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84화
이 사실은 어쩌다가 신유하에게 전해 들은 것이다.
틈만 나면 한숨을 쉬고 앓는 소리를 낸다지.
작업에도 영 집중을 못 하고 말이다.
그 소릴 듣고 얼마나 기겁했는지.
나는 웃는 낯짝 아래로 생각했다.
‘절대 안 된다.’
다른 때면 몰라도, 지금은 타이밍이 가혹하지 않나.
창작자의 슬럼프?
이유는 안 봐도 뻔하다.
‘곡이 안 풀리는 거겠지.’
물론 앨범에 강찬혁의 곡만이 수록되는 건 아니다.
‘이미 여러 프로듀서에게 컨택이 간 상태기도 하고.’
슬럼프에 빠진 강찬혁이 ‘이번엔 곡 못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면, 별다른 잡음 없이 다른 프로듀서들의 곡이 픽스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강찬혁이라는 패를 버릴 수 없었다.
내가 봤던 미래에서 이 인간은 어마어마한 히트곡을 낸 프로듀서였으니까.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액면가상으로 현재의 강찬혁과 그다지 큰 차이는 없었다.
그 업적이 이번 우리 앨범에서 나올 업적일지, 누가 알겠는가.
나는 자연스럽게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유하한테 이야기 들었습니다. 요즘 고민이 많아 보이신다고.”
“아, 제가요…….”
강찬혁의 머리칼을 작게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아시겠지만, 이번에도 라이트온의 앨범 의뢰를 받아 곡들을 작업 중인데…….”
강찬혁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잘 풀리지가 않아서요. 면목이 없습니다. 절 믿어주신 걸 텐데…….”
이 인간의 자존감은 언제 봐도 놀라운 수준이군.
실력 있는 프로듀서는 사실상 갑의 위치인데, 이건 굴러가면서 봐도 을의 위치가 아닌가.
나는 얼굴에서 표정을 지워냈다.
“면목이 없으시다니요. 그런 말씀을 하시면 제가 섭섭합니다.”
단호한 어조로 말문을 연 나는, 숨도 쉬지 않고 강찬혁의 얼굴에 기름칠을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영혼 끝까지 털린 게 분명한 내향인학과 전액장학생이 멍한 얼굴로 눈을 껌뻑였다.
“저, 그, 해온씨, 칭찬이 너무 과한…….”
나는 신뢰의 낯짝을 걸친 채 가슴에 손을 올렸다.
“과하다니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제 진심이었습니다.”
내 목적은 강찬혁을 신나게 하는 게 아니다.
칭찬에 흥이 올라 춤을 추는 것도, 어느 정도 상태가 괜찮아야 가능한 거지.
지금 강찬혁의 꼴을 보아라.
대체 며칠 밤을 새운 건지 퀭한 얼굴에…… 자신감은 땅굴을 파다 못해 내핵까지 들어간 듯 보이지 않은가.
이런 상태에서 칭찬해 줘봤자, ‘하찮은 날 위로해 주시는구나…….’ 따위로 받아들일걸.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그렇다면 어째서 칭찬을 한 건지 궁금해합니다.]
그야 당연히.
혼을 빼놓으려고다.
정확히 말하자면, 생각할 틈을 주지 않으려고.
원래 공정성을 따지자면, 블라인드 테스트로 올 곡 후보를 멤버인 내게 들려줘선 안 되니까.
쉴 새 없이 입을 털던 나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본론을 꺼냈다.
“─그런 의미로 실례가 안 된다면, 작업하신 곡들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예에에…….”
우두커니 앉아 고개를 끄덕이던 강찬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뒤늦게 내 말을 제대로 인지한 것이다.
“……! 아, 아뇨! 말씀드렸다시피, 아직 자신이 없어서요.”
“프로듀서님, 그런 말씀 마세요. 그리고 혹시나 제가 도움이 될 수도 있고요.”
설득이 되어가는 모양인지, 강찬혁이 망설였다.
그리고 난 곧바로 골드 상점에 접속해 스크롤을 내렸다.
이 순간을 위해 봐둔 특성이 있거든.
[TOP 100 귀(30분)]
쉽게 말해, 대중들의 반응이 올 곡을 감별해 낼 수 있는 특성.
사실 이런 쪽으로 감이 있는 놈들은 멜로디만 들어봐도 이건 될 곡이다, 안 될 곡이다, 감이 온다고들 하지 않는가.
그런 촉을 극대화시켜 주는 특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터무니없는 난이도의 이번 미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곡’이다.
일단 곡이 좋다는 전제가 깔려야, TOP 10에 안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거든.
그런고로, 이건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특성이었다.
[구매가 완료되었습니다.]
“해온 씨, 그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더 좋은 곡을 뽑아내겠다며, 강찬혁이 쩔쩔맸다.
이런 멘트를 듣고 있자니, 마치 돈 떼먹은 사채업자가 된 기분이군.
“저는 프로듀서님이 자신감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충분히 그럴 만한 분이시니까요.”
나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토닥이듯 강찬혁의 어깨를 터치했다.
[자비(慈悲)의 손길이 베풀어집니다.]
이 정도는 서비스로 해줄 수 있지.
피로에 효과가 좋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나, 강찬혁의 눈가에 깔린 다크서클이 순식간에 옅어지니 신기하군.
조금 감탄한 나는 눈을 접어 웃었다.
“그럼, 들어볼까요?”
곧이어 작업실에 곡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TOP 100 귀]가 발동됩니다.
특성으로 인해 감각이 예민해진 나는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눈썹을 까딱였다.
‘정말 슬럼프가 오긴 했나 본데.’
첫 번째 곡, 무난하기만 한 이지리스닝 곡.
두 번째 곡, 이전보다 특색이 있긴 하지만 글쎄.
세 번째 곡은 강찬혁답지 않게 끔찍하고.
이어지는 네 번째 곡은.
‘오.’
나는 약간의 감탄사를 삼켰다.
인트로에 박힌 멜로디부터 세련되게 잘 뽑혔다.
나는 그 선율에 맞춰 의자의 팔걸이를 톡톡 두드렸다.
하지만 부족하다.
지금 나에겐 더 좋은 곡이 필요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네 번째 곡이 끝나기 무섭게, 강찬혁이 무척 어색한 모션을 취하며 폴더를 닫은 것이다.
“제가 작업한 곡은, 예! 여기까지…… 입니다.”
“……?”
아닐 텐데?
하나 더 있을 텐데?
내가 다급하게 마우스를 쥔 손목을 붙잡자, 강찬혁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리기까지?
오호라.
숨기시겠다.
파일의 날짜를 보아하니, 강찬혁이 가장 최근에 작업한 곡이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그 찰나에 그런 부분까지 스캔한 거냐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그거야 기본이지.
‘음.’
잠시 대가리를 굴리던 나는.
샤라락!
물기가 가득한 아련한 낯짝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혹시 제가 못 미더우신 걸까요? 프로듀서님께 도움이 되고 싶었던 건데…….”
이름하여, 불쌍한 척.
즉, ‘이래도 안 보여줄 거냐?’ 작전이다.
“생각해 보니 오늘은 제가 너무 주제넘었던 것습니다…… 프로듀서님도 사정이 있으실 텐데…….”
나는 처연한 목소리로 중얼대며 의자에서 슬그머니 일어났다.
이제 슬슬 잡을 때가 됐는데.
나는 속으로 카운트다운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럼 저는 이만 숙소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작업이 바쁘실 텐데 괜한 시간을 뺏은-”
타악!
내 손목이 붙잡혔고, 나는 히죽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다잡았다.
이래야지.
“그, 그럴 리가요! 해온 씨가 못 미더울 리가 없죠. 오히려 그 정반대라서 문제입니다!”
강찬혁이 우물쭈물 말을 쏟아냈다.
“저 곡 때문에 요즘 고민이 많아서요. 아직 제 마음에 차지도 않는 곡을 들려 드리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특히 라이트온분들께는.”
“저희에게요?”
강찬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지금 자리를 잡은 건 사실 해온 씨와 라이트온의 덕이니까요…… 이왕이면, 더 만족스러운 곡을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내가 발견하지 않았어도 언젠가 자력으로 최정상의 위치에 올랐을 인간인데 말이다.
원래도 소심했지만 지금은 지나칠 정도로군.
그리고 나는 이 대화에서 무언가를 추측해 낼 수 있었다.
내 예상대로, 이 인간의 슬럼프는 제대로 풀리지 않는 곡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강찬혁이 숨기고 있는 이 마지막 곡이 그 근원지라는 것.
여기서 짚고 넘어가 보자.
창작자에게 오는 슬럼프의 가장 주된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더’ 잘하고 싶어서다.
더 끝내주는 걸 만들고 싶으니까.
더 새로운 걸 만들고 싶으니까.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가챠.
그것도 레어템이 나올 확률이 있는 가챠.
게다가…….
강찬혁 정도의 인물이 끙끙대며 슬럼프에 빠질 정도면, 난 꽤나 높은 확률의 가챠라고 보는데.
언제 숙소에 가려 했냐는 듯 차분히 자리에 착석한 나는 양심 없는 낯짝을 걸친 채로 눈을 반짝였다.
“이렇게 저흴 생각해 주신다니, 감격스럽습니다. 그리고 자랑은 아니지만, 사실 제가 곡을 듣는 귀는 쓸만하다고 생각해서요.”
나 지금 특성 장착한 상태라고.
이만한 피드백의 기회가 없을 텐데?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말할 순 없는 노릇이니, 나는 말을 빙빙 돌렸다.
“고민하고 계시는 부분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 보면, 프로듀서님의 복잡한 머릿속도 조금 환기가 되지 않을까요?”
“아무리 그래도 이 곡은 정말…….”
버틴다고?
내 피같은 특성이 끝나가는데?
어림도 없지.
나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짜낼 기세로 촉촉해진 눈알을 최대한 불쌍하게 굴렸다.
“역시 저는 별 도움이…….”
“……!”
“괜히 프로듀서님만 심란하게…….”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그렇게 말씀해 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숙소에 돌아가 오늘의 일을 반성해야겠네요.”
“……보, 보여 드리겠습니다!”
눈을 질끈 감은 강찬혁이 파일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TOP 100 귀]가 발동됩니다.
특성이 발동됨과 동시에, 나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이건 대박이다.
곡이 끝남과 동시에, 내 고개가 강찬혁 쪽으로 끼기긱 돌아가기 시작했다.
“프로듀서님.”
“아직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곡이라, 역시 별로…….”
“장난하세요?”
* * *
숙소로 돌아온 나는 혀를 끌끌 찼다.
정말이지 괘씸해 죽겠군.
그런 곡을 만들어놓고 이렇게 저자세였다고?
심지어 자신감도 없고?
어?
내가 대충 포기하고 나왔으면 듣지도 못했을 거 아냐.
아니지.
다른 그룹이 채갔을 지도 모르지.
생각만 해도 부글부글 끓는 가정이었다.
내가 잘 키워놓은 강찬혁의 곡을 남이 홀라당 채간다니.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면 자다가도 억울해서 벌떡 일어났을 거다.
내가 고개를 절레 젓고 있을 무렵, 신유하가 반가운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오늘 프로듀서, 님은 잘 뵙고, 오셨나요?”
“그래.”
때마침 부탁할 게 있었는데, 제 발로 와줬군.
“너는 계속 작업실 나가고 있고?”
“네! 꾸준히 나가고, 있어요! 배우는 게, 재밌어서…….”
“기특하군.”
“……그럴, 리가요! 별것도, 아닌데!”
나는 칭찬을 마다하며 손을 파닥파닥 젓는 신유하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성좌, ‘황금의 신’이 강력한 불안함을 느낍니다.]
“기특한 김에, 더 기특한 짓을 해보는 건 어떨까.”
“더, 기특한 짓……?”
나는 물음표를 띄운 녀석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닥였고, 신유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내 헛소리를 경청했다.
“형 말대로 꼭, 신경 써서 볼게요! 저도, 프로듀서님 걱정됐으니까……!”
눈을 반짝이며 열정을 내보이기까지 하는 신유하에, 나는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래.”
[성좌, ‘황금의 신’이 우리 아해를 정보통으로 활용하지 말라며 눈물 흘립니다!]
“어떤 걸 위주로 봐야 하냐면 말이야…….”
메시지를 못 본 척한 나는 더더욱 사악한 낯짝으로 조잘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