네.’

멤버들과 닿을 때마다 자비가 베풀어지며 체력이 쪽쪽 빨리는 건 둘째 치고, 하도 충격 흡수를 많이 했더니 피곤해 죽겠다.

이 잔디밭에 드러누워 잠이나 자고 싶은 심정이었다.

삐죽……!

심지어 차윤재는 아까부터 시무룩한 상태였다.

“멋졌다니까.”

“거짓말 치지 마십시오! 흉, 흉하게 넘어졌을 거 아닙니까!”

“전혀. 착지 멋있었는데.”

“노, 노, 놀리지 마십시오!”

“진심인데.”

“넘어지지만 않았어도 메달을 딸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신난 바람에!”

“괜찮아. 양궁 남았잖아.”

“양궁……!”

차윤재의 눈이 일순 반짝였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양궁은 우리가 금메달 따야지. 안 그래?”

“맞습니다! 저희, 저희가 따야 합니다!”

“대기실에 있는 애들이나 보러 갈까?”

“예!”

금세 기력을 되찾은 차윤재가 활달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하여튼, 쉽단 말이지.

* * *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경악합니다!]

미안하지만 나도 별다를 게 없었다.

2층에 위치한 대기실로 향하기 위해, 본관 계단이 아닌…… 가까운 비상계단으로 차윤재를 이끌고 온 내 입이 쩍 벌어졌다.

동시에.

터업!

오른손으로 차윤재의 눈을, 왼손으로 차윤재 입을 가렸다.

이 정신 나간 꼬라지를 갓 성인이 된 차윤재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

“윽? 읍? 읍?”

코를 제외한 모든 게 막힌 차윤재가 내 손을 두드렸으나, 나는 두 손에 더더욱 힘을 줬다.

“으붑!”

[성좌, ‘황금의 신’이 관심 없는 척 곁눈질로 응시합니다.]

[성좌, ‘황금의 신’이 이걸 내보내면 어떡하냐 성냅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 눈앞에 들어온 건.

흡사 동물의 왕국이었다.

저 아래 계단에서 남자와 여자가 부둥켜 끌어안고 강렬한 입맞춤을 나누고 있었다.

이봐, 지금 어디를 만지는 거냐.

얼마나 집중했으면 사람이 들어온 것도 모르는 걸까.

그래, 아체대를 알고 있으면서도 생각 없이 비상계단으로 온 내 실수였다.

아이돌 체육대회란 무엇인가?

그래.

……연애의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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