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286화 (286/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86화

강찬혁의 곡은 세 개였다.

[1번] [3번] [4번]

이 중에 내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곡은 4번.

문제는 다른 곡들까지 내 예상을 넘어간다는 것이다.

……4번 곡만 신경 쓰라는 뉘앙스로 입을 털었는데, 이렇게 전반적으로 갈아엎었을 줄은 몰랐지.

내가 작업실에서 들었던 곡들이 베이스가 되었다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결과물이었다.

특성을 장착했던 내 입장에서야 ‘4번이다!’라고 단번에 확신할 수 있지만, 보통은 그게 안 된다.

아무것도 더해지지 않은 ‘곡’만 듣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건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하물며 거의 모든 곡이 평균 이상이라면?

‘선택이 갈릴 수밖에 없지.’

최승하가 고민이 가득한 얼굴로 회의실 테이블에 엎어졌다.

“고르기 너무 힘들다!”

“예, 맞습니다! 좋은 게 너무 많은 탓에…… 흐음, 솔직히 저는 무엇이 된다 해도 아쉬움이 없을 듯합니다.”

“나도 그렇지만…… 지금 끌리는 건 1번?”

“……! 류인 형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저도 그게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차윤재의 귀가 펄럭였고, 나는 미간을 살짝 좁혔다.

이 녀석들은 라이트온의 댄스 라인이다.

그러니 류인과 차윤재가 불규칙한 느낌으로 전개되는 빠른 비트를 선호하는 건, 사실상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1번 곡은 실제로 좋다.

‘만일 나도 4번이 없었다면 이쪽을 선택했을 정도로.’

작업실에서 들었을 때만 해도, 1번은 그저 그런 곡이었는데…… 지금은 아예 다른 곡으로 탈바꿈된 수준이었다.

처음부터 귀를 잡아채는 곡의 후킹은 말해 뭐 해 수준이고, 템포는 군무를 곁들이는 아이돌의 노래에 적합한 곡.

하지만.

더 성공할 곡은 4번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특성으로 감이 극대화된 상태에서, 그 곡을 접했을 때의 오싹함을 잊을 수 없으니까.

1번에 비해, 4번은 독보적인 맛이 크다.

그렇다고 컨셉추얼함이 과하냐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하겠다.

‘나도 굳이 모험을 하고 싶진 않거든.’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위험한 수를 두는 건 취향이 아니라서 말이다.

강찬혁이 우리를 두고 썼다는 곡답게, 4번 곡은 라이트온이 낼 수 있는 포텐셜을 최대치로 살리면서 유니크함을 더했다.

대중적인 멜로디도 베이스에 깔려 있기 때문에, 이질적임도 크지 않다는 게 장점.

내가 후보곡들을 저울에 매달고 있을 무렵이었다.

“으으으으으음.”

길게 침음성을 낸 최승하가 말을이었다.

“난 1번도 좋은데 4번도 좋단 말이지? 일단 이 둘이 베스트 같아.”

“……! 맞아, 4번도 좋아. 그런데, 살짝…… 걱정되는 부분이.”

“오호~ 우리 신 프로듀서님 말씀은 들어봐야지.”

“…….”

최승하의 익숙한 놀림에 한숨을 삼킨 신유하가 말했다.

“다른 것들을, 생각해 봤을 때…… 사실 1번이, 활동 곡으로 무난, 하다고 생각해.”

“맞는 말이다.”

끼어든 건 다름 아닌 나였다.

“나도 무난한 건 1번이라는 생각이 들어. 중박은 칠 수 있을 것 같고.”

“형님도 그럼 1번 곡이십니까?”

“아니, 나는 4번.”

생각을 거듭할수록, 정답은 이쪽이라는 확신이 든다.

아이돌과 컨셉추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를 지녔다.

‘퍼포먼스형’ 무대를 만들기에, 확실한 컨셉을 가진 컨셉추얼만큼 좋은 게 없기 때문에.

예전엔 ‘컨셉추얼한 노래는 오타쿠 장사’라는 말이 떠돌며 대중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며, 조금의 변화가 생겼다.

컨셉추얼하더라도, ‘일부’는 대중들의 선택을 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MZ세대가 컨셉추얼함에 적응했으니까.

물론 과한 컨셉추얼은 해외를 노리는 게 아니라면 멸망 루트다.

국내를 노릴 거라면 적당한 컨셉추얼.

이제 거기에 대중적인 맛의 이지리스닝을 적절히 버무린 곡을 뽑아내야 했다.

혹자는 대중성을 노리려면 아예 컨셉추얼적인 요소가 없는 평범한 이지리스닝으로 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전혀.

완벽한 오산이다.

위치가 애매한 상태에서 발매하는 특색 없는 이지리스닝곡?

이지하게 차트 끄트머리로 수직낙하하기 딱 좋다.

나는 멤버들을 훑었다.

이건 굳이 말로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노래는 두어 번 듣는 것 가지고는 감이 안 오지.”

나는 말을 마치며 후보곡들을 다시 재생시켰다.

컨셉추얼한 곡의 특징은 몇 번 이상 듣다 보면 감긴다는 것이다.

차트 상위권에 있는 곡을 듣고, ‘이런 노랠 누가 들어?’에서 ‘내가 듣네’라는 감상이 된 적이 다들 한 번쯤은 있을 것 아닌가.

그리고 이 4번 곡은 분명하게 남달랐다.

‘이 녀석들이 못 알아챌 리 없지.’

두 번, 세 번, 네 번.

노래가 연이어 재생됐다.

돌고 돌아 4번 후보곡이 재생되고 있을 무렵, 입을 뗀 건 류인이었다.

“……! 방금 그 부분, 댄스브레이크 들어가면 좋겠다.”

“오, 정말입니다!”

차윤재가 곧장 눈을 동그랗게 뜨며 긍정했다.

“확실히 여러 번 들으니 곡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해온 형님이 왜 4번을 고르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저도 정했어요. 4번으로.”

“와아, 수현이도? 으음, 난 한 번만 더 들어볼래.”

나는 웅성대는 녀석들을 보며 픽 웃었다.

봐라.

이미 자연스럽게 판세가 기울고 있지 않은가.

* * *

블라인드 테스트엔 무려 4시간이나 소요됐다.

‘지겨울 정도로 들었군.’

고작 3분 남짓한 곡들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었는지,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선택을 마친 우리는 늦은 점심 식사를 하러 나섰다.

나는 걸음을 옮기면서도 짧은 생각에 잠겼다.

내 목숨줄의 데드라인은 7월 초.

이 말인즉슨, 이번 활동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는 뜻이다.

망한다고 다시 컴백 준비?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앨범은 애들 장난같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까.

타이틀은 내가 밀던 곡이 뽑혔으나…… 문제는 곡만 좋아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거다.

흥행엔 부가적인 요소가 중첩된다.

그리고 그중에서 무척 중요한 건, 활동 시기 선택이다.

이 시기를 잘 타는 건 생각보다도 중요하거든.

팬덤 파워가 센 그룹이랑 겹치면 그대로 피를 보게 되니까.

‘……시기를 잘 선택해야 하는데.’

겨우 날짜 하나에 목숨줄이 왔다 갔다 하는 게 내 참담한 현실이었다.

예를 들어, 밀리어스 같은 놈이랑 활동이 겹친다?

그 그룹의 팬덤 파워는 정말이지 대단해서, 타이틀 1위 붙박이는 기본.

수록곡도 대부분이 10위권 안에 안착한다.

그런 상황에서 라이트온의 팬덤이 힘을 쓸 수 있을 리가.

음원 차트에서 시원하게 미끄러질 테고, 내 모가지도 시원하게 썰리겠지.

내가 혀를 끌끌 차던 순간이었다.

“형!”

최승하가 머리를 들이민 것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말도 못 듣고!”

“잠깐 다른 생각 좀 하느라, 왜?”

“점심 뭐 먹을 거냐고 물어봤죠~”

“너네 먹고 싶은 걸로.”

“와아아, 그럼 전 고기.”

“점심부터?”

“그거 편견이에요.”

최승하가 단호하게 답하고는 고깃집으로 달려갔다.

아주 신났군.

룸 안으로 들어가자, 곧바로 상이 차려졌다.

갈비가 익어가는 소리와 함께, 내 옆에 앉은 달콤이가 속삭였다

“그…… 혹시 고민 있어?”

나는 고개를 절레 저으며 고기를 입안으로 욱여넣었다.

팍팍한 인생을 살아가려면 배는 채워야 하지 않겠는가.

“안색이 안 좋은데…….”

중얼거린 달콤이가 내 앞접시에 고기를 올렸다.

“많이 먹어, 해온아.”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나는 주머니 속에 듬직하게 위치한 명훈이의 법인 카드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돈은 많지만, 명훈이의 곳간은 어떻게든 털어먹고 싶달까.

* * *

식사를 끝낸 우리는 곧바로 숙소로 향했다.

밴이 지하 주차장에서 멈춰졌고, 우르르 내린 멤버들 사이에서 나는 등을 돌렸다.

“난 이따가 들어간다.”

갑작스러운 개별 행동에 멤버들의 얼굴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그리고 이럴 줄 알고 미리 챙긴 알리바이가 있었다.

바로 운동 가방.

내가 밴 뒤편에서 가방을 꺼내자, 최승하의 눈빛이 단번에 추리소설 속 주인공처럼 변했다.

“허어어어어어?”

최승하가 의심스러운 얼굴로 내게 척척 다가왔다.

“형이 운동을 한다고? 그것도 자발적으로? 흐으으음~ 그럴 리가 없는데.”

“…….”

“알았다! 거짓말, 억.”

최승하의 정강이를 강타한 나는 흑흑대는 최승하를 뒤로한 채, 미리 부른 택시에 올라탔다.

목적지로 향하는 차체 안에서 나는 눈썹을 까딱였다.

“흠.”

곡이 픽스됐으니, 이제 컴백 준비는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곡을 토대로 가사와 안무가 만들어질 것이고, 녹음과 연습이 이어질 것이다.

참고로 뮤직비디오는 임진각에서의 딜로 얻어낸 게 있으니, 끝내주게 써먹을 예정이다.

……그러니.

나는 다른 문제를 대비해야 했다.

턱을 괸 나는 택시의 창밖에 비치는 건물 하나를 살폈다.

[톱스타패치]

과연, 연예인들의 피땀눈물이 서려 있는 건물이로군.

돈을 얼마나 벌어먹었는지, 위치도 아주 훌륭했다.

작게 감탄하며 택시에서 내린 나는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이제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도착 직전에 메시지를 보냈으니 아마도.

“5, 4, 3, 2…….”

작게 카운팅을 하던 내 입매가 조금씩 올라갔다.

“역시.”

톱스타패치 건물에서 누군가가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주위를 휙휙 돌아보며 다급하게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눈을 질끈 감습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한결같은 당신을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나는 화사하게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물론 선글라스와 마스크에 가려진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저 멀리 선 유인성의 손가락이 나를 정확히 짚었다.

입으론 무슨 욕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유인성이 날 발견했다는 걸 확인한 뒤, 나는 곧바로 등을 돌렸다.

기자들의 소굴 앞에서 굳이…… 유인성과의 투샷을 보여줄 생각은 없거든.

만일 찍는대도 꽁꽁 싸매진 상태라 별문제는 없겠지만, 위험 요소는 피하고 가는 게 낫다.

사람이 전혀 다니지 않고, 몰래 사진을 찍기 힘든 비좁은 골목.

그런 장소로 들어간 나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웃었다.

“기자님, 오랜만이네요.”

“지, 지금이 태평하게 인사나 할 땝니까?!”

“그럼요. 반가운데 인사를 드려야지.”

“저는 안 반갑다고요. ……그리고!”

유인성이 소리를 낮춰 속닥였다.

“이렇게 회사로 찾아오시면 어, 어쩐답니까?”

“그렇게 곤란해하실 줄 알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와봤습니다.”

“이건 그냥 성해온 씨가 사진 찍히기 싫어서가 아닙니까!”

경악한 유인성이 미간을 꾹꾹 눌렀고, 나는 빙그레 웃었다.

“기자님.”

“왜요! 왜!”

“제가 왜 온 건지, 눈치채셨나요?”

“…….”

자신의 미래를 예상한 것인지, 유인성의 낯짝이 순식간에 칙칙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아름다운 대화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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