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75화
“……혹시 두 분 싸우셨나요?”
쪼르르 달려온 제작진 하나가 속삭였고, 나는 웃으며 답했다.
“그럴 리가요.”
“휴우!”
스태프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실 저번주에 촬영한 분들은 중간에 대판 싸우셔 가지구…… 분위기가 사알~ 짝 묘하길래 여쭤본 거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예.”
나는 제작진의 그림자가 사라지자마자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이게 무슨 지랄인지 모르겠군.
“한숨?”
어느새 다가온 의현이 생긋 웃으며 차가운 커피를 얼굴에 가져다 댔다.
“피곤하지, 마셔.”
나는 커피를 받아 들며 혀를 끌끌 찼다.
아까는 제작진 측에서 보유하고 있는 카드키로 문이 열린 탓에 이야기가 끊겼다.
그리고 지금 이 자식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굴고 있었다.
물론 나도 어디 가서 낯짝 관리로 지진 않는다만.
‘거슬리는군.’
나는 상태창을 불러내, 무언가를 응시했다.
[공상을 빚는 자의 발걸음]
성좌, ‘황금의 신’에게 요청하여 사용할 수 있는 꿈 개입권.
▲ 사용 시, 자동 소멸
이걸 써볼 생각이다.
특성상 1인에게만 쓸 수 있기도 하고, 지금까진 딱히 쓸 일이 없어 가지고 있던 것.
그리고 나는 지금 이게 필요했다.
‘무슨 생각인지, 알아야겠거든.’
* * *
그리고 기회는 생각보다 금방 찾아왔다.
공연장으로 향하는 차 안.
의현이 잠든 것이다.
꽤 장거리였던 비행에서 한숨도 자지 않기에, 뭐 하는 새끼일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사람은 사람이군.
나는 조용히 성좌를 불러냈다.
[성좌, ‘황금의 신’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성좌, ‘황금의 신’이 저 아해에게 사용할 생각이냐 묻습니다.]
나는 고개를 주억였다.
공연장까진 최소 40분 정도라고 들었는데.
‘시간은 괜찮을지.’
[성좌, ‘황금의 신’이 충분하다 못해 넉넉하다고 합니다.]
[성좌, ‘황금의 신’이 직접 개입할 거냐 묻습니다.]
눈짓으로 끄덕임과 동시에, 메시지가 연속으로 떠올랐다.
[성좌, ‘황금의 신’이 개입하는 쪽도 무의식의 상태에 돌입해야 한다고 합니다.]
[성좌, ‘황금의 신’이 의식의 평안함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의 무의식에서 쫓겨나고야 만다고 경고합니다.]
나는 동의의 의미로 눈꺼풀을 내렸다.
얼마 안 가, 내 의식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나는 녀석의 무의식에 들어가는 데에 성공했다.
* * *
‘무슨 놈의 무의식이 이래?’
녀석의 무의식을 본 첫 감상이었다.
꿈을 커다란 카테고리로 나누자면…… 별다를 것 없는 꿈과 길몽, 악몽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건 악몽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어둡고, 또 어둡다.
걸어도 걸어도.
보이는 건 끝도 없는 어둠뿐.
내가 의문을 가질 무렵이었다.
“……!”
아마 의현의 기억일 게 분명한…… 수천, 수만 개의 장면이 언뜻 보이려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감정이 파도처럼 들이닥쳤다.
* * *
“……허억.”
나는 숨을 토해내며 상체를 반쯤 일으켰다.
대체 내가 뭘 본 거지?
수많은 장면들이 향한 곳은 짙은 어둠이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려 한 순간, 내 의식이 쫓겨났다.
타인의 무의식에 침범한 내 의식을 최대한 평온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럴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아직도 잠에 빠져 있는 의현을 응시했다.
파악할 수도 없이 한번에 몰려온 모든 감정들은 전부 성해온이었다.
성해온. 성해온. 성해온. 성해온. 성해온. 성해온. 성해온. 성해온. 성해온. 성해온. 성해온. 성해온. 성해온. 성해온. 성해온. 성해온.
‘이게 말이 되나?’
……어떻게 이리도 맹목적일 수가 있을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 감정의 종류는 감히 짐작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더욱더 믿을 수 없는 건 이거였다.
‘……그 말이 진짜였다고.’
의현의 무의식엔 나에 대한 기억과 감정도 존재했다.
그러니까.
내가 이 몸에 들어오고 난 뒤의 성해온 말이다.
처음 의현은 나를 보고 적대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리움을 느꼈다.
아마 그때까진 나를 자신이 알던 성해온과 어느 정도 겹쳐 본 거겠지.
그리고 그 감정은 또다시 바뀐다.
지금 나에 대한 의현의 내면은 한 줄로 정의할 수 없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온갖 감정이 섞여 있어서 모르겠다는 쪽에 가까웠다.
- 나는 네가 다른 사람이면 좋겠거든. 완전히.
나는 이 말을 믿지 않았다.
아직까지 이 자식이 나에게서 이전에 알던 성해온을 겹쳐보고 있으리라 확신했으니까.
하지만 전혀.
이 말은 정확했다.
나는 입을 터업, 가린 채 눈을 굴려 의현을 바라봤다.
……이 자식은 내가 성해온과 다르기를 바란다.
어째서?
* * *
“와, 공연 정말 좋았어요. 사실 이런 분위기일 줄은 몰랐는데-”
눈을 반짝인 나는 공연에 대한 소감을 와다다 내뱉기 시작했다.
솔직히 불자면, 대가리가 복잡해서 전통 공연이고 뭐고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막판에 정신줄을 잡고 몇 분 집중했을 뿐.
다음 일정은 식사였다.
장소는 저무는 노을이 보이는 오션뷰 레스토랑.
치이익, 불판에서 씨푸드 바비큐가 익어갔다.
그리고 나는 음식 평론가에 빙의해 입을 열었다.
“맛있네요. 이건 소스가 살짝 매콤한데, 한국분들 입맛에도 잘 맞을 것 같아요.”
이 프로그램의 중요한 취지는 여행지에 대한 영업이다.
그런고로, 출연진은 리뷰를 상세히 남겨줘야 할 의무가 존재했다.
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저 새끼는 딱히 식욕도, 말수도 없으니 내 어깨가 무거워질 수밖에.
그리고 식사를 마친 나는 무언가를 결심했다.
- 내일 방송에 지장 가지 않을 정도론 술 마셔도 괜찮아요~ 이럴 때 먹어야지, 언제 먹겠어요?
PD의 말을 듣기 무섭게 떠올린 계획이었다.
이 자식을 만취시켜서 본심을 캐내겠다는.
무의식을 이해하기도 전에 쫓겨나 버려서, 아직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다.
이전까진 이 자식과 성해온이 어떤 사이였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일종의 회피였다.
내가 살고 싶다는 걸 깨달은 후부터, 줄곧 이어졌던 회피.
하지만 이제 생각이 달라졌다.
이 자식이 나와 성해온을 겹쳐서 보고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나는 이제 그 이유를 캐내볼 셈이다.
“야.”
“응, 해온아.”
“술 마시자.”
* * *
판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룸서비스로 주문한 위스키가 테이블에 가득 찼다는 뜻이다.
맥주 따위로는 이 자식을 취하게 만들기 어려울 거란 판단에서 나온 주문이었다.
호기롭게 샷이 아닌 병째로 주문한 나는 위스키를 응시했다.
이 몸으로 술을 마셔본 적은 손에 꼽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주량이 어마어마하다는 거.
“나는 술 좋아하지만, 괜찮아?”
“어디서 걱정이야? 네 간이나 걱정 해.”
“하하.”
일단 질러봤지만, 나도 이런 주종은 낯설다.
기껏해야 20대 초반, 대학생의 영혼이었다.
먹어봤자 소주나 맥주였지.
나는 눈깔을 데굴 굴려 라벨지를 살폈다.
과연, 정신 나간 도수로군.
그 순간이었다.
달그락-
잔에 얼음을 넣은 의현이 그 위에 술을 따르고는, 단번에 잔을 비운 것이다.
해보자는 거군.
나는 곧장 주둥이에 술을 털어 넣었다.
목구멍이 화하게 쓸렸으나, 알 바 아니었다.
지금은 센 척이 중요하거든.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자랑이냐며 경악합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모든 일은 기선 제압이 중요하다며 당신을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뭐 해, 안 따르고?”
“하하.”
의현이 화사하게 웃으며 빈 잔을 채웠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세 잔.
네 잔.
다섯 잔.
“…….”
작은 잔이 아닌, 온더락잔이었다.
그것도 무식하게 가득 채워 넣은 양을 연달아 들이켜자니, 점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나와 같은 양을 처먹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안색이 멀쩡하다 못해 때깔이 좋아 보이기까지 하는 저 자식이었다.
“……뭐 하는 새끼야?”
“방금, 생각이 입으로 나온 건가?”
의현이 눈을 접어 웃었다.
“취하면 귀여워지는구나.”
“…….”
전신에 끼친 소름으로 인해 정신이 돌아왔다.
나는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 * *
세면대 앞에 서, 낯짝에 찬물을 들이부은 나는 결연한 얼굴로 개편된 골드 상점의 스크롤을 내렸다.
개편 이후 전체적으로 오른 가격이 조금 열받지만, 종류가 많이 추가된 덕분에…… 딱 쓸 만한 아이템이 생겼거든.
[프리미엄 헛개수(3시간)]
▲ 일회성 아이템
▲ 활성화 기간동안 알코올에 관련된 독성 면역
아이템을 활성화시키자, 어지러울 정도로 가득 찼던 술기운이 금세 증발하듯 사라진다.
“흠.”
이제 내 위장에 알코올을 덤프트럭으로 들이붓는대도 멀쩡할 거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먹이다가, 취하려는 낌새가 보이면 캐묻기 시작한다.
이게 내 계획이다.
대학교에서 취객의 종류는 질릴 정도로 봐왔으니, 그거 하나만큼은 제대로 캐치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2차전이 시작됐다.
타악-!
몇 잔째인지 기억나지도 않는 잔을 내려놓은 나는 의현의 낯짝을 살폈다.
……아직까지도 안 취한다고?
저게 사람 새낀가?
바닥에 깔린 숱한 병들이 애처로울 정도였다.
이쯤 되니 내 쪽에도 오기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해온아, 넘치는데.”
“마셔.”
넘쳐서 찰랑일 정도로 들이부은 잔을 내밀자, 의현이 입을 뗐다.
“우리 회사 실장님이.”
“VX?”
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술을 넘치게 주는 건, 그만큼 사랑이 넘쳐서래.”
꼰대들의 단골 멘트로군.
내가 혀를 끌끌 찬 순간, 의현이 눈을 휘어접었다.
“그럼 해온이는 날?”
“뒈지고 싶으면 더 지껄여 봐.”
“하하!”
짧게 웃은 의현이 잔을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
“으음…….”
“미친 새끼야.”
나는 의현의 어깨를 붙잡고 짤짤 흔들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어처구니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어나라.”
취한 낌새조차 없었잖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고, 말투도 전혀 꼬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처자는 게 어딨단 말인가.
취한 건 줄 알았으면, 적당히 먹이고 캐낼 거나 캐냈겠지.
뭐 이런.
취했을 때까지 사람을 열받게 할 수 있다니, 놀라운 재주로군.
“……쯧.”
잠든 놈을 계속해서 흔들던 나는 현타를 직격탄으로 맞으며 손을 떼냈다.
취한 놈 데리고 이게 무슨 짓이냐.
“잠이나 자자.”
저 자식이 의자에서 불편하게 자든 말든, 나는 편안한 침대에 누워 잠이나 자면 되는 것이다.
내가 발걸음을 옮기려던 순간이었다.
의현의 미간이 조금 찌푸려진 것이다.
마치 악몽을 꾸는 사람처럼.
“…….”
나는 심각한 낯짝으로 중얼거렸다.
“너무 먹인 건가.”
바닥에 나뒹구는 위스키병을 조용히 훑은 내 뇌리에, 과한 알코올 섭취로 인한 사고들이 하나둘씩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
하지만 이건 내 쪽도 억울했다.
나도 억지로 먹이는 취미는 없단 말이다.
좋다고 마신 건 이 새낀데.
마지막 양심을 쥐어짜 낸 나는, 이 자식을 침대에 눕혀주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의현에게 닿은 순간이었다.
내 손등에 눈물이 툭, 하고 떨어진 것이다.
“버리지 마.”
“……무슨.”
잠든 의현이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이번엔, 날 버리지 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