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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276화 (276/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76화

“음, 어제 실수한 건 없을까?”

기억을 못 하는 모양이군.

“사실 남 앞에서 취한 게 처음이라서.”

당연히 처음이겠지.

어제 처먹은 술의 양을 보아라.

인간 둘이 먹었다는 게 놀라울 수준이었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지금은 대답할 여력이 없었다.

“욱, 우읍.”

이 망할 프리미엄 헛개수.

“해온아, 등 두드려 줄까?”

“됐, 하으.”

비슷한 아이템 중에 유독 저렴하더니, 숙취까지 케어해 주진 않는 거였냐.

나는 목젖까지 치고 올라온 토기를 진정시키며, 입가를 닦았다.

충돌이 끝나고는 변기 붙잡을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술이 웬수군.

……당분간은 알코올 솜 냄새도 맡기 싫을 것 같은데.

속이 메슥거려서 잠까지 설쳤다.

물론 이 정신 나간 새끼의 버리지 말라느니, 하는 헛소리도 한몫했지만.

내가 눅눅한 낯짝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의현이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거 숙취에 좋은 주스라던데.”

“얼른 내놔…….”

* * *

“조식 맛이 좋네요.”

나는 숙취로 쓰라린 위장에 음식물을 마구잡이로 집어넣었다.

과연, 고급 호텔답게 조식의 퀄리티가 남달랐지만…… 그저 울렁거릴 뿐이었다.

‘라면이나 먹고 싶은데.’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 술에 찌든 티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는 낯짝에 생기를 들이부은 채 포크질을 이어갔다.

그 순간이었다.

이미 자신의 몫을 비운 의현이 웃으며 물었다.

“맛있다. 조금 더 먹어도 될까?”

“……?”

식욕도 없는 새끼가.

아침부터 이걸 먹어주겠다고?

나는 해사하게 웃으며 접시를 밀었다.

“당연히 괜찮죠.”

* * *

이 프로그램은 2박 3일의 일정으로 진행된다.

참고로 2일 차부턴 출연진들이 직접 스케줄을 짜는 자유 여행이다.

물론 스태프들의 압력은 존재했지만.

- 해양 레저…… 좋은 데가 있어요. 발리 바다 예쁘고, 헤헤, 아시죠?

무늬만 자유여행이지, 사실상 제작진의 입김이 크게 들어간다고 할 수 있겠다.

이미 오후 스케줄로 레저를 반쯤 픽스해 놨길래, 의현에게 오전 스케줄 선택권을 넘기려 했으나…… 자신은 뭐든 좋다며 선택권을 도로 반납하더라.

그래서 내가 정한 건, 이거다.

“여긴 휴양지로 손꼽히는 곳이잖아요?”

“그렇죠.”

“그럼 뭘 해야 할까요?”

“휴양?”

시킨 대로 답을 잘하는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휴양 하면 역시 스파와 마사지죠.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하네요.”

“가까워서 걸어갈 수도 있겠는데?”

“그걸 노린 겁니다. 가시죠.”

나는 제작진들을 이끌고 발걸음을 옮겼다.

내부에 들어가자, 순식간에 웰컴드링크가 손에 쥐어졌다.

“음.”

나는 리액션을 위해 곧바로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좀, 맛이 익숙한데요.”

나는 조용히 입맛을 다셨다.

“생강차……? 생강 향이 강하게 나는데, 생강차랑은 다른 맛인 것 같기도 하고.”

카메라 앞임을 다분히 의식한 내가 맛 평가를 펼치고 있을 무렵, 직원이 우릴 안내했다.

가운으로 환복하라는 것이었다.

시키는 대로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첫 번째 코스인 족욕이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 엄청난 것들이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물에 발을 담그자, 피로가 풀리며 인생이 살 만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2시간 30분의 코스가 끝나자, 내 낯짝에 생기가 차올랐다.

드디어 살 만해진 것이다.

‘역시 누워 있는 게 최고로군.’

이쯤 되니 숙취도 풀렸는데, 새벽부터 시작된 이 미묘한 두통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의현을 응시했다.

이 새끼의 헛소리를 듣고부터 시작된 것 같은데.

“음.”

충분히 뇌가 놀랄 만한 광경이긴 했지.

나름대로 논리적인 생각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온아, 무슨 생각해?”

“다음 일정이 기대된다는 생각이요.”

[성좌, ‘희곡의 설계자’가 당신의 자연스러운 연기에 감탄합니다.]

메시지를 빠르게 무시한 나는, 가식적인 낯짝으로 질문했다.

“선배님은 스킨스쿠버 해보셨다고 하셨죠?”

“응, 예전에 멤버들이랑 괌에서.”

“밀리어스 선배님들 자체 컨텐츠 맞죠? 본 적 있어요.”

밀리어스는 공백기 휴가 자컨을 해외에서 찍더라.

역시 돈이 넘쳐나는 소속사는 뭔가 다르긴 하다, 라는 생각을 할 때쯤이었다.

내 동공이 약간 확장됐다.

시야에 광활한 바다가 펼쳐졌기 때문에.

물론 어제도 봤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흠.”

이 프로그램은 제작 지원으로 여러 협력사가 얽혀 있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강조한 장소는 바다였다고.

이 프로그램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나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게 <렛츠트래블> 제작진들의 주된 임무였다.

그런고로.

나와 의현은 잠시 방치된 상태였다.

주스가 알음알음 유명하다는, 해변의 작은 카페에 말이다.

우리가 카페에 들어가 주스를 주문, 맛보는 것까지 촬영한 제작진들은 우르르 바다로 건너갔다.

카메라팀, 조명팀, 음향팀, 연출팀…… 기타 등등으로 나눌 필요도 없이, 그냥 모든 제작진이 총동원되어 바다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자연광 있으니까 적당히 넣으라고, 역광 구도에서만 신경 쓰고!”

“드론 날리겠습니다.”

“음향팀, 뭐 하는 거야. 소리 겹치잖아!”

내가 전쟁통인 제작진들을 바라보고 있을 무렵이었다.

PD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벌써 다 딴 건가.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순간, PD가 고개를 저었다.

“잠깐, 일어나지 말아요. 부탁할 게 있어서!”

“예?”

“둘이 적당히 애드립 좀 하다가 해변 좀 걸어볼래? 배경까지 넓게 해서 찍으면 예고에 쓰기 좋을 것 같아서.”

음.

이 말인즉슨, 화제성 끌기로 의현을 써먹겠다는 것이군.

이해했다.

그렇게 가식으로 똘똘 뭉친 애드립이 시작됐다.

[성좌, ‘희곡의 설계자’가 설렘을 감추지 못합니다.]

나는 카페 테이블에 주스를 내려놓으며, 바다를 응시했다.

“바다가 정말 아름답네요.”

“응, 이따가 스킨스쿠버 기대된다.”

레저 중에서도, 스킨스쿠버는 온전히 제작진의 선택이었다.

‘영상미가 가장 좋게 나올 테니.’

하지만 실제 방송에선 <의현의 pick> 따위로 나올 예정이었다.

나는 생긋 웃고 있는 의현을 살폈다.

‘생각보다 방송에 잘 맞춰주는 성격인가 보군.’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이었다.

의현이 시간을 보며 ‘30분 정도 남았네’라고 덧붙였고, 나는 덥석 물었다.

“그럼 그동안 잠깐 걸을까요.”

그리고 얼마 안 가, 내 낯짝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몇 번째인지.

“딱 한 번만 더, 괜찮을까요? 이번엔 사아알짝 바다 쪽으로 붙어서!”

오더가 상상을 초월하는군.

영상에 제대로 써먹을 작정인지, 같은 길을 열댓 번은 걷고 있었다.

* * *

그리고 지금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 항해하는 요트 위였다.

솨아아-

물살이 빠르게 갈라졌고, 우린 막간을 이용해 교육을 받고 있다.

“안녕하세요. 두 분께 스킨스쿠버를 알려드릴 미스터 킴! 참고로 한국인입니다.”

인싸인 게 분명한 강사가 곧바로 장비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건 가장 중요한 산소통입니다. 여러분의 호흡을 책임져 줄 거예요. 그리고 이건.”

강사가 곧바로 무언가를 들어 올렸다.

“이건 납 벨트라고 하는데요. 체중 20㎏당 하나씩 들어갑니다.”

“아, 몸이 뜨는 걸 방지하는 걸까요.”

“정답입니다. 이게 아니면 밑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몸이 둥둥 떠오르니까요~”

“신기하네요.”

방송용 낯짝을 걸친 내가 눈을 반짝이자, 강사가 질문했다.

“혹시 스킨스쿠버 유경험자이신 분?”

“저는 해봤고, 해온인 처음이요.”

“예, 전 처음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강사가 손가락 하나를 치켜들었다.

“걱정 마세요! 여러분께는 제가 있지 않습니까? 우선 수신호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바닷속에선 말을 할 수 없으니까요.”

강사는 이런저런 수신호를 알려주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들을 경청했다.

* * *

- 여러분, 바다는 아름답지만 동시에 위험하기도 합니다.

- 조금만 이상하다 싶으면 수신호와 함께 위로 올라갈 겁니다. 아시겠죠?

나는 강사가 남겼던 말을 떠올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과연.

스킨스쿠버 스팟으로 유명한 지점이라더니, 각종 산호초가 흐드러져 있었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로, 그림 같은 광경이었다.

나는 약간의 감탄을 삼키며 아래로 내려갔다.

딱히 물을 무서워하는 편은 아니라, 적응하고 말고 할 게 없었다.

요트와 연결된 밧줄을 붙잡고 내려가기만 하면 되니까.

물론 내려갈수록 수압이 강해졌지만, 예민한 편은 아닌지 견딜 만했다.

‘수압보단, 두통이 거슬리는데.’

도통 가실 생각을 안 하는 미약한 통증에, 나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요트에 오르기 전, 프로그램에 동행한 의료진에게 두통약 하나를 받아먹었음에도…….

영 약효가 돌지 않는군.

게다가.

계속해서 이 말이 맴돌았다.

- 버리지 마.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의현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충격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그것보단…….

‘무언가 떠오를락 말락 하는 느낌에 가까운데.’

생각을 이어가려고 하면 두통의 빈도가 짧아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마치, 내가 기억을 거부하는 것처럼.

나는 의도적으로 생각을 멈추며 계속해서 아래로, 또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위쪽을 올려다봤다.

“음.”

두세 명의 발이 보였다.

아무래도, 혼자 너무 속도를 낸 모양이지.

사전에 이야기된 경로에서 이탈한 건 아니지만, 카메라도 위에 있을 테니…… 올라가려 밧줄을 쥔 손아귀에 힘을 준 순간이었다.

- 나 버리지 마!

“……?”

하도 신경 썼더니, 드디어 정신이 나가 버린 건가.

같은 말이지만…… 방금은 다른 목소리가 떠오른 것이다.

……어린 이해온의 목소리 말이다.

그러니까.

내 목소리.

찌릿!

그것을 인지함과 동시에 뇌가 녹을 것만 같은 두통이 시작됐고, 나는 상황을 판단했다.

당장 저 위로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두 번째 기억의 파편의 해금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기억의 파편을 해금하시겠습니까?]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거.

……고를 선택지도 안 줄 거잖아.

[기억의 파편을 해금하시겠습니까?]

[기억의 파편을 해금하시겠습니까?]

[기억의 파편을 해금하시겠습니까?]

[기억의 파편을 해금하시겠습니까?]

“……!”

상상할 수도 없는 통증이 파도처럼 몰려와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나는 두 손으로 목을 움켜쥐었다.

숨이.

숨이 쉬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산소통이 있음에도, 호흡을 시도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깨닫게 된다.

내가 밧줄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본체와 빙의체의 동기화가 흔들립니다!]

[SYSTEM ERROR CODE : 520 UNKNOWN ERROR!]

흐릿해지던 시야가 점차 암흑으로 변했다.

아닌가.

내가 어두운 바다로 가라앉고 있는 걸까.

모르겠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으므로.

[선택 시간 초과로 자동 선택됩니다.]

[두 번째 기억의 파편의 해금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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