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87화
유인성이 내 눈을 도로록 피했다.
“……저는 짚이는 게 없습니다만.”
“정말 모르시겠어요? 정말?”
내가 맑은 눈의 광인처럼 눈을 반짝이며 묻자, 유인성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일단 다 제쳐두고 말할 게 있으면 전화나 문자, 메일로 하면 되는-”
“에이, 아시면서 그런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유인성의 귀에 속삭였다.
“비밀 이야기는 얼굴 보고 하는 게 낫잖아요?”
“당신은 직업을 정말 잘못 골랐…….”
“뭐라고요?”
“최고의 아이돌이라고 했습니다.”
엄지를 치켜세운 유인성이 하하 웃었고, 나는 덩달아 웃으며 유인성을 훑었다.
이 인간이 소속된 톱스타패치가 어떤 곳인가?
연예계 관련 정보 수집에 있어서는, 그 어느 곳도 따라잡지 못하는 독보적인 입지를 가진 언론사다.
이 바닥의 비밀스러운 부분을 캐내는 것으로 명성을 얻은 언론사답게, 규모를 키운 지금도 비슷한 노선을 걷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연예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귀신이 아니라 이놈들이란 소리까지 떠돌고 있으니 말 다 했다.
나는 무해한 낯짝으로 질문을 던졌다.
“라이트온에 대해서도 요즘 들리는 게 있을까요?”
“아, 뭐야.”
유인성이 천만다행이라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거 궁금한 거였어요? 나원참, 그런 거면 진작에 말을 하지 그랬어! 내가 앞으로 어? 라이트온에 대한 정보는 확실히 물어다 줄게요.”
“음음.”
“본론으로 들어가서, 라이트온 정보? 당연히 들려오지. 요즘 인기 많거든. 그쪽도 알죠? 우리 말고 다른 데에서도 관심이 아주 많아.”
“음음.”
“듣자 하니까, 요즘에 컴백 준비한다면서요? 강찬혁 프로듀서도 그렇고, 히트 재규어한테도 곡 컨택했다고 소문이 자자해! 자본 꽤나 부은 모양이지?”
신난 유인성이 나불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이 자식들의 정보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곡 컨택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까.’
예상은 했다만, 그 이상이로군.
나는 산뜻한 얼굴로 운을 뗐다.
“하나 더 알려 드릴까요? 컴백은 5월 초쯤을 생각하고 있답니다.”
“오케이, 오케이, 잠깐만.”
작은 수첩에 내 말을 받아 적던 유인성이 흠칫했다.
드디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 그런데 이걸 왜 나한테 알려주는……?”
“하하.”
나는 짧게 웃으며 유인성과 시선을 마주쳤다.
“왜긴 왜겠어요, 기자님.”
“설마…….”
“알아 와주세요.”
나는 눈을 접어 웃으며 작게 덧붙였다.
“다른 그룹들의 컴백일자.”
동시에 나는 메일을 발송시켰다.
띠링, 소리와 함께 유인성의 스마트폰이 반짝였다.
명단을 확인한 유인성이 손을 떨었다.
“이, 이, 이 그룹들을 전부 다?”
그렇다.
내가 보낸 리스트는 1군부터 2.5군.
그리고 뜰 기미가 보이는 신인그룹들까지 총집합되어 있었으니까.
아, 거기에다가 유력한 기획사들에서 데뷔 예정인 그룹까지 포함시켰다.
한마디로.
“이 유인성을…… 써먹어서 가장 좋은 날짜에 컴백하시겠단 말씀?”
이거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입을 다문 나는 화사한 낯짝으로 유인성의 손을 맞잡았다.
“써먹다니요.”
“…….”
“협업이지요.”
“협, 협…….”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협업이나 협박이나 한끝 차이라며 당신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성좌, ‘희곡의 설계자’가 당신은 역시 연기를 해야 한다며 손수건을 질겅질겅 물어뜯습니다.]
“성해온 씨, 그건 우리한테도 극비예요. 극비!”
내가 은은하게 미소 짓자, 유인성이 기함했다.
“다 알면서 말을 꺼낸 겁니까?”
당연하지.
이 일엔 유인성만 한 적격자가 없다.
톱스타패치가 이걸 모를 리 없거든.
아마 웬만한 소속사들의 일정은 전부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엔터테인먼트 직원에게 돈을 먹였든, 뭐든 간에 말이다.
공인의 사생활을 중점적으로 캐낸다는 특성상, 이것만큼 중요한 논점이 없기 때문에.
예를 들어 활동 준비 시기에 접어들면, 애인이 있는 아이돌도 만남을 자제하지 않겠는가.
그럼 당연히 톱스타패치도 비수기다.
이때 인력을 쓰는 건 무의미한 짓이니, 다른 그룹에게로 눈을 돌리겠지.
그런고로, 각 그룹의 활동 시기는 톱스타패치에게 꼭 필요한 정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기자님.”
“기, 기다리지 마세요! 그래요. 제가 담당하는 아이돌은 말씀드릴게요. 올타임은 7월, 트웰브는 아직 계획이 없어요. 아, 맞다! 블루그레이가 4월 말에서 5월 초!”
“아하, 그렇군요. 그런데…….”
나는 눈을 접어 웃었다.
“블루그레이 후배님들은 명단에 없을 텐데요.”
이쪽은 중소 기획사에서 낸 신인인 데다가, 별다른 기반이 없어 현시점에서 라이트온의 적수라곤 할 수 없다.
“저도! 저도! 모릅니다! 담당하는 그룹들의 정보만 주어지는데 어떻게 안답니까! 능력 밖입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비관하지 마세요.”
나는 인자하게 웃으며 유인성의 어깨를 토닥였다.
“기자님은 할 수 있어요. 그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제발 이런 상황에서 따뜻하게 응원하지 마세요! 무섭다고요!”
“시간은 꽤 넉넉히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러려고 일찍 찾아뵌 거기도 하고.”
“……완전히 내 말을 무시하고 있잖아?”
“음, 언제까지 알아봐 주시면 될는지 확인해 볼게요.”
내가 캘린더 앱을 켬과 동시에 유인성이 소리쳤다.
“아악, 자연스럽게 기한 정하지 마!”
“기자님도 참. 협업에 데드라인은 기본인 걸요. 그리고 반말이라니, 드디어 저를 편하게 생각해 주시는 거로군요.”
“…….”
이쯤 되니 할 말이 사라진 듯한 유인성이 비틀거렸다.
“이런, 일이 끝나면 좋은 보약 하나 달여 보내 드리겠습니다.”
“독극물 아니고요?”
“예?”
“아무것도 아닙니다.”
빠르게 말을 바꾼 유인성이 자신의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중얼댔다.
“내가 미쳤지…… 이 인간이 뭐가 예쁘다고…… 그때 편을 들어줬나…….”
“들었습니다.”
“방, 방금 제 말을 들었다고요? 작게 말했는데 귀도 좋으시네. 오해입니다. 성해온 씨를 욕한 게 아니라-”
“그거 말고요. 교통사고때 찌라시 퍼뜨린 기자한테 연락하셨다면서요?”
“그, 그걸 어떻게…….”
“고소 과정에서 그 기자한테 직접 사과받았거든요.”
나는 수줍은 낯짝으로 입을 가렸다.
“기자님, 저희는 어쩐지…….”
“제발 그 뒤에 말 하지 마세요! 제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내 팔자야…… 내 팔자야…….”
“그렇죠?”
“…….”
* * *
그나저나.
‘오늘이 그 날이군.’
숙소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나는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촬영 당시, <한양연가>는 4회 차를 방영중이었고 우리가 출연할 회차는 7회 차였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시청률이 날이 갈수록 고공 행진한 탓에, 약간의 변동이 생긴다.
[한양연가 시청률 고공 행진…… 서유현 몸값 UP]
[SBC, 한양연가 추가 편성 결정]
편성수가 늘어나 버린 것.
곧바로 대본에 큰 변동이 생겼고, 로맨스 비중이 늘며 우리가 출연할 부분이 11회차로 밀리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고로, 2월 24일인 오늘이 11회차의 방영일이다.
2월 초에 스틸컷이 공개된 뒤, 스위치들은 매주 드라마를 본방사수했다.
- 한복 입은 깜찍이들 내 눈에 담아준다 ㅋㅋ
- 내가 맨날 리모컨 뺏으니까 얼떨결에 우리 가족 다 이 드라마 애청자 됨
하지만 2주일이 지난 시점까지 우리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자, 스위치들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 대체 랕온깅들 언제 나와 오늘도 그냥 드라마 재밌게 본 사람 됨
- 한복 냥냥즈가 달콤한 허상이었을 확률은?
- 이쯤 되니까 오기로 보게됨 마지막 화에 나오는 거 아니냐 ㅋㅋㅋ
급기야 마지막 화에 나오는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등장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오늘입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속마음을 내뱉으며 시끌벅적한 단톡방을 살폈다.
[ 최승하 : 오늘 천만배우님들이 출연하시는 드라마 보면서 맛있는 거 드실 분 ^ㅁ^vV ]
[ 차윤재 : 핑계가 좋으십니다 ]
[ 최승하 : (깜짝 놀란 강아지 이모티콘) ]
[ 최승하 : 그럴 리가 있나 ㅎㅎㅎㅎ ]
[ 최승하 : 메뉴는 치킨이 좋겠어요 ]
목적은 이거였군.
나는 픽 웃으며 숙소의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낯짝이 허름해지기 시작했다.
“배우님!”
최승하가 팔에 하얀 수건을 곱게 접어 올린 채로, 깍듯하게 허리를 숙여왔기 때문이다.
이건 대체 무슨 컨셉이냐.
……집사?
“겉옷은 이리로.”
척척 다가와 겉옷을 벗긴 최승하가 입에 주먹을 가져다 대며 ‘흠흠’ 소리를 냈다.
“이렇게 유명하신 분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벌써부터 놀려먹을 준비가 만반이군.
잠깐만.
……차윤재는?
나는 운동 핑계를 대며 나갔다지만, 그 녀석은 내내 최승하와 함께였을 텐데.
의문이 스친 내 고개가 돌아갔고, 이내 소파에 엎어진 한 인영을 목격할 수 있었다.
“저 형님은 정말……!”
천성이 순한 탓에 험한 말을 입에 담지 못한 모양인지, 차윤재는 소파에 얼굴을 묻은 채 씩씩거리고 있었다.
내가 오기 전에, 야무지게 놀린 모양인데.
다음 타깃은 나겠고.
하지만.
사람 잘못 골랐다.
* * *
“집사, 채널 바꿔.”
“……넵!”
처음보다 확연히 느려 터져진 행동이었다.
나는 하하 웃으며 다리를 꼬았다.
“집사, 일하기 싫은 건가?”
“그럴 리가 있나요. 천만배우님을 모시게 되어 기쁜 마음입니다.”
“목이 마르네.”
“물을 대령하겠습니다!”
“이 날씨에? 영 센스가 없군.”
“……따뜻한 차로 대령하겠습니다!”
“음.”
금세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가 들이밀어졌고, 나는 미간을 구겼다.
“나는 뜨거운 차에 얼음 하나를 띄워야 하는데.”
“……언제부터 그랬어요!”
“오늘부터. 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마시다가 입천장이나 실컷 데이라는 저주 같기도 하고.”
내가 카페의 진상 손님처럼 눈썹을 까딱이자, 최승하가 펄쩍 뛰었다.
“다시 가져오면 되잖아요! 이 사람 진짜 보통이 아니네!”
“천만배우에게 반말?”
“…….”
“반말?”
“사람이 진짜 못됐어! ……요.”
미안하지만 시작도 안했다.
나는 손가락을 까딱여 숙소 구석탱이에 놓여 있는 가습기를 가리켰다.
“열을 냈더니 건조해지는군.”
“……!”
내 말도 안되는 논리에 반박하려던 최승하가 내 손가락이 향하는 곳을 보고 경악했다.
“가, 가아아습기는 오래 안 써서 먼지가…….”
“가습기.”
“닦아야 하는데…….”
“가습기.”
“이거 청소가 조금 복잡…….”
“가습기.”
“그것 말고 따뜻한 차를 한 잔 더 제대로 타서…….”
“가습기.”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동료애를 울부짖습니다.]
미안하지만 이것도 동료애의 한 줄기다.
나는 미소 띤 낯짝으로 악센트까지 줘 말을 이었다.
“가. 습. 기.”
“진짜 미워! 일부러 이러죠!”
드디어 놀려먹기를 포기한 모양인 최승하가 그 자리에 널브러져 꿍얼댔다.
“완전히 악덕업주야…….”
* * *
드라마 시간은 빠르게 다가왔고, 멤버들은 거실에 모여 앉았다.
곧이어 모니터엔 수려한 붓글씨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한양연가(漢陽戀歌)>
글자들은 물에 퍼진 듯이 연해지면서, 주연들의 얼굴이 하나씩 겹쳐졌다.
드라마가 시작한다는 사인이었다.
“시작한다! 형이랑 윤재는 언제 나오려나아…… 어?”
말문을 열었던 최승하가 입을 터업 막았다.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드라마의 첫 시작이, 내 낯짝이었기 때문에.
[성좌, ‘희곡의 설계자’가 감격스러워합니다.]
[성좌, ‘희곡의 설계자’가 내가 원하던 게 이거였다며 무릎을 칩니다.]
성좌의 메시지가 시끄럽게 떠올랐다.
[성좌, ‘희곡의 설계자’가 기대감을 숨기지 못하며 2,700골드를 후원합니다!]
아니, 정정하겠다.
아름답게 떠올랐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의 태세 전환에 기함합니다!]
성해온이 눈을 반짝거리고 있을 무렵, 스위치들은.
그야말로…… 뒤집어지고 있었다.