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272화 (272/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72화

“흐흥, 그래! 젊은 나이엔 치고받고 싸우는 게지. 암암.”

듣자 하니, 그 자식이 나를 콕 집어 동반 출연 의사를 보였다고.

겉으로 보이는 전후 사정이 그렇다 보니, 이미 명훈이는 나와 의현을 화해를 끝마친 절친쯤으로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너에게는 따로 말하지 않았다만, 이 연예계에선 마음 맞는 친구 하나가 굉장히 중요한 법이란다!”

완전히 잘못 짚으셨습니다만.

마음 맞는 친구라니.

정확히 그 반대인데.

“이 김명훈이의 마음이 놓여! 믿음직한 동종업계 사람은 항시 의지가 되는 게 아니겠느냐.”

“…….”

나는 X됐음을 느끼며 명훈이를 빠르게 스캔했다.

한껏 올라간 광대와 어깨로 미루어봤을 때…….

내가 아무리 입을 턴대도, 이건 뒤집을 수 없을 것 같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애초에 스케줄은 회사의 권한이니까.

아티스트의 허락을 얻기야 하지만, 절대적인 건 아니다.

이렇게 누가 봐도 좋은 기회라면 더 그렇고.

남들은 출연하고 싶어도 못 하는 프로그램이 직접 코앞으로 굴러들어 온 상황.

여기서 명백한 이유도 없이 부정적인 의사를 보이는 건…… 대가리에 총이라도 맞지 않은 이상 정상인이 할 짓이 아니다.

그 이유가 ‘저는 그냥 이 새끼가 별론데요’라는 사유라면 더더욱.

“해온이 너도 좋은가 보구나! 아까부터 말 한 마디 없는 걸 보니!”

“…….”

나는 싱글벙글한 명훈이의 앞에서 차분하게 생각을 바꿔먹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 닥쳐온 하드 모드.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이 프로그램은 그룹의 인지도에 영향을 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프로그램’이 아닌, ‘밀리어스’라는 이름값이.

띄워주긴 싫지만, 이 자식들의 영향력은 이 바닥에서 어마어마하니까.

아마, 이 프로그램도 해외 각국으로 수출될 거다.

프로그램 내에서 슬쩍 컴백에 대한 이야기를 흘린다면 금상첨화겠지.

손익계산을 마친 나는 명훈이와 눈을 마주쳤다.

* * *

<렛츠트래블>

최근 인기를 끌고 있으며, 항공사와 여행사를 비롯한 각종 대기업들의 넘쳐흐르는 PPL을 받고 날아오른 공중파 프로그램이다.

자본이 자본이니만큼, 매화 어마어마한 영상 연출로 유명하다.

주로 해외여행지를 소개하는데, 프로그램이 끝나면 각종 여행사에 해당 여행지에 관련한 문의가 넘친다더라.

화제성이 좋은 만큼, 출연진들도 인지도를 기준으로 엄선된다.

매주 2인에서 3인 정도가 섭외되는데, 주로 개봉을 앞둔 영화나 인기가 좋은 드라마의 주연들이 나오곤 한다.

아이돌은 대중적인 인지도가 부족했으므로, 그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예외는 존재한다.

1.5군급 정도의 그룹이라면 말이 달라지니까.

이 정도 되는 그룹은 프로그램 측에서도 섭외에 호의적이겠지만, 라이트온은 아직 그런 위치가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변수가 된 건, 내 옆에서 생긋거리고 있는 이 새끼라고 할 수 있겠다.

“무슨 생각 해?”

“네 욕.”

“하하.”

“뭘 웃어?”

“난 네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이 프로그램.”

“너만 없으면 좋을 것 같은데.”

“그건 곤란하네.”

내 막말에도 화사한 낯짝을 유지한 의현이 가볍게 답했다.

밀리어스는 공중파에서 바짝 엎드려 100번을 찔러도 1번 될까 말까인 그룹이다.

‘실제로 예능 출연을 거의 하지 않기도 하고.’

그러니 <렛츠트래블> 제작진 입장에서야, 의현이 동반 출연인으로 누구를 지목하든 간에 허겁지겁 문 것이다.

분명 라이트온이 마음에 차지 않았을 테지만, 의현이라는 대어를 낚기 위해선 뭔들.

이 자식의 출연 하나로 때릴 수 있는 홍보가 몇이겠고, 받을 수 있는 간접 광고가 몇이겠는가.

내가 혀를 끌끌 차며 등을 돌린 순간, 의현이 내 손목을 잡아챘다.

아, 잠깐만.

[자비(慈悲)의 손길이 베풀어집니다.]

“…….”

이 종잡을 수 없는 또라이가 내 대신도였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군.

내가 칙칙한 낯짝으로 손을 쳐낸 순간이었다.

“사실, 조금 섭섭한 것 같기도 해.”

“…….”

이 자식이 이러는 이유에 대해선 짚이는 게 있다.

<한양연가> 촬영장에서 밥차를 받은 당일 말이다.

메시지를 나눈 직후, 나는 의현의 연락처를 차단했었다.

곧 생일이었으니, 올 게 분명한 연락을 귀찮아지기 전에 막아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연락이 되지 않아 걱정이 컸다며, 의현이 눈을 내리깔았다.

“숙소 앞으로 가려다가 참았어. 이렇게 곧 만날 수 있을 테니까.”

“훌륭한 선택으로 목숨을 연장했군.”

“지금이라도 축하해 주고 싶었어.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 그리고.”

성큼 다가온 의현이 작게 속삭였다.

“나는 네 진짜 생일에도 축하해 주고 싶어, 해온아.”

“뒈질 때까지 알려줄 생각 없어.”

“잔인하네.”

쿡쿡 웃던 의현이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혹시 형인가?”

“……!”

나는 그 자리에서 멈칫했다.

다섯 글자만으로도 이렇게 소름이 돋을 수가 있다니.

“형.”

“제발 그 입 좀.”

“하하.”

이 새끼, 일부러 이러는 게 틀림없다.

“재밌냐?”

“그다지.”

“……?”

“하지만 네가 솔직하게 화내주는 건 마음에 들어. 우리가 가까워진 것 같아서.”

“뭐 이딴…….”

“안 그래, 해온 형?”

“얻다 대고 눈웃음이야.”

여행은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부터 기가 빨리는 기분이군.

고개를 절레 저은 순간, 저 멀리서 인영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렛츠트래블> PD, 이정석입니다.”

“안녕하세요. 성해온입니다.”

“의현입니다.”

“두 분이 출연해 주신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두 분’이라고 말한 게 민망할 정도로, 이정석의 시선은 의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벌써부터 관심도의 차이가 여실히 느껴지는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의현이 내 어깨를 잡고 끌어당긴 것이다.

“PD님도 아시겠지만, 제가 예능엔 자신이 없어서요. 해온이를 많이 의지하고 있어요.”

“생…… 각보다 절친하신 모양이네요?”

“그럼요.”

의현이 눈을 접어 웃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출연 안 했을 테니까.”

* * *

“…….”

결국 오고야 말았군.

망할 촬영일이 말이다.

이른 새벽.

출국할 준비를 마친 내게 멤버들이 다가왔다.

“다들 잠도 안 자고 뭐 하는 거냐.”

“……으음, 형 배웅해 주고 싶으니까 그러지~”

말을 꺼낸 최승하가 시무룩한 얼굴로 달라붙었다.

그리고 나는 접촉 시간이 채워지기 전, 녀석의 몸을 떼내는 데 성공했다.

아슬아슬하게 세이프군.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체력이 너덜해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최승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맛있는 거 사 올테니까 기다려.”

“누굴 돼지로 아나!”

최승하가 왁왁댔고, 흐릿한 기운을 내뿜던 한수현이 중얼댔다.

“재밌는 여행을 즐기다 오시라고 해야 맞는 것인데…… 너무 재밌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안 그래도 그럴 예정이다.”

동행인이 그놈인데, 재미?

스릴이면 모를까,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리가.

멤버들의 배웅을 받으며 바깥으로 나온 나는 흠, 소리를 냈다.

“공항이라.”

이해성이 덕질에서 웬만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고인물이라고 해도, 공항까지 따라가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오타쿠 자아에선 관련된 정보를 얻어낼 수 없었다.

물론 미어터질 거라는 건 당연히 알고 있다.

국내 팬덤이 꽤 있는 라이트온만 해도 공항이 복잡해지니까.

밀리어스는 못해도 수십 배의 인파를 몰고 올 것이다.

주차장으로 내려가자, 낯선 밴이 눈에 들어왔다.

밀리어스의 밴이었다.

공항에 함께 도착하는 것부터가 촬영의 시작이니, 함께 차를 타고 공항에 도착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밀리어스의 밴이 선택됐고, 이 그룹의 매니저가 나를 데리러 온 것이다.

드르륵-

밴의 문이 열리자, 커피를 마시고 있던 의현이 얕게 웃었다.

새벽부터 이 낯짝을 보다니.

내가 말없이 자리에 착석하자, 의현이 속삭였다.

“형.”

“…….”

류인에게 달콤이라고 속삭였을 때, 녀석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렇다고 그만둘 생각은 없지만, 자아 성찰을 하게 되는군.

나는 온몸에 돋은 소름을 진정시켰다.

“여기 커피.”

의현이 커피를 내밀었고, 난 그것을 받아 들었다.

따뜻한 커피를 삼켰을 무렵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의현의 입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설레서 잠도 설친 거 있지.”

“쿨럭! 쿨러억!”

참고로 당황한 건 내가 아니라, 밀리어스의 매니저였다.

매니저는 생수병의 뚜껑을 다급하게 따 들이켰다.

이해합니다.

이 또라이가 당황스러우시겠죠.

나는 동병상련을 느끼며 고개를 주억였다.

가까스로 진정시킨 듯한 매니저가 머쓱하게 웃으며 주의 사항을 전달해 주기 시작했다.

“라이트온도 아시겠지만, 공항에 인파가 몰릴 거예요. 원래 저희 측에서 쓰는 경호가 오늘도 동반될 텐데.”

“아, 경호원 분들이요.”

“믿을 만한 분들이니까 걱정은 놓으셔도 괜찮아요.”

당연한 말이로군.

밀리어스를 전담하는 경호라면, 이 바닥에서 제일 실력 좋은 인간들일 테니까.

칭찬해 주는 게 아니라, 이 자식들의 팬덤의 규모는 엄청나서 그만큼 사건 사고도 많이 벌어진다.

경호가 절실할 정도로.

“공항엔 돌진하는 팬들이 많아서요. 놀라지 마시고 앞만 보면서 걸으시면 됩니다.”

“예, 유념하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차체의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공항에 도착한 것이다.

그리고 내 낯짝엔 놀라움이 물들었다.

창밖에 시선을 빼앗기자, 밀리어스의 매니저가 ‘엄청나긴 하죠?’라며 웃었다.

엄청난 수준이 아닌데.

저 인파를 뚫고 지나갈 수 있을지가 궁금할 지경이다.

겨우 둘의 이동임에도 불구하고, 경호원이 다섯씩이나 붙은 이유를 알 것 같을 정도니…….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밴의 문이 열리기 무섭게 함성이 쏟아졌다.

‘기자들까지 깔렸군.’

밴 앞에서 사진을 찍은 우리는 곧바로 출국을 위해 이동했다.

그리고 현재 상황을 표현하자면, 말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한 걸음 움직이는 게 힘들 정도였으니까.

경호원이 막아주고 있음에도, 여기저기서 불쑥 튀어나온 손이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분명 이 공간에 스위치도 있겠지만, 수적으로 우세한 밀러스들의 기세에 밀린 모양이었다.

내 몸에 손이 닿은 게 꽤 여러 번이었음에도, 자비의 손길이 발동되지 않았으니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나는 안도를 삼켰다.

솔직히 불자면,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했으니까.

지금 내게 공항은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어서 말이다.

하지만.

완전히 멀쩡하다고 하지는 않았다.

경호의 테두리 안에 존재하는 어떤 자식 때문이었다.

[자비(慈悲)의 손길이 베풀어집니다.]

“……손 떼라.”

“음?”

“왜 붙잡냐고.”

“원래 이렇게 몰리면, 붙어 가야 해.”

의현의 말과 동시에, 경호원 중 가장 직급이 높아 보이는 남자가 작게 덧붙였다.

“맞습니다. 불편하실 수도 있겠지만, 잠시만 참아주십시오. 이렇게 혼잡할 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인파에 휩쓸려 떨어지는 경우가 왕왕 생기는지라…….”

“…….”

나는 흐릿한 낯짝으로 고갤 끄덕였다.

벌써부터 고난이 예상되는 건, 착각일까.

……착각이어야 할 텐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