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282화 (282/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82화

‘어이가 없군.’

병원 침대 위에서 정신을 차린 내 감상이었다.

요트에서 바닷속으로 들어간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눈 떠보니까 병원?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으나, 감도 안 왔다.

하루 종일 두통이 있긴 했지만, 설마 그걸로 쓰러질 리가…….

있나?

내 낯짝이 갑자기 심각해졌다.

생각해 보니 그럴 리가 있네.

자고로 이 개복치 몸뚱어리는 믿을 게 못 된다.

“…….”

차분히 상황을 끼워 맞추던 내 머릿속엔 단 세 글자만이 떠올랐다.

……X됐다.

일단 멀쩡히 살아 숨 쉬고 있는 걸 보아하니, 누가 구해준 거겠지.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기사가 얼마나 났을지, 상상도 안가는데.’

나는 마른 얼굴을 쓸어내리며 의현의 대답을 재촉했다.

“빨리 설명해.”

“걱정 안 해도 돼.”

“네가 뭔데? 됐다, 내가 알아보지 뭐.”

내가 두리번거릴 무렵, 의현이 스마트폰을 흔들었다.

그래.

내 스마트폰을.

명을 재촉하고 싶어서 안달이로군.

“정말이야. 일단은 휴식이 우선이잖아?”

의현이 살풋 웃은 순간, 나는 의현의 몸뚱어리를 침대로 밀었다.

“하하, 과격한데.”

“그 입 좀 다물어.”

녀석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낚아채는 데 성공한 나는 일단 심호흡했다.

상당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에.

……꿀꺽.

침을 느릿하게 삼킨 나는 SNS에 접속했다.

그리고 그런 내 낯짝이 서서히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의현이 생긋대며 주변을 얼쩡거렸다.

“오늘은 해온이가 이상하네. 욕도 안 하고.”

“…….”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열불을 삼켰다.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럴 수밖에 없었다.

- 허, 내가 널 건져? 방금 정신 차린 내가?

- 음, 초인적인 힘으로?

- 헛소리 말고 똑바로 불어.

이 자식에게서 알아낸 사고의 경위는 이러했다.

내가 물속에서 갑작스레 의식을 잃으며 가라앉았고, 의현은 날 건졌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의현은 사실과 반대되는 여론전을 펼쳤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뇌를 꺼내보고 싶을 지경이다.

솔직히 불자면, 저 새끼의 행동이 이해되긴커녕 무척이나 찝찝했지만…… 굉장한 도움이 된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진실이 그대로 퍼졌다?

심지어 밀리어스가 얽힌 사고가?

이건 이미지 손상을 피할 수 없었을 거다.

아니.

이미지가 문제가 되는 걸 넘어서서, 내 목숨까지 저 하늘에 흩뿌려졌을 거라고 할 수 있겠다.

감히 밀리어스를 다치게 한 그룹!

연예 신문사들이 침을 흘리며 달려들 주제 아니겠는가.

이게 퍼졌다면 이번 컴백은 꿈도 꿔선 안 됐다.

죄는 짓지 않았지만, 여론을 의식해 조용히 자숙하다가, 이 사고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을 때쯤 컴백했어야겠지.

150일 이내에 컴백?

턱도 없었을 게 뻔하다.

그리고 난 그대로 사망 루트를 밟았겠고.

“갑자기 얼굴이 심각해졌네.”

“열받게 하지 마.”

“제작진 앞이라고 웃으면서 말해주는구나.”

“당연한 말을 하는군.”

나는 미소 띤 낯짝을 걸친 채 복화술하듯 답하고는, 의현을 훑었다.

이상할 정도로 다친 곳이 없는 나와 다르게, 이 자식은 곳곳에 자잘한 상처를 입었다.

메이크업 기술이 워낙 좋은 탓에 말끔히 가려졌지만.

바로 그 순간이었다.

<렛츠 트래블> PD가 기운찬 목소리로 외친 것이다.

“우리 마지막까지 힘내봅시다!”

사실 사고로 촬영이 엎어지니 마니, 난리법석이었는데 내가 만류했다.

‘이 기회를 놓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지.’

컴백 전에 조금이라도 성과를 쌓아놔야 하니까.

게다가 그러한 계획은 이미 넘치도록 충족됐다.

- 촬영 마쳐주신다니 너무 감사하고, 또 죄송합니다. 사실 저희의 불찰이 컸습니다. 안전 사고에 유의했어야 하는 건데…….

PD가 나한테 사과를 하더라고.

‘이건 예상 못 했던 상황이었지.’

굳이 따지고 보면 이 하찮은 몸뚱어리가 문제였으나, 의현에게 카메라가 집중된 탓에 사고 영상이 찍히지 않았다니…….

‘흠.’

출연진을 차별한 제작진들의 업보로 남겨두도록 하자!

산뜻한 결론을 내린 나는 곧바로 눈깔에 물기를 담아냈다.

판이 알아서 깔려줬는데, 얻어낼 건 얻어내야지 않겠는가.

그런고로.

나는 PD의 앞에서 잔뜩 아련한 분위기를 내며 팔을 휘저었다.

- 괜찮습니다. 지금도 멀쩡한 걸요. 오히려 챙겨주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어쩐지 크게 감동한 듯한 얼굴의 PD가 약속한 것도 그때였다.

- 프로그램이 나갈 때 라이트온 곡 홍보, 무조건 할게요. 꼭.

- ……! 아니요, 아니요! 그렇게까지는…….

- 아닙니다. 편집할 때 분량도 신경 쓰겠습니다. 저는 정말 프로그램이 이제 끝인가 생각했는데…… 성해온 씨는 은인이십니다. 은인.

듣자하니, 의현은 내 상태를 염려하며 바로 입국하자는 의견을 내세웠다고 하더라고.

나는 히죽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숨겼다.

* * *

인천공항에 도착한 나는 작게 하품했다.

‘피곤하군.’

숙소에 도착하면 잠이나 실컷 자야지.

공항엔 이미 날 픽업할 매니저가 대기 중이었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반짝이는 스마트폰이 신경 쓰여 의현에게 말을 건넸다.

“계속 전화 오는데.”

“아, 회사야.”

의현이 화사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도착하자마자 혼나러 가야 하거든.”

“…….”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내가 아무리 양심이 없대도, 여기서 ‘어쩌라고’를 외칠 위인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시 고마워?”

의현이 내게 얼굴을 들이민 것도 그 순간이었다.

녀석의 눈이 사르르 접혔다.

“고마우면 앞으로 연락 피하지 마, 해온아.”

“…….”

내가 흐릿한 눈깔로 먼 허공을 바라보자, 의현이 불쌍한 목소리를 냈다.

“대표님 무서우신 분인데.”

“…….”

“많이 혼날까?”

“…….”

“조금 두렵네.”

“받으면 되잖아. 받으면.”

“하하!”

* * *

VX의 대표이사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라연수가 웃었다.

“의현아, 몸은 괜찮고?”

3대 엔터테인먼트의 수장 중 유일한 여성.

동시에 K-pop을 가장 선두에서 이끌어가는, 소위 말해 이 바닥의 거물.

라연수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거야 보고받으셨다시피 괜찮습니다.”

자리에 착석한 의현이 어서 본론을 꺼내라는 듯이 웃었다.

“보다시피, 방금 입국한지라.”

“하긴, 피곤할 텐데 내가 생각이 짧았구나.”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와, 아티스트의 대화라기엔 상하관계가 조금 이상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밀리어스의 체급쯤 되면, 아쉬운 건 회사 쪽이니까.

원래부터 대형이긴 했지만, 지금의 VX를 만든 건 다름 아닌 밀리어스였다.

라연수가 다과를 건넸다.

“먹어보겠니? 이번에 출장 다녀오면서 사 온 건데, 애들이 좋아하더라.”

“별로 입맛이 없네요.”

“흐으음, 그래, 그래. 싫은 걸 억지로 할 필요는 없지.”

라연수가 의현과 시선을 마주했다.

“대표님이 밀리어스 아끼는 거 알지?”

“네.”

“그렇다면, 너 하나에 걸린 가치가 얼마인지도 알고?”

“대충은.”

다리를 꼰 라연수가 후후 웃었다.

“이번엔 놀랐단다. 믿기지가 않지 뭐야? 내가 아는 의현이는 그럴 애가 아닌데.”

“한순간의 실수가 사고로 이어질 줄은 저도 예상 못 했네요.”

라연수는 페퍼민트티를 삼키며 의현을 살폈다.

그녀는 이미 진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제 눈앞의 이 녀석도 알고 있을 테다.

자신이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걸.

그러면서도 거짓을 내뱉는 것이다.

라연수는 생각했다.

‘괘씸하네.’

이렇게 돌발 행동을 하는 녀석들은 곤란한데.

하지만 밀리어스라는 게 문제였다.

회사 입장에선 놓쳐선 안 될, 황금 동앗줄.

“흐음, 의현이 속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라연수가 붉은 라즈베리 잼이 든 쿠키를 한입 베어 물고는 내려놨다.

“영 맛이 별로네. 의현이가 안목 하나는 좋단 말이지.”

의미심장한 말에, 의현이 살풋 웃었다.

“대표님.”

“응?”

“제가 18살에 데뷔했으니, 으음…… 지금은 벌써 6년이네요.”

“우리 의현이가 벌써 스물넷이구나.”

“재계약은 일 년이 남았고.”

“설마 협박하는 거니?”

“그렇게 들리셨다면 유감이네요.”

의현은 가느다랗게 접힌 눈으로 라연수를 살폈다.

제 아티스트의 발목을 잡을 거라 생각되는 건, 싹이 돋기도 전에 자를 수 있는 냉정한 인물.

그리고 어쩌면 자신과 생각이 맞을 수도 있는 인물.

의현은 나지막이 운을 뗐다.

“대표님이 지금 하고 계신 생각, 관두세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줄 알고?”

“아시잖아요? 저는 누가 제 걸 건드리는 거 싫어해요.”

밀리어스는 이 회사의 대표 상품이다.

그것도 시시각각 가치가 변동되는 상품.

아마 지금, 라연수는 성해온이 거슬릴 것이다.

상품의 가치를 훼손시킬 뻔한데다가, 성해온과 엮이면 자신이 거슬릴 짓을 하니까.

의현이 <렛츠 트래블>에 동반 출연 의사를 밝히기 전부터, 라연수는 성해온을 눈엣가시로 생각했다.

그리고.

의현은 그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저는 대표님이 마음에 들어요. 이렇게 계산적인 것도, 인정이 없는 것도.”

“아하하, 욕이니?”

“그럴 리가요.”

“그럼 약속해 줄 수 있겠어?”

라연수는 직구를 택했다.

“내가 네 행동을 두고 본다면, 재계약 도장 찍을 거라고.”

현재 밀리어스 멤버들 중, 가장 변수로 작용하는 건 의현이다.

‘나조차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으니…….’

웬만한 인간 군상들을 전부 겪어본 라연수로서, 의현은 특이하다는 말로 부족했다.

하지만.

‘가치는 차고 넘치지.’

라연수는 눈을 굴려 의현을 훑었다.

의현은 그룹 내에서도 인기가 가장 많다.

그런 패를 잃는 건, 이쪽에서도 손해가 막심했다.

그리고 라연수는 회사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줏대나 자존심 정도야, 별 탈 없이 접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응? 약속할 수 있겠어?”

“아시면서.”

다시금 들어온 물음에, 의현이 작게 웃으며 찻잔을 내려놨다.

“저는 약속 같은 거 안 해요.”

* * *

“…….”

매니저의 인솔을 따라 밴에 오른 나는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멤버들이 올망졸망한 얼굴로 밴 안에 찌그러져 있었기 때문에.

“무슨 놈의 이산가족 상봉도 아니고, 단체로 몰려왔어?”

게다가 이 자식들, 눈가가 아직도 그렁그렁했다.

나는 어이없음을 삼키며 어제를 회상했다.

- 형니이이이임! 흐끕, 끅.

- ……형!

- 다들 눈물 닦아라, 못생겨지는데.

- 이 상황에도 놀리고 싶으십니까?!

멤버들과의 눈물 섞인 영상통화는 밤새도록 이어졌다.

물론 눈물은 저쪽만 흘렸지만.

소식을 듣고 얼마나 걱정했는지는 몰라도, 두 눈이 퉁퉁 불어 있더라고.

심지어 매사에 무던한 류인마저 심각한 얼굴이라 조금 당황했더랬지.

멤버들 역시 사고가 난 직후, 내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부재중을 109통이나 때렸더라.

스마트폰에 찍힌 부재중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가장 발신을 많이 건 인물은 여기 이 녀석이다.

무려 32통.

나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한수현을 곁눈질로 응시했다.

……평소 같으면 가족 타령을 하며 끝도 없이 주절거려야 할 놈이 입을 닫고 있으니 더 호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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