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78화
“발렌타인! 초코!”
라디오에서 캐치한 키워드를 조잘거리는 나를 끌어안은 엄마가 웃었다.
“이따가 사줄게. 몇 개 먹고 싶어?”
“으음, 반 개?”
진지한 답변에, 빵터진 건 이해성이었다.
“아니, 진짜, 어떻게 어린 게 저렇게 현실적이지? 나라면 백 개 정도 부르고 봤을 텐데, 아!”
이해성이 장난기 넘치는 얼굴로 눈썹을 까딱였다.
“내 동생은 혹시 백까지 못 세나~?”
“……!”
충격받은 얼굴의 이해온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아, 알아! 백까지 셀 수 이써, 천까지도 셀 수 있구!”
“그걸 제가 어떻게 믿죠, 이해온 군?”
“엄마아아악!”
“해성아?”
여자의 얼굴이 온화해지자, 이해성이 쫄아붙었다.
“아니, 나는 귀여워서 그랬지.”
“아하하!”
“아빠…… 웃어써……?”
뒷좌석에 있는 내가 배신감을 느낀다는 얼굴로 눈을 부라리자, 운전대를 잡은 아빠가 눈물 닦는 시늉을 했다.
“우리 해온이가 너무 귀여워서 그렇지. 그런데 아빠는 해온이가 떼를 썼으면 좋겠어.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가끔을 울고불고도 했으면 좋겠고.”
“엄마도 그래, 우리 아들은 너무 의젓해.”
“그게 나쁜 거야?”
어린 내가 고개를 기웃거리며 묻자, 엄마가 웃으며 내 볼을 콕 찔렀다.
“그럴 리가. 그냥 해온이가 또래 애들처럼 칭얼대는 거, 귀여울 것 같거든~”
“엄마! 나 놀리는 거지! 그리고 친구들은 재, 재미없단 말이야!”
주먹을 꾹 쥔 내가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와다다 말을 쏟아냈다.
“다들 너무 애기야! 말이 안 통해!”
“어쭈? 네 동갑인데? 그럼 너도 애기네? 해온 애기?”
“……!”
이해성의 받아침에, 어린 내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통증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했던, 단란한 광경을 보고 가슴이 먹먹하다거나…… 그런 게 아니다.
정말 통증이.
더 자세히 말하자면, 영혼체가 이 기억을 거부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실은 아까 라디오를 들었을 때부터 이런 느낌이 시작됐다.
2월 14일.
이날의 의미가 무엇이기에, 날 이곳으로 이끈 걸까.
그리고 그런 내 옆으로 어린 내가 우다다 지나갔다.
이땐 체력이 좋았군.
“바다! 바다!”
어린 내 입에서 입김이 폴폴 나왔다.
빙글 등을 돌린 나는 가족을 향해서 짤막한 팔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엄마, 아빠, 누나, 빨리 와!”
그리고 나는 기다란 나뭇가지를 집어 들어 모래사장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다섯 살의 솜씨니만큼 형편없었지만, 가족의 얼굴이었다.
특징만은 확실히 살린.
“푸하하, 이해온 네가 그렸어? 이거, 머리 묶고 있는 건 난가?”
“응, 누나야!”
그렇게 실컷 바다를 눈에 담은 나는 맛있는 음식과 디저트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물론 반쯤 강제였다.
“야, 이해온. 이거 미쳤다! 먹어봐!”
“누나, 나 배부른데…….”
“뭐? 욱여넣어서라도 먹어야지. 이건 여기서밖에 못 먹는다고, 쯔쯧…….”
“있잖아, 누나.”
포크를 손에 쥔 내가 조용히 말을 잇기 시작했다.
“내가 아니었으면, 엄마가 안 아팠을까?”
“너, 너 그게 무슨!”
버럭한 이해성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누가 그랬어? 누가 그런말을 해?”
“엄마는 원래 건강했대. 내가 태어나기 전까지.”
“그거 이모 맞지?”
“……아냐.”
“아니긴 뭐가 아냐.”
이해성이 이마를 짚으며 욕을 지껄였다.
“잘 들어, 이해온. 그거 네 탓 아니야. 그런 말 들었던 걸 아예 네 머리에서 없애버려, 헛소리야. 헛소리.”
“……으음.”
“대답 안 해?”
“난 누나가 너무 좋아!”
“얼레, 대답 없이 그렇게 넘기겠다고?”
그리고 나는 헛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병이 나로부터 시작되었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아.”
손이 얕게 떨렸다.
과거일 뿐인데.
그래, 과거일 뿐인데도 불구하고.
이 가족의 불행은 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나는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카페의 테라스.
부부가 서 있는 곳으로.
“당신…… 무리하는 거 아니야?”
“괜찮아, 해온이가 저렇게 좋아하는걸.”
눈을 지긋이 내리감은 여자가 말을 이었다.
“해성이는 참, 여기저기 많이도 데리고 다녔는데…… 해온이는, 콜록! 그런 걸 못 해줬으니까. 나는 해온이가 저렇게 의젓한 게, 어쩌면 나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
“우리 아들이 얼마나 씩씩한데 당신이 그런 소리를 해?”
“후후, 그런가?”
남자가 자신의 패딩을 벗어 여자의 몸 위에 둘렀다.
“병원에서 무리하지 말라고 했는데, 걱정되네.”
“당신은 내 걱정을 너무 많이 한다니까. 오늘도 당일치기잖아.”
“애들은 내가 데리고 다닐 테니까, 당신은 잠깐 쉬고 있을래?”
“나 그 정도로 약골은 아닌데? 내가 한창땐 당신 팔씨름으로도 이겼던 걸 기억해야지.”
이렇게 사이가 좋은 부부는 정확히 351일 뒤 사망한다.
말해주고 싶었다.
그날을 조심하라고.
아니.
아예 차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기억의 파편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기억의 파편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기억의 파편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나는 지금 과거를 ‘열람’하는 것뿐이니까.
내게 미래를 바꿀 권한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카페 내부로 시선을 돌렸다.
과거의 나와.
과거의 이해성.
이 둘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딴 거.
보고 싶지 않았다.
1년도 안 될 시기에, 깨져 버릴 따뜻함을 어째서, 무슨 이유로.
이날이 과거의 부모님과 함께한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었다는 걸 보여주려고?
아니면 나로 인해 엄마가 저런 병을 얻었다는 걸 알려주려고?
그게 목적이라면, 이만 나를 이 기억에서 꺼내줬으면 좋겠는데.
……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점점 더 옥죄어왔다.
나는 심장께를 붙잡으며 숨을 토해냈다.
영혼이 조각조각 깨져 버릴 것 같은, 더러운 기분이었다.
* * *
출발할 땐 새벽녘이었던 하늘이 어느새 저물고 있었다.
어린 나는 까무룩 잠에 든 상태였다.
아빠의 품에서 새근새근 잠이 든 나를 빤히 바라보던 이해성이 말랑한 볼을 콕 찔렀다.
“이해온 오늘 엄청나게 기대한 거 알아? 달력에 막 하트 그리고 난리 났었어.”
부부의 눈이 놀라움으로 물들었고, 이해성은 말을 이었다.
“자기 전마다 달력에 체크하더라니까? 아빠는 집에 최대한 자주 들어와 봐. 얘가 말은 안해도 엄~ 청 신나한다고.”
“아빠가 이번 프로젝트만 끝내면 여유로워져. 그럼 다 같이 따뜻한 곳에 여행이나 갈까? 휴양지 같은 곳.”
“너무 좋지! 이해온 또 달력에 날짜 체크 시작하겠네~”
아빠는 야근이 잦은 개발자였다.
엄마도 같은 직종으로, 회사에서 만난 커플이라는 건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사고는, 부부가 해외 출장을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발생한다는 것까지도.
내겐 기억이 없었지만, 이해성이 알려준 건 이 정도의 정보였다.
이해성에게도 커다란 상처였을 테니, 나도 굳이 캐묻고 싶지 않았거든.
나는 시선을 돌려 마른 체격의 엄마를 응시했다.
……몸이 괜찮아진다는 건가.
이렇게 아파 보이는데?
“우음.”
그때, 눈을 뜬 어린 내가 아빠의 품에 머리를 비볐다.
“아들, 졸려?”
“하나도 안 졸려.”
“거짓말, 졸음이 가득한데.”
“아들, 다음에 바다 또 올까?”
“응, 그때도 넷이 같이!”
“당연한 소릴.”
아빠가 내 볼을 장난치듯 늘렸고, 이내 네 가족은 차에 올랐다.
낮잠 시간을 한참 놓친 어린 나는 차에 타자마자 잠에 빠져들었고, 나머지 가족들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정말 한계였다.
“숨을, 못 쉬겠는데.”
나는 상체를 앞으로 숙인 채로, 불규칙적인 숨을 뱉어냈다.
이러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엄마가 나를 낳고 저렇게 병을 얻으셨다는 거?
죄책감은 느껴지지만, 이렇게 숨도 못 쉴 정도는 아니다.
이후에 몸이 괜찮아져 복직한다는 걸 시기상으로 추측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이건 뭐란 말인가.
차에 오르자마자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 이 심장은 대체.
그 순간이었다.
- 나 버리지 마!
“……!”
갑작스럽게 뇌리를 파고드는 음성에, 나는 숨을 삼켰다.
그리고 눈을 데굴 굴려, 잠에 빠져 있는 어린 나를 응시했다.
이건 분명.
내 목소리잖아.
바닷속에서 들었던 목소리와 같았다.
당장 토라도 하고 싶은.
아니.
……몸이 우그러질 것만 같은 역겨운 느낌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 나 버리지 마, 엄마!
시야가 흐려졌다.
내 눈물로.
아.
알겠다.
……이제야, 알겠어.
빠아아아아아앙-!
귀를 가득 메우는 경적 소리와 함께.
쾅.
쾅.
쾅.
차량 여러 대가 연속으로 추돌하며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우리의 차례는 순식간에 다가온다.
맞은편에 위치한 차량이 사고의 충격으로 인해 우리가 탄 승용차로 돌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해성아, 안전벨트 꽉 잡아!”
운전대를 잡은 남자가 소리쳤다.
워낙 대형 사고였기에, 피할 방도는 없었다.
그리고 남자는.
본인에게 최악일 게 분명한 선택지를 고른다.
자신의 쪽으로 차체를 돌리는 걸 택했다는 뜻이다.
아.
……이런 기분이었을까.
나는 순간적으로 멤버들을 떠올렸다.
그 녀석들이 기억을 잃어서.
정말이지…….
다행이었다.
콰아앙───!
서늘할 정도로 고요해진 공간에서 인기척이 들려온 건 잠시 뒤였다.
차체에 전해진 강한 충격으로 잠시 기절했던 어린 내가 눈을 뜬 것이다.
“어, 어, 엄마.”
잠시 눈을 껌뻑이던 나는 뒤늦게 자신을 감싸고 있는 팔을 발견했다.
그래.
뒷좌석의 엄마가 나를 감싸안은 채로, 내게 전해질 충격까지 모두 받아들였으니까.
그리고 몸이 약한 엄마는, 그 충격을 감당하지 못했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엄마! 어, 엄마…… 아빠, 누나…….”
사아아-
매캐한 연기가 차체를 채우기 시작했지만, 아이의 눈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대형 연쇄 추돌 사고로, 난장판이 된 도로.
피를 흘리며 에어백 위에 쓰러져 있는 아빠.
기절해 있는 누나.
마지막으로 자신을 꽉 끌어안고 있는 엄마까지.
아이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엄마의 피부를 매만졌다.
“차, 차가워.”
또래보다 조금 영특했던 아이는 아마 알았을 것이다.
온기를 잃은 생명체는 더 이상 숨쉬지 않는다는 걸.
“어, 흐으윽, 어, 흡, 엄마, 끅, 엄마, 해온이 무서워.”
“…….”
“나 버리지 마, 엄마, 나 버리지 마. 흐으으, 엄마아!”
어린 내가 우는데도,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기억의 파편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기억의 파편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기억의 파편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기억의 파편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손을 댈 때마다,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시끄럽게 울던 어린아이가 다시 기절하며 울음소리가 사라졌음에도, 나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기억의 파편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기억의 파편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내 생일을 이유로, 네 가족이 함께한 첫 여행.
여기서 부부는 사망하는 것이다.
부모님의 기일은 1월 30일이 아니었다.
진짜 기일은 2월 14일.
모든 건, 나를 위한 이해성의 거짓말이었음을.
[……기억의 파편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