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60화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외진 곳으로 향했다.
걸음을 옮기는 도중에도, 애가 타는 모양인지 성좌들의 메시지가 연속적으로 떠올랐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모든 포인트를 구매하겠다고 나섭니다!]
[성좌, ‘황금의 신’이 본신의 수식언이 보이냐며 으쓱댑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어차피 구매하는 건 자신일 거라며 골드 주머니를 짤랑댑니다!]
“흠흠.”
나는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허공으로 데굴 굴렸다.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먹으로 가린 나는 주변을 빠르게 휙휙 살폈다.
아무도 없군.
조금 전 페이즈의 일로 모험가 성좌에게 거래 우선권을 주겠다고 했지만, 말마따나 우선권이다.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높은 값을 부른 성좌가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이 성좌도 그것에 대해서 동의한 뒤 나를 도와준 것이고.
현재 내가 모은 포인트는 무려 2,460포인트.
모든 포인트를 사고 때 소진했고, 내가 깨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어마어마한 속도로 쌓인 것이다.
나는 스쳐 지나가는 과거를 회상했다.
[자애로운 교주는 신도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자애로운 교주는 신도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자애로운 교주는 신도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병실에서 깨어난 이후, 거의 매일같이 알림을 받았다.
멤버들이 크게 다치진 않았어도, 자잘한 부상이나 후유증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제 웬만한 통증은 달달해진 나는 별 무리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고, 금세 포인트가 이만큼 모였다.
자비의 손길이 생긴 이후엔 포인트가 쌓이는 속도가 더 빨라졌고 말이다.
나는 손을 비열하게 샥샥 비볐다.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의 포인트를 1,000골드에 구매하겠다고 나섭니다.]
오호라.
성좌님, 제가 호구로 보이시나요?
분명 이전에 200포인트에 100골드쯤의 시세를 제안하셨습니다만…….
나는 눈깔을 부라렸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시세는 달라지는 거라며 발끈합니다!]
아무렴.
시세는 변동이 되는 거지.
그렇지.
그러니까 시세지.
나는 인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장 거래를 진행하자며 흥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다음 분?”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자신의 귀를 의심합니다.]
제대로 들으셨습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뒷목을 부여잡습니다!]
[성좌, ‘황금의 신’이 피식 웃습니다!]
[성좌, ‘황금의 신’이 1,200골드를 제안합니다.]
좋은 가격이군.
하지만 나는 눈을 곱게 접어 웃었다.
이름하여, 괜찮은 가격이지만 더 비싸게 낙찰하실 분이 있다면 따라가겠다는 얼굴이다.
[성좌, ‘황금의 신’이 고심합니다!]
[성좌, ‘황금의 신’이 1,300골드를 제안합니다.]
더 없으신가요?
나는 말갛게 뜬 눈깔을 순진무구하게 껌뻑였다.
[성좌, ‘황금의 신’이 본신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거냐며 경악합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을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 * *
“올해 양궁은 아주 색다릅니다. 시청자 여러분이 기대해 주셔도 좋습니다!”
메인 진행을 맡은 MC가 기대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전(前) 양궁 국가대표, 한나리 선수가 특별 해설위원으로 자리해 주셨습니다!”
아체대는 종종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을 해설위원으로 초청하곤 하는데, 올해 양궁이 그러했다.
“해설위원님, 아체대 양궁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예, 예선과 준결승에선 세 선수가 각각 2발씩, 에이스 선수가 추가적으로 1발을 더 쏴 총 7발로 승부가 겨뤄집니다.”
“그렇다면 결승은요?”
“결승은 각각 3발씩, 에이스 선수의 추가 1발을 더해 총 10발로 메달이 결정됩니다.”
“완벽한 설명이었습니다. 예, 이번 아체대 양궁은─”
탁-
중계진의 간단한 설명이 이어진 뒤, 마이크가 잠시 오프됐다.
“선수님, 기대되는 선수로 누굴 지목하실 건가요? 정해진 멘트라서 미리 생각해 놓으면 좋으실 거예요.”
한나리가 조용히 선수들을 살폈다.
“……음. 사실 올해부터 난이도가 비교도 안 되게 올라갔다고 들어서요.”
“아~ 맞습니다. 아마 올해는 조금 난장판일 겁니다.”
그렇다.
국제대회와는 달리, 아체대 양궁은 여태껏 실내에서 진행되어 왔다.
게다가 과녁과의 거리도 프로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무척 가까웠으니, 아마추어인 아이돌들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아체대 고인물인 아이돌들의 양궁 실력이 크게 상향 평준화되어 버렸고, 아체대는 비장의 카드를 내밀었다.
과녁과의 거리는 조금 더 멀게!
거기에 한술 더 떠, 야외의 바람이 통하는 곳으로 장소를 바꾼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보십니까? 아 물론 실력은 기본 전제일 테고요.”
“저는 집중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대답을 마친 한나리는 활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한 인영을 내려다봤다.
‘저 사람이 성해온인가?’
예전에 함께 선수 생활을 했던, 절친한 선배가 운영하는 실내 양궁 연습장.
매해 아체대가 개최될 때마다 수많은 연예인들이 그곳으로 향했고, 선배는 그때마다 메달감들을 미리 맞추곤 했다.
해설위원으로 초청받은 한나리는 올해의 메달감을 물어봤고, 나온 대답은 의외였다.
- 좀 눈에 밟히는 사람은 있긴 해.
- 누구길래?
- 성해온이라고…… 집중력은 무슨 프로야. 게다가 재능도 있거든? 요즘은 황금 스팟도 곧잘 맞힌다니까. 그래서 더 아쉽지.
- 재능이 있으면 있는 거지 아쉬운 건 뭐예요?
- 팔 힘. 이 친구 근력이 많이 부족해. 감이 있으니까 어찌저찌 커버치고 있긴 한데, 보면 볼수록 아까워. 그것만 아니면 충분히 메달감이거든.
한나리는 금세 성해온에게서 시선을 뗐다.
팔 힘은 단기간에 채울 수 없는 부분이니까.
* * *
순식간에 벌어들인 1,400골드에, 자본주의적 미소가 스며들었다.
이제 골드가 부족해 빌빌댈 일은 없지 않겠는가.
나는 곧바로 골드 상점을 불러냈다.
당장 구매할 게 있거든.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이겠는가.
바로, 힘이다.
관련 특성은 이것밖에 없는지라, 나는 망설임 없이 스크롤을 내렸다.
[구매가 완료되었습니다!]
이전에 한번 구매한 적이 있는, [아틀라스의 기운(B)]이라는 특성이다.
나는 테스트를 위해 활을 잡아 들었다.
“……!”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에, 내 동공이 확장됐다.
현이 엿가락처럼 당겨지고 있었다.
미쳤는데.
역시 인생은 템빨이다.
히죽…….
그리고 정확히 20분 뒤.
내 낯짝이 참담해지기 시작했다.
X발.
어떻게 이런 일이.
“잘 부탁드립니다. 라이트온.”
블랙보이즈의 멤버들이 우직하게 손을 내밀었다.
참고로 이 메달에 미친 그룹은 작년 양궁에서도 은메달을 따낸 전적이 있었다.
그래.
……이런 인간들이 왜 하필 우리랑 예선에서 붙는 건데?
애석하게도 방송국의 계략은 아니었다.
양궁 종목 직전에 있었던 육상 종목들.
그 종목에서 우리의 상대와 블랙보이즈의 상대 팀이 부상을 입으며 기권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대결 상대가 사라진 두 그룹이 자연스럽게 맞붙게 된 것이고.
자신이 없는 건 아니다.
애초에 금메달을 노린 순간부터, 블랙보이즈 뭐고 다 이길 작정이었으니까.
하지만 예선부터 이놈들과 겨루게 되는 건 리스크가 상당했다.
봐라.
- 형님! 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종일 녹화임에도 컨디션이 좋습니다!
- 나도, 그래!
몇 분 전만 해도 의지를 다지던 차윤재와 신유하의 얼굴이 벌써부터 흐릿해지지 않았는가.
당연한 일이었다.
원래 우리와 예선에서 붙었어야 했을 그룹의 실력은 특출나지 않았거든.
몇 번 양궁 연습이 겹쳐서 알고 있다.
- 오오…… 라이트온, 잘하시네요. 저흰 안봐도 예선 탈락이겠는데요.
- 그러게. 근데 어차피 난 별 기대도 안 해~
연습을 밥 먹듯이 빠질 때부터 알아봤지만, 멤버 교체도 아닌 기권을 택할 줄은 몰랐지.
짧은 한숨을 삼켜낸 나는 눈깔에 생기를 더하며 블랙보이즈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 * *
예선 경기가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탄식이 이어졌다.
[아~ 올타임도 혼란스러워 합니다. 방금 8점을 쏴낸 선수가 4점을 쐈어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나리 해설위원님의 말씀대로, 이번 양궁은 정말 예측조차 쉽지 않습니다. 재작년 양궁에서 동메달을 따냈던 올타임이 예선에서 탈락해 버렸어요!]
현장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예선을 앞둔 멤버들의 얼굴에 긴장이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멤버들의 어깨를 자상하게 토닥였다.
“긴장돼?”
“예! 솔직히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정도는, 아닌데…… 블랙보이즈 선배님이 계속, 쳐다보고 계셔서 긴장이 조금…….”
“그렇구나.”
자애롭게 고개를 주억인 나는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그런 의미로, 연습했던 것보다 더 잘해볼까?”
“예? 예에에? 보통은 여, 연습한 대로 하자라는 게 맞는 말 아닙니까?”
싱긋…….
내 낯짝을 정면에서 마주한 멤버들이 파르르 떨었다.
“더, 더 잘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원래 자신이 넘쳤습니다!”
“저도…… 저도 자신, 있어요! 잘할 수 있어요!”
[성좌, ‘황금의 신’이 우리 아해를 협박하는 거냐며 기함합니다!]
협박이라니.
이건 독려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본신이 봐도 독려였다고 합니다.]
[성좌, ‘황금의 신’이 다급하게 끼어들며 골드는 본신이 더 많다고 외칩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발끈합니다!]
아무래도 이 포인트라는 건, 저들의 입맛에 딱 맞는 물건인 모양이다.
사실 가장 큰 골드를 내민 건 황금의 신이었으나, 실낱같은 양심을 지키기 위해 모험가 성좌에게 포인트를 넘겼다.
그리고 나는 내 선택이 옳았음을 깨닫게 된다.
추측상, 이 성좌가 다른 성좌들에게 포인트 맛을 보여준 것 같거든.
[성좌, ‘황금의 신’이 황홀한 맛을 기억합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입맛을 다십니다.]
[다수의 성좌가 당신에게 호기심을 보입니다.]
“음.”
훌륭한 신계 마케팅이로군.
다들 이렇게 안절부절해 주고 있으니…….
“라이트온 경기 시작합니다! 대기해 주세요!”
정말이지.
내가 바라 마지않던 것이지 않은가.
나는 웃으며 활을 집어 들었다.
* * *
한편, 중계석.
“다음 예선조 중계로 넘어가겠습니다. 이 조는 죽음의 조예요. 어떻게 예선에서 이런 조합이 나올 수가 있는 거죠?”
“현재 종합 랭킹 1위인 블랙보이즈와 3위인 라이트온의 격돌입니다.”
“가장 먼저 나서는 건 성해온 선수입니다. 화살을 침착하게 노킹하네요.”
중계진들은 별 기대 없이 멘트를 내뱉었다.
하지만.
성해온이 첫 발을 쏜 순간, 중계진들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