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285화 (285/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85화

강찬혁은 슬럼프였다.

단 며칠 전만 해도 그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자기 전에 불현듯 악상이 떠올랐기 때문에!

얼마 전 강찬혁은 라이트온의 차기 앨범에 들어갈 곡에 대한 의뢰를 받았다.

그리고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곡은 너무나도 라이트온에게 어울리는 곡이었다.

- 강찬혁 프로듀서님, 곡 의뢰를 드리고 싶습니다.

- 저희 회사에서 론칭할 신인 그룹의 타이틀을…….

요즘 이름값이 알음알음 퍼졌는지, 이곳저곳에서 연락도 많아졌다.

하지만 강찬혁은 아직 그럴 욕심이 없었다.

성해온이 들으면 뭐 이딴 답답이가 있냐며 뒷목을 잡을 일이지만, 어쨌든.

평생을 없이 살아와서인지, 그다지 욕심이 생기지 않는달까.

번 돈으로 장비를 바꾼 게 끝이었다.

강찬혁은 누구보다도 작곡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만큼의 열정이 있냐 묻는다면, 글쎄.

확답할 수 없었다.

옛날만큼의 열정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었으니까.

그런 강찬혁의 열정이 커진 건 최근이었다.

신유하를 보면서, 작곡을 처음 접했을 때를 떠올린 것이다.

더 훌륭한 곡.

더 발전한 곡.

더 성장한 곡.

이 모든 걸 담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은 역시 한계가 정해져 있었다.

“……이게 아니야.”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아무리 건드려 봐도, 결과는 점점 비루해졌다.

몇 날 며칠을 매달렸으나, 제자리걸음.

혹은 퇴보.

속에서부터 곪아가는 기분이었다.

강찬혁의 좋지 않은 컨디션은 다른 곡들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문득.

강찬혁은 현재 자신의 상태를 깨달았다.

지금은 곡 작업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자괴감이 그를 잠식시켰다.

하루빨리 MH에 연락해 의뢰받은 곡에 대한 논의를 해야 했다.

다른 프로듀서에게 받으셔야 할 것 같다고.

나는 수록곡조차 자신이 없다고.

할 말을 고르고 고르던 와중이었다.

- 프로듀서님.

성해온이 자신을 찾아온 것이다.

어째서 힘들 때만 찾아오는 걸까.

성해온은 강찬혁의 구원자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건 당연한 이치였다.

- 실례가 안 된다면, 작업하신 곡들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자신조차도 듣기 싫은 곡을 들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부탁을 거절하기엔…….

그렇다.

강찬혁은 소심했다.

거절 따윈 하지 못하는 천성인데, 그 상대가 성해온이니 어련했을까.

곡이 재생된 순간, 강찬혁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그는 계속해서 칭찬을 건넸지만, 성해온은 원래 칭찬이 후한 사람이었다.

분명 자신이 민망하지 않게끔 반응해 준 거겠지.

하지만 소심한 강찬혁마저도 마지막 곡은 들려줄 수 없었다.

……이 슬럼프의 원인이 된 곡이자, 한심한 자신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곡.

목에 칼이 들어와도 보여줄 수 없었다!

- 죄송합니다. 괜히 프로듀서님만 심란하게…….

……보여줘 버렸다.

강찬혁은 차라리 눈을 질끈 감는 걸 택했다.

하지만 반응은 의외였다.

어쩐지 얼굴이 험악해진 성해온이 입꼬리를 올렸던 것이다.

……조금 사악해 보였던 건 자신의 착각일까?

아마 착각이었을 거다.

성해온이 그럴 리 없으니까.

눈빛이 달라진 성해온은 자신을 소파에 앉혔고, 길고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물론 뼈가 남아나지 않는 이야기였다.

요즘 세대 애들이 우스갯소리로, 이런 타격을 받으면 순살치킨이 된다고들 하던데.

……그렇게 따지면 강찬혁은 이미 갈린 치킨 너겟이 되었을 것이다.

계속해서 칭찬만 해주던 이전과 다르게, 성해온은 냉철한 태도로 문제점을 짚었다.

- 혹시 막히시는 부분이 이쪽인가요?

- ……! 그걸 어떻게.

- 그 부분만 유독 손을 많이 대신 티가 나서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단번에 자신의 곪은 지점을 알아낸단 말인가.

- 괜찮으시면, 제가 느낀 점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 다, 당연히 괜찮습니다! 의견은 받을수록 좋으니까요.

이때까지만 해도 강찬혁은 별생각이 없었다.

그저 이 곡을 보여준 것에 대한 수치만이 존재했을 뿐.

하지만 그런 강찬혁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이 구간의 비트를 살짝 늘리고, 이쪽은 나눠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지금은 벌스 직전의 브릿지가 살짝 어색한 느낌인데요. 여길 이전에 프로듀서님이 작업하셨던 느낌으로 살짝 비틀면…….

- 세상에.

강찬혁은 정말이지, ‘세상에’라는 세 글자밖에 뱉어낼 수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막혀 있던 부분을 쉽게 풀어줄 수 있단 말인가?

정확히 제3자의 입장에서 보아야 알 수 있던 문제점.

그것을 단번에 짚어준 성해온은 웃었다.

- 제가 여태껏 들은 프로듀서님의 노래 중 최고입니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 ……!

- 저는 프로듀서님이 조금 더 스스로를 믿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나를…… 믿어라…….”

허공을 보며 조용히 중얼거리던 강찬혁은 허리를 바로 세웠다.

* * *

“……?”

그리고 그런 강찬혁을 바라보던 신유하는 물음표를 띄웠다.

……강찬혁이 흡사 접신이라도 한 듯이 건반을 두드리고 있었기 때문에.

신유하는 어제 성해온에게서 한 미션을 받았다.

강찬혁의 모습을 살펴보고 알려달라는 것이었는데, 안색이 좋지 않은 강찬혁이 걱정된다는 이유였다.

‘나도 프로듀서님이 걱정돼!’

이건 자신도 크게 동의하는 바였기에, 신유하는 그 부탁을 바로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랬기에, 신유하는 오늘 작업실에 오자마자 악보를 적으며 힐끔힐끔 강찬혁을 관찰했다.

그리고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얼굴이 달라지셨어.’

물론 지금도 무척 피로한 얼굴이시니 좋은 안색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뭔가 달랐다.

게다가.

자신의 귀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강찬혁은 드문드문 성해온의 이름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두 분이 혹시 싸우신 걸까?’

의지로 활활 불타오르는 강찬혁은, 언뜻 분노가 가득 찬 사람으로 보였다.

심지어 강찬혁의 인상은 꽤나 험악한 편이어서, 신유하의 오해는 점점 확신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신유하는 손톱을 탁탁 두드렸다.

‘해온 형은, 약하신데……!’

벌써 머릿속에서 둘의 치고받는 싸움까지 상상한 신유하는 결심했다.

어떻게든 말리자.

……만약 싸우신다면.

‘내, 내가 맞자!’

맞는 건 아플 테지만, 해온 형보단 내가 셀 거야.

프로듀서님도 매일 앉아 계시느라 근육이 없으시니, 어쩌면 그다지 아프지 않을지도.

얼떨결에 악의 없는 마음으로 사람을 둘이나 흠씬 팬 신유하는 결연하게 주먹을 쥐었다.

* * *

“형은, 아무 걱정 마세요……!”

나는 신유하의 뜬금없는 말에 의문을 띄웠다.

“무슨 걱정?”

“강찬혁, 프로듀서님은 착하시니까! 제가 잘 말하면, 괜찮을 거예요.”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한 거야 알고 있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신유하가 기겁하며 손을 파닥였다.

“바보라는, 나쁜 말을 하면 안 돼요. 불화가 커질, 수도 있어요!”

“……?”

“대화로, 풀면 괜찮을 거예요. 일단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기 전에, 화해를…….”

“화해? 우리 안 싸웠는데.”

“네에에에?”

나보다 더 놀란 듯한 신유하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럼, 왜…… 분위기가 그러셨지.”

이쯤 되니 심각해진 건 내 쪽이었다.

신유하가 저럴 정도면, 강찬혁의 분위기가 심각하게 수상했나 본데.

……입을 너무 털었나?

나름대로 훈훈한 엔딩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되짚어보니 피드백을 너무 직구로 던진 것 같기도 하고.

“혹시 프로듀서님이 내 욕 했냐.”

“아니요!”

“아니면 작곡노트를 데스노트로 활용했다든가…….”

“그,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럼?”

“으음, 뭔가…….”

신유하가 심각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복수하는, 사람 같았어요. 활활, 불타는 듯한……!”

“활활?”

“네!”

“혹시 그 앞에 프로듀싱 기계가 있었고?”

“……! 어떻게 아셨, 지?”

“음.”

빌어먹을 슬럼프는 무사히 지나가고 있는 모양이군.

픽 웃은 나는 상태창을 불러냈다.

[성해온]

체력 B

정신력 S+

비주얼 A

노래 A+

춤 B-

특성

▶[교주의 신성(SS)]

▶[K팝 망령의 눈(A)]

진행 중인 미션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보유 골드 500G

내 생일.

2월 7일 정각에 이루어진 시스템의 대대적인 개편 이후, 내 자산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10배로 뛰었다.

그 말인 즉슨, 현재 내 잔고인 500골드는…… 이전으로 따지자면 50골드라는 거지.

‘빈털터리 신세군.’

골드 상점이 개편되며 특성과 아이템들의 스펙트럼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져, 사고 싶은 건 많은데 말이다.

나는 천천히 최근에 구매했던 것들을 되짚었다.

발리에서 구매했던 알콜 면역 아이템이 2,500골드.

어제 구매했던 30분짜리 특성은 6,000골드였다.

개편 전 가격으로는 각각 250골드와 600골드인데, 단위가 커지니 기분이 묘하군.

하지만 골드가 바닥을 친대도, 별다른 우려는 없다.

‘몸으로 때우면 되니까.’

이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인가 싶겠지만, 나에겐 골드의 화수분 격인 포인트가 있으니 말이다.

물론 체력이 거덜난다는 부작용이 있으니만큼, 어느 정도 조정해 가며 벌어들이고 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침을 꼴깍 삼킵니다.]

[성좌, ‘황금의 신’이 눈을 반짝입니다.]

거래를 원하시는 분들까지 이렇게 줄을 서 계시니, 걱정이 될 리가 있나.

* * *

그로부터 6일 뒤.

회사로부터, 후보곡들이 모두 모였다는 연락을 받았다.

즉…… 강찬혁이 작업을 끝냈다는 것.

‘생각보다 빠른데.’

적어도 10일은 생각했는데 말이다.

“와아, 오늘 되니까 컴백이 실감 난다! 곡이 벌써 나오는구나.”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이번엔 후보곡까지 여럿이라니 굉장히 설렙니다!”

그렇다.

라이트온의 위치가 어느 정도 공고해지자, 명훈이도 우리에게 들이는 자본을 늘렸다.

곡의 컨택부터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프로듀서들에게 돌렸으니 말 다 했지.

나는 자리에 착석하며, 눈앞에 놓여진 종이를 바라봤다.

[1번] [2번] [3번] [4번] [5번] [6번]

최종적으론 6곡이 올라온 모양.

눈물겹게도 MH는 AR팀이 따로 없다.

그런고로, 이건 기획팀이 1차적으로 선별한 곡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해성도 곡에 대한 감이 좋은 편이라서, 궁금하긴 하군.

곧이어 스피커에서 멜로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후보곡이 재생되는 동안,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

여섯 번째.

그러니까 마지막 곡이 끝나기 무섭게 멤버들의 얼굴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 예상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물론 긍정적인 쪽이지만, 이거.

‘곤란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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