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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279화 (279/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79화

성해온이 가끔 서 있는 베란다 난간에 몸을 기댄 최승하가 흠, 소리를 내며 고요하기만 한 창밖을 내다봤다.

좋지 않은 꿈을 꿔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어쩐지 마음이 안 놓인단 말이지.

최승하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지금은 한창 촬영 중일 테니, 연락은 방해만 될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최승하의 손가락은 천천히 움직였다.

[형 뭐 해요?]

[우리 보고 싶죠!]

[저흰 보고 싶어요~ (사진)]

* * *

그 시각.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은 초토화 상태였다.

출연진 둘이 동시에 사라졌으니까.

상황을 목격한 제작진의 말로는, 의현이 성해온을 따라 내려갔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그런 사고가 발생했을 시엔 물 위로 나와서 전문 인력의 도움을 기다리는 게 보통 아니던가.

“VX랑 MH엔 연락 닿았어?”

“VX에 먼저 연락 넣었습니다!”

“MH에도 서둘러!”

“지금 현지 병원이랑도 연락 닿았습니다!”

현재 제작진은 둘로 나뉘어져 있었다.

대부분의 제작진은 요트가 정박할 곳에서 대기 중이었고, 적은 수의 제작진만이 출연진과 함께 요트에 올라탔다.

“요트 팀이랑 연락 닿아?!”

“닿았는데 거기도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상황 설명도 제대로 못 해요!”

제작진의 대답에 PD가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건 대형 사고였다.

둘 중, 한 명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 * *

사고 현장에서 어그러진 시야는 부모님의 장례식장으로 바뀌었다.

두 분의 사진이 나란히 놓인 장례식장으로.

한쪽 팔에 깁스를 한 채 상복을 입은 이해성이 친척들과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어린 나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해성!”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나의 이모 되시는 분이니까.

“이모, 여기서 이러지 말고.”

이해성이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말을 이었다.

“바깥에 나가서 이야기해.”

둘은 장례식장 건물의 뒤편으로 향했다.

주위에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이해성이 입을 열었다.

“나는 싫어. 결정 안 바뀌어.”

“이해성, 해성아. 너한테 좋은 길을 선택해야지.”

“……그런데 그 좋은 길에 왜 내 동생은 없는 건데?”

“내가 그 애를 버리자는 것도 아니고, 애비 쪽으로 보내자는 건데 왜 이렇게 답답하게 굴어? 응?”

“…….”

“너 이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해. 네 처지에 찬밥 더운밥 가릴 시간이 있어?”

이모가 작게 덧붙였다.

“……그리고 나는 그 애, 맡기 싫다.”

이해성이 헛웃음을 쳤다.

“이모, 해온이 탓이 아니잖아…… 왜 그 애를 탓해?”

“나라고 이런 말이 하고 싶은 줄 아니? 그 애가 태어나면서부터 이상해졌어, 그 건강하던 애가! 내 동생이!”

“제발, 제발 정신 좀 차려! 말은 똑바로 해야지. 이모 동생은 누구보다 해온이 아꼈어. 엄마만큼 해온이 아낀 사람도 없었다고…… 그리고.”

이해성이 자신을 가리켰다.

“그렇게 따지면 내 탓이라고 해야지. 나 때문에 죽었다고 하는 게 더 타당하지 않아? 아빠가 차체 튼 건 나 때문이었을걸?”

이해성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원래대로였으면 내 쪽으로 사고가 나야 했으니까! 똑똑히 기억나. 차가 조수석 쪽으로 오고 있었던 거.”

“해성아, 일단 진정하고…….”

“진정? 이모는 그런 말 할 자격 없어.”

거의 악을 쓴 이해성이 팔로 자신의 눈가를 틀어막았다.

“해온이 지금 상태가 어떤 줄이나 알아? 관심도 없으니까 모르지?”

“…….”

“일어나면 울다가 기절하고, 울다가 기절하고, 울다가 기절한다고. 그 어린애가!”

“……!”

“부모님이 남겨주신 걸로, 알아서 살 거야. 살 수 있어.”

“이, 이해성!”

“나는 이모 집에 못 가, 아니! 안 가! 우리 데려갈 생각은 하지도 마. 죽어도 안 갈 거니까.”

이모가 언성을 높이며 붙잡았지만, 이해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시야가 바뀐다.

* * *

이번엔 병원의 진료실이었다.

벽에 붙은 전자시계를 확인하니, 날짜는 2월 17일.

장례식장에서 연락을 받고 급하게 온 모양인지, 상복 위에 패딩만을 걸친 이해성이 운을 뗐다.

“……제가 제대로 이해를 못 해서, 다시 한번만 말씀해 주시겠어요?”

“정신적 쇼크로 인한 기억상실입니다. 트라우마나 스트레스 같은 심리적 요인으로 발생하는데, 이해온 님같은 경우엔…… 극단적일 정도로 심각하고요.”

“극단적이라면…….”

“기억장애 중에서도 해리성 둔주 상태로 보입니다.”

해리성 둔주.

자신의 고유한 주체성을 상실한 상태.

일종의 정서적 도피로, 자신의 모든 과거에 대해 회상하지 못한다.

현재 상태에 대한 설명을 마친 의사가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지금은 본인이 기억을 잃어버렸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겁니다. 해리성 기억상실과 다른 점이 이거거든요.”

“어, 어제까지만 해도 기절했다가 일어나면 저를 찾았는데……!”

“과도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몸이 견디지 못하는 거죠. 뒤늦게 기억 장애가 발생하는 건 흔합니다.”

잠시 숨을 멈췄던 이해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저도…… 못 알아볼까요.”

“그 부분은 크게 걱정 마세요. 가족은 금세 익숙해질 겁니다. 어린 나이니까요.”

“…….”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이 부분은 이야기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의사가 조심스러운 어투로 종이를 내밀었다.

정신과의 검사지였다.

“이해온 님 같은 경우, 현재 특정 날짜에 대한 강력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기가 누군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인데도요.”

기억에 관련된 체크를 할 목적이었는지 종이엔 달력 그림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 검사지엔, 특이점이 존재했다.

2월 7일부터, 2월 14일까지.

……전부 새까맣게 칠해져 있었으니까.

글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던 이해성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 누나! 오늘이 2월 7일이니까 14일까지는 일곱 밤 자면 되는 거야?

- 와하하, 그걸 달력에 하나하나 하트를 그려넣고 있는 거야? 그렇게 좋아?

- 기대되니까! 내 생일!

- 네 생일은 오늘인데?

- 엄마랑 아빠랑 누나랑 다 같이 여행 가는 날도 생일 할 거야!

- 푸핫! 그래라, 그럼.

“얘가, 흑, 기대하던, 날인데요. 이게…… 이게…….”

이해성이 횡설수설하자, 대강의 사정을 알고 있는 의사가 따뜻한 차를 건넸다.

“이해성 님도 많이 혼란스러우시겠지만, 가능하시다면 보호자가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습니다.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니까요.”

“…….”

이해성은 당장 나를 보러 가야겠다고 중얼거리더니 상담실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이내 한 병실 앞에 도달했다.

이해성이 눈물을 참는 게 보인다.

드르륵-

문이 열리자, 침대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보던 아이의 시선이 이해성에게 닿았다.

“……누구세요?”

“해온아, 누나야.”

* * *

“이해성, 너 미쳤니? 어린 게 어쩜, 이렇게!”

“이미 외할아버지랑 이야기 끝냈어요.”

이모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소리쳤다.

“아빠! 이게 무슨, 무슨 짓이야! 묘비 날짜를 바꾼다니, 허, 참, 내가 어이가 없어서! 이미 죽은 사람을 내년에 죽은 걸로 새기는 게 말이 돼?”

“진정해라, 숙영아.”

“아버지이이!”

주름이 깊은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나도 많이 고민하고 생각한 게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어.”

“그 애가 언제 기억 찾을 줄 알고? 지금 기억 잃었다고, 평생 못 찾을 것 같아?”

이모가 이해성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비석엔 가짜로 새길 수 있다고 치자, 서류엔? 서류엔 어쩔 건데.”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이해성이 차분히 입을 뗐다.

다만, 이전과는 다르게 완전히 남을 대하는 태도였다.

“굳이 부모에 대한 상세한 서류를 뽑지 않는 이상, 사망일은 나오지 않더라고요. 기본적으로 쓰이는 서류에선 부모님의 사망 여부와 주민등록번호 정도만 나오니까…….”

이해성이 자신의 어깨를 붙잡은 손을 천천히 떼내었다.

“해온이가 스스로 기억을 찾지 않는 이상,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거예요.”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진다.

우리는 이상할 정도로 친척과 교류가 없었다.

그저 부모님 대에서 사이가 나빴겠거니, 라고 생각했는데.

이해성이 막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라도 친척들이 내게 말을 흘릴까 봐.

혹시라도 기억이 돌아올까 봐.

혹시라도 내 탓을 할까 봐.

기억을 모두 잃어버렸던 어린 나는 모든 관계를 처음부터 배워 나갔다.

내 이름은 이해온이고, 누나 이름은 이해성.

부모님은 외국에 가 있다는 것까지.

그 당시 나는 내가 병원에 입원한 이유를 몰랐다.

당연한 일이다.

해리성 둔주 상태는, 스스로가 기억상실이라는 걸 아예 인지하지 못하니까.

나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망각한 것이다.

- 해온아, 잘 들어. 사실 저번 주에 엄마랑 아빠가 하늘나라에 갔어. 해온이는 너무 어려서, 장례식장에 못 데려갔고.

- ……하늘나라?

- 응, 하늘나라. 오늘은 엄마랑 아빠한테 같이 인사하러 갈까?

- 누나, 잠깐만, 잠깐만…… 어, 엄마랑 아빠는 외국에 있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갑자기 하늘나라에 가?

- 교통사고가 났대. 뚝, 울지 말고.

등신같이 이 말을 믿었다.

그땐 나도 어렸으므로.

- 울면 엄마랑 아빠가 더 슬퍼할걸? 여섯 살은 안 울어야 하는데?

- 끕, 흡, 근데, 눈물이 나아아, 어떡해, 누나? 나는 엄마랑 아빠 얼굴이, 흐어엉, 기억이 안 나서…….

어린 나는 틈만 나면 이해성에게 부모님의 생김새를 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이해성은 앨범의 사진을 보여줬다.

내가 태어나기 전, 건강했던 엄마와 아빠의 사진을.

- 너는 엄마를 닮았고, 나는 아빠를 닮았어. 내가 머리카락만 자르면 아빠일걸~?

그리고 이해성은 언제나 태연한 얼굴로 웃으며 대답했다.

이해성은 어떤 마음으로 나에게 부모의 사망 소식을 전했을까.

1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어떤 마음으로 거짓을 말했을까.

적어도 나는.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무 버거워서…….

* * *

사라졌던 출연진들이 요트 위로 돌아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의현이 의식 없는 성해온을 이끌고 올라온 것이다.

성해온은 곧바로 응급처치를 위해 넘겨졌고, 제작진들은 의현을 챙기려 다가갔다.

그의 안색은 너무나도 창백했기 때문에.

“의, 의현 씨, 잠깐 여기로, 피가…….”

산호초에 이리저리 긁힌 모양인지, 의현의 볼과 손엔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어요.”

“네? 방금 뭐라고 하셨…….”

“숨을 안 쉬어요.”

아무런 표정을 찾아볼 수 없는 의현이 말을 이었다.

“해온이가, 숨을 안 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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