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71화
끼릭!
끼리릭!
끼릭!
쉴 새 없이 돌아가던 시곗바늘이 멈춘 건, 2월 7일의 정각이었다.
……이해온과 성해온이 태어난 날.
깨달음과 동시에 메시지가 내 시야를 메우기 시작했다.
[본체와 빙의체의 동기화율이 급속도로 상승합니다.]
[본체와 빙의체의 합일(合一)이 이루어집니다.]
[Loading…….]
나는 침착하게 생각을 이어갔다.
내가 처음 이 몸에 빙의됐을 때를 생각해 보면 말이다.
[해당 빙의체를 적합자로 판단합니다!]
[본체와 빙의체의 동기화가 시작됩니다!]
이런 메시지가 떠올랐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시스템 오류 발생!]
[……동기화에 실패합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동기화에 실패했었고 말이다.
그러니까…….
그때 실패했던 동기화가 생일을 기점으로 다시 진행되고 있다는 건가?
“……허.”
생일이라고 감상에 빠질 틈조차 주지 않는군.
[합일(合一) 10% 진행 중!]
[합일(合一) 23% 진행 중!]
[합일(合一) 45% 진행 중!]
[합일(合一) 65% 진행 중!]
[합일(合一) 86% 진행 중!]
[합일(合一) 99% 진행 중!]
그리고 퍼센테이지가 모두 채워진 순간.
시야가 어지러이 물들기 시작했다.
시스템 메시지 같은 게 아닌.
……걸어온 길.
내가 성해온으로서 이뤄낸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처음 이 몸에 들어왔을 때부터 시작된 장면은…….
눈만 마주쳐도 날을 세우던 멤버들이 내게 마음을 연 과정.
그리고 인지도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라이트온이 이 바닥에서 공고히 자리를 잡은 과정.
팬들의 열띤 환호로 가득 찬 현장의 열기.
기뻐하는 우리들.
그보다 더 기뻐하는 스위치들의 모습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던 파노라마는 어제를 마지막으로 종료됐다.
그와 동시에.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적응 기간이 종료됩니다.]
[시스템 난이도가 재설정됩니다.]
촤라락, 눈앞에 온갖 시스템창들이 줄지어 떠올랐다.
……그러니까, 내 상태창부터 골드 상점, 세부 특성창까지.
그리고 그것들은 미친 듯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마치 오류라도 난 것처럼.
그리고 나는 헛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 의문을 표하기도 전, 재설정된 게 무엇인지 곧바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진 골드를 비롯해, 포인트까지.
전부 10배수로 띄었다.
나는 떠오른 창들을 빠르게 훑었다.
가장 많은 변화가 보이는 걸 뽑으라면, 단언코 골드 상점이다.
자산의 단위가 커진 만큼, 특성이나 아이템들의 가격도 올랐다.
그리고 종류.
특성과 아이템의 가짓수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
내가 골드 상점의 스크롤을 빠르게 내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띠링!
……하필 이 타이밍에?
불길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시선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제한 기간 내에 타깃의 노래를 음원사이트 TOP10 이내에 랭크하세요!
타깃 - Light on
제한 기간 - 150일
성공 시 ▶ 신성의 파편 지급
실패 시 ▶ 사망 (환생 랜덤)
내 낯짝이 삽시간에 흐릿해졌다.
시스템 난이도가 재설정된다는 게…….
내 인생이 하드모드로 전환된다는 뜻이었다고?
* * *
“이, 이상합니다!”
“윤재야, 뭐가……?”
방금 잠에서 깬 신유하가 묻자, 차윤재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손가락의 위치는 베란다였다.
“저, 저 형님 말입니다!”
지금 성해온은 춥지도 않은지 베란다 창을 활짝 열고는…… 그 난간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하염없이 허공만을 바라보는 성해온을 목격한 신유하의 눈이 커졌다.
“지금 바람이 차가울, 텐데!”
“혹시 어제 케이크 맛이 별로였던 걸까요? 남은 케이크가 먹기 싫다거나!”
신유하가 고개를 도리질쳤다.
“어제, 두 조각이나 먹어, 주셨는 걸……!”
“하긴, 그렇습니다! 으으음!”
“아니면, 물어보는 건……?”
“혼자만의 시간일 수도 있는데, 제가 가도 되는 걸까요?”
“윤재는 괜찮을, 거야! 내가 따뜻한 차 만들어서, 따라갈게.”
“예, 형님!”
차윤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추위라면 질색하시는 성해온이 아침 댓바람부터 저러고 있으니,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었다.
고작 등밖에 보이지 않음에도.
폭신한 담요를 하나 챙긴 차윤재는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서 있다가 감기 걸리십니다!”
“…….”
못 들으셨나?
차윤재는 성해온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형니…… 임? 뭐 하-”
성해온의 얼굴을 마주한 차윤재의 입이 벌어졌다.
“하아아악!”
“마침 추웠는데.”
차윤재의 품에서 담요를 휙 꺼내 온 나는 다시 다시 허공을 응시했다.
기겁한 차윤재가 내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잠, 잠도 안 주무신 겁니까? 어제 분명 피곤하시다며 일찍 들어가지 않으셨습니까! 분명 주무시고 계셨는데!”
그래.
간만에 아주 일찍 잠들었지.
12시가 되기 무섭게 강제로 기상됐다만.
“눈 때문에 하늘도 우중충한데 대체 뭘 보고 계셨던 겁니까?”
“한 대 치고 싶은 게 저기 있어서…….”
“예에……?”
미궁에 빠진 얼굴의 차윤재가 다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뭐, 뭔지 말씀해 주시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런 게 있다.
시스템이라고.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게 저기 어디쯤에 있을 텐데…….
내가 눅눅한 낯짝으로 눈을 껌뻑이자, 차윤재가 ‘아!’ 소리를 내며 창밖을 가리켰다.
우리 숙소의 아래층에, 빼꼼 튀어나와 있는 손과 담배꽁초였다.
“혹시 저 아래에서 담배를 피우시는 남성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심각한 얼굴의 차윤재가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실내 흡연은 잘못된 행동이지만, 그, 그래도 사람을 치는 것은…….”
이봐.
대체 어떤 오해를 하는 거냐.
드르륵!
때마침 열린 베란다 문과 함께 들어온 신유하가 유자차를 내밀었다.
“형, 윤재야, 여기……!”
따뜻한 찻잔을 받아 든 나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어떻게 하면 칠 수 있을까…….
그 순간.
방금 일어난 듯한 최승하가 졸린 눈으로 다가왔다.
“……뭐야, 형은 춥지도 않아요?”
열받아서 추위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을 삼킨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불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저은 녀석이 자신의 방에서 롱패딩과, 장갑, 목도리, 모자…….
순식간에 북극 탐험단이 된 나는 흐린 눈깔을 부라렸다.
“뒈질래?”
“아~ 따악! 딱 한 장만 찍으면 안 돼요? 너무 웃기고 귀여운데!”
“…….”
나는 칙칙한 낯짝으로 멤버들을 모두 내쫓았다.
금세 조용해진 테라스에서 나는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여태껏 받았던 미션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의 난이도다.
난데없이 음원차트 Top 10이라니.
마른하늘의 날벼락도 이것보단 나을 것이다.
10위권.
누군가에게는 껌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런 재수 없는 말을 할 정도라면 아마 그들은 1군일 것이다.
1.5군이라고 불리는 이들에게도 Top10은 쉽지 않다.
현재 라이트온의 위치를 굳이 따지자면…… 2군에 간신히 걸친 수준.
해외 팬덤은 아직 미미하고, 국내에서만 반응이 나오는 정도니까.
이런 상황에서 음원 차트 10위권?
이건 곡 반응이 어지간히 터지지 않고서야 불가능하다.
그걸 알고 있는 나로서는 막막할 수밖에.
현 상황을 정리해 보자면…….
슬슬 회사에서도 다음 활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는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는데, 하하.”
복잡한 머릿속에, 헛웃음까지 새어 나왔다.
하지만.
1%라도 희망이 있는 이상.
“포기할 생각은 없다.”
나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유자차를 들이켰다.
* * *
“해온 형, 저희의 신분상 직접적인 폭행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르륵…….
넌 무슨 그런 뜬금없는 이야기를 아침 먹다가 하는 거냐.
내가 턱에 흐른 미역국을 닦고 있을 무렵, 진지한 얼굴의 한수현이 말을 이었다.
“해온 형이 테라스에서 분노를 다스리시는 걸 지켜봤습니다. 저도 타인의 기관지에 영향을 주는 간접 흡연자를 좋게 보지 않습니다만…….”
“으음~ 담배 연기 올라오는 건 진짜 싫긴 하지. 환풍구로도 올라오니까.”
“현관문 앞에, 피우지 말아달라고…… 붙여, 보는 건?”
나는 흐릿한 낯짝으로 먹던 미역국이나 퍼먹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오해를 정정하기엔, 딱히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해온아, 국 간은 괜찮아?”
“응.”
“맞습니다! 형님이 해주신 요리는 언제나 맛있습니다!”
힘차게 대답한 차윤재가 식탁 아래로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리고 내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닥였다.
“치, 치는 건 안됩니다! 저랑 약속해 주십시오!”
“…….”
* * *
무슨 일이지.
굉장히 갑작스러운 호출이었다.
말을 전달해 준 매니저조차 모르는 것 같던데.
“흠.”
명훈이의 부름은 항상 불안하단 말이지.
대표이사실이 있는 층에 당도하자, 비서가 웃으며 문고리를 잡았다.
“기다리고 계시니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드르륵-
“허허허! 해온이 왔어!”
“예, 대표님.”
비즈니스용 낯짝을 걸친 내가 미소 짓자, 명훈이가 곧장 나를 소파로 이끌었다.
그리고 폭신한 소파에 앉은 나는 강렬한 의문을 느꼈다.
오늘따라 분위기가 더더욱 상냥했기 때문에.
대체 무슨 말을 할 생각이기에?
“촬영장 이야기는 전해 들었다! 크흠흠, 역시 잘해냈다면서?”
[성좌, ‘희곡의 설계자’가 귀를 기울입니다.]
[성좌, ‘희곡의 설계자’가 이어질 말을 기대합니다.]
아.
설마하니, 연기와 관련된 이야기였나.
적당히 끊어야겠군.
연기 쪽으로 나갈 계획은 없으니 말이다.
[성좌, ‘희곡의 설계자’가 당신에게 섭섭함을 표합니다.]
당장 음원 차트에 못 들면 뒈지게 생겼는데, 연기할 시간이 있을 리가.
“그쪽 감독이 나랑 절친한 사인데, 해온이 네 칭찬을 얼마나 하던지! 크흠.”
헛기침하며 목을 가다듬은 명훈이가 나를 힐끔댔다.
뭐지?
저 얼굴은…….
묘하게 기대감이 서려 있는 얼굴인데.
아니, 정정하겠다.
대놓고 기대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안면 근육이 쉴 새 없이 요동치고 있지 않는가.
“그, 흠흠!”
게다가.
명훈이답지 않게 이렇게 뜸을 들인다고?
“진작 말해주지 않고!”
“……?”
“화해 말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말이다, 으흠, 흠!”
명훈의의 입에서 화해라는 키워드가 나옴과 동시에.
내 낯짝에 불길함이 스멀스멀 스며들기 시작했다.
……설마?
나는 머리에 떠오르는 어떠한 가정을 필사적으로 부정하기 시작했다.
“대표님, 제가…….”
“김 비서는 일 보시게!”
기분이 얼마나 좋은 건지, 비서를 시키지도 않고 직접 서류를 들고 온 명훈이가 자리에 착석했다.
동시에, 내 앞으로 서류가 내밀어졌다.
그리고 나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고 묻는다면.
이 서류의 정체는, 어느 유명 프로그램의 섭외 공문이었기 때문에.
[정의현, 성해온]
……출연진에 단 두 명의 이름만이 적혀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